“더러운 서민 주제에 뭘 꼬라 봐? 기분 나쁘게.”


아니 네가 먼저 봤잖아, 왜 나한테 그래.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아~ 기분 나빠. 웩, 부탁인데 제발 어디 나가

죽어주지 않을래? 그리고 여기 앉지 마.”

“아니, 여기가 내 자리인데.”
“어쩌라고? 유사 마법사 주제에 진짜

마법사 님한테 말대꾸한 거야, 지금?”

 

아야야, 그녀가 내 등을 막대기로 찔렀다.

 

좆같네 진짜,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말대꾸

할 수 없다. 이 녀석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고.

 

“귀찮네 진짜,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야?

이런 과제한다고 마법 잘 쓰면 인정한다만은.”

 

말레이스가 서류를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지금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이 싸가지 없는

아가씨의 이름은 말레이나 엘 크라시우스.

그래, 그 유명한 9대 가문의 크라시우스다.

 

‘니미, 왜 이런 년이랑 파트너가 된 거야.’

 

아카데미에 온 건 좋다, 거기까지만 좋았다.

하지만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년하고

엮인 내 인생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왜 얘는 나보고 파트너가 되라고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야, 짝퉁. 이거 네가 다 해치우고 발표해.”
“혼자 하기엔 너무 많은데.”

“아 그럼 친구 불러서 둘이서 하시던가요.

켁, 이런 쉬운 것도 혼자서 못해?”

 

봐라, 이거. 인성 수준이 3분도 안 지나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 

 

마법 명가면 뭐하냐, 인성 교육은 이 모양인데.

하지만 크라시우스에 그걸 지적할 정도로

나는 용감하지도 않고, 멍청하지도 않다.

 

“나 원, 따까리 노릇은 잘할 것 같아서

파트너 해줬는데 이게 뭐야?”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데.”
“귀찮아. 남의 파트너 뺏기도 싫고.”


나는 진짜 그러고 싶은데.

그냥 파트너 없이 혼자 다니라고 해도

바닥에 엎드려 고맙다고 절할 수도 있다.

 

‘근데 진짜 얘는 왜 나랑 다니지.’

 

파트너 생활도 벌써 반년 째, 하지만 말레이나와

나는 정말이지 극상성이었다.

 

출신, 실력, 성격, 취향, 취미, 뭐 하나 맞는 게

없고 도저히 맞춰줄 수도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평민이지만 열심히

독학해서 마법사가 된 나와, 태어나면서부터

마법을 물려받은 말레이나는 시작점부터 달랐다.

 

금수저 부럽다 젠장. 금수저, 아니 마법수저

다 죽어라. 누군 개고생해서 아카데미 들어와도

장학금 한 번을 못 받는데.

 

서걱, 서걱. 나는 머리 싸매고 눈앞의 문제와

싸웠다. 망할 슬레프 교수, 수업은 지 것만

듣는 줄 알지. 이걸 어떻게 2주 안에 하라고?

 

“거기서 막히냐? 하여간, 진짜 멍청하네.

알레프-레토 식으로 풀면 되잖아, 그걸 누가

하나씩 풀어? 너 진짜 원숭이가 변장한 맞지?”

“그렇게 잘 알면 직접 푸시죠, 말레이나 님?”
“좋은 따까리 두고 내가 왜? 굳이?”


진짜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 딱 한 대만.

아니다. 한 대가 아니라 세 대는 때려야지.

 

나는 말레이나의 말대로 문제를 풀었다.

……빡치지만 그녀가 옳았다. 30분은 걸릴

문제를 1분도 안 걸려서 풀었다.

 

‘인성 빼곤 다 훌륭하다는 게 진짜 최악이네.’

 

나는 곁눈질로 말레이나를 보았다.

 

제일 먼저 어깨까지 닿는 백금발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원래는 더 길었는데 어째서인지

짧아졌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역시 눈이었다.

길고 두터운 속눈썹에 커다란 눈은 왠지 모르게

여우를 닮았다. 여우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도.

 

마지막은 역시 교복이다. 더러운 성질과 달리

그녀는 항상 완벽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아마 귀족의 품위 뭐 그런 거 아닌가 싶었다.

 

“뭘 훔쳐봐?”
“안 봤어.”
“구라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안 배웠어? 하이엘르시아.”

 

우악!? 내 두 손이 갑자기 굳어버렸다.

구속 마법. 야, 이런 것도 쓸 수 있었네.

 

“야, 이거 안 풀어?! 지금 문제 풀고 있잖아!”
“네가 먼저 거짓말해서 그런 거잖아.

자기 잘못은 모르고 대들다니, 이래서

평민 출신은 안 된다는 거야.”

 

말레이나가 내 이마를 지팡이로 쿡쿡 찔렀다.

파트너한테 마법을 쓰다니, 인성 수준하곤!

 

“슬슬 재미없어지니까 빨리 풀어.”
“뽤리 풀롸고~”
“그럼 이 문제는 네가 풀던가!”
“그보다 재미있는 게 떠올랐는데 말이야.”


그녀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우리, 진실 게임할까?”
“뭐?”
“물론 진실을 너만 말하는 거지만.”


패트놀루시. 눈 앞에서 분홍색 불빛이 번쩍였다.

이거……이거 설마 ‘진실의 마법’인가?

 

‘말로만 들은 마법인데, 진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했구나. 씁, 이건 내가 졌다.’

 

역시 희귀한 마법도 배울 수 있구나, 나도

명문가 출신이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뭐, 네 수준으론 못 배우겠지만.”
“응? 어? 뭐야, 내 생각이 말로…….”
“이 마법은 단순히 거짓말만 못하게 되는

마법이 아니거든. 생각하는 것도 바로바로

입으로 나오게 되는 마법이야.”

“와, 진짜 유용하네.”


이번에도 생각이 말로 튀어나왔다.

……제발 괜한 거 물어보지만 마라.

 

“괜한 거? 괜한 거 뭐?”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생각했는지 말해, 당장.”


좆됐다 씨발. 망할 생각을 통제할 순 없다고!


“야한 거…….”
“풉.”


말레이나가 큭큭 웃었다.

젠장, 언젠가 죽일 테다. 반드시 죽인다.

 

“아하하, 미안, 미안. 아니 근데 죽인다니,

네 실력으로? 그러려면 100년쯤 걸릴 텐데?”

“그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야.”
“뭐, 너무 과한 질문은 안할게. 약속.”


그거 진짜 고맙네, 나는 말했다.

 

“그래서 너 지금 동정이야?”

“어, 동정이다.”
“크하하하하! 아하하, 으하하하!”


지랄 맞은 년, 제발 죽어라, 망할 금수저년.

아니 아직 20살도 안 됐는데 동정일 수도 있지!

세상엔 35살 먹고도 여자랑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 넘쳐난단 말이다!

 

“그건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고― 아 웃겨.

이거 소문내도 돼? 아니, 그냥 내야겠다.”

“내면 죽일 거야, 진짜 죽일 거라고.”

“아이고 무서워, 오줌 지리겠다.”

 

아하하하하! 말레이나가 더 크게 웃었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어느 쪽이건

우리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럼 말이지.”


말레이나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이건 씁, 좀 너무 가깝지 않나?


“나는 어떻게 생각해?”
“좆같은 금수저년.”
“우와, 이건 살짝 상처받는데.”


퍽이나, 나는 코웃음 쳤다.

상처는커녕 무슨 짓을 해도 마음에 흠집이나

날까? 

 

“아니, 나도 평범하게 상처받는 사람이거든?”
“안 믿기는데. 그리고 믿기 싫어.”
“그나저나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거 주인님한테 혼나야겠네, 안 그래?”

 

아하하하, 말레이나가 또 크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웃으면 아줌마 같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결국 안 듣는구나. 아줌마.

 

“아줌마 아니거든!?”

“아줌마, 아주머니, 시무라.”
“시무라는 누군데!?”


이렇게 정신을 팔게 하면서, 나는 그걸 준비했다.

요요 망할년, 어디 제 꾀에 넘어가봐라.

 

“응? 제 꾀라고?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참, 지금 생각하는 게 그대로 나왔지.”


그래도 뭐 상관없다. 준비는 벌써 끝냈다.

생각하지 않고 준비한다는 게 어렵긴 하더라.

 

“리터니모.”
“헛?!”


마법 반전, 그녀의 두 손이 허공에 묶였다.

 

“하하! 맛이 어떠냐, 내가 교수님한테 엎드려

빌어가며 배운 비장의 마법이다!”

“마법 반전이라니, 시시한 마법사들이

배우는 시시한 마법이구나.”

“그래! 난 시시한 마법사다! 평민이니까!”


크흑, 내가 말하고도 눈물 나오려 하네.

하지만 당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그래, 무슨 질문을 해야 좋을까. 

너무 지나친 건 좀 그렇고, 적당히 골려먹기

좋은 질문……아.’

 

역시 진실 게임에선 이 질문이 나와야지.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냐?”
“어, 있는데.”


있구나, 하긴 그렇겠지.

그보다 이런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어디 사는 누구인지 참 불쌍하구나.

 

“누군데?”
“너.”


……?

………………?

뭐지? 마법 반전이 제대로 안 됐나?

 

“너희 아버지 이름이 뭐야?”
“말레우스 엘 크라시우스.”


씁, 되는 거 맞는데. 

뭐지 진짜? 마법 반전에 문제가 있었나?

 

잠깐이지만 얘가 날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평소 행실을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야, 말레이―”

 

그 순간, 나는 좆됐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여자애들의 그 표정이다.

 

부끄러운데 화나고, 그러면서도 분해서

억지로 눈물을 참는 그 표정.

 

그것도 하필이면, 말레이나가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일단 우리 집안에 연락해서 도망치라고 해야지.’

 

응, 그러자. 잘못하면 크라시우스 가문에서

우리 집안에 자객을 보낼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외동딸을 엿 먹이다니 그 딸바보

아저씨가 절대 용서할 리가 없다.

 

“이…….”
“이?”


말레이나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렇게 고백할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나는 얼른 마법을 풀고, 바닥에 엎드렸다.

아니 이럴 줄은 몰랐지! 내가 제일 억울해!


“야, 데니얼.”
“넵.”
“……너 우리 집안 알지? 우리 아버지도 알고.”
“알죠, 네. 당연히 잘 압니다요.”


턱, 그녀가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제일 먼저 새빨개진 말레이나의 얼굴이 보였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보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잘 있어라 세상아.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들키면 우리 둘 다 죽어, 알겠어?”
“네?”

 

그리고, 나는, 인생 처음으로 키스했다.

사실 키스라고 하기엔 좀 그랬다.

굳이 비유하자면 입술 박치기라고 해야 하나.

 

“어디 가서 티내지 마라, 알겠지!?

들키면 나도 죽고 너도 같이 죽는 거야!”

“아니, 저기, 그, 거시기 뭐냐.”
“절대! 티! 내지! 마! 내가 신호할 때만 

이러는 거야! 다른 때엔 어림도 없어!”

 

쾅!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좆됐네……아니, 좆되네…….”

 

뭐, 이리하여.

나는 아카데미 최악의 여자와 비밀 연애를

하게 된 것이었다.








답글쓰기 귀찮으니까 미리 달아놓는 콘

2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