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혈이 빗물에 녹아 흘러내렸다.

 

죽는다. 그녀, 코모리 츠루기가 생각했다.

출혈이 안 멈춘다. 하기야 고위력탄이 배에

세 발이나 꽂혔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존재에겐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죽음이었다.

 

‘나는, 자유야…….’

 

그 무엇 하나 선택하지 못한 삶이었다.

하지만 죽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만족하며, 마지막 숨을―

 

“우왓, 뭐야 이건?”

 

철퍽,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맹인이었기에, 고개를 들어도 대체

누가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


“심각한 꼬라지구먼! 아가씨, 살아있나?”

 

아.

 

그녀의 의식이, 그 순간 무너져 내렸다.

 

 

 

 

 

눈을 떠도 어둠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녀의 눈은 태어날 적부터 기능하지 않아,

희미한 빛조차 볼 수 없었다.

 

현대의 기술로도 고칠 수 없는 장애였다.

시신경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인공 안구를

이식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의식이

돌아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는가 묻는다면,

지금 들려오는 이름 모를 재즈 때문이었다.

 

그리고 냄새. 짙은 커피향이 그녀의 식욕을

자극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은 먹질 못했다.

 

“뭐야, 일어났나?”


“여긴?”


“내 사무실이다. 그보다 눈을 감고 있으니

의식이 돌아온 건지 아닌지 모르겠구먼.”

 

뭔가 독특한 목소리였다. 

기계 변조음? 마치 전화기 너머로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기도 했다.

 

“로봇?”


“누가 로봇이냐!? 무례한 녀석이구먼!

나는 사이보그지 로봇이 아니야! 알겠냐?!”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잘은 몰라도,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 실수했어.”


“흥……뭐 됐어. 보아하니 맹인인 것 같은데,

인공 안구가 비싸긴 하지. 이해한다.”

 

사실 그 이유는 아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보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길 구해준 이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여긴 어디지?”


“내 사무실이라고 했잖아. 주소라도 가르쳐주랴?

……여긴 브루클린이다. 너, 외지 사람이지?”

 

“브루클린. 브루클린.”


그럼 제대로 온 게 맞구나.

여기가 바로 미국, 그녀가 중얼거렸다.

 

“내 이름은 레토다. 사립 탐정이지.”

 

“레토나?”


“사람 이름을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그보다 넌 누구지? 신원 등록도 안 된 놈이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니.”

 

끼익, 그녀가 쇳소리를 듣자마자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총. 권총이다, 아마도 구식.

 

“…….”


“허, 맹인인데도 내가 총을 들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건가? 감이 좋은 거 같은데.”

 

이 거리에선 대응할 방법이 없다.

장비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직감이 이 남자에게 대항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코모리 츠루기……일본인이다.”


“일본? 쨉스냐? 이 동네에 일본인이라니.

대체 정체가 뭐냐, 넌?”

 

“말해줄 수 없어. 미안.”


“그래, 그러냐.”


레토가 킁, 짧게 콧방귀 꼈다.

 

“뭐 아무렴 어때. 네가 가지고 있던 장비는

망가진 것 같아서 수리 맡겼다.”


“누구한테?”


“알면 뭐, 직접 가지러 가게? 걱정하지 마.

그런 거 떼어먹을 정도로 궁핍하진 않으니.”

 

그것보다도 장비가 손에 없다는 게 영 내키질

않았다.

 

‘이 남자, 믿어도 되는 건가?’

 

배를 만져보니 확실히 상처도 치료해줬다.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 죽였을 테고, 잘은

몰라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꼬르륵…….

 

그때, 그녀가 배를 붙잡았다.

 

“음? 배고픈 거냐?”


“미안…….”
 
“마침 잘됐군. 원래 취조라는 건 먹으면서

하는 거라서 말이지, 밥 사줄 테니까 네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말해줘야겠어. 어때?”

 

나쁜 조건은 아니다.

사실, 그녀가 아는 건 거의 없었고 말해줄

수 있는 건 그보다 더 적었다.

 

하지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 얼마 안 되는

정보라도 넘겨줄 수 있었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좋아. 근사한 식당으로 안내해주지.”


그녀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역시 장비가 없으니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맹인용 막대기는 없는데.”
 
“괜찮아, 좀만 적응하면 돼…….”


츠루기가 그리 대답한 뒤 앞으로 걷다가,

소파 다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으으…….”


“너 혹시 코미디언이냐? 미안하지만 그런

개그는 진작 한물갔어.”

 

“시끄러워…….”

 

그 후,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갔다.

밖에는 비가 왔다. 브루클린은 일주일 중 나흘은

비가 내리니 이상할 건 없었다.

 

“다 왔어. 뭐, 너야 여기가 얼마나 멋진

식당일지 모를 테지만.”

 

“레스토랑?”


“아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이너, 그러니까 간이식당이었다. 


브루클린에선 제대로 된 식당을 가려면

일주일치 봉급이 깨지니, 일반적으론 식당이라

하면 다이너를 의미했다.

 

물론 츠루기로선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자자, 앉아. 뭐 좋아하는 거 있냐?”


“아무거나 괜찮아.”


“그럼 햄버거 먹어, 햄버거. 여기 햄버거가

명물이거든? 물론 나야 못 먹지만.”

 

“어, 왜?”


아참, 레토가 크크 웃었다.

 

“난 전신 사이보그거든. 뇌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기계라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그건 불가능해.”


전신 사이보그라니,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녀라도 그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신체의 60% 이상이 기계로 대체되면

죽어. 특히 척추나 순환기를 대체하면 부담이

빠르게 상승해. 이건 상식이잖아?”

 

“잘 아네. 근데 난 좀 특수한 체질이라서.”


오오, 나왔다. 레토가 직원이 가져온 햄버거를

그녀 앞에 놓았다.

 

“아무튼 그런 거다.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만 알아둬.”

 

“…….”


대체 이 남자는 정체가 뭘까?

그녀가 생각 없이 햄버거를 입에 물었다.

 

“음!?”


“어, 왜?”


“마……!”

 

“마?”


“맛있어!!”


이 무슨 환상의 조합이란 말인가!

부드러운 빵에 두툼한 고기 패티, 흘러내리는

치즈에 케첩과 마요네즈의 맛이 적절히 섞여

더할 나위 없는 맛의 폭발이 일어났다.

 

츠루기는 순식간에 커다란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끄윽.”


“……배고팠구나?”
 
“그야 며칠이나 굶었으니까. 저기요, 여기

햄버거 다섯 개만 더 주세요.”

 

“야! 내 돈이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츠루기는 자기 앞으로

나온 햄버거를 또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끄응……크레딧이 부족하진 않겠지…….”


“그보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츠루기가 입에 묻은 소스를 닦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신원 등록도 안 됐고,

일본인에, 맹인에, 가지고 있던 그 요상한

장비는 또 뭐고? 너 혹시 일본 스파이냐?”

 

“그렇게 보여?”


“……아니.”

 

스파이는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 009에서 나오는 멋들어진 스파이 따윈

없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짓만 골라서 하는

스파이는 일주일도 못 가서 죽을 게 뻔했다.

 

“음……그래도 목숨의 은인이니까, 대충

상황 설명 정도는 해줘야겠지.”

 

어디까지 설명해도 되는 걸까.

그녀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일본에서 도망쳤어.”
 
“왜?”


“이유는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도망쳐야만

했고, 추격자들이 날 기습하는 바람에 죽을

뻔했어. 그걸 구해준 게 당신이었고.”

 

만약 레토가 오지 않았다면 거기서 죽었으리라.

그녀의 육체가 아무리 강인해도, 고위력탄이

세 발이나 박히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보답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난 빈털터리야. 미안.”

 

“그럴 것 같았지……수리비에 치료비도 결국

내가 내는 건가. 이래서 이 동네에선 다른 사람

목숨 따위를 구해주지 않는 건데.”

 

레토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빚을 갚을 방법은 있지. 너, 생각보다

몸이 쓸 만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응?”


“그 몸으로 갚아줘야겠다.”


설마…….

츠루기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

 

“그, 그런 짓은 안 할 거니까!?”


“엉? 뭔 헛소리여. 너 제법 눈치도 빠르고

귀도 좋은 것 같은데, 내 일 좀 도와달라는

뜻이었어. 대체 뭘 생각한 건데?”

 

크흠! 츠루기가 헛기침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지, 괜히

사람 오해하게 만들다니.

 

“당신, 탐정이라고 했지?”


“어엉.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하는 일은

대체로 안전하고 무난한 일이니까.”

 

“예를 들면?”


“불륜 조사, 실종자 수색, 양아치 혼내주기?”

 

정말 별거 없는 일이었다.

근데 탐정보단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잡일꾼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알겠어. 어차피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도와줄게.”

 

“말이 통해서 다행이구먼.”


레토가 손을 내밀었지만, 츠루기는 멀뚱멀뚱

앉아만 있었다.

 

“……악수할 줄 모르냐?”


“나 맹인인데.”


“아, 그랬지. 미안하다.”

레토가 츠루기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잘 부탁한다, 츠루기.”


“몇 주만 신세질게, 레토.”


서로의 정체 따윈 모른다.

 

어쩌면, 알 필요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부우웅― 포드 M08이 부드러운 배기음을

내뱉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고, 사방에서

구린내가 났다. 츠루기는 미국이란 나라는

거리 청소도 안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간단한 일이야. 며칠 전부터 거리에 안 보이던

부랑자가 나타났는데, 위험한 놈 같으니 적당히

내쫓아달라는 거야.”

 

“흐응, 보통 이런 일만 하나 봐?”


“난 탐정이니까.”


그건 탐정보단 용병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지만 굳이 지적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일본인이랑 같이 일하게 될 줄은

몰랐어. 마지막으로 일본인을 본 게― 음,

44년쯤인가.”

 

“뭐야, 고작 11년 전이잖아?”


“응? 아니, 아니. 내가 말한 건 1944년.”

 

1944년? 그건 111년 전이었다.

 

“대체 몇 살이야, 당신?”


“1927년생이면 몇 살이더라?”


지금이 2055년이니, 그는 족히 128살은

됐을 터였다. 사실상 130살에 가까운 것이다.

 

“그립네, 그때는 일본인 죽이는 게 합법이었지.”


“그걸 보통 합법이라고 부르나……?”


1927년이면 아마 2차 대전 참전자일 것이다.

설마 아직도 그 시절 사람이 살아있었을 줄은,

츠루기가 혀를 내둘렀다.

 

“몸이 이러니 나이도 안 먹거든.”


“그렇게 오래 살면 어떤 기분이 들어?”


“음, 생각보다 그냥 그래.”


끼익,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레토가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구식 권총이네, 그거.”


“어떻게 알았어?”


“소리로. 요즘 총은 그렇게 쇳소리가 크지

않거든, 보통 레이저를 쏘니까.”

 

“켁, 그딴 애새끼 장난감을 누가 쓸 줄 알고!”


그 ‘애새끼 장난감’이 10cm짜리 방탄 합판도

관통할 수 있는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 T&W M24야말로 진정한 총이라고!”

 

레토가 은색 리볼버 권총을 꺼내며 말했다.

“구식 화약 권총을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시끄러워! 리볼버의 멋짐을 모르는 네가

불쌍하구먼, 그보다 넌 총 안 쓰냐?”

 

그녀가 어깨를 으쓱 올렸다.

 

총이라니, 그런 조잡한 무기를 쓸 필요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그녀는 맹인이었다.

 

그 사실을 막 깨달은 레토가 짧게 탄식했다.

 

“젠장, 맹인이라는 걸 자꾸 까먹네.”
 
“괜찮아. 나도 당신이 사이보그라는 걸 

까먹고 있거든.”

 

두 사람이 우비를 쓰고선 차에서 내렸다.

 

브루클린에는 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가령 여기서 조금 더 떨어진 동쪽 빈민가는 

주로 흑인이 살며 갱단이 점령한 곳이었다.

 

총격전과 폭탄 테러가 밥 먹듯이 일어나는 동네.

일반인은 얼씬도 안 하는 그런 곳이었다.

 

레토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마 여기는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그럼에도 버려진 건물과

허름한 가게 따위만 눈에 띄었다.

 

미국에 환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자기가

빌딩에서 살게 될 거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이런 동네에서

평생 썩다가 죽을 뿐이었다.

 

“저기 있군.”


레토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남자를 보았다.

 

금발, 40대 중반, 팬티만 입고 다니는 놈.

정확히 일치했다. 레토가 총을 장전했다.

 

“난 뭘 하면 돼?”

 

“응? 옆에서 분위기나 잡아.”


“이럴 거면 그냥 사무실이 있을 걸 그랬지.”


레토가 조심스레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휙, 권총을 들어 조준했다.

 

“거기 너! 손 들고 대가리 박아!”

 

“…….”


남자가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씁, 중독자인가? 말이 안 통하면 때려눕히고

트렁크에 태워야 할 텐데.’

 

그건 영 귀찮다. 가능하면 말로 해결하고 싶다.

레토가 권총의 공이를 당겼다.

 

“남의 동네 헤집고 다니지 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 형씨. 무슨 뜻인지 알겠어?”

 

찰칵.

 

그때, 츠루기가 레토를 덮쳤다.

 

“우왓?! 뭐―”

 

“머리 숙여!”


퍼어엉―!! 그들이 타고 온 자동차가 폭발했다.


남자의 팔이 변형되며, 소형 유탄 발사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군용 프라스시스.

 

일반인은 구경도 못할 물건인데, 설마?

 

레토가 놈의 정체를 눈치 채고 소리쳤다.

 

“썅, 군인인가!”


“군인?”


“상이군인! 전직 군인이라고, 저 새끼!”


하필이면 군인이라니, 레토가 중얼거렸다.

군인을 상대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거늘.

 

철컥! 그가 비틀거리는 남자를 조준했다.

 

“…….”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도저히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제기랄…….”


“뭐하는 거야, 얼른 쏴!”


철커덕, 놈이 유탄 발사기를 장전했다.

 

“얼른 쏘라고, 레토!”

 

“……미안하다.”


타앙!! 총탄이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끝났다. 남자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젠장.”


레토가 몸을 일으켜,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죽었다. 깨진 뒤통수에서 뇌수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남자의 눈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러게 왜 이런 동네에서 설치냐고…….”


상이군인이라, 그가 중얼거렸다.

 

보나마나 정신 이상 증세 때문에 전역했겠지.

프라스시스의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했을 테고,

그 탓에 직장도 구하지 못했으리라.

 

이 나라 군인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났다.

과거와 같은 명예나 대우 따윈 없다.

 

“왜 망설였어, 레토?”


츠루기가 뒤에서 다가오며 말했다.

 

“왜? 난 뭐, 망설임도 없이 사람 척척 죽이고

다니는 염병할 살인 병기인줄 알아?”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건…….”


“그래, 그렇게 보이겠지! 다 그러더라고.

레토, 당신은 거물이잖아요. 미국의 자랑!

전쟁 영웅! 지랄하네, 전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레토가 반사적으로 품속에서 담배를 찾으려다가,

자신이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벌써 100년이 된 버릇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칠 수 없었다.

 

“군인이라고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진 않아.”


“…….”


“……됐다, 미안. 내가 좀 예민했네.”

 

레토가 불타오르는 자동차를 보았다.

생각해보니, 대출을 다 갚으려면 아직 2년은

족히 남아있었을 터였다.

 

“망할, 돌아갈 때는 걸어가야겠네.”


본전도 못 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그가 타오르는 불꽃을 올려보며 말했다.

 

 

 

 

 

여전히 비가 내렸다.

그는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았다.

 

‘군인……인가.’

 

군대를 뛰쳐나오고 벌써 20년도 더 됐다.

워 히어로. 2차 대전부터 미국을 위해 싸운

미국의 자부심, 미국 기술력의 정점.

 

그딴 건 전부 버리고 싶었다.

 

거의 100년 가까이 전쟁터를 떠돌아다녔다.

 

일본인을 죽였고, 그 다음엔 소련인을 죽였다.

그 뒤엔 쿠바인이나 중국인도 죽였다.

물론 같은 미국인도 수없이 죽이고 다녔다.

 

전함 위에서 싸웠고, 하늘 위에서 싸웠고,

정글에서, 시가지에서, 산맥에서 싸웠다.

 

그리고 얻은 건, 상처뿐이었다.

 

그 모든 장비와 기어를 떼어놓았건만, 자신은

여전히 그 시절에 사로잡혀 있었다.

 

몸의 성능을 아무리 낮춰도, 정신만은 그럴 수

없었다. 전쟁이, 폭력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혹시 서서 자는 거야?”


“난 잠을 안 자. 정확히는 못 자는 거지.”


레토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 뇌는 개조됐거든, 이래저래 말이야.”


“군대에서 그런 거야?”


“그런 셈이지.”

 

세상에 딱 한 명뿐인 비면역자.

 

그의 몸은 아무리 많은 기계를 달아도 반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현실에선 일어났다.

 

“나 말이야, 슬슬 떠나려고.”


“벌써? 이제 겨우 보름 지났는데.”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거든.”


츠루기가 피식 웃었다.

 

“이래저래 쫓기는 몸이니까, 나는.”


“왜 쫓긴다고 했지?”


“그건 말 못해. 미안.”


“미안할 것까지야.”


어쨌든 이제 서로에게 빚은 없었다.

다만 츠루기가 걱정되기는 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몰라. 아무 계획 없어.”


“그럼 캐나다로 가는 걸 추천하지. 거긴

신분 등록제가 없어서 숨어 살기 좋거든.”

 

그럼 거기로 갈까,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넌 좋겠네,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당신은?”


“난 아무데도 못 가.”


그가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나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프라스시스

실험체였지. 내 몸은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특수 체질이라, 프라스시스의 전투 능력을

실험하기 딱 좋았거든.”

 

원래 몸을 빼앗기고, 이 기계 몸뚱이에 갇혔다.

거기에 그의 의사 따윈 존중되지 않았다.

 

모두가 그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론, 그는 그저 실험쥐에 불과했다.

 

“그리고 온갖 전투에 투입됐다. 미국을 위해

온갖 곳에서 온갖 인간을 죽였다. 100년 가까이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그는 도망쳤다.

대가를 치러야했지만,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마음 같아선 나도 이 빌어먹을 땅을 떠나고

싶지만, 약속을 어길 순 없으니까.” 

 

“무슨 약속?”


“넌 몰라도 되는 약속.”

 

레토가 그제야 뒤로 돌아섰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떠나. 게다가 아직

장비도 못 받았잖아? 내일 아침에는 드론이

가져다 줄 거야. 그것만 챙기고 가.”

 

“고마워, 레토.”


“고마우면 내 박살난 차나 고쳐줘.”


츠루기가 풋, 하고 짧게 웃었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 같았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 얼른 자라고.”


“응.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킁.”


츠루기가 사무실 안쪽에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레토는, 한참이나 거기 서 있었다.

 

 

 

 

 

쿵! 짧고 강렬한 진동이 그녀를 덮쳤다.

지진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그들이 왔다.

 

일본제국 내무성.

 

“레토!”


“나도 안다. 거 요란한 녀석들이로구먼.”


레토는 이미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경찰?”

 

“아니, 경찰은 아니야.”

 

소형 비행선, 그 어떤 식별 표지도 붙어있지

않은 비행선 몇 대가 건물을 포위했다.

 

보이진 않아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경찰이면 식별 표지가 붙어있었겠지.

아무래도 네 손님인 것 같은데.”

 

“…….”


일본 제국 내무성 직할 부대, 네코마타.

해외로 탈주한 인원을 추적, 제거하는데 특화된

일본 제국의 사냥개들.

 

그들의 전투력은 어지간한 1티어 특수부대에

맞먹는 수준.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조차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레토,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뭐?”


“투항할 거야. 당신이 죽게 둘 순 없으니까.”


츠루기가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레토가 그녀의

손목을 콱 낚아챘다.

 

“나가면 죽어.”


“안 나가도 죽어.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살아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하고 함께 한 보름은 재미있었어. 고마워,

마지막으로 후회하지 않게 해줘서.”

 

“야, 츠루기!”


츠루기가 그를 뿌리치고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의 문을 열자, 수대의 비행선이 그녀를

향해 강렬한 라이트를 비췄다.

 

“Type-5 프로토타입, 투항해라!”


“저항시 즉시 사살하겠다, 손 들어!”


그녀가 머리 위로 양손을 들었다.

 

여기서 잡혀가면, 이번엔 기억과 인격 모두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도구로써 쓰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 것이다.

 

아니면 실험체로 쓰이거나……어느 쪽이건

행복해지는 결말 따윈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끝낸다.

 

그녀가 손목 뒤로 숨겨놓은 나이프를 준비했다.

다가오면 찌른다. 그리고 사살 당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엎드려, 얼른 엎드리라고!”


중무장한 병사들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하지만 투항할 생각 따윈 없다.

 

‘안녕, 레토.’

 

츠루기가 숨겨놓은 칼날을 뽑았다―

 

동시에, 그가 소리쳤다.

 

“썅, 내가 원래 돈 안 받고 이런 일 안 하는데!”


“어?”


파앙! 섬광탄이 터지며 아주 잠깐, 병사들의

눈이 멀었다.

 

“무, 무슨 일이야?!”


“젠장! 프로토타입이 탈주했다, 잡아!”


타다닥! 레토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계단 밑으로 뛰어갔다.

 

“뭐, 뭐하는 거야!?”


“너 살리려고 하는 중이지!”


쨍그랑! 그가 계단 통로에 있는 커다란 창문을

부수고, 그 밑으로 뛰어내렸다.

 

“이러다 당신도 사살당해!”


“쨉스가 날 죽인다고? 100년 전에도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르르륵!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와 날뛰었다.

 

“이제 어쩌려고!?”
 
“몰라! 그래도 시간만 좀 주면 돼! 모드를

설치하는데 시간이 살짝 걸리거든!”

 

“모드? 그게 뭔데?!”


“넌 몰라도 되는 거!”


그들이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사이로 달렸다.

곧 이어서 네코마타의 비행선이 그들을

쫓으며 마구잡이로 총탄을 쏴갈겼다.

 

“미친 새끼들, 미국 땅에서 이런 식으로

설치다가 걸리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네코마타는 원래 뒷감당 같은 거 생각 안 해!

그런 건 외교부가 알아서 한다고 생각하거든!”

 

“하! 똥은 네가 닦아라 이거군?”

 

그러는 사이, 츠루기는 자신의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발자국 소리, 묵직하다. 병사들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좋아, 똑바로 안내하라고, 내비게이션!”
 
터터텅! 두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긴?”


“공장이다. 여기서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티자고.”

 

“경찰이 저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설마 남의 나라 경찰한테 총을 쏠 정도로

미치진 않았겠지.”

 

아니, 그들은 충분히 미쳐있다.

 

츠루기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그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든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찾았다! 집중 사격 개시!”


드르르르륵―!! 기관총탄이 공장의 벽을 뚫고

사방에 튀어 다녔다.

 

“오우, 그래도 레이저나 미사일은 안 쏘네!?”


“저것들은 날 생포하길 원하거든!”


척, 척, 척! 병사들이 공장의 출입구와 창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다.

 

“이제 어쩔 거야?”


“잠시만, 이제 거의 다 됐어.”

 

띠딕! 레토의 관자놀이 부근에 달린 칩이

톡 튀어나왔다.

 

“다운로드 완료. 츠루기, 넌 머리나 숙여.

오랜만에 쓰는 거라 제어가 잘 안 되거든.”

 

“뭐?”


레토가 양손에 든 권총을 앞으로 겨누었다.

 

“트래킹 샷 모드.”


“저기 있다, 잡―”

 

타타탕! 찰나의 순간, 병사 세 명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뭐, 뭐야 이게? 뭘 어떻게 한 거야?”


“머리 들지 마! 잘못하면 너도 포착되니까!”


탕! 타앙! 병사들이 오는 족족 레토가 쏜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대장, 적이 식별됐습니다!”


“뭔데, 저 깡통은!?”
 
“전쟁 영웅, 레토입니다!”

 

“미친, 그런 거물이 왜 여기 있는데!?”


레토가 탁자 뒤에서 나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포착되는 모든 걸 쐈다.

 

방탄 합판이 가리지 못하는 5cm의 틈.

그 조그마한 틈을, 0.01cm의 오차도 없이

쏘아 일격에 절명시킨다.

 

‘굉장해, 무장 차이가 이렇게 큰데.’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네코마타 중대가, 어지간한 특수부대만큼이나

강력한 부대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바이오로이드, 인간을 초월한

반사 신경과 전투력을 가진 생물이다.

 

장비도, 능력도 뒤처지건만―

 

“츠루기, 넌 도망쳐!”


“나 혼자서 도망치라고!?”


“어차피 도움도 안 되잖아! 얼른!”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도망치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토는? 생판 남을 위해 목숨을 건

그를, 모른 척하고 도망쳐도 되는 걸까?


“윽.”


그때, 레토가 주저앉았다.

 

“레토?!”


“과부하인가……! 오랜만에 썼더니 이거야 원!”


“지금이다, 쏴라! 반격할 틈을 주지 마!”


드르르르륵!! 어마어마한 총탄 세례가 레토를

덮쳤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서 공장에서 쓰던

대형 프레스기 뒤로 숨었다.

 

“망할 총알도 얼마 없네. 허허, 나 죽겠다.”

 

“레토! 망할, 내 장비만 있었어도……!”


장비 없이는, 츠루기는 그저 앞도 못 보는

맹인에 불과하다. 

 

“배달 완료, 서명 부탁합니다.”
 
“어?”


그때, 웬 드론이 그녀 앞에 날아왔다.


보이지 않아도, 그 드론이 뭘 가지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은 좋네, 배달 서비스도 있고.”


장비 개방, 츠루기가 말했다.

 

이어서 박스 안에 있던 장비가 스스로 펼쳐지며

그녀의 귀와 다리, 팔에 부착됐다.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아아, 이거지.”


단분자 블레이드, 그리고 코모리 레이더.

이 두 개만 있으면―

 

“레토, 나머진 나한테 맡겨.”
 
“뭐?”


그녀가 검을 들고 뛰쳐나왔다.

새까만 칼날을 본 병사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고 소리쳤다.

 

“젠장, 프로토타입이 장비를 챙겼다!!”


“후퇴, 후퇴해! 당장!”


“너무 늦었어.”

 

일본제국은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선택한 기술은 바로 생체 공학이었다.

기계 공학 위주로 발달한 미국과 달리, 일본은

철저하게 생체 공학을 연구하고 발달시켰다.

 

그 생체 공학의 정점이, 바로 바이오로이드다.
인간을 쏙 빼닮았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

 

그리고 코모리 츠루기, 아니 Type-5는 차세대

바이오로이드이며― 단언컨대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도 강했다.

 

“너희는 몰살이다.”


팟! 순간,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서 병사들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흐아아악!?”


“후퇴!! 여기 있으면 당한다, 얼른!!”


츠루기의 최고 순간 속도는 아음속에 가깝다.

맨눈으로 포착하는 건 불가능하며, 그녀가

장착한 코모리 레이더는 소리를 통해 주위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사각이 없는 탐지 능력, 어떤 물질이든지

벨 수 있는 단분자 블레이드, 전세대

바이로이드보다 최소 10배 이상 우월한

성능을 가진 신체.

 

일본 제국이 낳은 최강의 살육병기.

 

그것이 바로 코모리 츠루기다.

 

“아하하하하!!”


“크아아, 흐아악!?”


사라지고, 또 사라졌다.

그들은 츠루기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레이더조차 츠루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켰다.

 

“얼른 타! 여기서 후퇴해야 해!”


“저런 괴물을 우리보고 어떻게 상대하라고!”


위이잉― 소형 비행선이 위로 치솟았다.

 

카앙! 동시에, 비행선의 출입문이 잘려나가며

그녀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디 가? 임무를 마쳐야지.”


“으아아아!!”


퍼엉!! 비행선이 폭발하며 추락했다.

 

다른 비행선들도, 츠루기의 손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후우, 개운해라.”

 

피투성이가 된 츠루기가 공장에 돌아왔다.

다른 병사들은,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고

몰살당해 바닥에 흩뿌려졌다.


“무시무시하네, 이거 참.”


“……그치? 속일 생각은 없었어. 미안해.”

 

츠루기가 고개 숙이며 말했다.

 

“내 본명은 Type-5, 일본 제국이 극비리에

만든 차세대 바이오로이드야.”


“바이오로이드? 그, 복제 인간 같은 거잖아?”


“비슷해. 나는……일본에서 실험체로 쓰이다가

탈출해서 여기로 넘어왔어. 그러다가 추적당해

죽을 뻔했고, 당신을 만난 거야.”

 

그녀가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어떤 의미로는 당신하고 비슷한 신세지.”


“그런가……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그 뛰어난 청력이나 직감도 설명이 됐다.

그렇더라도 바이오로이드라니, 레토가 웃었다.

 

“소란 피울 생각은 없었어. 레토, 당신한테

민폐 끼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녀가 레토에게 다가갔다.

 

“이걸로 작별이야.”


“또 쫓길 텐데?”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안 그래?”


그녀가 뒤돌아서서 나가려던 순간.

레토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잠깐.”


“……왜?”


“나도 같이 가.”


“어? 하지만, 당신은…….”


“정부 따윈 좆이나 까라지.”


평생을 조국이라는 이름의 사슬에 묶여있었다.

하지만 츠루기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그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같이 도망자 생활 하는 거 어때?”


“……아마 우리 둘 다 죽을 거야.”


“130년이나 살았으면 죽을 때도 됐지.”


그 말에 츠루기가 또 웃었다.

 

“알겠어, 당신하고 다니는 것도 재미있겠지.

앞으로 잘 부탁해……레토.”

 

“파트너라고 부르라고.”


두 사람이 악수하자마자,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런, 경찰이군.”


“도망칠까?”


“좋지. 근데 말이야, 바이오로이드면 너 대체

몇 살인 거냐?”

 

“나? 52년생.”


“1952년?”


“아니, 2052년.”


그럼……레토가 피식 웃었다.

 

“2살하고 130살의 모험이라.”


“재미있겠지?”

 

“그래, 재미있겠네.”

 

두 사람이 도시의 어둠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탈주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분량 존내 길어...그아아악...

전직 군인 출신 사이보그 탐정과 바이오로이드 맹인 검객의 사이버펑크 탈주극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마니악한 소재를 누군가가 주워갈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