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열화에 바스러진 드워프 지하 왕국의 유적.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지고 잊혀진 재물의 보고.

 

북해의 용 우셰르마아트는 그곳에 자신의 둥지를 틀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제정신인 필멸자라면 감히 그의 잠을 방해하지는 않을 터.

 

지금 그의 눈에 들어온 필멸자 또한 기인 혹은 미치광이임이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마. 금화를 탐내는 좀도둑들, 나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고 찾아온 학자, 하다못해 나를 토벌하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다는 어리석은 필멸자들을 나는 수도 없이 보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군."

 

 

그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구의 검은 예복을 입은 여인은 우셰르마아트를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꿈속이라면 네가 더 유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더냐? 겨우 그런 희망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필멸자들이 이런 가소로운 마법이라도 개발한... 잠깐."

 

 

고개를 들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필멸자를 자세히 살펴본 용은 실소를 금치 못하였고.

 

용의 소성이 꿈속에서 울려 펴지자, 그를 감싸고 있던 금은보화들이 흔들려 어지러이 널브러졌다.

 

 

"인간 성직자의 옷을 입은 몽마라니? 이것 또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참으로 우스운 광경이로군. 필멸자여, 익살을 보여준 포상으로 너를 죽이기 전에 네 이름 정도는 들어주도록 하겠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지, 몽마는 고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옷자락을 들고 허리를 숙였다.

 

 

"한없는 영광입니다 우셰르마아트님, 제 이름은 니카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타의로 인해 잠시 이 옷을 입고 있지만, 전 인간들의 성직자가 아닌 한낱 미천한 이야기꾼에 불과합니다."

 

"그래, 이야기꾼 몽마여. 너는 무엇을 바라여 나의 잠을 방해한 것이더냐?"

 

"우셰르마아트님께서 지닌 보물 중, 제가 찾고자 하는 책이 있습니다. 말레우스 시..."

 

 

여인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 우셰르마아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레우스 시네스트로스. 당연히 알고 있지. 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 네가 찾고 있는 건 내가 가지고 있다."

 

"위대한 북해의 용, 우셰르마이트님께 감히 청하건대. 그 마도서를 잠시 읽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잠시 생각을 마친 용은, 이내 장난감을 어떻게 가지고 놀고 부러뜨릴까 고민하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은 이야기꾼이라고 했지. 우선 네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로 날 즐겨보거라. 성공한다면, 너의 청을 들어주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 만약 실패한다면, 네놈의 영혼을 여기서 찢어버리겠다."

 

***

 

서큐버스 겸, 성녀 겸, 전생 전까진 각종 웹소를 애독한 누렁이(수컷)이였던 니카, 아니 최시우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였다.

 

 

'드래곤의 꿈속에 들어가겠다고? 너 제정신이야?'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선택을 필사적으로 말리던 동료들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하지만...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날 믿어줘!'

 


다들 밖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은 파티에게 있어서 골칫거리에 불과했었다.

 


타인을 위해 힐을 쓰면 정작 자신은 마족이라서 데미지를 받고 피를 토하는 성녀라니. 

 

도대체 뭐냐고 그건.


 

그렇기에 용사나 전사 같은 멋진 직업이 아닌 여자로, 그것도 모자라 몽마 겸 성녀라는 말도 안 되는 전생으로 자신을 회빙환 시킨 망할 놈의 신을 매일매일 저주 했지만.

 

서큐버스인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해내기 위해, 그녀는 없던 용기도 쥐어짜 내어 목숨을 걸어서 용의 꿈속으로 들어갔고. 

 

 

"사실 저는 다른 세계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저의 세계에서 알려진 용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셰르마아트님께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드래곤의 유희'라고 불리는 관념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외부의 기준으로는 대략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드래곤으로서의 자아가 미처 생성 되기 전 인간들을 사랑한 어린 해츨링, 이르세아린의 이야기는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들로 인해, 결국 인간과 드래곤 양측에 파멸을 불러온 결말로 끝났다.

 

 

"그래, 너의 세계의 용들은 웃긴 녀석들인 사실은 인정하겠다. 겨우 필멸자들과 소꿉놀이를 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달래보겠다니."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북해의 용은 '필멸자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는 내가 할 언행은 아니다만.'라고 조용히 읊조리면서 발톱으로 자신의 턱을 긁었다.

 

 

"네가 해준 이야기가 재미없지는 않군. 그 유희라는 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을 말해다오."

 

 

대여점 시절의 소설들과 각종 웹소 플랫폼에서 읽었던 나작소까지. 

 

그녀는 드래곤 유희물들에 대한 기억을 아득바득 긁어모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지금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필사적으로 수 십개의 소설들의 줄거리를 읊던 동안, 최시우의 입이 닫히는 순간은 드물었다. 

 

 

드래곤의 유희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고전 '이르세아린'부터.

 

웹소 플랫폼에서 선작 해두었던, 드래곤이 저주로 인해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는 '사실 전 마법 소녀에용'까지.

 

 

상상치도 못한 여러 인물들의 우여곡절이 펼쳐지자, 드래곤의 눈동자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차린 최시우는 마지막으로 남겨둔 이야기의 첫머리를 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드래곤의 유희로 인해 상심과 좌절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1화 빌런으로 유명세를 펼친 문제의 작품.

 

'만약에 남편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라면.'

 

 

'망할 도마뱀 새끼야, 2화가 없어서 느끼는 좆같음을 너도 한번 당해봐라.'

 

 

유희를 즐기고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을 찾던 도중, 그가 해룡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다로 나선 이후.

 

선원들과 주인공이 탄 선박이 크라켄의 뱃속에 집어삼켜지는 부분.

 


이야기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에서 최시우의 말이 끊어졌다.

 

 

"그래서 다음은? 남편을 찾으러 나간 아내는 어떻게 되었느냐? 필멸자 아내는 남편이었던 용을 찾았느냐? 보상으로 여식들을 탐하던 선원들은 어떻게 되었고?"

 

 

거대한 용의 표정이 슬슬 읽히기 시작했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먹힌다.

 


“위대하신 우셰르마아트이시여, 여기서 다시 거래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다시 청하오컨대, 제가 우셰르마아트님의 보물인 말레우스 시네스트로스를 읽는 것을 허락해주신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좋다.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대신 조건이 있다."

 

 

드디어.

 

여태 까지 짐 덩어리에 불과 했던 자신이. 

 

드디어 파티를 위해 의미가 있는 일을 완수했다.

 

죽음을 피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 감정으로 인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나도 그 유희라는 것을 잠시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그러니 너를 나의 반려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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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처녀 서큐버스 성녀 + 드래곤 유희물 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