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마왕성.

본래라면 여러 마족들이 제 일을 하고 있어야할 이곳은 현재 마왕과 나 둘뿐이었다.


딱히 동료들이 마왕과의 싸움에서 죽거나 그런것은 아니다.

마족을 경계하는 권력자들이 마왕이 힘을 키우도록 내버려둘리도 없거니와 이번대의 마왕 자체도 전사보다는 책사에 가까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마왕은 이 대륙의 모든 생명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들의 열세따위는 상관 안 한다는듯이.

자신들의 목숨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듯이.


한줌조차 남지않은 마왕군은 제 백성들까지 전쟁에 참여시켰고 종래에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게 이 세상 마지막 마족이 되었다.


"대답해라. 마왕. 어째서 패배가 확실한 전쟁을 선포한거지?"
"패배가 확실하기에 나는 전쟁을 선포했다... '마족'은 이곳에서 멸종하지만 '마족'은 대륙의 지배자가 되리라...!"
"제대로 대답해라. 마왕."


나는 그리 말하며 마왕의 어깨에 칼을 꽂아넣었고,


——————!!!


마왕성의 홀엔 찢어지는듯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리 고통에 내성이 없는 자가, 어떻게 이리 전투를 두려워하는 자가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는지.


"그래. 넌 알 자격이 있지..."


마왕은 바람이 빠지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전투력은 형편없었지만 강단은 확실한 자였다.


"내가 태어났을때 마족은 이미 몰락해있었고, 내가 왕관을 이어받았을때 마족의 수는 이미 천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지금 네 놈의 과거사를 들으려는게 아니다."
"아니 너는 알아야해. 장차 마족의 왕이 될자가 마족의 역사를 몰라서야 쓰겠나."


마족의 왕...? 마족은 멸종하지만 마족은 대륙의 지배자가 된다...?


[마족의 부흥을 위하여!]


지금까지 죽여왔던 마왕군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죽는 그 순간까지 외쳐오던 그 빌어먹을 구호.


"마족의 부흥을 위하여...?"
"그래. 마족의 부흥을 위하여."
"이런 미친 놈! 지금 전대륙에 독가스를 뿌렸다는거냐!"
"머리는 나름 굴러가지만 시야가 좁군."
"개소리는 작작해라, 마왕. 해독제는 어디있지?"
"해독제따윈 없다."


나는 곧장 검을 들어올려 그의 목을 베려 했다. 그러나 그 뒤에 들려오는 말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독이 아니니까. 그거 아나? 마기를 흡수한 생명체는."
"—마족이 된다."
"잘 아는군.


잘 알다마다. 놈들의 주요 전략이 마기로 동식물들을 변질시켜 공격하는거였다.

성력으로 쉽게 저항이 가능해서 무시하고 있던거였는데.


"그렇다면 이것또한 알겠군. 마족의 피에는 극소량의 마기가 함유되어있다는것을."
"뭐?"


그러니까 놈들이 한 행동은 자기네 백성을 생체폭탄으로 썼다는거다. 적국의 병사들을 마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마왕 외에 마족에 가까운 자는 나다.

용사, 가장 많은 마족을 죽인자. 이것은 곧 가장 많은 마족의 피를 뒤집어썼다는 뜻이니.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머릿수가 적다는거였다. 그렇다면, 그 머릿수를 늘리면 되는것 아니겠나?"
"닥쳐! 당장 해결방법을 내놔!!"
"크큭,슬슬... 시간이군."
"마왕——–—!!!!"
"마족의 부흥을 위하여."


마왕은 그리 말하며 터졌다. 나에게 자신의 핏물을 한껏 뿌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