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적인 그 이름에 걸맞게 갖은 범죄가 일어나는 비키니 시티의 하늘은, 도시의 일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봐 래리! 오늘도 좋아보이는데! 약좀 빨았나봐!"


"새로운 로이더야! 이거만 빨면 존나게 탄탄해질 수 있다고! 배스 너도 한번 어때?"


"프레드! 어딜 그렇게 가냐! 저번에 버거 빤다고 나한테 빌린 돈이나 갚아!"


"닥쳐 씨발아! 퍼프 그 창년좀 다시 보러 가는중이다. 됐냐!"


독자 여러분은 이 후안무치하고 양심따위 내다 판지 오래인 불한당들에게서 잠시 눈을 돌려-


"월요일 좋아~최고로 좋아~"


-이 해맑은 소년에게 집중해주길 바란다.

그에게도 원래 이름은 있지만, 주근깨가 성성하고 항상 반바지만 입는 소년을 비키니 시티의 극악한 시민들은 '밥' 이라고 불렀다.

밥의 머리에서 항상 반짝이는 금발과 정신은 살짝 뒤에 두고 와 웃음기만을 짓는 것 같은 얼굴은 맑은 하늘만큼이나 비키니 시티에게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었다.

매일같이 음악을 흥얼거리며 미소를 잃지 않는 소년은 이 무간도시에서 살아남기 힘들었겠지만, 도시의 시민들은 그의 손가락 끝조차도 건들지 못했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야 밥! 그 좆같은 노래좀 그만 불러라! 월요일이 뭐가 좋다고 난리냐!"


"아~! 당연하지! 월요일은 모든걸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날이잖아! 난 월요일이 최-고로 좋은걸!"


"바아아아압! 개같은 얼굴 제발 들이밀지좀 마! 버거 빨고 있잖아! 방해하지 말라고!"


"난 못생겼지만 자랑스러운걸!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너희한테도 보여주고 싶을 뿐이야! 하하하하하하하!"


소년은 매일같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험담을 모두 행복하게 받아치며 자신의 일터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보던 공장의 다 떨어져가는 페인팅과 녹슨 철골, 그리고 반쯤 부서져 겨우 켜진 'KRUSTY LAB' 이라 써진 간판.

이 도시에 오래 살며 공장을 봐왔던 뒷방 늙은이들은 공장의 이름을 다르게 기억했지만, 이제 이곳은 냉동포장 버거를 만들던 식품공장이 아니라 마약을 제조하는 끔찍한 곳일 뿐이다.

각종 페인팅으로 덧칠된 공장의 문앞에서 밥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어젖히자, 공장의 관리자로 보이는 여성이 그에게 호통을 쳤다.


"씨발 바아아아아아아압!!!! 또 지각이야! 넌 해고다 좆만아!"


"안녕하세요 크라바타 (Krabata) 사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월요일이라구요!"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마! 니가 지각해서 공장 손실이 10원은 더 났겠다! 10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아냐! 어서 가서 일해!"


유진 크라바타. 매혹적인 그녀의 붉은 머리만큼이나 감각적인 육체의 소유자지만, 공장의 모든 직원들은 그녀를 '붉은 악마' 그 자체라 평한다.

젊을적부터 이미 범죄계에 손을 대왔으며, 이제는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마약 '버거' 의 모든 유통줄을 쥐고있는 사람을 그 누가 악마라 칭하지 않을까.

특히 인간의 한계에 달한 수전노 기질로 조금이라도 돈을 떼먹는 사람은...


"와우! 이게 뭐야! 가슴에 여러발, 머리에 한발, 두개골에 타박상까지 입고 전신골절이네! 아직도 살아있어요?"


"돈 떼먹은 새끼. 밥, 저거 치워라. 꼴보기 싫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녀가 직접 '협상'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밥은 그런 악마 밑에서 몇년동안 일을 해 왔지만, 사장은 어째서인지 다른 모든 직원과 '협상' 을 맺을 때에도 그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해맑은 밥은 그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이는 비키니 시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의문점이었다.

밥은 오늘도 방독면과 점프수트로 무장한 다음, 가장 친한 동료를 찾기 시작했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공장 내부의 연기탓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밥의 친구 - 일명 '징징이' 는 그 특유의 호리호리한 몸과 빡빡 민 머리 덕에 식별이 쉬웠다.

후다닥 달려와 자신 옆에서 눈을 빛내는 밥을 징징이는 필사적으로 모른척 하기 시작했다.


"징~징~아~~~~~~~?"


"꺼져."


"징~~~~~~~~~징~~~~~~~~~~"


"니미...왜?"


"오늘이 무슨 요일이게~~~~~~~~~~~?"


"제발...월요일중에 단 하루라도 그 노래 안부르면 안되냐?"


"그래 맞아! 월요일!"


밥은 타들어가는 동료의 속도 모르고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목울대를 울려가며 끔찍한 괴성을 지르던 밥의 머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지자, 징징이의 반짝이는 두피에 솟아있던 한줄기 핏줄은 안심한듯 사라졌다.

징징이는 잔혹한 사장이 정말이지 고마웠다.


"일할때 그지랄 하지 말라는 소리 못들었냐? 뒤통수에 귓구멍을 하나 더 내서 잘들리게 해줘? 앙?!"


밥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가로지었다.


"그럼 닥치고 나 따라와라. 알겠냐?!"


밥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크라바타를 따라 그녀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한 남자의 사진이 밥의 눈에 띄었다.


"뭉무앙 무앙무앙? 무앙우앙우우웅무앙!"


"...? 벗고 말해 이 등신아."


"무앙무앙앙아우앙우무앙무앙무!"


"...지랄났네."


크라바타는 밥의 얼굴을 뜯어내다시피 힘을 줘 방독면을 벗겨냈다.

그러자 새빨개진 밥이 드러났다.


"휴! 감사합니다 사장님! 오다가 끈이 조여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몰라서 일단 두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걸 바로 아시다니 역시 사장님이세요!"


"닥치고 이 사진이나 봐라."


크라바타는 책상에 놓여있던 사진을 들이밀고 시가에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였다.

잘생긴 애꾸눈의 중년 남자가 종이에 찍혀있었다.


"와우! 사장님 남자친구인가요?"


"혓바닥 한번만 더 놀리면 걔대신 너가 죽을줄 알아. 이번에 너가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쉘든 J.프랭크, 속칭 '플랭크톤'. 잘나신 과확회사 사장님인데 감히 내 왕국을 부수고 친환경인지 뭔지를 만들겠다네? 거기다 연줄은 또 좋아서, 각종 검사나 변호사나 짭새까지 말 한마디면 부를 수 있어."


"그럼 좋은 사람이네요! 환경파괴는 나쁘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면 사장님 일이 더 늘어나는 거잖아요!"


"니미, 진짜 귀머거리니? 잘못 걸리면 나까지 잡힌다니까? 새로운 사업장 도입도 한달밖에 안남았고, 이번에 확장하면서 여기저기서 돈도 빌렸는데 이 플랑크톤 씨가 들어오면 난 끝장이야. 그러니까 바아아압..."


크라바타가 말꼬리를 길게 늘린다는건 무조건적인 요청을 한다는 뜻이었다.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밥은 꿀꺽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너가 들어가서, 이 '플랑크톤' 좀 없애봐라. 너 저번에 바다왕 약점잡아서 은퇴하게 만든다음, 걔 딸년도 팔아치웠지? 그 실력좀 발휘해보라고. 아예 죽여도 되니까, 사고좀 거하게 쳐봐. 보수는..."


"보수는...?"


"...최고급 애완 해파리 무제한 제공으로 해주마."


밥의 눈이 여느때보다도 총명하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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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플랑크톤은 멀리 비키니 시티가 보이는 자신의 회사 빌딩에 있었다.

해를 받아 반짝이는 그의 머리 뒤로 움직이는 몸이 달린 모니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플랑크톤, 비키니 시티 정화 계획이 완성되었어요. 이제 시공만 들어가면 우리 '버킷' 사의 지부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에요.]


"음, 수고 많았어 캐런. 언제나 자기뿐이야."


플랑크톤은 휙 돌아 종종걸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미소를 띤 그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캐런, 이제 우리가 저기 들어가면...크라바타랑 떨거지들의 사업장은 모두 끝이야."


[알아요. 그 빨간머리한테 복수하려고 이렇게 '친환경' 회사를 만든거죠.]


"하하하...너무 그러지 마, 자기. 진짜 좋은 일도 하기야 했잖아? 물론 우리 협력사들이 '제안' 에 열성적으로 임해줘서 해낸거긴 하지만 말이야."


[언어사전에 나와있는 '제안' 에는 '총을 들고 협박하는 행위' 따위의 뜻은 없어요, 나의 P.]


"어찌됐던...크라바타를 몰아낸 다음 작게 계열사 하나 문 열 준비만 하라고. 제약사로 위장한다음 저년이 가지고 있던 버거를 은밀히 돌리는 거야. 처음에는 환자들에게, 다음에는...모든 사람들에게. 그다음에는 공급을 제한해서 나라가 불타는 광경이나 보자고."


플랑크톤은 말을 끝마치고 자신의 음흉한 계획에 탄복한듯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자만감과 반드시 성공해 낼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웃음이었지만-


"맙소사."


-문 뒤에서 누군가가 듣고있을 생각일랑 하지 못한 플랑크톤이었다.

분홍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뚱뚱한 직원은 빠르게 복도로 나와 손을 떨며 전화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밥! 나 패트릭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