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왕자를 사랑한 장미 정도면 순애 아니냐?


사람이야기로 치면 이런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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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장붕이는 장미라는 예쁜 아이를 만났습니다.


예쁘고 화려한 외모에 홀려 첫눈에 반한 장붕이.

하지만 화려한 장미에는 가시가 있듯이, 그녀 역시도 조금의 문제점은 있었습니다.


"나 정도면 완전 예쁜거야, 성격도 좋고... 나 같은 사람 만나는 거 쉬운거 아닌거 알지?"


그녀는 스스로를 높이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였고. 그녀의 화려함과 비교하기엔 조금 급이 딸린다 생각하는 장붕이는 그녀의 억지에 맞춰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나도 그녀의 콧대는 높았고, 장붕이는 지쳐갔습니다. 이전과 똑같이 아름다운 그녀를 보며 밥을 먹고 수다를 떨어도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아졌거든요.


"우리 시간을 좀 가지자."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지?"

"아냐, 그냥 내가 좀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그래."

"......나 공주대접 안 해줘도 괜찮아. 진짜, 사랑한단 말야..."


하지만, 지금 장붕이의 마음은 닫혀있었고, 그 결의에 찬 표정을 본 그녀는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습니다.


"가, 그래... 어서 가..."


장미가 장붕이를 길들이려 한 것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한 일임은 분명했지만, 장미또한 미숙했고, 그녀의 말들은 가시가 되어 장붕이를 찔러온 것입니다.


그런 장붕이 또한 슬픔에 겨웠지만 그럴 때일 수록 필요한 것은 한숨 돌리는 것.

장붕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골을 떠나와 서울으로 간 장붕이는 깜짝놀랐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장미처럼 예뻤거든요.


장붕이는 자신이 도내최고 미녀를 만나고 있었다 자신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장미도 길가에 흔한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장붕이는 좌절감이 몰려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왜 젊은 사람이 이런데 퍼질러 앉아서 세상 다 잃은거 마냥 울고있어요?"


장미처럼 아름다운 여우상의 여인가 다가와 그렇게 물었습니다.


"히끅, 그게... "


장붕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고, 자신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다독여주는 여자의 모습에 장미의 모습이 겹쳐진 장붕은 버릇처럼 머리를 그녀의 품에 기대려 했지만 그녀는 장붕이를 밀어냈죠.


"뭐해요? 우리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책망하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거절당했지만, 장붕이 자신도 본의는 아니었기에 머쓱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안해요... 저도 무심코... 근데, 사귄다는게... 대체 뭘까요?"


사귀어서 해온 일들은 사실 친구와 별 다를게 없었습니다. 같이 먹고 놀며 즐겁게 웃으며 지내온 것이 다였으니까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살풋 웃었습니다.


"뭐, 특별할게 있을까요? 그냥 관계를 맺은거죠."

"관계요?"

"네, 관계요. 서로를 보고, 알아가고, 함께하는 그 모든 시간이 관계를 맺은거라고 볼 수 있는거예요."


조금 와닿지가 않아서 장붕이가 애매한 얼굴을 하자,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우리가 사귄다면 말이죠? 아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요?"

"......장붕이요."


"장붕씨를 만나기 1시간 전부터 저는 이미 설레는 마음에 들떠있을거예요."

"왜요?"

"장붕씨를 1시간 뒤엔 만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장붕씨가 지금 입고있는 이 노란 티셔츠."


그녀가 내가 입은 샛노란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길가에 지나가는 민들레를 보더라도, 저는 장붕씨와 처음만난 지금의 티셔츠를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질수도 있죠."

"어떻게 그래요?"

"특별하잖아요? 서로가."

"저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데요?"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니. 장미와 같은 굉장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냥 관계를 맺음으로써 특별해지는 거예요, 서로가. 지금 저기 많은 여자들 중에서 장미씨만큼 예쁜 사람은 많죠?"

"네"

"그런데 장미씨처럼 눈길이 가고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있었나요?"

"아니요."


"그런거예요, 장미씨와 보낸 그 시간이 서로를 특별하게 만든거예요. 이제 알겠나요?"

"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요?"


깨달음을 얻은 장붕이는 다시금 시골행 버스를 탔습니다.


다시금 장미가 보고싶어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