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말에 놀라 자리에 일어난 학생 주임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총장을 바라보았다. 총장은 태연한 얼굴로 거의 성인 몸통 만한 아카데미 학칙을 한장 한장 조심스레 넘기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제국 아카데미 학칙에는 이런 경우에 대해 처벌을 하는 조항이 없네. 굳이 처벌 할려고 한다면 이번 일의 원인인 남주 군이 레이디를 강제로 욕보았다고 해야 하는데... 다들 알지 않는가? 남주 군과 그녀들은 약혼 관계이고 졸업 후 바로 결혼식을 올린다는거. 그래서 레이디를 강제로 욕보았다고 할 수가 없지."
그 말에 학생 주임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여학생들이 단체로 임신 했는데 이걸 처벌 할 수가 없다니요?"
그렇다, 우리 발정난 남주 군은 약혼녀들을 졸업후 결혼식 까지 못 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아침 점심 저녁 주야 풀타임으로 열심히 건들여댔다. 다만 어느 휴일에 하루종일 떡치느라 그만 피임 마법의 갱신을 잊어 버리는 바람에 아뿔싸! 약혼녀들이 단체로 임신을 하는 불상사...는 아니고 경사가 일어나버리고 만 것이였다.
시기는 졸업을 반년 앞둔 시기, 임신한 여학생들의 배는 절로 부풀어졌고 당연히 이는 숨길수도 없게 되어 마침내 아카데미 전체가 들썩이게 되었고 유서 깊은 제국 아카데미에 이런 대형 경사/불상사가 터지자 아카데미 총장을 비롯하여 모든 교직원들이 급하게 소집 되어 이런 자리를 갖게 된 것이였다.
모인 이유는 당연히 이런 경사/불상사를 일으킨 인원들에 대한 처분 문제였다. 허나 역사가 오래된 탓에 별별 시시콜콜한 것에 대한 학칙이 적혀 있기로 유명한 아카데미 학칙에서는 이번 임신 소동에 대해 처벌을 논하는 구절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 이거 보게. 아카데미 학칙 무슨 장 무슨 절 무슨 행에 따르면 이런 경우 '성력 1154년 제국 재상 라이히트만 폰 노르드부르크의 제국부흥령 무슨 항 무슨 절에 따라 본 아카데미는 협조를 위하여 강제가 아닌 배우자나 혹은 그에 준하는 관계의 경우 임신을 한다면 출산장려를 위하여 아카데미에서는 관계자들을 지원한다.' 라고 적혀 있지."
"성력 1154년? 그건 400년전이잖습니까?"
"라이히트만? 설마 3차 마계 대침략 이후 피폐해진 제국을 복구 해낸 그 명재상?"
"그래, 내 조상님이시지."
학생 주임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왜 이런 학칙이 생긴겁니까?"
"잘 물어봤네. 이보게 슈트거 경, 자네 부친께서는 몇살때 결혼 하셨나?"
총장의 물음에 학생 주임은 잠시 생각 해보다가 대답 했다.
"올해가 60이시고 제가 이제 37살이니 아마 23살 이전에 결혼 하셨을 겁니다."
"그래, 그럼 자네 조부께서는?"
"어, 음... 20대 초반?"
"내가 대답해주지. 자네 조부는 내 선배였네. 선배님께서는 아카데미 재학중 결혼하셨다네. 그때가 아마 18살 때 였던가? 워낙 손이 귀한 집안이라서 가문에서 워낙 닥달해서 그렇게 빨리 결혼 했다지."
"아아, 그렇군요. 그런데 총장님... 그거랑 이거랑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자네의 물음에 대한 대답일세. 요즘 들어 결혼을 20대 초중반에 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주 옛날에는 조혼이 거의 일상이여서 십대 중반이 되면 약혼이나 결혼을 논하는게 일반적이였다네. 그래, 400년전에는 당연히 십대 중반이 되면 당당한 성인으로 쳐서 이런 학칙이 세워질수가 있지. 지금이야 미성년자의 일탈로 보겠지만 이 학칙이 세워질 당시에는 그냥 다 큰 성인이 당연한 일을 했다는 인식이였거든."
그 말에 좌중은 이 학칙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 납득을 했다. 허나 한가지 납득이 되지 않은 점이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아카데미 생도들은 품위를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고 남주 군과 히로인 양들은 약혼 관계라 하나 정식으로 혼인을 올린것도 아닌데 문란한 행위로 결코 명예스럽지 못한 결과를 빚어 내었습니다. 학칙은 수정 해서라도 처벌 해야 하는게?"
포기하지 않은 학생 주임은 그렇게 열을 올리며 주장 했지만 곧 이어진 총장의 말에 침묵해야 했다.
"그래, 옳은 말일세. 그런데 슈트거 경... 남주 군은 소드 마스터이자 8써클 대마법사고 마왕군 사천왕을 격살한 영웅이자 무엇보다 황제 폐하의 사위이자 엘프 왕의 사위이고 마탑주의 손녀사위이며 북부대공의 사위일세. 그리고 그녀들은 각각 황제 폐하의 고명딸이자 엘프 왕의 막내딸, 마탑주의 손녀, 북부대공의 장녀인데 처벌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려고?"
"......"
"일단 사태의 당사자들에게는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 구두로 경고 하게. 그리고 학칙은 그 이후에 수정하고."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