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ㅈㄴ 오랜만에 적는다
[배후 선택이 종료되었습니다.]
떠도는 메세지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몇몇 성좌들이 당신의 선택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제 시작이구나.
각오의 의미로 주먹을 꽉 쥐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당신의 선택에 진노합니다.]
[흑운 소속 성좌들이 '심연의 흑염룡'의 분노에 동요합니다. 당신은 당분간 '흑운' 소속 성좌의 후원을 받지 못합니다.]
쪼잔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진 예상했기에 덤덤했다.
근데 생각할수록 화난다.
자기를 선택 안 했다고 저런다니, 원작에서 저놈의 배후성이 김남운이던가.
끼리끼리 논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하여간···
더 푸념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 메세지가 왔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선택에 실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당신을 집요하게 감시할 것 입니다.]
대천사 우리엘은 실망하는 선에서 그쳤다.
생각해보니 절대선 계통 녀석들은 누군가를 증오하고 저주하는게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제일 쉽게 증오당하고 저주받는 방법이 에덴을 욕보이고 심하면 에덴을 부수는 정도일까.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선택을 흥미로워 합니다.]
[200코인을 후원 하였습니다.]
이쪽은 한 치의 예측도 허용치 않았다.
에초에 원작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형사로 추측한 성좌의 특성상 내 신중함을 높이 산게 아닐까.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의 선택을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제천대성···
이게 맞는 일일까.
내가 중요한 선택지를,
기회를 차버린건 아닐까.
내 선택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는건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건.
[당신은 배후성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배후성이라는 거대한 제약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 제약을 벗어나 어디까지 얻을 수 있을지,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배후성을 선택하지 않은건 현재로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선택한 사람들보다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있으니까.
[하하, 이것 참··· 재밌는 선택을 하신 분도 계시네요. 뭐, 나중에도 선택권은 주어지니까요."
도깨비의 동글동글한 눈이 초승달처럼 얇아져 휘었다.
조금 무서운 그 눈이 내게 조금 머물다가 떠났다.
[자자, 다들 선택은 하셨을테니 쉬고 계세요! 10분 후에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배후 선택>이 끝난 후 도깨비는 그딴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말이 좋아서 쉬는거지 그 10분동안 우리는 다음 시나리오 대비를 해야한다.
거기다가 이젠 법도 우릴 지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여기 진이 쏙 빠진 백발 꼬맹이같은 놈에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혹시 모르니 겉옷으로 그의 손을 묶었다.
의외로 순순히 묶여주는걸 보면 걱정할게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몰라 꽉 묶으려하니 닫혔던 그의 입이 열렸다.
"아! 좀 살살 쳐 묶어!"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합 다물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깨달았다.
맹수도 은인은 물지 않는다고 어떻든간에 살려둔 나를 은인이라 생각하고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
"안녕하세요, 이현성입니다."
"김독자입니다."
손을 내밀자 이현성이 쭈뼛거리며 손을 잡았다.
여성을 대하는게 조심스럽다고는 들었지만 이정도면 무서워 하는게 아닌가.
"아까 들으셨다싶이 부대와 연락이 안 되는 군인···이였던 사람입니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탄력과 단단함은 초반은 물론이고 '그 자식'이 선택한 몇 안 되는 고정동료이자 탱커다웠다.
그렇기에 그는 꼭 필요했다.
후반에 그만큼 빛을 발하는 인물은 몇 없다.
다른 인물은 다 놓쳐도 이현성은 데려가려했지만 김남운도 얻었다.
이정도면 초반은 물론이고 후반까지는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네?"
"벌레를 저희쪽으로 던져주신 것,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그건···"
그를 살릴 의향은 있었지만 그를 위해 그쪽으로 던진건 아니였다.
그럼에도 그는 깎듯이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께에 손을 올렸다.
"하하! 우리 계약직이 한건 했네! 독자씨, 내 이름은 알지?"
어딜 손을 올려, 이 능구렁이같은 새끼가.
직접 턱을 분질러주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우연치 않게 얻은 이현성의 호감을 깎는 일은 안 된다.
그렇기에 나는 그 손을 툭 쳐 내 어께 위에서 없애고 말했다.
"예, 알죠. 한명오씨."
"어허, 한명오씨라니, 부장님이라고 해야지?"
저 세치혀를 잘라내면 이 썩어빠질 것 같은 기분이 나아질까.
마침 나이프도 있는데.
하지만 나는 다시 이성적이게 생각하며 말했다.
"여긴 회사가 아니잖습니까."
"버르장머리 봐라, 이제 출근 안 하려고?!"
이 정도면 참을만큼 참았다.
그럼에도 나는 미소지으며 그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어라? 넥타이가 삐뚤어지셨네요."
나는 그의 넥타이를 고쳐줬다.
다만 꽉 조이며 고쳐줬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퍽이나 회사가 멀쩡하겠네요."
"컥컥!"
눈웃음을 날리며 그를 풀어주었다.
"이젠 장난이 아녜요."
뒤돌아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다.
"한명오씨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녜요. 이건 소설도, 만화도, 게임도, 영화도 아닌 현실입니다. 도깨비 말대로 장난이 아니니 진지해지세요."
그들은 충분히 진지했다.
그럼에도 이런말을 한 이유는 김남운 때문이였다.
그걸 아는지 김남운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바뀌었죠, 게임 인터페이스 같이 바뀌었으니까요. 혹시 아직도 이해 못한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예상대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누구든 판타지 소설까진 읽어봤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당직 서면서 몰래 읽었던 소설에서나 있던 일인데, 이거 꿈은 아니겠죠?"
"네, 현실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러자 생각치도 못한 메세지가 보였다.
[등장인물 '이현성'이 당신에게 희미한 신뢰감을 느낍니다.]
[등장인물 '이현성'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희미하지만 신뢰를 얻은거에 만족했다.
"이제, 여길 나갈 궁리를 해야합니다."
"뭐?! 미쳤어?!"
한명오는 버리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쓸데도 없을텐데 어룡의 미끼로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도 여길 나가는건 좋지 못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유상아, 그녀의 배후성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지식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죽게 두고 싶지도 않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가 제일 안전 할 것 같습니다."
이현성까지. 이러다간 답이 없다.
'그 자식'에게 다 죽던지 아니면 어룡에게 죽던지 둘중 하나다.
이 말은 안 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들 가족 생각도 하셔야죠. 이 사달이 났는데 부모님이 멀쩡하실까요?"
그러자 모두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나마 밝았던 유상아와 이현성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전화도 카톡도 안 되서···!"
고개를 떨군 이길영의 어께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러니 나가자는겁니다."
그러자 한명오가 한마디 했다.
"그, 그렇다고 목숨을 걸자고?!"
이 능구렁이가 웬일로 옳은 말을.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그렇기에 나는 도박을 시도한다.
"그럼 다수결로 하죠."
나는 '그 녀석'이 있을 옆 칸을 보고는 말했다.
"나가자 손 드세요."
그러자 유상아와 이길영이 손을 들었다.
그게 끝이였다.
"끝이지? 안 나가는거지?"
젠장.
다 포기해야하나 싶었다.
그 순간 김남운이 꿈틀대며 말했다.
"이봐, 이건 풀어주고 손을 쳐 들라하던지 해야지."
오늘부터 내 최애캐는 김남운이 될 뻔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손을 풀었다.
그러자 김남운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 한명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이자식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내가 나서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김남운이 먼저 살기를 띄며 말했다.
"여기 있어도 죽어. 그럴거면 차라리 도박이라도 해보는게 맞지 않겠어? 죽고싶으면 혼자 죽으랬지? 그럼 그쪽은 여기 남아서 저 군대토박이랑 잘먹고 잘 살아. 난 누님따라 이 여자랑 꼬맹이 데리고 도박할거니까."
제일 처음 놀란건 그의 말빨이였다.
그의 말이 술술 나오자 한명오도 입을 다물었다.
그 다음으로 놀랐던건 나에 대한 호칭이였다.
누님이라니, 말이 되는 호칭인가.
하지만 그런건 아무 상관 없었다.
나는 김남운을 막으며 말했다.
"넌 좀 진정하고. 현성씨, 다수결은 이쪽이 이겼는데 같이 가주세요."
한명오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쪽은 여기 있고 싶으시면 있으세요."
그때 호응하듯 옆칸 문이 쿵쿵 소리와 함께 우그러들었다.
한명오가 뒷걸음치며 말했다.
"뭐해?! 얼른 막아!"
나는 이게 누가 하는 짓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나가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살아서는 못 간다.
"예?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얼른 문 여세요. 안 그러면···"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다음 시나리오는 커녕 알리러 온 도깨비도 못 보고 죽을겁니다."
이제 그놈이 온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내 13년간의 가상이라 생각한 친구, 유중혁이 저 문을 부수고 넘어온다.
김독자 성격이 좀 많이 바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