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 없길래 예전에 쓴거 재업하는 중.
과거의 나 왜이렇게 글 잘쓴건데 꼴받네ㅋㅋㅋ






어잿밤의 파티 이후로, 나는 필름이 끊겨버렸다. 깨어나보니, 역시 다른 일행들도 거실에 아무렇게나 나부러져있었고, 유중혁과 유상아만이 이미 일어나 일행들을 위한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북엇국에 계란말이, 흰 쌀밥. 저번에 한수영이 연성했던 녹조 북엇국과는 차원이 다른 음식이였다.


"김독자, 오늘은 원래 네놈이 당번 아니였나."

"중혁아, 니차례때 내가 하면 되잖냐."

"그걸론 부족하다. 설거지는 네놈이 해라."

"어머, 독자씨 일어나셨어요? 다른 일행들도 깨워주세요."


나는 거실에 늘어져있는 일행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유승이랑 길영이, 유미아의 머리맡에 상자가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거대설화, '축복의 크리스마스'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산타가 다녀간 듯 했다. 내가 손 대자마자 일어난 아이들은 선물을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다른 일행들도 마저 깨워 식탁에 앉혔다. 길영이와 유승이는 내 모습을 한 피규어를, 유미아는 화려한 팔찌를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아마 각자 바라던 선물이였겠지. 근데 선물이 내 모양 피규어라니, 좀 소름끼친다. 길영이는 식탁에 앉아서 머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형, 저 머리가 아프고 속쓰려요."

"아마 숙취 때문일거야."

"야, 벌래꼬맹이. 너 어제 독자 안고 징징 짰었다?"

"형 진짜에요?"


이길영은 얼굴을 붉히며 내게 물었다. 어제 이길영은 소주 1잔에 바로 취해서 내 팔을 안고 울다 잠들었었지.


"너 아저씨 팔 붇들고 울었잖아. 기억 안나?"

"아, 기억 안나는데..... 형, 유승이는 뭐 안했어요?"

"어, 유승이는 그냥 꾸벅꾸벅 졸다 잠들었어."


어제 유승이는 나보다도 술을 많이 먹었다. 나보단 빨리 쓰러졌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마셨기 때문에 아마 나보다 더 먹었을 것이다. 의외로 유승이는 술이 쎈 편인가보다.


"야, 한수영. 넌 괜찮냐?"

"아, 머리 깨지겠네."

"너 어제 집 날려먹을 뻔 했어."

"진짜? 어쩌다?"


나는 한수영에게 한수영이 술에 취해 흑염을 난사할 뻔 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한수영은 얼굴이 빨개진 채 묵묵히 국을 퍼먹었다.


"독자야, 잘 잤어?"

"우리엘, 일어나셨어요?"


우리엘까지 식탁에 앉자, 우리 성운 전부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다들 묘하게 들뜬 채 식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한수영과 우리엘이 나를 불렀다.


"야, 김독자."

"독자야!"

"수영아, 우리엘, 무슨 일이에요?"

"오늘 나랑 놀러가는거 안 잊었지?"

"아니거든? 독자는 나랑 놀러갈거야!"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일까. 게다가 유상아가 내게 물었다.


"설마, 독자씨. 까먹으신거 아니죠?"

"네? 제가 뭘....."

"독자씨가 어제 우리엘이랑 한수영에게 오늘 같이 놀자고 했어요."

".......제가요?"


제기랄. 어제 술 먹고 기억이 없을 때 저지른 일인가보다. 오늘은 유승이랑 다닐 생각이였는데, 꼼짝없이 끌려다니게 생겼다. 게다가 놀란 얼굴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니였다.


"뭐야, 우리엘한테도 놀자고 한거야?"

"독자야, 나한테만 놀자고 한거 아니였어?"


당혹감에 일그러진 한수영과 우리엘의 얼굴. 아마 저 둘은 술에 취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놀자고 말한 건 기억이 없는 듯 했다.


"그럼 셋이 놀ㄲ....."

"안돼! 나랑 독자는 둘이서만 놀거야!"

"뭐래, 내가 너보다 약속 먼저 했거든?"

"기억도 안나면서!"


헛기침을 하는 한수영. 나는 묘책을 하나 떠올렸다.


"그럼 지금이 딱 오전 11시니깐 12시부터 6시 까지는 한수영이랑, 6시부터 12시까지는 우리엘이랑 노는건 어때?"

"그래, 뭐."

"어쩔수 없지! 나는 독자랑 놀수 있으면 좋아!"


한수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엘은 활짝 웃으며 찬성했다.


"오, 독자씨 능력 좋은데요?"


얄미운 표정으로 날 놀리는 정희원. 나는 정희원을 한번 노려본 뒤 옷을 입으러 갔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


"김독자, 늦었잖아!"

"미안. 그래서 어디 가려고? 생각해 놓은 곳 있어?"

"당연하지. 이 천재 미소녀 작가님이 특별히 놀아주는거라고?"

"천재 미소녀 작가님께서 '특별히' 놀아주시는거 치고는 아까 너무 절박한 표정 아니였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치에 틀어박히는 주먹. 한수영은 오늘 쇼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X급 페라르기니'를 타고 한수영과 백화점으로 갔다.


"야, 이거 어때?"

"너랑 안어울린다."

"그럼 이거는?"

"그건 좀 괜찮네."

"그럼 이거 주세요."

"......야 그거 내가 안어울린다고 했던거 아니냐?"

"니가 좋다고 하는것들만 걸러도 어느정도 좋은 옷들을 고를수가 있어서."


젠장. 나는 내리 2시간째 한수영에게 끌려다니면서 한수영의 옷을 골라주고 있었다. 나올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보라색 후드티만 걸치고 입에 레몬맛 사탕을 물고 있던 한수영은 2시간동안 고른 옷으로 갈아입어 꽤, 아니 나랑 같이 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예뻐보였다.


"야, 이젠 살만큼 산거 같은데, 어디 또 생각해 본 곳 있냐?"

"너 방탈출 카페 가본 적 있냐?"

"없는데."

"그럼 가보자."


그렇게 해서 우린 방탈출 카페에 들어가서 가장 무서운 테마를 골랐다.


"이 공간에는 [평화지대]라는 스킬이 걸려있으니 놀라서 스킬이 써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즐겁게 플레이 해주세요."


알바생이 나가고 우리가 안대를 벗자, 우리 눈 앞에는 목이 잘린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으아아ㅏ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ㅏ아ㅏ아ㅏ아ㅏ아가가ㅏ가ㅏㅏ.............."


*


40분 후, 우리는 기진맥진한 채 걸어나왔다. 특히 한수영은 중간부턴 내 팔에 매달려선 울기 일보직전이였다.


"역시 인간들이 대놓고 무서우라고 만든건 무섭구나........."


한수영의 말. 우리는 그동안 깨온 시나리오에 적응되었기 때문에 내심 방심하고 있었는데, 정말 무서웠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떠들기도 하고, 오락실에 가서 뽑기나 철권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재밌게 놀고 나서, 나랑 한수영은 집 근처의 공원을 같이 걷고 있었다.


"어, 눈......"


한수영의 말에 위를 올려다 보니, 하늘에서 새하얀 함박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그러니깐."


갑자기 한수영이 멈춰서서 나도 멈췄다. 나를 바라보는 한수영. 추운지 한수영의 볼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야, 너 나 어떻게 생각하냐?"

"닌 내 취향 아니라니깐?"


난 한수영의 말을 평소처럼 웃어넘기려 했다. 그때, 한수영이 갑자기 내 멱살을 잡더니 잡아당기며 내 입술을 훔쳤다. 그러고는 불이 더 빨개진체 눈을 피했다.


"너 좋아한다고 멍청아.........."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나는 어버버 하고 있었다.


"설마 날 찰건 아니지? 나 차면 너 죽여버린다?"


부끄러운지 툴툴대는 한수영. 난 당황해서 아무말이나 주워섬겼다.


"어..... 니 예쁘긴 한데...... 어....... 수영아."

"왜."

"나 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될까?"

"맘대로 해. 그대신 난 오래 못기다린다."


난 한수영과 어색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자, 우리엘이 준비된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독자야, 늦었잖아!"

"저..... 딱 3분 늦었을 뿐인데요."

"그래서 난 저■보다 너랑 6분이나 덜 논다고!"

"알았어요. 그럼 빨리 가요."


나는 우리엘을 다시 'X급 페라르기니'에 태운 뒤에 출발했다. 이 복잡한 마음을 우리엘과 놀며 잠시라도 떨쳐내고 싶었다.


*


"우리엘, 우리엘은 어디 가고 싶어요?"

"난 만화카페 가보고 싶어!"

"아직 안가봤어요?"

"응! 엄청 기대돼."


난 내가 아는 만화카페로 'X급 페라르기니'를 몰았다. 만화방에 들어가서, 우리는 토굴방에 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흡.... 으응......"


나는 당황해서 만화책에서 눈을 땠다가 우리엘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나는 다 읽지도 않으 책을 바꾸러 나갔고, 우리엘은 목이 타는지 아까 시켜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사레들렸다. 아니 이곳에서 어떻게 그럴 생각을 하는지..... 크리스마스라 그런가?


결국 우리는 결제했던 2시간중 1시간만을 사용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아까웠지만 그보다 분위기가 어색해진 우리엘이 더 걱정이였다.


"저......우리엘?"

".....어, 응?"

"혹시 또 가고싶은 곳 있어요?"

"그럼 우리 노래방 가자!"


그러고보니 우리엘 아이돌이였지. 우리는 근처에 있던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우리엘은 정말 신나게 노래불렀다. 노래는 거의 우리엘이 부르고, 나는 우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삼 우리엘이 정말 예쁘다는걸 실감한다. 아닌게 아니라, 활짝 웃으며, 살짝살짝 춤까지 곁들이며 노래부르는 우리엘은 정말 귀엽고 예뻤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나서, 우리엘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좀 걸어서 영화관에 갔다. 우리엘이 보고싶다고 한 영화는 '얼음왕국 3'. 한창 유행하는 영화였다. 우리는 팝콘과 영화 티켓을 사고 나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우리엘, 재밌어요?"

"응!"


우리엘은 에니메이션 취향인지 에니메이션인 '얼음왕국 3'을 엄청 재미있게 보는 듯 했다. 영화관이 조금 쌀쌀해서 나는 내 코트 주머니에 있던 핫팩을 꺼내 우리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우리엘에 깜짝 놀라더니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독자야, 고마워!"


나는 우리엘의 얼굴을 보며 핫팩을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어느덧 영화가 끝나고, 나와 우리엘은 함께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아직까지 눈이 오고 있는 알록달록 빛나는 거리.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버스킹 공연도 보고,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사 나오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문득 우리엘을 보니, 옷이 굉장히 추워보였다. 나는 내가 두르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벗어 우리엘에게 둘러주었다.


"우리엘, 안추워요?"


찬바람에 볼이 빨개진 우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추워."

"근데 왜 이렇게 목이 드러난 옷을 입고 나왔어요?"

"독자한테 이쁘게 보이고 싶어서."

"아..... 네?"


순간 어색해진 우리는 아무말 없이 발걸음이 닿는대로 걷고 있었다. 그러다, 광장 한가운데 새워진 트리가 보였다. 트리 앞을 지나갈 때, 우리엘이 나를 불렀다.


"독자야."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목소리. 나는 뒤를 돌아 우리엘을 마주보았다.


"네."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얼굴.


"나, 아무래도 널 좋아하는거 같아. 팬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순간 꺼졌던 트리의 전등이 켜지며 은은한 빛이 우리엘의 하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새빨개진 볼, 큰 눈에 에매랄드 빛 눈동자. 나는 방금 받았던 한수영의 고백을 생각하며 한수영과 우리엘 모두에게 왠지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내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엘이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아,아니, 나는 사귀어 달라는게 아니라, 그냥 널 좋아한다고. 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랬어."

"우리엘, 저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될까요?"

"어, 당연하지! 부담갖지 마."


*


우리엘과 함께 돌아가는 길. 나는 길을 걸으며 손을 펴 보았다. 그러자 눈송이가 내 손 위에 떨어지더니 녹아 없어졌다. 사랑은 이 눈송이와 같지 않을까. 한순간 아름다웠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내 아빠라는 작자가 한 짓을 보면 사랑은 부질없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과연 '영원한 사랑'이란건 있긴 있을까. 한순간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가 받을 자격이 있을까. 마지막까지 일행들을 기만한 내가, 과연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집앞이였다. 나는 우리엘과 집으로 들어갔다.


"독자씨, 데이트는 잘 했어요?"

"뭐래, 그냥 놀아준거거든?"

"수영씨, 혹시 질투하는거에요?"

"유상아, 또 헛소리 한다?"


내가 복도에 걸린 시계를 본 것은 우연이였다.


[12 :00]


어디선가 들리는 시스템 메세지.


[거대설화, '축복의 크리스마스'가 이야기를 마칩니다.]


모두들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서 빠져나온듯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나는 방에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그러곤 오늘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수영과 우리엘 둘에게 고백을 받다니, 아직 난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볼을 꼬집어 보아도 아팠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우리엘과 놀았는데, 결과적으론 복잡한 생각이 더 늘어버렸다.


크리스마스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한수영과 우리엘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