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편 https://arca.live/b/reader/25805224?mode=best&p=1 363
"형은 미래에서 왔나요?"
나는 이길영의 질문에 마른 침을 삼켰다.
뭐지? 어떻게.... 뭐라 대답해야 하지?
"....대답해주기 곤란한 질문이에요?"
"...."
"알겠어요, 더는 안 물어볼게요."
나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듯 이길영은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 이 질문에 답을 형에게서 듣고 싶어요, 그렇게 해줄거죠?"
"그래, 말해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나의 진실을 다시 말해줄 때가 온다면,
과연 그때의 이길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누군가가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 쌓이고 쌓인 뒤.
나와 이길영은 [땅강아쥐의 보물 창고]에 입장했다.
*
"키...키이이..키이."
'어둠 파수꾼'은 나의 칼에 힘 없이 쓰러졌다.
뭐 한번은 상대 해본 적이 있어서 다시 상대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쉬웠다.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어둠 파수꾼'을 보며 나는 창고의 중심에 있던 검은 상자를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
푸욱!
나의 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일전에 들은 생명체가 꿰뚫리는 끔찍한 소리.
"..하..하 나도..나도 이제 부자가 될 수 있어!"
예상대로 한명오는 내가 거의 다 잡은 '어둠 파수꾼'의 몸체 에다가 칼을 꽂았다.
[성좌,'달빛에 숨은 여인'이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 한명오는 알까.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초래 한지를.
[7급 악마종 '어둠 파수꾼'을 사살하여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살해자의 존재를 눈치챘습니다.]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최종 타격자에게 끔찍한 저주를 내릴 것입니다!]
"뭔..뭔데!?"
한명오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성좌,'구원 받은 곤충의 왕'이 자업자득이라고 놀립니다.]
뭐 예상은 했지만 너무 예상대로라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게 가만히 계시지."
"설마..독..독자씨. 이걸 알고 있었..?"
"글쎄요?"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망연자실한 한명오를 뒤로 하고 멍한 표정을 띄고 있는 유상아와 이길영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린 보상이나 열어볼까요?"
*
지글 지글.
"..먹어도 되는 건가요?"
"제가 먼저 먹어 보겠습니다."
검은 상자를 열어 얻은 마력 화로로 땅강아지의 다리 한 짝을 노릇하게 구웠다.
적당한 기름기, 육즙.
한번 먹어봤지만 역시 맛있긴 하다.
[소수의 성좌들이 군침을 흘립니다.]
[성좌,'달빛에 숨은 여인'이 침을 삼킵니다.]
"드셔 보세요, 괜찮은 거 같습니다."
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두 사람은 고기를 들어 맛있게 먹었다.
하긴 며칠동안 식사를 못했으니 배가 고플만....
꼬르르륵.
누군가의 배에서 난 소리.
나는 그 소리의 주인을 바라 보았다.
"그..도, 독자씨.. 아깐 내가..무슨..."
"뭐 괜찮습니다. 드세요 눈치보지 말고."
"고..고맙네!"
"그게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
나의 농담에 한명오의 얼굴은 거무죽죽해졌다.
뭐 죽지는 않을거니 걱정은 안되지만.
그렇게 땅강아쥐의 뼈가 쌓이고 쌓인 뒤.
나는 일행들 몰래 '검은 상자'를 향해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독자씨? 안 드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배고프실텐데 얼른 드세요."
"그런데 그 상자는 왜요?"
"아...이건..."
유상아는 상자의 쓰여진 이상한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이 상자의 글자를 읽은 게...
"랜덤...아이템 박스?"
망할.
[성좌,'거짓된 종말의 연출가'가 당신의 비겁함을 욕합니다.]
[성좌,'구원받은 곤충의 왕'이 당신을 이해합니다.]
"..네 이건...그.."
"이거 써보세요 독자씨!"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죠!"
두 사람의 고개가 힘차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역시 0회차든 1회차든 이길영은 이길영이고 유상아는 유상아였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생긴 그리움을 뒤로 하고, 상자의 7급 악마종의 핵과 [부러진 신념]을 넣었다.
달칵!
상자의 문이 닫히자.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아..아니 이..이게 왜 여기?!]
허공에서 이 상황을 관찰하던 도깨비도 경악을 내질렀다.
[성..성좌님들 잠시만 방송 종료를!]
[#BI-7623 채널이 일시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방송이 종료 되어서 성좌들의 반응은 못보겠지만. 내 알바 아니고.
드드드.
나는 진동하는 상자를 내려다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제발 [부러지지 않은 신념]만큼 좋은 거길.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떨림이 멈추었다.
"..열어 볼까요..?"
"네!"
나는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나온 아이템을 잡았다.
어딘가 익숙한 그립, 새하얀 검신(劍身)...잠만.
말도 안돼..
상자에서 나온 것은
스르릉.
[부러지지 않은 신념]이었다.
*
[#BI-7623 채널이 다시 열렸습니다.]
[성좌,'심연의 흑염룡'이 랜덤 박스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궁금해 합니다.]
성좌들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파급력이 있는 아이템이구나 라는생각이 들었다.
비형 이자식은 대체 뭔 생각으로 저걸 만든거야?
"독자씨 잘 먹었어요."
"이제 몸이 조금 괜찮아질 겁니다."
"그러고 보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거 같기도..."
뽀드득 뽀드득.
"독자씨! 저를 위해 이런 아이템을!"
뭐 이현성은 전 회차 같이 단순하다.
그런 이현성을 보며 정희원은 부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껀 없어요?"
"없어요."
"그 칼은요?"
"제 건데요."
"치..알겠어요."
그렇게 어둠을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터널의 끝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너무나 급박한 느낌... 뭐지?
[유료 정산까지 20분 남았습니다.]
[생존비를 준비하십시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급하게 사람들을 잡는 사람들과 멀리서 웃고있는 사람.
아마 철두파와 천인호 일행들이겠지.
역안에 부조리한 상황을 지켜보자 정희원을 이를 갈며 분노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정희원'의 특성이 개화를 준비합니다!]
...얼마 안남았다.
이 지옥을 처 부술 시간이.
"어? 독자씨! 오셨군요!"
나를 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천인호.
뭐 나를 부른 이유는 한 가지 뿐이겠지.
"저는 코인이 없어 이 분들을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독자씨는."
천인호의 여유로움은 어느새 비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가지고 있었죠?"
천인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향해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씨익.
나는 웃었다.
나를 보며 비웃는 천인호나.
나를 보며 부탁하는 사람들이나.
다 똑같은 사람들.
[절대선 계통의 성좌들이 등장인물 천인호를 '악인(惡人)'으로 규정합니다!]
"독자씨. 만약 독자씨가 가져온 식량을 돈 받고 팔지만 않았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중 대부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맞아! 내 코인 내놔!"
나의 일행들이 말려 보려 했지만 이미 군중들은 이성을 잃은 뒤였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철두파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 새끼 죽여서 코인을 얻으면 되지 뭘 고민을 하고 있어!"
녀석의 손에 쥐어진 쇠파이프가 움직였다.
나는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남자를 향해 가볍게 칼을 그었다.
"끄아아악! 내..내 팔!"
쇠파이프와 함께 팔이 반토막난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런 남자를 뒤돌아서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이 사람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뭔...! 그건 당연히..."
"이 사람들은 왜 나를 공격 한 걸까? 나의 무기가 탐나 보여서? 아니."
이제 진실을 터뜨릴 때다.
"사람을 죽이면 코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야."
"뭔 개소리야!"
"그걸 어떻게 알지?!"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게 휘몰아 치고 있었다.
뭐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원래 진실은 생각보다 더 잔인한 법이다.
"그렇다면 질문."
나는 손가락으로 천인호 일행들을 가르키며 말했다.
"저놈들은 왜 너희들보다 더 강할까?"
"..설..설마?! 천인호씨...?"
"닥쳐라! 모함이다!"
나의 말을 들은 천인호는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겁 먹은 사람들에게 외쳤다.
"너희들이 만약 빼앗긴 것을 다시 찾고 싶다면!"
신념의 칼날이 울었다. 마치 혁명의 불길을 올린 듯 사람들의 눈가에는 울분이 고이고 있었다.
"너희 손으로 되찾아."
나의 말이 끝나자 하나 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명이 퍼지고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절망했다.
이것이 멸망한 세계.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는 게 거리낌이 없어지는 그런 지옥도.
나는 그런 지옥도를 한번 더 걷고 있었다.
"죽어!!"
나에게 소리치며 달려오는 철두파의 조직원.
서걱!
사람의 몸을 베는 끔찍한 감각이 손아귀를 타고 흘렀다, 전투 불능이 된 철두파의 조직원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려..살려 주.."
그 순간.
누군가가 쓰러진 철두파의 입에 칼을 쑤셔 넣었다.
"내가 죽여버린다고 했죠."
[특성 '웅크린 자'의 모든 진화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등장인물 '정희원'의 특성이 개화합니다!]
새파란 인광이 일렁이는 눈동자.
이 지옥의 종막이 시작되었다.
[등장인물 '정희원'이 전용 스킬 '심판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절대선 계통의 성좌들이 해당 스킬 사용에 동의합니다.]
['심판의 시간'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전 회차와 같은 '심판의 시간'.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며 씁슬한 감정을 느꼈다.
[성좌,'하나뿐인 멸망의 검'이 이 전투를 지켜봅니다.]
[성좌,'거짓된 종말의 연출가'가 이 전투를 지켜봅니다.]
[성좌,'구원받은 곤충의 왕'이 이 전투를 지켜봅니다.]
[성좌,'달빛에 숨은 여인'이 이 전투를 지켜봅니다.]
성좌들에겐 이 이야기는 오래된 세월 속에서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있는 모든 성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다수의 성좌들이 엄청난 희열을 느낍니다.]
희열이었다.
심판의 시간을 발동한 정희원 덕분에 전세는 이쪽으로 기울었다.
마침내 천인호의 목에 칼이 꽃혀 전투가 끝났다.
너무나 끔찍한 전투.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존비가 정산 됩니다.]
이 메시지가 뜨자 곳곳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코인을 얻어 기뻐하는 자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 슬퍼하는 자들.
그런 사람들이 얽혀 펼쳐진 광경을 보며 나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잔인한 말이지만, 일어나야 합니다. 아직 시나리오는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니까요."
모든 성좌들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은 기분 나쁜 고요함.
모두가 전투에 승리한 고양감을 느끼는 가운데, 나는 시나리오를 생각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챕터를 넘기듯 그 고요한 상황을 조용히 응시했다.
후기 : 너무 길게 썼나 다음화로 초반부 끝내야지.
(오타 지적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댓글 많이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