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잘 오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라도 자고 싶다는 극에 달할 정도로 필사적인 생각에 잠에 드는 느낌은 오지만 정작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슬슬 이마 부분이 저릿저릿하고 저리는 것 같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틀어서 옆자리를 보았다. 그러자 웬지 모르게 내 옆자리에 앉은 김독자가 브이하고 인사했다. 차마 목소리는 못 내고 입으로 뻐끔거리며 말했다.
"왜 여기 있어?"
그러자 김독자도 호응하듯 입을 뻐끔거렸다.
자리를 옮겼어,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분명 이렇게 말하는 입 모양이다. 그 꼴이 살짝 웃겨 입꼬리를 올리자 김독자도 따라 입을 올렸다. 그 꼴이 정말 말 그대로 바보꼴이라 오랜만에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살짝 목소리를 냈다.
"너 진짜 바보같아."
그러자 김독자도 내 자세 그대로 따라하며 답했다.
"나 그래도 천재란 소리 많이 들었는데."
둘이 키득키득 웃으며 작게 떠들던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친구가 와서 그를 데려갔다.
"맨날 자는 애 옆에 갔더니 옮았냐? 자지 말고 저거좀 같이 옮겨, 반장이란 놈이···"
빠르지만 일정한 박자와 음율, 정확한 발음이 인상깊은 말투였다. 누군지는 모른다. 남에게 관심을 안 가진지가 오래되서일까.
김독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정확하게 말했다.
"다녀올테니까 일어나 있어, 허리 아프겠다."
그리고는 살짝 어께를 톡톡 건들고 갔다. 뭐랄까, 기분이 묘했다. 그는 한신영과 다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뭔가 비슷하다.
말투가 비슷한가? 아니다.
키가 비슷한가? 아니다.
성격이 비슷한가? 아니다.
목소리가 비슷한가? 아니다.
분위기는? 얼굴은?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이 있나? 아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느낌이다. 톡톡 건들여진 어께의 감각이 아직도 살아있다. 뭐랄까. 한여름에 차가운 얼음과 스친, 한겨울에 따뜻한 보일러 바람에 스친 기분이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다. 그 외에도 그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일어나 있어라, 허리 아프겠다.
잔소리 같았음에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 말이였다. 나는 계속 엎드려 있고 싶은 마음이 조금 사그러드는걸 느꼈다. 결심까지 20초가 걸렸다. 그 결심이 행동으로 변하는데는 1분이 걸렸다. 나는 마치 무게추라도 단 것처럼 무거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 조용히 앉아 책을 보며 내가 일어나는걸 기다리던 김독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잘 잤어?"
나는 그런 그를 보았다. 이번엔 겹쳐보이던 한신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신영과 있을 때처럼 진심을 담아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응."
*
"그럼 잘 가."
"응."
용기를 내 고개를 든 것에 대한 보상인지 김독자가 데려다줬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우리 둘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는 이상 그는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일 주일도 채 되지 않은 애매한 친구 사이였지만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였다. 한숨을 쉬며 차갑게 식은 청빛이 도는 집에 들어갔다.
고개를 든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좋지 않았다. 안 자는 내가 신기했는지 선생들은 나한테 어디를 읽어라, 어디를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계속 물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김독자가 진심어린 칭찬을 해줬기에 나쁘진 않았다. 나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내게 김독자는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나는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기억도 못할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는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도 안 되는 변수를 생각해버렸다. 책상에 놓여진 자그마한 액자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한신영과 나의 커플 사진을 보며 그 말도 안 되는 변수를 마음 속 깊은 곳에 쳐 박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