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독자는 지금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바다에 빠졌는데 왜 첨벙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거지?'


그는 수면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여기 진짜 바다인거야?......그래도 마음은 편안하네.'


아무소리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그는 마치 자신이 우주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점점 바다 밑으로 빠져내려가는 그는 곧 제 귀를 툭툭 건드리는 게 있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니 검은 물고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그는 무심결에 입을 뻐끔거렸다.

곧, 물고기랑 대화하는 자신을 보고 자신이 정말 미쳐버린 건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물고기가 입을 벌렸다.


[안녕?]


물고기의 입에선 설화가 흘러나왔다.

설화를 읽은 독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가 어딘지 아니?'

[글쎄, 나는 태어나서부터 여기서 자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렇구나.'


독자는 물고기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넌 수영할 줄 몰라? 왜 가만히 가라앉고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움직이고 싶지 않아.'


독자의 몸은 점점 더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물고기는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


[난 이제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어.]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물고기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무중력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계속.

계속.


독자의 몸은 가라앉았다.


마침내 닿은 밑바닥.

그는 그곳이 이상한 공간임을 깨달았다.


하나는 여전히 빛이 들어오고 있어 심해는 밝았다.

그리고 밑바닥에는 암석이나 산호가 있는 것이 아닌, 책들이 쌓여져 있었다.


그는 책을 하나 주워들었다.


[김독자의 잊혀진 기억 24권]


'잊혀진 기억? 내가 무얼 잊고 있는건가?'


그는 곧 책을 펼쳤다.

바다 밑이었지만 책은 멀쩡했다.


[■■■■■■■■■■■■.......]


그러나 첫줄부터 책의 내용은 어그러져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아, 이곳은 잊힌 이야기들이 오는 곳이구나. 이미 잊어버렸으니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는거야.'


그는 책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바다밑을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너브러진 책들위로 활자가 흘러나와 형상을 이루었다.

설화들은 풍선처럼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는 졸지에 풍선으로 가득한 길을 걷고 있었다.


'대체 난 왜 여기 있는거지?'


그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 계속 걸었다.

지금까지 제 4의벽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단 출구부터 찾자.'


수면 위에선 계속해서 책들이 떨어졌다.


[■■■■■■■■.......]


[■■■■■혀진 기억 87권]


책은 바닥에 닿자마자 제목이 변해버렸다.


'......'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걷고 걷다보니, 어느새 작은 산이 나왔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뭔가 보일 것이라 생각한 독자는 책으로 만들어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책들이....전부 나를 보고있네.'


밑바닥에 너브러진 책들이 하나 둘 저절로 일어나더니 꾸물꾸물대며 자신에게 표지를 돌렸다.

마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풍선들도 일제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은 달려있지 않았지만, 명백히 시선이 느껴졌다.


[왜 우리를 잊은거야?]


17권이 자신의 몸을 열었다, 마치 입을 벌리는 것 같았다. 독자는 17권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은 원래 망각하는 존재야.'

[그렇지만 우리는 널 잊지 않았어.]


42권이 들썩였다.


[우리의 안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쓰여있어.]

[그렇지만 우린 잊혀졌어.]

[잊혀졌지......]

[잊어버린거야......]


책들이 들썩였다.


[너도 결국 잊혀졌어]

[이곳에 있으니까]

[너도 잊어버린거야, 너의 동료들이]


책들의 산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살자]

[영원히]

[너도 잊혀져]


독자는 책들에게 파묻혀 버렸다.

책들은 곧 움찔거리며 흩어졌고.


그곳에 김독자는 없었다.

남은 것은 책 한 권 뿐.


[김독자의 잊혀진 삶]


.

.

.


"......"


독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어째선지 머리가 너무나도 아팠다.


그는 비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가벼운 외투를 챙기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걸어나갔다.


조금 어두운 가로등을 길잡이 삼아 계속해서 걸었다. 아스팔트 바닥이 마치 바다 밑바닥 같았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 깊은 밤이라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는, 곧 한 서점 앞에서 길을 멈췄다.


<전지적 독자 시점>


그의 동료 한수영이 출간한 소설.

유중혁과 비유가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파편에게 퍼뜨렸뎐 소설.

그리고 이 소설은 현재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소설 덕분에 그는 이곳에 있을 수 있었지만......


'......머리가 깨질 거 같아.'


오직 그 소설에 적힌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집 주소가 기억나지 않았다.

이수경이 살인자가 되기 전의 기억이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학교에 다닌 기억이 없었다.

군에 입대했지만 전역을 한 기억이 없었다.

미노소프트에 입사했지만 일을 한 기억이 없었다.


자신은 억지로 만들어졌다.


<전지적 독자 시점>


저 얄팍한 소설로.


"전지? 지랄하고 있네."


독자는 실실 웃은 다음,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또 몰래 외출한 걸 들키면 큰집이 뒤집어질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깨질듯한 두통에 시달리는 독자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