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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ㅡㅡ


터벅터벅


"아, 씨이바알......"


김독자는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욕설을 짓씹었다. 길거리의 가로등을 지지대 삼아 몸을 잠시 기대었다.


[왜 잊었어?]

[우린 기억하는데.....]

[너무해......]


"씨발, 전부 아가리 닥쳐."


급기야 환청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독자는 힘겹게 기댔던 몸을 일으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어가길 몇분.


타박타박

뚜벅뚜벅


자신의 발소리가 아닌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독자는 발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어서 계속 움직였다.


타박...타박...

뚜벅뚜벅뚜벅뚜벅


느린 그의 발걸음에 비해, 발소리는 빠르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

"......뭡니까?"


발소리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발소리의 주인은 유상아였다.


"좋은 밤이에요."

"하......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독자는 무례하고 까칠하게 말했다.

평소 그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그는 지금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다.


"이거 놓으세요. 혼자 걸어갈테니."


독자는 상아를 억지로 밀어내며 휘청였다.

상아는 결국 거리를 두고 그를 천천히 따라갔다.


"독자씨."

"왜요."

"괜찮아요?"

"제가 지금 괜찮아 보이십니까?"

"......아뇨."

"말 걸지 마세요. 머리 아프니까."


그 뒤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상아가 독자의 말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독자씨, 그럼 듣기만 하세요. 대답은 하지 마시고요. 알겠죠?"

"......"

"좋아요. 우선......김독자 이 개자식아."

"???"


독자는 상아의 욕설에 당황했다.

그래서 상아를 돌아보자, 상아는 미소짓고 있었다.


"휴......언제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독자씨한테 욕 쓰는 거. 수영이랑 희원씨만 이런 재밌는 걸 하고."

"......"

"......농담이에요. 독자씨, 그냥 독자씨 정신 좀 차리라고 한 번 해봤어요."


상아는 쿡쿡대며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자는 다시 걸었다.


"독자씨, 당신은 어째서 잊어버린 것만 생각하나요?"


독자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입은 열지 않았다.


"좋은 기억이 얼마나 많은데요. 땅강아쥐 고기도 맛있었고, 야나스프레타 식물 줄기도 맛있었고, 모닥불 피우고 다 같이 술 마신 거랑......"


그 뒤로, 상아는 독자와 함께했던 시간중에 추억으로 남았거나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사건들을 하나씩 말했다.


"그러니까, 독자......"

"상아씨."


독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호흡은 조금 안정되어있었다.


"상아씨는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것과 가장 싫어했던 것이 기억나나요?"

"네, 기억나요."

"전 기억이 안나요."

"......"

"제가 싫어하는 게 토마토죠? 근데 전 제가 왜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몰라요."


상아는 독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봤다.


'독자씨는 지금 토해내고 있다.'


"맛 때문에? 아니면 식감 때문에? 아뇨, 제가 싫어하는 것에 이유가 없더라고요. 토마토 스파게티랑, 토마토 케첩은 먹는데 토마토가 싫다고요? 말도 안되죠. 전 기계에요. 설정된 기계."

"......"


독자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실성한 듯, 낄낄대며.


"이런 제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작된 인생을 살면서?"

"독자씨!"

"어릴 적 추억도 없어요. 고작해야 제 머릿속에 있는 기억이라곤 '멸살법을 읽은 것' 그리고 '자살 시도를 한 것' 뿐이에요. 한수영이 그렇게 '썼'죠."


어느새 상아는 독자의 옷깃을 꽉 잡고 있었다.

꽉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전 지금 당장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어요. 아니면 백청강기를 제 대가리에다가 쏴서 죽어버리거나."

"그만......"

"파편들이 저를 상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발 그만해요."

"아뇨."


상아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더 이상 독자의 말을 들으면 자신도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그러나, 독자는 초연했다. 마치 삶과 죽음이란 것을 초월한 듯.


"차라리, 차라리 멸살법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때 15살에 죽어버렸다면.....!!"

"주둥아리 닥쳐요."


상아가 독자의 뺨을 때렸다.

독자는 돌려진 고개를 바로 하며 상아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딴 소리, 한 번만 더 지껄이면 저도 가만 안 있어요."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겁니까?"

"당신을 두들겨 패서라도 집으로 데리고 갈거에요."

"하, 또 그 창문도 없는 방에 '황제 감금'이라면서 억지로 가둬놓을 겁니까?"

"적어도 당신이 이 길바닥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죠."


독자와 상아는 서로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시나리오가 끝난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시스템의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와 상아가 이렇게 싸우는 것은, 정말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둘 모두 폭력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재 상황은 둘의 감정적인 싸움인 것이다.


ㅡ파직, 파지직. 펑, 펑.


근처의 가로등이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졌다.


"정말 싸우자는 겁니까?"

"당신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요. 곧, 비유가 눈치채고 사람들을 데려올 거니까 버티기만 해도 되고요."

"하......"


독자는 결국 하나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갈무리했다.

상아도 심호흡을 하며 손에 쥐고 있던 만다라를 돌려보냈다.


"상아씨, 그래서 정말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드디어 대화란 걸 할 생각이 드신 거에요?"

"......"

"제가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의 삶을. 그러니까, 전부 알려줄게요......제가 할 말은 이거에요."


독자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자신이 정말 바보같고 유치했다.

바로 눈 앞에 자신의 삶을 모두 읽은 자신의 사서가 있는데.


"그러니까, 이만 집으로 돌아가요. 어서요."

"......"


상아는 독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로등이 터져버려 주변은 캄캄했지만, 그 손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독자는 그 하얀 손을 마주 잡았다.


그것은 어둠을 물리치는 한 줄기 광명(光明)이었다.


"독자씨, 손 따뜻하네요."

"......그렇습니까?"

"네. 정말로요."


상아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독자는 자신을 끌고 가는 상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늘 봐왔던 뒷모습이었다.


"......상아씨. 잠시."

"네.....?!"


독자는 상아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품에 안고 보니 너무나도 작은 등이었다.


"저, 독, 독자씨? 좀 있으면 사람들이......"

"조금만,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요."


독자는 뒤에서 상아의 귀에대고 속삭였다.


"고마워요. 제 삶을 읽어줘서, 기억해줘서."

"독자씨, 전 전세계 사람들과 독자씨 중에 하나 고르라고 하면."


상아는 독자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짝 올렸다.


"저는 망설임 없이 독자씨를 선택할거에요."

"......고마워요."

"알았으면 됬어요."


독자는 상아에게서 팔을 풀고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고는 시선을 피했다.

상아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옆에 서서 그의 손을 잡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독자는 안심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자신의 머릿속 잊혀진 기억의 안개도 광명의 손길에 걷힐 것이다.




끝?





한편, 독자와 상아에게서 조금 떨어진 장소.


"......다들 봤죠? 나만 잘못 본 거 아니죠?"


이지혜의 반복된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김독자 부터 조지고 시작하죠. 비유, 증거 확보 했지?"

[물론.]


둘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은 그렇게 기척을 감췄다.


이제, 김독자는 정말 끔찍한 추궁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