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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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 # 1 ―가치 증명>
분류 : 메인
난이도 : F
클리어 조건 :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시간 : 30분
보상 : 300코인
실패시 : 사망
몸체가 투명해진 도깨비가 다음 칸으로 사라지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 부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 주세요.]
도깨비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열차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몇몇 사람들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김독자 옆에 있던 여자는 후자였다.
“경찰, 경찰이 전활 안 받아요! 어떡해요, 어떡해.......”
“진정해요. 유상아 씨.”
아 이름이 유상아였구나. 아무튼 유상아는 김독자가 알아서 잘 위로해주겠지...설마 친해보이는데 갑자기 목을 조르며 죽이진 않겠지? 다행히도 죽일 낌새가 보이진 않으니 개입할 필요는 없으려나....
“자자, 여러분! 다들 진정하시고. 침착하게 심호흡부터 하세요.”
누군가가 앞으로 나선 것은 도깨비가 사라진 후 정확히 5분이 경과하던 시점이었다.
짧은 투블럭 컷으로 깎은 머리.
평균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진정들 되셨습니까? 다들 하던 행동 멈춰 주시고, 잠시만 저한테 주목해 주십시오.”
흐느끼거나 통화를 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죽였다. 모두의 시선이 충분히 모였을 즈음, 투블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국가 재난 상황에서는 작은 소란이 큰 인명 피해로 번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 상황은 지금부터 제가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뭐야, 당신 누군데!”
“국가 재난 상황? 뭔 개소리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몇몇 사람들이 ‘통제’라는 말에 강하게 저항하며 일어섰다. 그러자 청년이 지갑 속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보였다.
“저는 현재 6502부대에서 근무 중인 육군 중위입니다.”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군인, 군인이래.” 그러나 안도하기엔 일렀다.
“방금 전, 부대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군인의 스마트 폰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1급 국가 재난 상황 발생. 전 병력은 신속히 부대로 집결.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가 재난 상황.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사실 내가 놀란 것은 다른 쪽이었다. 군대에 말뚝을 박은 사람이라니....저런....
“군인 양반!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저도 부대랑 연락을 취해보고는 있습니다만.......”
“청와대는! 청와대는 뭘 하는 거야! 대통령한테 빨리 연락해!”
“죄송합니다만 저는 말단 군인이라 청와대 핫라인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근데 무슨 통제를 한다는 거야!”
“모두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
답답하고 황당한 질문 세례 앞에서도 침착하게 응대하는 이현성을 보며 나는 이현성이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결정하는데 상당히 큰 혼란을 겪었다. 통제를 한다면 그런 사실은 감추고 했어야지...윗 자리에 있을 스타일은 아니네...
“국무총리 연설 떴어요! 진짜 1급 국가 재난 상황이래요!”
누군가의 외침에 너도나도 자신의 스마트 폰을 켰다. 젠장 휴대폰이 없다는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독자 씨, 이것 좀 봐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불특정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설의 내용은 간단했다.
현 정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테러범들과 맞서 싸울 것이며, 협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국민들은 안심하고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기 바란다.......
“근데 대통령은 어디가고 국무총리가 연설을 한대?”
“대통령이 이미 당했다는데요.”
“뭐? 진짜?”
“확실한 건 아니고, 네이버 댓글에―”
“씨발, 그럼 카더라잖아!”
카더라라...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진짜인 것 같은데...
“우와아악! 뭐야!”
곳곳에서 들려온 총성에 사람들이 폰을 떨어트렸다. 총성의 발원지는 스마트 폰 속이었다.
치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빛으로 물든 화면. 사람들은 잠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고 숨을 삼켰다.
“구, 국무총리가.......”
국무총리가 죽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머리가 터지면서.
몇 번인가 총소리 같은 게 들리고 곧 화면 속은 잠잠해졌다. 뒤이어 화면에 등장한 것은 도깨비였다.
[여러분, 제가 말했잖아요. 이건 ‘테러’ 같은 장난이 아니라고.]
말을 잃은 사람들이 멍청한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아직도 못 알아들은 모양이죠? 안 되겠네. 지금도 이 상황이 게임처럼 느껴지나 봐요?]
너무나 여유로운 톤이라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지는 말투.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하, 자료 조사에 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게임에 능하다던데, 그럼 어디 난이도를 좀 올려 볼까?]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거대한 타이머가 떠올랐다. 동시에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간.
[잔여 시간이 10분 감소했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 10분.]
[앞으로 5분 안에 최초의 살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시, 해당 칸의 모든 생명체는 절멸합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장난이죠?”
“방금 메시지 들었어요? 이봐, 당신들도 들었어?”
“군인 양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경찰은 왜 안 와!”
“여러분, 잠시만 진정해 주시고 제 말 좀―”
도깨비의 한 마디로 객실 상황은 이현성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뒤, 뒷칸에서 살인이 벌어졌어요!”
설상가상으로 누가 살인이 일어났다고 말함과 동시에 상황이 더 악화됬고 통로 쪽 창문으로 피바다가 된 3907 칸의 정경이 비치고 있었다. 해당 칸의 살인자들과 눈이 마주친 이들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못 들어오게 해야 돼! 아무도 못 넘어 오게 해요!”
사람들이 철문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나 불필요한 짓이었다. 애초에 적은 그쪽이 아니었으니까.
[해당 칸의 시나리오가 완료되기 전까지 모든 종류의 출입 행위가 제한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사람들은 투명한 장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철문에서 튕겨 나왔다.
“이, 이거 왜이래?”
그리고 다시 한 번,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꽤나 재밌어진 곳이 있는 반면, 아직도 시작하지 않은 곳도 있네요. 좋아요, 특별 서비스에요. 앞으로 5분 안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릴게요.]
지하철의 허공에 거대한 스크린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이어서 화면에 나타난 장소는 어떤 교실이었다.
군청색 교복을 입은 채 떨고 있는 여고생들의 모습.
한 남고생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저거 태풍 여고 교복인데?”
삑삑삑삑― 하고 울려 퍼지는 불길한 신호음. 여고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유료 정산이 시작됩니다.]
안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맨 앞줄에 앉은 여고생의 머리가 폭발했다.
하나씩, 다시 하나씩. 점점이 폭발해 흩어지는 머리들. 여고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교실 문과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아, 어, 어떻게 저런―”
청소 도구가 부서지고 손톱이 뜯겨져 나갔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펑, 퍼어엉. 계속해서 여고생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여고생 하나가 친구의 목을 조른 것은 그때였다.
끄윽거리는 신음과 함께 죽어가는 여고생.
그리고 잠시 후. 화면에 남은 것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마지막 여고생뿐이었다.
[#Bay23515 채널. 태풍여고 2학년 B반 생존자 : 이지혜]
화면을 노려보던 여고생의 모습이 사라지고, 도깨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때요. 재미있죠?]
도깨비가 웃으며 말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조금씩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씨발 뭐야! 이게 다 뭐냐고!”
재미...재미라....너희들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죽이는 것이 재미있나보네...김독자가 왜 스타 스트림을 무너트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군...녀석은 나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독자 씨, 저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 와중 유상아가 가리키는 곳에서는 이미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흐윽거리는 신음. 몸을 웅크린 노인과 청년의 사나운 얼굴.
“씨발, 기분도 좆같은데 할망구가 자꾸 흐느끼고 지랄이야! 안 싸물어?”
청년은 입구 쪽에 기대어 있던 남고생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새하얗게 염색한 머리. 교복에 붙은 명찰에 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김남운.
“내가 닥치라고 했지?”
흥분한 김남운이 할머니의 멱살을 잡았다. 할머니의 힘 없는 다리가 버둥거렸다. 김남운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호를 그렸다.
짝, 짜악. 짜악.
평소 같으면 누구라도 달려가서 말릴 법한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따귀는 주먹질로 바뀌었다.
“사, 살려. 살려줘어어......!”
단단한 주먹에 쇠약한 살가죽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총에 못이긴 몇몇 사내들이 김남운의 주변에서 머뭇거렸지만, 좀처럼 나서려는 이는 없었다.
의외로 제일 먼저 팔을 걷어 부친 이는 한명오 부장이었다.
“어린 노무 시키가 지금 어르신한테......!”
그러나 본보기를 보여 주겠다는 듯 대차게 나선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비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아저씨, 죽고 싶어?”
“......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뭔 개소리야 이 막돼먹은 새끼가!”
한명오의 욕설에도 김남운은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하철의 천장을 가리켰다.
“저거 안 보여?”
천장에서는 도깨비가 켜 놓은 홀로그램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살려, 살려줘요!]
[으아아아악!]
[죽어! 죽으라고!]
이곳 열차칸이나 태풍여고 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실시간 영상. 김남운이 말을 이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군대는 우릴 구하러 오지 않아. 그리고 누군가는 죽어야만 해.”
“무, 무슨 말을.......”
“우린 죽을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명오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걷어 부친 그의 팔목에서 오소소 솜털이 일어서고 있었다.
“물론 아저씨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살기 위해 동족을 죽이다니. 그건 개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지. 하지만 말이야, 이건 불가항력이라고. 불가항력.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데, 누가 우릴 탓해? 아저씬 끝까지 도덕 타령하다가 죽을 거야?”
“그, 그야.......”
“잘 생각해. 지금까지 아저씨가 알던 세계는 방금 끝난 거라고.”
부르르 떨리는 한명오의 어깨.
한명오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빛을 타고 균열이 번져가고 있었다. 막연한 도덕의 세계가 붕괴하는 광경. 균열에 쐐기를 박아 넣은 것은, 역시나 김남운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법칙이 필요한 법이야.”
김남운. ‘멸살법’의 세계에 가장 빠르게 적응을 마친 청년.
돌아선 김남운이 할머니를 향해 주먹질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한명오도, 다른 남자들도...... 심지어는 이현성까지.
꽉 쥔 군인의 주먹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은 채 떨리고 있었다.
아마 그 역시, 방금 뭔가를 선택한 것일 터다.
“후...... 힘들어 죽겠네. 다들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야? 전부 뒤지고 싶어?”
이어진 김남운의 다그침에 사람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너무나 원색적인 그 표정들은 싸구려 통속 소설의 문장들처럼 읽기 쉬웠다.
「5분 안에 살해 행위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이 칸의 모두가 죽는다.」
사람들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만약 저 할머니가 죽지 않는다면, 5분 뒤 죽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눈빛들.
“그래...... 저 새끼 말이 맞아. 이대로면 다들 죽어.”
첫 번째 사내가 김남운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쓰러져 몸을 웅크린 할머니를 향해 발길질을 퍼부었다.
“다들 잊었어? 누군가는 죽어야 돼! 그래야 우리가 살아!”
“아 씨발...... 모르겠다.”
둘, 그리고 셋.
멍청히 서 있던 사람들이 할머니를 향해 접근했다.
비겁하게 주변을 서성거리던 남자들도.
폰으로 동영상을 촬영 하고 있던 여대생도.
아이를 내팽개친 엄마와, 뒤늦게 합류한 한명오 부장까지.
모두가 할머니에게 린치를 가하며 그녀의 죽음을 거들고 있었다.
“죽어! 빨리 죽으라고!”
그들은 사형수의 죽음을 위해 협력하는 교도관들 같았다. 누가 사형수를 죽였는지 알 수 없게끔 동시에 레버를 당기는 교도관들처럼, 그들은 소극적인 발길질과 주먹질로 할머니를 조금씩 죽여 갔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그 모든 일들을 방관했다.
분명 내가 나선다면 저 할머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원래의 시나리오에서도 저 할머니는 죽었을 것이다. 약자이기에 약자이기에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저 죽음을 방관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유상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