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로 들어온 한수영은 아무 말도 없이 간이 테이블을 펼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김독자는 레몬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고 소설을 쓰는 듯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는 한수영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원래였다면 능글맞게, 장난스럽게 한수영에게 농담을 건넬 그였지만 그 순간 만큼은 한수영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김독자는 이 세계의 유일한 독자(讀者)였다. 그는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며, 일행들과 4년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일행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독자는 자기 스스로 자기가 일행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아버지였고, 형이었고, 은인이었으며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동료였고, 누군가의 독자(讀者)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신이었다.
김독자는 그들의 세계였다.
그는 일행들과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스스로를 희생해 그들을 구원했고, 이 세계를 구원했다.
그렇기에 그의 수식언에는 [구원]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의,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의 세계는 무너졌다.
김독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수식언에 [마왕]이 존재하는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김독자는 일행들이 받을 고통을 충분히 인지하고있었지만 공감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독자(讀者)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세상을 구원했다.
그렇기에 그는 독자(獨子)였다.
이러한 이유로 김독자는 죄책감과 일행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 동시에 일행들이 자신을 구한 것에 대한 감사함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 하루 내내 그가 말을 아꼈던 이유였다.
일행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마다
가슴속에 아리는 고통이 이를 막았다.
김독자는 다시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한수영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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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수영은 소설을 쓰고 있는게 아니었다.
한수영은 원래 지하철에서 같이 내리겠다는 약속을 어긴 김독자에게 쌍욕을 박으러 병실을 찾아왔지만, 김독자의 얼굴을 보니 선뜻 욕을 박을 수가 없어서
아까부터 메모장에 별 의미 없는 단어만 써가면서
‘ 김독자, 말 걸면 죽인다. 십새끼 말 걸면 쌍욕박는다. 죽인다. 죽인다. ‘
라고 생각하며
내심 속으로는 계속해서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김독자에 대해 서운해 하고 있었다.
한수영이 한참 전에 다 녹은 레몬 사탕의 신 맛을 다시 찾다가,
주머니 속에서 새 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넣는 순간 자기를 보고 있던 김독자와 눈이 마주쳤다.
“ 시발, 뭘 봐? “
“ 그냥, 소설 쓰나 해서. “
“ 나 이제 소설 안 써 “
한수영은 실제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소설을 쓰는 것에서 흥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을 독자(讀者)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멸살법이 그랬 듯 한수영의 소설은 김독자를 위한 것이었고, 한수영은 앞으로 단 하나의 독자를 위해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다 다짐했었고, 그녀의 소설의 단 하나의 독자가 되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어긴 김독자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소설을 써내려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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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553에서 끝낼려했는데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도저히 감을 못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