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집 밖으로 몰려나왔다. 다들 정전을 겪었고 정부의 브리핑을 들었으리라.
또 이 북을 찢는 듯한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무슨 소린지 궁금해 이렇게 나온듯 했다.
사거리에는 사고가 나 있었다. 5대, 아니 6대의 차가 충돌한 대형사고였다.
자연스럽게 사고 현장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족히 30명은 되어 보였다.
그때 공중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두 개의 작은 뿔. 작은 거적을 걸치고, 보송한 솜털이 돋은 괴생명체.
요정이라고 부르기엔 괴이하고, 천사라고 부르기엔 사악하며, 악마라고 칭하기에는 천진한 외형.
그건 틀림없는 '도깨비'였다.
내 소설 'SSSSS급 무한 회귀자'에서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인간들을 학살하던 그 도깨비.
내가 알던 소설과, 눈앞의 현실이 겹쳐지며 사위가 불안하게 떨렸다.
나는, 그 '도깨비'가 처음으로 꺼낼 말을 알고 있었다.
「&아#@!&아#@!......」
[&아#@!아#@!......]
잠시 후 한국어가 들려왔다.
[아. 아. 잘 들리시나요? 이것 참, 한글 패치가 안 돼서 고생했네. 여러분 제 말 잘 들리시죠?]
익숙한 언어가 들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영화 촬영인가?"
"CG 아니야?"
"사고도 연출된 건가?"
[자자, 여러분들. 진정하시고 일단 자리에 앉아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전해야 하니까!]
저 CG 덩어리의 말을 사람들이 들을 리가 없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영화 촬영이면 미리 협조를 받았어야죠!"
[하하, 시끄럽네 정말.]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죠.]
도깨비의 눈이 붉게 변했다.
퍼버벅, 깨지는 소리가 났고 붉은 비가 내렸다.
"아, 아, 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비처럼 뿌려져 사람들의 얼굴을 적셨다.
[이건 영화 촬영이 아닙니다.]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도깨비에게 소리를 지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며.]
[당신들이 알던 '현실'도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모두 닥치고 내 말을 들으세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30명은 되어 보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10명 남짓이 되었다.
말도 안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내가 쓴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니, 이보다 소설같은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의 등장과 이 전개는 소설 속 이야기와 일치했다.
이건 진짜다.
[여러분, 지금까지 꽤나 살기 좋았을 겁니다. 그렇죠?]
[당신들은 너무 오래 공짜로 살아왔어요. 인생이 너무 후했죠? 태어나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잘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제멋대로 번식을 해대고! 하! 여러분 정말 좆같이 좋은 세상에 살았네요!]
[그런데 좋은 시절은 이제 다 끝났어요. 언제까지 공짜를 누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행복을 누리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상식이지. 안 그래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돈은 필요 없습니다. 당신네들 돈은 거시 차원계에선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아까 지하철에서 돈을 줄테니 살려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지폐가 모두 떠오르더니 불타 없어졌다.
사람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리는 것이 보였다. 다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다.
[휴, 이렇게 떠드는 시간에도 당신들 부채는 쌓여가고 있다고요. 뭐, 그래요. 제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직접 돈을 벌어보는 게 빠르겠죠?]
도깨비의 뿔이 길어지더니 몸체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메시지가 들려왔다.
[#BI-7623 채널이 열렸습니다.]
[성좌(星座)들이 입장합니다.]
그리곤 사람들의 위쪽으로 창이 떠올랐다.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
분류 : 메인
난이도 : F
클리어 조건 :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시간 : 30분
보상 : 300코인
실패시 : 사망
+
투명해진 도깨비가 사라지며 미소지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 부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