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는 한수영이 소설을 쓰지 않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가장 오래된 꿈으로써 지하철 안에 있었을 때, 그는 1863회차 세계선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1863회차의 한수영이 최후의 벽을 넘은 것, 도깨비

왕과 함께 최초의 세계선으로 떠난 것, 그 곳에서 단 하나의 독자를 위해 자신을 바쳐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tls123으로써 멸살법을 연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너의 단 하나의 독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수영의 단 하나의 독자였다.


김독자는 나지막이 한수영을 불렀다.

 

 

“ 수영아, 일로와봐 “


“ 싫어 “

 

 

 

“ 아 씨, 진짜 “


한수영은 내키지 않는 듯 김독자의 병상으로 걸어갔다.


“ 왜 “

 


인상을 쓴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수영에게 김독자는 선뜻 말을 내뱉기 어려웠다.


입을 몇 번 뻐끔거린 뒤, 김독자는 첫마디를 뱉었다.


 

“ 많이 화났냐. “


 

담담하게 물어보는 어조에 한수영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하지 않아도, 독자였던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데 능했다.


또 여태까지 계속 화난 티를 냈기 때문에 저 능구렁이 새끼가 자신이 화난 걸 모를 리 없다고 한수영은 생각했다.


처음엔 김독자에 대한 걱정으로. 이내 김독자가 돌아오자 원망과 분노로 바뀌어 버린 감정을 한수영은 곧이곧대로 분출했다.


 

“ 야 이 시X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

“ 지가 이 세계의 신인 것 마냥 지가 모든 걸 다 아는 줄 알고 하지 말라고 지랄을 해도 항상 니가 모든 걸 다 짊어지려 하는데 안빡치고 배기냐? “

“ 니가 구원이랍시고 뒤질 때 마다 애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 씨X 그게 구원이야? 지X하고 자빠지지 말라 그래!!! “


 

걱정에서 비롯된 분노가 마음속에서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어떻게 될까.


뜨겁게 불타오르는 마음이 한껏 모든 걸 불태우고 나면, 그 자리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잿더미 밖에 남지 않게 된다.


모든 분노는 곧 슬픔이라는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 시팔.. 같이 내린다고 했잖아.. “


한수영에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김독자의 병원복을 적셨다.


연신 욕설을 뱉어가며 흐느끼는 한수영을 김독자는 조용히 안아주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난 뒤 한수영의 흐느낌이 잦아들자 김독자는 말을 꺼냈다.


“ 수영아 “

“ 내 이름 부르지마 시X롬아.. “

“ 카이제닉스에서, 기억나냐? “

“ 안나 새꺄 “

“ 니가 말했잖아. 니 소설 읽어달라고. “


“ 13년동안 소설 쓴 사람한텐 좀 미안한 말이긴 한데, 3000편 짜리 소설 써줘. 로맨스로 “


 

자신이 tls123이라는 것을 인지한 듯한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은 놀란 듯이 김독자를 쳐다 봤다.


“ 너.. 알고 있었어? “


한수영의 놀란 듯한 눈은 눈물이 맺어져 전보다 더 빛났다.


“ 응. “

 


자신이 tls123인 것을 알고 있다는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은 왠지 모를 슬픈 원망감이 더욱 몰려왔다. 

그녀는 그의 품속에 파묻혀 다시 흐느꼈다.

 


“ 써줄거지? 로맨스. “

“ 몰라 새꺄.. “

 


흐느끼는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독자는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빛을 잃은 채 반짝이던 별들 중 하나가 다시 빛을 발하며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




[ 에오바앗.. ]


비유는 시발시발 거리며 김독자의 병실로 올라가는 한수영의 모습을 보고는


혹시라도 큰 싸움이 일어날까 하며 막을 심산으로 몰래 한수영을 따라 병실로 올라왔다.


하지만 다 큰 남녀가 새벽 2시를 넘어가는 시간에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수영이 혹시 자신의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속이 메스꺼웠다.


이 상황에서 비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장면을 촬영해 김독자 컴퍼니 단체 톡방에 올리는 것.

 



김독자 컴퍼니의 놀림에 한수영이 얼굴이 벌개지며 3주 간 숨어사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