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화에 끝나겠다.
전편 https://arca.live/b/reader/321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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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
당황한 일행들의 표정.
몇몇은 수십, 수백, 수천만의 이계의 존재들을 상대로 한 틈의 진격도 허용하지 않는 살아있는 불꽃의 강함을 넋놓고 지켜보았고,
몇몇은 주저 앉은 나를 조용히 응시하는 은밀한 모략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혼돈의 격.
은밀한 모략가는 비형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있는 내게 몇 마디의 말을 건넸다.
【다시는 이 세계선의 너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수상한 격을 느낀 우리 세계선의 김독자가 간절히 부탁하더군.】
그는 [살아있는 불꽃]의 강함에 조금 당황한 듯한 기세를 나타나는 [공허를 탐식하는 자]를 잠깐 응시했다.
【내일 독자 졸업식이다.】
【딱 5분이다. 그 이후는 너가 알아서 결정해.】
그후로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공허를 탐식하는 자]를 향해 날아가는 은밀한 모략가의 모습.
나는 흘러 넘치던 눈물을 멈춘 채, 날아가는 은밀한 모략가를 지켜보았다.
이계의 존재들의 진격을 저지하는 살아있는 불꽃을 넘어서, 그는 [공허를 탐식하는 자]에게로 다다랐다.
【너도 참 안타깝군, 우리의 신이 워낙 순수해서···】
은밀한 모략가의 말을 끊고, 마치 날카로운 비명과 같은 소리로, [공허를 탐식하는 자]가 비웃었다.
【끅끅.. 그래, 너희의 신.. 아주 나약하고 우매한 너희의 신.. 그 자는 대체 뭘 할 수 있지?】
끝없이 불타오르는 살아있는 불꽃의 화염을 등에지고, 은밀한 모략가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공허를 탐식하는 자] 앞에 서 있었다.
비록 매우 먼 거리였지만, 나와 일행들은 똑똑히 보았다.
그는, 은밀한 모략가는, [공허를 탐식하는 자]앞에서 조금의 미소를 띄고 있었다.
【우리의 신은···】
은밀한 모략가는 아공간 코트의 주머니 속에서 날카로운 진천패도를 꺼내들었다.
【꿈을 꿀 수 있지.】
- 콰가가가각.
[파천검도(破天劒道) 초월오의(超越奧義) 은하참(銀河斬)]
파천검성도 다다르지 못한 수준의 은하참.
최고의 수준의 은하참에, [공허를 탐식하는 자]의 얼굴에는 입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사선의 상처가 났다.
【끄아아아악!!】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쾌한 검은빛, 보라빛 연기.
그 연기를 거두며 또 한번의 초월오의를 발하는 은밀한 모략가가 나지막히 읊조렸다.
【그리고, 그 꿈은 우리로써 실현된다.】
내가 은밀한 모략가의 힘을 과소평가 한 것인지, 혹은 [공허를 탐식하는 자]의 힘을 과대평가 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자신의 상반신 밖에 균열에 들이지 못했기 때문인지,
[공허를 탐식하는 자]의 힘이 최소 은밀한 모략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이 민망할 정도로,
은밀한 모략가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촉수를 모두 가볍게 쳐낸 뒤, [공허를 탐식하는 자]의 몸 이곳 저곳에 굵직한 상흔을 내었다.
"와... 씨..."
은밀한 모략가의 전투를 보며 한수영이 나지막히 뱉었다.
최후의 벽에서의 도깨비 왕과의 전투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은밀한 모략가의 격.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회귀자의 격이 느껴져 왔다.
"김독자."
얼굴과 몸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난 유중혁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유중혁은 주저 앉은 내 옆에 그저 나란히 서, 은밀한 모략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유중혁은 눈물로 말라붙은 내 얼굴을 보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수많은 회귀를 거듭하면서 수없이 동료를 잃어왔다."
"너희들이 나를 사이코패스라며 놀려댔어도, 당연히 나는 동료를 잃는 순간마다 좌절해 왔다."
"동료의 죽음에 좌절하며 삶을 포기한 게 몇 번인지 세기도 어렵군."
"하지만 회귀 회차가 세자리 수로 넘어가면서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회귀를 거듭할 때 마다, 덮여 쓰여지고, 다시 덮여 쓰여지고, 또 다시 덮여쓰여지는 이야기 속에서,"
"죽은 동료의 이야기가 그 밑에 영원히 남을 수 있게, 나의 이야기를 끝마치지 않겠다고."
유중혁의 목소리 사이로, 비형의 마지막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
내 왼손 끝에 작은 무언가가 닿았다.
은밀한 모략가가 놓고간, 야구공 크기로 응축된 힘.
나는 그 힘을 집어들었다.
"한수영!!!"
【꿈..? 꿈..? 꿈..?!! 한낱 허황된 하나의 꿈으로 대체 무엇을 한다는 것이냐!!!】
은밀한 모략가는 품 속에서 작은 시계 하나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글쎄, 그 대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듣는게 낫겠군.】
꿈은 절대적이다. 모든 사람은 꿈을 꾸고, 그 꿈 속에서 무한한 힘을 가진다.
그 힘으로 꿈 속에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고, 상상한다.
그 세계 속 쌓아온 이야기는 곧, 그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해
일상을 살아갈 잠재력과 원동력이 된다.
응축된 힘 속에서 엄청난 꿈 장악력이 느껴졌다.
아마도 999회차로 넘어간 어린 김독자, 이전 가장 오래된 꿈의 꿈 장악력일 것이다.
비록 나에게 자리를 넘겨 가장 오래된 꿈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지만,
영겁의 세월 속에서 무한한 꿈을 상상하며 세계를 지탱해온
그 소년의 꿈은 마치 기분 좋은 아침 햇살처럼 눈부셨고, 추운 늦가을 날의 가랑비처럼 비극적이었다.
"한수영!! 그리고 여러분!! 빨리 성좌분들을 모시고 돌아가세요!!"
"네? 독자 씨는 어쩌려고..!"
유상아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다.
터져나간 작은 구에서, 소년의 꿈이 퍼져나왔다.
이윽고 그 꿈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그린 뒤, 내 설화 속으로 흡수되어 왔다.
이 힘은 누군가의 한 인생의 이야기와 똑같았다.
내 설화 속 이야기 위에 다시 덮여 쓰여지는 또 다른 이야기들,
나는 그 속에서 비형의 이야기를 간직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김독 자 ,잘했 다]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이 발휘됩니다!]
[세계선의 균열을 수복합니다!]
광할하고, 한없이 아름답던 균열 속 세계가 빠르게 그 광택을 잃고 있었다.
"이리로 오세요!! 이리로, 서로 부축하면서 빨리 오세요!!"
서로 부축하면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성좌들, 그들의 이야기 역시 이 곳에서 또 다시 쓰여졌다.
무너져가는 균열의 파편에 이계의 존재들이 짓눌려 죽어갔다.
【으..!! 으...!! 이 벌레 새끼들이..!!】
[공허를 탐식하는 자]는 그 거대한 팔을 나에게로 뻗었다.
"야.., 야 야 김독자..!!"
한수영은 뻗어오는 손을 피하지 않는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손은 나로부터 딱 한사람의 거리만큼 떨어져 멈췄다.
['마왕화'가 해제됩니다.]
['천사화'가 해제됩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설화, '이계의 신격을 살해한 자'가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설화, '빛과 어둠의 감시자'가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끝마칩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세계선의 균열이 모두 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딱 하나의 진언을 발했다.
[너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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