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계절이 바뀌는 5월의 마지막 날.
벚꽃이 땅을 물들이고, 푸르른 수풀들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그런 날,
큰집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한껏 들뜨고 분주했다.
"설화 씨, 이 옷은 어때요?"
"어.. 아까 것 보다 나은것 같아요."
"야, 이길영!! 빨리 나와!!!"
"아 나 옷 갈아입고 있어!!!"
"현성 씨, 성좌 분들은 어떻게 오신대요?"
"아, 성좌 분들은 식장으로 각자 오시겠답니다."
약간은 쌀쌀했던 날씨와는 달리, 큰집의 분위기는 이들에게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화사했다.
이 안락함은 세상이 시나리오를 버틴 김독자 일행에게 선물하는 하나의 보상이었다.
멸망한 세계 속에서 힘겹게 살아남아, 이 세계의 마지막을 읽은 유일한 독자들이 되었고,
그들의 가장 오래된 꿈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멸망한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무너져버린 그들 세계의 균열을 수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들의 검을 내집었다.
그들은 어색하면서도 묘한 들뜸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가장 아름다운 달인 5월,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어느 화사한 날.
오늘은 한수영이 오월의 신부가 되는 날이었다.
"중혁 씨,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문제없다."
"삐진거 아니지?"
"...아니다."
김독자를 구하기 위해 시나리오 박물관을 테러해, 아직까지 범죄자 신분이었던 유중혁을 제외하고, 김독자 컴퍼니 일원들은 모두 김독자와 한수영을 오월의 신부를 축복하러 나섰다.
"상아언니, 식장까지 얼마나 걸려요?"
"음..., 그래도 한 한시간 쯤?"
"우리 없는 사이에 사부 또 사고 치지는 않겠지?'
"설마, 그래도 독자씨랑 한수영 결혼식인데 그러겠어?"
"...중혁 씨라면.. 그럴수도?"
그들을 태운 승합차는 공단 주변을 넘어, 하늘과 산으로 얼룩진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달리는 도로 위에는 우아한 하늘의 정경이 수놓아져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화로운 삶.
그들은 그런 삶을 한없이 만끽하며, 아름다운 일상의 꿈들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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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아, 뒤돌아봐도 돼?"
"어, 어.."
갈대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수수한 갈대밭의 풍경.
백년가약이 맺어질 장소 치고는 많이 초라한 장소였다.
"아..."
"왜..., 이상해?"
"아니, 너무 이뻐."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로, 김독자와 한수영은 도심의 아름다운 결혼식에서 식을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장소는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그들이 꿈꾸던 아름다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면 족했다.
김독자는 갈대밭에 마련된 간이 휴게소 앞에 서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평소 입던 보라색 따위의 후드티가 아닌, 새하얀 순백의 아름다고 단아한 드레스.
한수영은 혹시라도 그 드레스가 안 어울리지는 않을지, 김독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걱정이 우습다는 듯 김독자는 환하게 웃으며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특유의 능글거리는 얄미운 웃음이 아닌, 아름다움을 두 눈에 담으며 한없이 보내는 진실된 웃음.
평소와 다르게 내려묶은 머리가 아름다웠다.
눈 밑에 작게 나있는 눈물점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아름다웠고,
쑥스러운 듯, 약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마저 아름다웠다.
한 눈에 담은 한수영이, 김독자는 자기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갈대밭 위 흐트러지게 피어오른 그들의 설화는, 그들이 여태껏 쌓아온 그 어느 거대설화 보다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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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씨! 정말 이쁩니다!!"
"언니, 진짜 이뻐요!!"
"수영 씨, 정말 이뻐요."
조용하게 스치는 바람소리만이 맴돌던 갈대밭이,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과 다른 화신들, 초월좌들, 성좌들로 시끌벅적 했다.
"맨날 집에서 폐인같이 하고 있을 땐 몰랐는데, 드레스 입으니까 이쁘다."
"뭐래, 야 정희원. 너 이따가 부케 받을거지?"
"받기는 무슨, 이 곰탱이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정희원은 뻘쭘하게 서있는 이현성을 째려보며, 그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희, 희원씨?"
이현성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점점 강해지는 정희원의 장난을 피해 도망쳤다.
"저희 이제 갈게요. 언니 이따 봬요!"
"그래 유승아, 길영이랑 싸우다가 또 키메라 드래곤 불러내지 말고.."
"에이, 저희도 이제 성인인데요."
한수영은 웃으며 돌아서는 신유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객들 맞이하는 것도 꽤 힘드네..'
오랫동안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있었던 탓에, 한수영은 결려오는 어깨와 허리를 조금씩 주물렀다.
그리고, 그런 한수영에게 누군가가 다가갔다.
[어머, 수영아 너무 이쁘다!!]
화려한 두 날개를 펼치고, 아름다운 대천사의 자태를 한껏 뽐내는 에덴의 가장 오래된 선,
[우리 막내가 능력도 참 좋아.]
불편한 정장을 억지로 껴입으며, 자신의 격을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해방자,
[내 화신이..., 수영이가 결혼을 하다니..]
오글거리던 더벅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채 훌쩍거리며 다가오는 심연의 흑염룡,
그들 뿐만이 아니였다.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불편하게 빼입은 채 쭈뼛쭈뼛 다가오는 고려제일검과 해상전신,
단정한 차림으로 그들의 뒤를 따르는 키리오스와 파천검성,
성좌와 화신들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시에 김독자와 한수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안나 크로프트까지,
모두가 김독자와 한수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빛냈다.
[바앗-]
[채널 BY-9158이 연결되었습니다.]
[성좌, 매금지존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황산벌의 마지막 영웅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흥무대왕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외눈 미륵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북두칠성의 북두성군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성좌, 작은 행성의 작은 성좌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채널에 접속한 모든 성좌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앉아있는 한수영을 위해 나리는 수많은 별빛들, 그 빛들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선명하게 보일정도로 빛났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없이 사랑해주던 밤하늘의 별들,
한수영은 자신의 이야기들이 마냥 비극적이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했다.
텅 빈 초원 위 혼자 쓸쓸하게 피어있는 민들레꽃처럼, 외롭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산뜻하게 제 씨앗들을 바람에 흩부리는 민들레꽃처럼, 온 세상에 처절하게 퍼져나간 그들의 이야기.
지금 이 순간이, 그 이야기들의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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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로써 신랑 김독자와, 신부 한수영은 백년가약으로 맺어진 영원한 부부가 되었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이수경의 사회를 끝으로, 곳곳에서 퍼져나오는 힘찬 박수소리와 함성들이 갈대밭 한 가운데에 단아하게 서있는 김독자와 한수영을 빛냈다.
페르세포네는 손수건에 눈물을 콕하고 찍어내었고, 이길영과 신유승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끅끅거렸다.
내심 아쉬워하면서도 우리엘은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했고, 모든지 귀찮아했던 제천대성도 그 순간 만큼은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했다.
정희원은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고, 이현성은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축복했다.
"야!! 정희원, 받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능력치의 힘까지 이용해 힘껏 부케를 던지는 한수영,
똑같이 민첩 능력치를 이용하여 날아오는 부케를 빠르게 낚아채는 정희원,
그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그런 정희원을 바라보는 이현성.
"현성 씨, 다음은 우리에요!!"
"예..,예, 예? 잘못들었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5월 마지막 날, 갈대밭위에서 펼쳐진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가 진짜 종장을 맞이하였다.
"우와, 이게 다 뭐에요??"
"오.. 무림 음식들은 진짜 오랜만이네요. 이제 재료 구하기도 힘들텐데."
"하영이랑 초월좌분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구했대요."
"이거, 무림만두 좀 싸갈까? 사부 주게."
"그래, 그거마저 안 챙겨가면 중혁 씨 진짜 다 부숴버릴지도 몰라."
"디오니소스가 술에 뭐 타지는 않았겠지..?"
"에이, 설마."
"야 신유승, 나 저거 좀 줘."
"안돼, 이거 아저씨거야!"
"얘들아.. 나는 괜찮으니까 싸우지 마.."
뷔페 형식 대신 기다란 테이블에 무림의 음식들로 양껏 차려진 식사들 역시,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식의 모습에 비하면 조금 조촐한 모양새였지만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이 자리가 조촐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계를 읽어냈던 가장 오래된 꿈,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이 세계를 그려낸 한 연출가의 결혼은 그 어떤 성유물보다 빛났다.
"여러분.. 정말 모두 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같은게 뭐라고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될지.."
"독자 씨, 저흰 한수영 보러 온건데요?"
"맞아요."
"아니에요! 저희는 독자 아저씨 보러 왔어요!!"
"꼬맹이들, 어른들 대화에 끼는거 아니야!"
"우이씨, 우리 이제 성인이거든!!"
'야, 김독자.'
'응, 왜?'
'레몬맛 사탕의 추억, 이제부터가 본편이야 기대해.'
'하하.. 그래 알았어.'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의 시선을 피해 귓속말을 건네는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는 생각했다.
평생 무언가를 읽으며 살아왔던 자신이,
처음으로 써내려간 이야기의 마지막이,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져나갈 자신의 이야기가
우려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다고.
김독자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아주 작은 소량의 꿈장악력,
그것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아주 미미하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 반딧불처럼 퍼져나갔다.
이 순간이 영원하길,
더없이 아름다운 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수 있길,
모두에게 축복받는 자신의 삶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길,
그것이 김독자가 꿈장악력으로 펼쳐냈던 하나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