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다 끝난 시점임.
내가 미쳤지.
"야, 한수영."
내가 미쳤어.
"······왜 멍때리고 있어?"
"······그냥, 꼽냐?"
"말버릇 하고는······ 얼른 가자."
김독자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김독자 옆에 붙어 같이 걸었다.
"영화관이 어디쯤이었더라······."
오늘은, 김독자와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다.
"그나저나, 별 일이네. 니가 영화를 보러가자고도 하고."
······내가 주선해서 말이지.
*
"볼 사람이 없는데 어쩌냐?"
나는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혼자 보면 되지. 그리고 볼 사람이 왜 없어? 유중혁도 있고."
"······농담이지?"
"애들도 있고."
"걔네는 무서운 거 봐도 별로 안 놀라잖아. 공포 영화는 잘 놀라는 사람이랑 봐야 재밌지."
"안 놀라는 편이었나······? 잠깐, 우리 공포 영화 보러 가는거야?"
"왜, 무섭냐? 이 누님이 손이라도 잡아주리?"
"······됐다."
그렇게 장난 섞인 대화를 하며 쭉 걸었다.
"야, 한수영."
"응?"
김독자는 뭔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요즘 유행이라는 연예인 사진이 붙어있는 간판이었다.
확실히 이쁘긴 하다, 같은 여자가 봐도.
저런 사람이 연예인을 하는거겠지.
"저 사람, 너 닮은 거 같지 않냐?"
"······어?"
"뭔가 느낌 있는데, 특히 눈매가."
······
"······뭐래, 당연히 천재 미소녀 작가인 내가 더 이쁘지."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김독자는 웃어넘겼다.
······조금, 닮았나?
*
"아, 다 왔다."
어느새 영화관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우리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와 김독자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 뭔가 좋은 것 같지 않냐."
"뭐래. 변태냐?"
"······멸살법같은 노잼 소설 다 읽은 너보단 덜 변태거든."
띵-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린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층수를 쳐다봤다.
B2
······아.
나는 김독자한테 소근댔다.
"9층 안눌렀냐?"
"니가 누를 줄 알았지."
"······센스없네, 진짜."
내가 누를수도 있던 건 맞지만······.
문이 다시 열렸다.
지하 2층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내 발에 내가 걸려버렸다.
"읏······."
턱.
······넘어지기 전에, 김독자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아줬다.
"조심 좀 해라."
"······"
갑자기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김독자가 이렇게 컸었나?
사람들은 여전히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고, 나와 김독자는 더더욱 밀착해 거의 안다시피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혹시 얼굴 빨개졌으려나.
안보이겠지?
나는, 조금 더 김독자 품에 기댔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는 김독자의 눈치를 살폈다.
덤덤한 눈치였다.
어색해지진 않아서 다행이지만, 조금······.
"아야, 왜 때려?"
"그냥."
나는 그리고 두어 대 정도 더 때렸다.
눈치 없는 새끼.
"그래서, 뭐 볼건데?"
"'캔디맨'이라고, 새로 나왔던데."
"뭔 공포 영화 이름이 그렇냐. 아무튼, 그걸로 예매하면 되는거지? 표는 내가 예매할테니까 너가 먹을 것 좀 사고 있어."
"알았어."
우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표 예매 줄에 비해 이쪽 줄은 꽤 짧았다. 안 기다려도 되고, 좋네.
나는 줄을 서서 메뉴판을 바라봤다.
세트메뉴 한번 참 많네. 저런 게 다 상술인데 말이야.
그렇게 바라보다가, 어떤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커플세트.
아니······ 뭐, 구성도 괜찮은데?
딱히 다른 마음은 아니고, 그냥 둘이 먹기에 가성비가 좋으니까······.
"커플 세트······ 하나요."
"네~ 잠시만요~"
괜히 다리를 떨었다.
알바생도 분명 별 생각 안할텐데, 왜 떨고 있는거야.
하지만······.
나는 뒤를 돌아 김독자를 흘끔 바라봤다.
······
뭐, 진짜 커플도 아니잖아?······ 진정하자. 한수영.
"여기요~"
"감사합니다······."
나는 음식을 들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김독자를 바라보며, 팝콘 몇개를 주워먹었다.
팝콘이 제대로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건지도 모르게,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독자는 표를 예매하러 종업원과 얘기하고 있었다.
종업원은 남자였다.
김독자는 표 두 장을 받고, 뒤를 돌아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점점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렇게 가까워지더니-
"야."
나는 김독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사람 얼굴을 뭐 그렇게 뚫어지게 보냐?"
"······못 생겨서."
"뭐?"
윽, 김독자한테 한 대 맞았다.
"영화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들어가자."
*
"G... G... 아, 찾았다."
우리는 각각 G열 5번, 6번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영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4분 있으면 시작하는거 아니야?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김독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관이라도 했냐?"
"뭐······ 서프라이즈?"
······?
"······진짜야?"
"응."
"······언제?"
"내가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잖아?"
대관이라니, 돈 좀 들었겠는데.
아, 김독자 돈 많지.
"대관은 왜 했는데?"
"좋지 않아?"
"······편하긴 하지."
"그럼 됐지. 좋은게 좋은거잖아?"
은근 센스 있는데?
······좋네.
*
영화가 시작하고,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한수영은, 꽤 많이 무서워하고 있었다.
"'누님이 손이라도 잡아줄까?'라며? 너가 더 놀라고 있는데."
"······닥쳐."
무서운 것도 못 보면서, 왜 보러 오자고 했는지······.
내가 무서운 걸 못 볼줄 알았나.
"히약?!"
한수영은 놀라며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런 소리도 낼 줄 알았냐."
한수영은 말 없이 조그마한 눈물 방울이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한 대 툭 쳤다.
······순간, 다른 의미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반칙이네 이거.
"흣······."
이번에는 비명 대신 눈을 질끈 감으며 내 오른쪽 팔을 더 세게 잡았다.
"······팔 떨어지겠다."
"······무섭단 말이야."
"어련하겠어······."
그러면서 한수영은 다시 스크린을 쳐다봤다.
새삼 말하지만,
정말 이쁘다.
솔직히, 놀라고 싶어도 놀랄 수가 없었다.
영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으니까.
*
······이거, 생각보다 무섭구나.
그리고 김독자는 왜 안 놀라는데?
나는 김독자를 쳐다봤다.
김독자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화 안 보냐?"
"너가 날 쳐다보고 있잖아."
"······치."
나는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는 척 하면서, 다시 김독자를 쳐다봤다.
"거 봐, 아직도 나 보고 있잖아.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놀라는 게 재밌잖아."
"······이제 안 놀랄거야."
두고 봐라······.
"꺄악?!"
"어디 익룡이 날아다니나?"
······이 나쁜 새끼.
"무서우면, 손이라도 잡아주랴?"
"······"
······내가 여기서 수락한다면?
진짜로······ 잡아줄까?
"미소녀의 손인데, 떨려서 잡을 순 있고?"
"물론이지."
"그럼, 잡아 봐."
말을 내뱉자마자,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진짜? 잡아주려나?
······김독자가, 조심스레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으으······.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 손에 신경이 쏠려서.
"······"
우리는 말 없이 스크린만을 쳐다봤다.
그리곤 조심스레, 깍지를 꼈다.
······영화관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다.
얼굴이 터질것만 같아······.
그렇게 우리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말이 없었다.
*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조금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는 내가 말을 꺼냈다.
"그, 밥이라도 먹으러 갈래?"
"그래. 마침 배고프네."
그렇게 나는 김독자를 따라 근처 우동집으로 왔다.
"오, 여기 이런 곳도 있구나."
꽤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낭만적이라거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만화의 한 장면같은 우동집이랄까.
마치 언젠가 일본 애니에서 봤던 라멘집 같았다.
"여기 되게 맛있어. 멀어서 자주 안 오지만."
"뭐가 제일 맛있는데?"
"나는 돈까스 우동을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여긴 거의 다 맛있어."
"귀찮은데, 그냥 그걸로 두 개 시키자."
"그래, 여기 돈까스 우동 두개요."
"네~!"
나는 음식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졌다.
"뭐 해?"
"그냥, 핸드폰."
"새 작품은 안 쓰냐?"
"······연재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1달정도?"
1달만에 새 작품으로 돌아오는 작가가 있으면, 천재지 뭐겠냐.
라고 하려다가, '천재 작가라매?' 라고 말 할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알아서 준비하고 있으니까 신경 끄셔."
"그래 뭐, 천재 작가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미소녀는 왜 빼냐?"
"······그래, 천재 미소녀 작가님."
그렇게 재잘재잘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음식이 나왔다.
"돈까스 우동 2개, 맞죠?"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어깨로 김독자를 툭툭 치며, 다 들리게끔 소근거렸다.
"자네가 말했던 사람이 이 여자인가?"
"하하······ 네."
"뭐야? 둘이 무슨 얘기해?"
"별 것 아니네. 그럼 많이 먹게나."
사장처럼 보이는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무슨 게임 속 NPC인 줄 알았다. 말투가 특이하신 분이네.
"방금 누구였는데?"
"그냥, 여기 사장님이셔."
"친해? 몇 번 안 왔다매."
"요즈음 자주 안 온거지, 예전엔 꽤 자주 왔어. 적어도 일주일에 2번은 이상?"
"······그럼, 무슨 얘기한건데?"
"별 거 아니야. 먹자."
별 거 아닌거 맞나?
뭐······ 별 거 아니겠지?
그래서 먹어보려고 젓가락을 잡는데, 뭔가 이상했다.
돈까스를 원래 이렇게 많이 줘?
"원래 여기 이렇게 많이 줘?"
"어."
"······뭐래, 당장 니 것만 봐도 나보다 적어보이는데."
"첫 방문이니까, 서비스라도 주셨나 보지."
뭐, 그런가.
많으면 좋은거지. 실수로 몇 개 더 넣었을수도 있고.
후루룹.
"······오."
"맛있지?"
"어······ 되게 맛있다."
특히 국물이 되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깊은······.
"그래서 내가 자주 온거야."
"자주 올 법 하네."
유중혁이 우동을 더 잘할까, 아니면 여기 사장님이 우동을 더 잘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우동을 먹었다.
*
딸랑.
"다음에 또 오십쇼~!"
저 호탕한 목소리는 아직도 적응이 안되네.
"맛있었네."
"응, 진짜로."
그렇게 무념무상하게 길을 걸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네."
"그러게. 겨울이 되려나봐."
아직 6시즈음 밖에 안됐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오늘 하루동안, 완전 데이트한거 알아?"
"······응?"
갑작스런 김독자의 말에, 당황했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어······."
그러고 보니······.
"어땠어?"
"뭐, 뭐가?"
"오늘 하루. 어땠냐고."
······
"······좋았어."
"뭐가?"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김독자의 눈을 피하며.
그리고 김독자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크흠. 흠······."
그리고 조금씩, 김독자 곁으로 붙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 같았지만, 뭐 어때.
지금 너무 좋은 걸.
"김독자."
"응?"
"그······."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으······.
"좋아해."
"······어?"
"그 말 하려던 거 아니었어?"
"그······ 응······."
"좋아해. 나도."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는 나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이런 거, 반칙이잖아.
"근데 너, 왜 그렇게 능숙해?"
"······솔직히, 지금 엄청 긴장하고 있는데."
호오, 그래?
나는 김독자에게 갑작스럽게 안겼다.
"읏······."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너 오늘 하루종일 나 놀려먹었지? 이젠 내가 놀릴거야."
"······그래."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는 안겨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씨이······.
"내가 놀릴거라고!"
*
"그럼, 이제 뭐할까?"
"······이제, 갈 곳이 있잖아?"
······그래.
여기까지네.
나와 김독자는, 말 하지않고도 한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도시의 건물들, 매연 냄새,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외지까지 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전원 생활을 하기에 딱 맞는 집 하나.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었다.
*
[아바타를 흡수해 기억이 돌아옵니다.]
······이런 일도 있었지.
벌써 60년 전인가······.
[마나가 부족해 아바타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추억 회상도 여기까진가.
괜찮아, 방금 게 김독자와의 첫 추억이었으니까.
······보고싶네. 김독자.
이렇게 사랑스런 아내를 두고 4년이나 먼저 떠나다니, 나쁜 놈.
유품이랍시고 남긴 게 기억이라니. 그 덕분에 내가 추억회상을 할 수 있었던 거긴 하지만······.
"증손자는 보고가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유서현과 김서아가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고싶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흔들의자에 앉았다.
노인이 되어 안락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 모두의 로망 아닌가.
"김독자······."
"너에게, 얘기해줄게 많아."
너가 없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
"서현이의 아들. 그러니까, 서아의 손자가 태어난 일."
정말 귀여운 아들이었지.
"유중혁이랑 성준이가 힘싸움을 했던 일."
거의 막상막하였지. 결국에 유중혁이 졌지만, 그 자식. 여전히 대단한 놈이야.
"유중혁이 증손녀와 소꿉놀이를 했던 일."
유수연이 옛날 생각이 나는지 즐거운 듯이 웃더라고.
"은성이랑 은혜가 대판 싸웠던 일."
나이를 먹어도 남매는 남매인가봐. 은성이는 분명 순둥순둥 했었는데 말이야.
"정현이 딸, 길영이랑 유승이 손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
눈이 그렇게 높아서 누가 데려가나 했는데, 결국 결혼하다고 하더라. 그래도 한 미모 하니까.
"······그것 말고도, 많이."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귀를 닫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기약없는 잠을, 청해보기로 했다.
······우리 서아, 또 많이 울겠네.
미안해, 자식 울리는 못난 엄마라서.
더 못난 아빠 혼내주러 가는거니까, 용서해 줘.
만나러 갈게. 김독자.
이건 또 생각보다 짧게 나왔네.
마지막에 나오는 2세들 이름을 모르거나 헷갈린다면 밑 링크 참조.
https://arca.live/b/reader/27432884 (오피셜 아님, 전붕이 피셜임.)
'유서현'은 서아랑 성준이 딸이 필요해서 즉석에서 만든 이름임. 세부 설정도 없어서 나 말고 이런 미래 이야기를 쓸 사람이 있다면 갖다가 써도 됨.
다음은 길영유승? 김컴?
혹은 독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