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지났다. 나는 34살이 됐고, 유상아는 32살이 되었으며, 채아는 6살이 되었다.
"엄마 이거 풀기 싫어."
"아니야 6살인데 아직 더하기 빼기도 못하면 어떡해? 엄마 어릴때는 유치원때 곱하기 배웠어!"
"진짜?"
"아빠는 초등학교 2학년때 배웠어. 너희 엄마는 다른 나라에서 살았나보다."
그 말을 들은 유상아가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봤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을 짓자, 유상아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엄마랑 아빠 사겨?"
"우리는 사귄 적 없어."
"그럼 아빠는 엄마랑 어떻게 결혼했어?"
"응, 그게 너희 엄마가 나한테 고백하면서..."
"아 하지 말라고!"
유상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나도 말 할 생각은 없었는데. 6살 아이한테 할 말도 아니고. 근데 유상아는 고백이라는 말만 나오면 저렇게 흥분한다.
"에이... 말 안 할건데?"
"...능구렁이같아..."
유상아가 나를 노려봤다.
"근데 어떻게 결혼한거야? 사실 나는 속도 위반으로 태어난거야?"
"...너 그 말 누가 알려줬어?"
여기서 빠져야 한다. 여기서 유상아의 편을 든다면 채아가 삐질거고, 채아 편을 들면 유상아가 삐진다.
"전 그럼 아침 차릴.."
"앉아, 오빠."
"넵."
그리고 한동안 채아와 상아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나는 그걸 귀에 피나도록 듣고 있었다.
"너 그거 나쁜 말이야!"
"아니야! 아빠도 전에 차 운전하다가 속도 위반 구간이라고 브레이크 밟았잖아!"
"그거랑 그건 다르잖아!"
"같아! 뭐가 달라! 한자도 같아!"
...그러게 난 아침 차린다니까...
"오빠, 애한테 말 좀 해줘!"
"아빠! 아빠도 속도 위반이란 말 쓰잖아! 나랑 같은 편이지?"
...채아야, 너는 사탕 하나 물려주면 풀리지만 너희 엄마는 안 풀려... 미안하다.
"채아야, 그 말은 이제... 아빠처럼 쓰면 나쁜 말은 아닌데... 채아처럼 쓰면 나쁜 말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빠는 왜 맨날 엄마 편만 드는데!"
채아가 악을 쓰며 울자, 유상아가 채아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 속도 위반 맞지 않나?
"...난 아침이나 준비해야지."
.
.
.
"..."
"..."
"..."
식탁에는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를 제외하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은채로 나를 노려보던 채아가 이내 양 손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참 복스럽게도 먹는 모습에, 유상아가 웃음을 참으려고 나를 바라보고 더 웃긴지 폭소를 터트렸다.
"...왜 웃는데?"
"아하하! 오빠 볼 옆에 밥풀 묻었어!"
"그럼 떼주던가..."
내 말에 유상아가 눈으로 긴 호선을 그리더니, 내 볼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밥풀을 빨아먹었다.
"........!"
"진짜 보기싫어."
"....."
유상아는 쿡쿡대며 나를 바라봤고, 채아는 내게 눈을 부라렸다.
.
.
.
"...오빠, 가야된다고..."
"상아야.. 채아 유치원에서 맞고다니고 그러면..."
"...그러면 선생님이 전화해준다니까 얼른 회사 가자..."
"근데 막 선생님이 없을 때만 괴롭히면..."
"..."
앞에 있던 유치원 선생님이 곤란한지 계속 땀을 닦았고, 유상아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를 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 뭔 소리야! 얼른 와! 안 오면 놔두고 갈거야!"
"잠깐만! 채아..."
유상아가 나를 끌고 운전석에 앉힌 후,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지금 8시 40분인건 알아? 9시까지 출근인데...!"
"...그치만..."
"...얼른 출발부터 해... 또 깨지겠네."
.
.
.
"독자 씨, 오늘도 아슬아슬했네."
"...한성우 팀장님."
"얼른 앉아서 일 시작하게! 안 늦었으면 됐지, 뭐."
5년 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 책상은, 유상아와 채아의 사진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가만히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채아의 사진을 쓰다듬고 컴퓨터를 켰다.
*전지적 아이 시점
"채아야! 왔어?"
"그래, 준비 됐어?"
"...응! 진짜 이것만 있으면 유치원 밖에서 놀 수 있는거지?"
"그럼! 내가 거짓말 하는거 봤어?"
그 말을 들은 채아 앞의 남자아이가 망설이더니 말했다.
"응... 맨날 하잖아..."
어... 그건 그런데...
"...이번엔 아니야!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 저 밀가루에 맞을거고! 우리는 탈출 할 수 있다!"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채아와 같은 나이의 유치원생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
"탈출! 탈출!"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
퍽!
"성공이다! 모두 밖으로 나가!"
*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옆에서 유상아가 연신 고개를 숙였고, 나 역시 선생님께 사과를 드렸다.
"아, 아니에요.. 사과를 듣자고 그런건 아니고요.. 어린 애가 그럴 수도 있죠.."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유, 어머님! 고개 숙이지 마세요! 제가 부른건 채아가 이번에 만든 장치 때문이에요."
"네..?"
선생님이 잠깐 한숨을 쉬더니 이어 말했다.
"그게... 이번에 구슬 굴리기 장난감 몇개를 들여왔는데... 그걸 가지고 골드버그 장치를 만들어서 문을 여는 순간 밀가루가 문으로 날아가는 장치를 만들었더라고요..."
"예?"
"네?"
채아는 역시 내가 볼때는 제 정신이 아니다. 대체 밀가루를 어떻게 문 위로 올렸을지 생각중이었는데, 저런 미친 짓을 했을 줄이야.
"그...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리고 내 옆에 있던 두 여자가, 울적한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