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아, 혹시 여자친구 있어?"
"여자친구는 아닌데 좋아하는 썸녀는 있어."
이길영이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그럼 점심시간에 여기로 와줘!"
그러더니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인기 많다?"
"내가 좋아하는 썸녀씩이나 되면서 뭘 질투하고 그래."
"지, 질투 한적 없어!"
"그래! 그렇다고 하자!"
"...너 진짜 싫어."
"난 너 진짜 좋은데?"
일순 얼굴이 화끈해졌다. 설레지도 않는데... 그래, 그냥 잠깐 착각한거다. 웹소설 볼 때 저런 대사에 설레듯이, 그런 느낌인거다.
*
"저, 전했어! 미아야!"
"...잘 했음."
미아라고 불리는 아이 옆에 쓰러진 여자아이 4명이 보였다.
"...걔네들은?"
"갑자기 덤볐음. 내가 얘네 덤비는데 빡치잖음. 좆밥들이."
"이길영은 왜 부르는거야? 때리려고?"
"...넌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니?"
"아, 아니야!"
미아의 앞에 있던 여자아이가 손사래를 쳤다.
"그냥 고백하려는거야."
*
점심시간, 이길영은 기어코 종이에 적힌 급식실 뒤에 있는 마당으로 갔다.
"어.. 안녕?"
"...안녕하세요, 오빠?"
"고1이야?"
"네, 오빠!"
나는 이길영이 혹시라도 나쁜 여자한테 걸리거나 집착이 심한 여자의 오빠에게 맞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따라왔다.
"그래서, 왜 부른거야?"
"오빠! 저랑 사겨요!"
"응?"
"첫눈에 반했어요."
...하! 저런 예쁜 애가 왜 이길영에게 고백하는거지? 인기도 많을텐데. 혹시 일부러? 돈 같은걸 뜯으려고?
그리고 내가 좀 더 보려고 고개를 높이는 순간, 내 쪽을 보는듯한 이길영의 시선이 느껴졌다.
"흡... 들킬 뻔 했다.."
그리고 숨어서 벽 뒤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 좋아."
"...정말요?"
"그래. 그 정도야... 뭐."
뒷통수를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난 진짜 장난감이었구나. 너한테는."
서러움이 목 끝까지 복받쳐 올랐다. 나는 입을 막고, 끅끅대며 울음을 참았다.
그래,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걸 확실히.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널 좋아할 수 없게 됨 역시도 말이다.
.
.
.
"신유승!"
"..."
"왜 그래?"
"너 여친도 있잖아. 들이대지 말고 꺼져."
"어, 어? 뭔 소리야!"
"아 꺼져! 꺼지라고!"
이길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양다리라도 칠 생각이었나?
"아니, 유승아 뭔가 오해가.."
"오해는 뭔 오해야. 네 자리로 가."
"...야, 신유승!"
이길영이 살짝 화가 났는지, 내 책상을 쾅 하고 쳤다. 그리고 그에 놀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흠칫하며 우리를 바라봤다.
"...네 멋대로 생각하고 결론짓지 말고 나한테 뭘 물어보기라도 하라고! 왜 그 당연한걸 나한테 안 하는건데!"
왜 그 당연한걸 너한테는 못하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너야말로 내 마음을 한 번이라도...
"....가, 네 자리로."
"하... 학교 끝나고 얘기 좀 하자 우리."
"난 할 얘기 없어."
"신유승!"
이길영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상황이 격해지는걸 인지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길영한테 밀리지 않으려고 꾹 참던 눈물이, 이길영이 뒤돌아서자 흘러내렸다.
"야! 유승이 울잖아!"
"괜찮아?"
이길영이 살짝 움찔하더니, 이내 다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됐어. 어차피 나에 대한 네 마음은 이 정도였던거지 겨우.
*
"오빠! 저랑 사겨요!"
"응?"
"첫눈에 반했어요!"
당황스러웠다. 혹시라도 누가 들어 신유승에게 전달되면 오해라도 살까, 주변을 둘러봤다.
"미안,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냥 친하게 지내는건요?"
굳이 이거까지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그래, 좋아."
"...정말요?"
"그래. 그 정도야... 뭐."
신유승에게 대체 어떤 이야기가 전해진건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서러웠다. 나도 울고싶었다. 네가 나를 그렇게 믿지 못한다는게 서러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