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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김독자의 자살 기도는 실패했다.
원래 좀처럼 월세를 밀리지 않던 그가 방구석에 은둔하느라 월세를 내지 않자, 집주인이 무슨 일 있나 하고 찾아온 것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뭐, 그것이 김독자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왜 살렸어요."
깨어난 김독자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여기가 어디냐.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맞냐 하는 질문도 아니고, 왜 살렸냐는 그 원망 섞인 물음에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부터, 김독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때때로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릴 뿐, 그 외에는 단 한 가지의 행동도 하지 않았다.
"독자 씨. 일어나셔야죠. 수영 씨 보고 싶잖아요."
".."
어떠한 것도 원치 않았고, 그 어떠한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살아갈 뿐.
아니 어쩌면, 그가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착각할 지경이었다.
가끔 유상아나 한명오가 찾아오면, 몇 번 그 둘을 쳐다볼 뿐 어떠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간단한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해요. 살아갈 이유를 잃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든 아니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극도의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자아가 붕괴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야 할 수준입니다."
"그게.. 얼마나 심각한 거요?"
한명오의 물음에, 의사는 주저하며 답했다.
"저.. 그것이.. 그러니까.."
"어서 말해 주세요 선생님."
유상아의 재촉에 의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마.. 회복하더라도 일상 생활로 돌아가기는 힘들 겁니다. 또.. 실어증 증세도 간간히 보이고요. 이 정신 상태를 외상으로 표현하자면, 사지가 모두 잘린 사람의 몸에 대장암 말기와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정도라고 할까요.."
그 끔찍한 비유에 모두들 할 말을 잊었다.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을 정신으로 받고 있는 김독자의 상태는, 일반인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명오와 유상아는 김독자를 향한 손을 거두지 않았다.
"치료비가 얼마나 들든, 재활 기간이 얼마나 되든! 저 친구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최 선생님!"
무릎을 꿇으려는 한명오를 유상아가 말린 뒤, 폐 끼쳐 죄송하다고 말한 후 원장실에서 나갔다.
한명오는 머리가 아픈지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하고 자가용을 몰고 사라졌다.
그러나 유상아는 집으로 향하는 대신 김독자의 병실로 들어왔다.
"독자 씨."
".."
흘낏,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김독자.
그러나 이내 시선을 떨구고 하얀 병원 이불만을 응시하는 김독자의 앞에 유상아는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멸망한 세계에 대하여」 라는 이름의 그 책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무기질적인 손으로 그것을 낚아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다 읽으면 또 가져올게요."
짧은 한 마디를 남긴 후 유상아도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 때부터 김독자는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미친 듯이 책장을 넘겼다.
활자들의 집합체.
겨우 그런 것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자신의 행동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자를 탐닉하는 그의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
겨우, 5시간.
5시간만에 유상아가 가져다 준 책을 모두 읽은 김독자는 잠시 어둡고 푸른 새벽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자 달력을 보았더니, 우습게도 그것은 2월 15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독자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우연히 매겨진 날자.
*
같은 병원, VVIP 병실.
산소호흡기를 찬 한수영의 심박이 급격하게 상승하더니, 그녀의 얇고 긴 검지 손가락이 찔끔- 하고 움직였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당직 간호사가 허겁지겁 병원장을 호출했다.
"그게 사실이야?"
한수영의 병실에 도착한 병원장의 눈 앞에 보인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절대로 가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한수영이 의식을 차린 채로 병원 침대의 등받이에 기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오, 신이여 맙소사."
한숨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은 병원장이 한수영의 기본적인 신체 상태를 체크하고는 드디어 깨어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일어나자마자 한수영이 가장 먼저 말한 것은 바로 김독자의 이름이였다.
"김독자.."
*
그럼에도 만약, 어떤 기적이 일어나.
저 날짜에 무언가 의미가 생긴다면.
오늘은 김독자의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