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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용사는 눈을 끔뻑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삭막한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장식품 하나 없는 방.


방에는 필수적인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침대, 의자, 소파, 탁자, 옷장...그것들마저도 특별한 패턴이나 무늬가 하나도 없었다. 아, 탁자에는 관상용인지 붉은 꽃 한송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까 그 사람은......"


기억을 되짚어보니 자신은 한국어를 쓰는 마왕을 만났었다. 정황상 이곳은 그 사람의 집인 것 같은데...


[일어났어?]

"꺄악!"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목소리가 맞았나?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듯한...그런 느낌이었는데?


[여기야, 여기. 탁자 위에.]


상아는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넌 뭐야! 여긴 어디야!"

[응? 주인님이 데려온 거 아니야?]

"...주인님? 그...머리 검은 사람?"

[응, 맞아.]


상아는 방 한쪽 구석으로 도망쳐 꽃을 노려보았다. 꽃은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치 비웃고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난 널 해치지 않아.]

"그걸 어떻게 믿어!"

[니가 잘 동안에 그럴 기회는 충분히 많았어.]


상아는 숨이 턱 막혔다.

그래...저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물이 적대심을 품었다면 자신은 꼼짝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상아는 괜히 쭈굴해져서 계속 질문했다.


"그래서...여긴 어디야?"

[음, 일단 내 이름을 말해줄게. 내 이름은 꽃돌이야. 발음이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주인님이 지어주셨으니까. 아무튼 이곳은 주인님 집이야. 너희 인간들 말로는 마왕성이라던데...주인님은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하시지만.]

"마왕성......"


망했다. 그 사람...진짜 마왕이었나봐...

상아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일단 뭔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기절만 시킨 것이겠지....저 이상한 꽃이 자신을 감시하도록 시키기도 했고.


[이제 일어나. 주인님한테 데려다줄게. 너 일어나면 데려와달라더라.]

"......"

[빨리. 억지로 데려가기 전에.]

"아, 알았어."


상아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꽃돌이는 꽃을 흔들었다. 사람의 행동으로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였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았다.


상아가 꽃병을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그러고보니 맨발이었다. 이세계는 서양처럼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던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끝까지 간다음 나오는 길로 쭉 가면 끝이야.]

"응...알겠어."


방문을 나서려고 하다가 슬리퍼 비슷한 물건이 보였다. 이곳에서도 슬리퍼가 있는 걸까?


상아는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섰다.

저택은 꽤 넓었다. 정말로 마왕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아움직이는 스켈레톤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슬쩍 창문밖을 바라보니 핏빛 하늘 아래에서 머리가 없는 켄타우로스들이 뛰어다니며 순찰을 돌았다.


아마 저것들은 왕궁 서고에서 봤던 듀라한들이겠지.

지나가던 석상들이나 미술품들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걸 알았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쟤들은 너 못 건드리니까, 그냥 무시하고 걸어.]

"응..."


꽃돌이가 줄기를 뻗어 손을 토닥일 때 다시 소름이 돋았지만 상아는 묵묵히 저택을 걸었다.


걷다보니, 기다란 식탁이 보였다. 한쪽만해도 30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식탁.


남자는 식탁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돌이는 줄기를 뻗어 상아의 손에서 빠져나와 식탁위를 뱀처럼 기어갔다.


그리곤 마치 처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평범한 꽃의 모습으로 변했다.


"안녕하세요. 식사 하시겠습니까?"

"......어, 그, 네, 네!"


상아는 들려오는 한국어에 당황하다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가 가르키는 자리에 앉자 스켈레톤들이 척척 음식을 대령했다.


"이, 이건..."

"네, 한식이에요. 독은 안 넣었으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아, 아뇨...그런 생각 한번도 안했어요."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상아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은 매콤한 냄새를 풍기는 김치찌개와 쌀밥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고나선 생각하지도 못한 음식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그때 남자가 말했다.


"고향 생각이 나서요. 진짜 김치찌개는 아니지만...최대한 비슷하게 맛을 내봤습니다."

"아......"


상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눈앞에 이 남자에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같은 한국어를 쓰니 한국 사람이 분명하겠지...


"아, 소개가 늦었군요. 한국에 살던 김독자 라고 합니다."

"저, 저는 유상아라고 해요."

"다행이군요. 이곳에서 고향사람을 만나서."

"네, 헤헤..."


상아도 분위기가 풀려 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그가 밥을 가리키자 수저를 들고 밥을 먹었다. 찌개는 정말 김치찌개 맛이 났다.


공복감에 찌개를 맛있게 해치우자 독자가 물었다.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이곳에도...커피가 있나요?"

"커피랑 비슷한 맛이나던게 있더군요. 여기선 다른 이름이지만 저는 그냥 커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상아는 신기한 듯 허공에서 주전자가 따라주는 물을 바라봤다. 자신이 알고있는 커피의 향기가 났다.


생각보다 맑은 물을 보니, 찻잎을 우려낸 것의 일종 같았다. 상아가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 독자가 입을 열었다.


"상아씨, 궁금한게 몇가지 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상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가 한국사람인 것은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믿을 수 있다기엔 조금.....그러나 그녀는 이해했다.


"네,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당연히 대답해드려야죠."

"감사합니다. 먼저, 이곳에 오기 전, 지구의 날짜는 며칠이었습니까?"

"아, 2021년이었어요."


2021년이란 말에 독자가 눈을 크게 떴다. 독자는 커피를 홀짝이곤 말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전 이곳에 온지 10년이 넘어가는데...지구는 아직 1년밖에 안 지났다니."

"10...10년이요?"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창밖을 내다봤다. 그 아련한 눈빛에 깃든 그리움과 슬픔 때문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10년 동안 한국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썩 좋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게 낫잖아요?"

"그, 그쵸..."


상아는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10년 동안의 외로움은 굉장히 견디기 힘들 것이 분명했기에, 그 앞에서 웃거나 시시덕 거릴 수가 없었다.


독자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상아씨를 만나니...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런가요..."


독자는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상아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독자에게 질문했다.


"저도...궁금한게 있는데요..."

"얼마든지요."

"그...독자씨는...정말로 마왕이신건가요? 아니죠?"

"네, 아닙니다."


칼같이 날아온 대답에 상아는 몸을 조금 움찔했다. 곧바로 자신의 무례를 깨닫고 재빨리 사과했다.


"죄송해요! 절대...절대로...그......그러니까..."

"진정하세요. 오해하실 수도 있죠. 상아씨는 그때 제 날개와 뿔을 보시고 그런 질문을 하신거죠?"

"....네에."

"이건..."


독자는 커피잔을 매만졌다.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이젠 저도 제가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왕은 고개를 숙였다. 고해성사를 하듯 낮게 흘러나오는 잠긴 목소리. 그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용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왕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마왕은 무너져내렸다.


"......"

"괜찮아요. 독자씨가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겠어요. 만난지 하루도 안 지났지만, 저는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은 선한 사람이에요."

"......"


마왕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아마 울고 있을 것이라. 소리내어 우는 법마저 잊어버린 마왕의 어깨는 계속해서 들썩였다.


용사는 차마 그런 마왕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몇분 뒤, 마왕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구원에게 말했다.


"상아씨, 아니...용사님."

"..."

"저를 죽여주세요."


마왕의 얼굴에서 굵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머나먼 길을 따라나선 여행길의 끝에 목적지를 발견한 것처럼.


"제발..."


지옥과도 같은 더위의 사막을 횡단하던 나그네가 저멀리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같은, 그런 미소였다.


"아..."


마왕은, 아니 인간 김독자는, 너무나도 지쳤다.


"저는..."


아아, 인간은 어찌 이리도 나약한가.

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못하고.

용사는 차마 마왕을 죽이지 못한다.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죽이는 대신...


"이렇게...부탁드리겠습니다."


용사로서, 당신을 구하겠다.


.

.

.


상아는 독자의 부탁을 거절했다. 독자는 그저 조용히 상아를 바라보다가 추태를 보여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는 식당을 떠나갔다.


상아는 그가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불과 나흘전만 해도 현대 도시에 살고 있던 자신이 어째서 이런일을 겪어야 하는가, 아니. '그'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가.


그것은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상아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기력함에 가슴이 텅 빈것을 느꼈다.


[가자, 네 방으로 안내해줄게.]

"응..."


꽃돌이가 다가오자 상아는 꽃병을 들고 자신도 식당을 나섰다. 상아의 얼굴은 조금 흐리멍텅했다.


꽃돌이는 상아를 올려다보다가 잎사귀를 으쓱했다.

적어도 자신은 인간들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 여자의 보호만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온 무채색의 방.

상아는 꽃돌이를 탁자 위에 놓고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장가 불러줄까?]

"......괜찮아."

[그럼, 잠자기 좋은 향기라도 뿜어줄까?]

"그럼......그래줄래?"


꽃돌이는 긍정의 답을 듣고는 꽃잎을 들썩였다. 곧 수면향이 방 안에 그윽하게 퍼져나갔고, 상아는 곧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날밤, 용사는 꿈 속에서 마왕을 만났다.


정확히는 마왕이 되기전의 한 '사람'을.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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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폐한 독자 너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