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아아앗!"


작은 아이는 비형을 향해 달려갔다. 두 손을 깍지지어 꼬옥 안고 있는 것을 보니 영락없이 비형의 아이인 것 같았다. 비형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웃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아빠와 딸의 모습이었다.


장소가 이러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러지만 않았다면 퍽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이래서인지, 아니면 보는 사람이 이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감동적인 장면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짝. 짝.

비꼬는 듯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차피 아이는 이 박수의 의미가 뭔지 모를 테니 괜찮을 터였다. 혼나야 하는 것은 보호자만으로 족했다. 아무것도 모를 아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되게 감동적이야. 그래 감동적인 것도 좋지. 그런데 비형, 좀 설명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왜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왔지?"


바울은 박수를 치면서 비형을 쏘아보았다. 비형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 그래, 사정 좋지. 웬만한 변명의 90%를 넘게 차지하는 말이잖아?"


바울은 비형을 노려보았다. 비형은 당당하게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 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바아아아..."


작은 눈이 울먹이고 있었다. 아이는 자기 아빠가 혼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우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바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비형, 얘가 뭐라 하는 지 알려줄 수 있나?"

"자기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하는 데."

"그러면 애 이름은 뭐냐?"

"...비유야."


바울은 비유의 앞에서 쭈그리고 앉았다.

그래, 네가 뭔 잘못이 있겠냐. 잘못은 네 아빠한테 있겠지. 바울은 비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비유야."

"바앗?"

"네 잘못 아니니 울지마."

"바아아... 바아아앗."


바울은 비유를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섰다.


"독각, 영기. 여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지 그래?"


책상 아래쪽에 숨어있던 도깨비 둘이 책상 앞으로 나왔다. 둘 다 들킬 줄은 몰랐는 지 당황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소리 지를 필요는 없고."

"네, 알겠습니다."


바울은 영기와 독각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조금 모자라 보이는 데다가 선배 빠돌이고 다른 하나는 비형을 싫어하는 투덜이라. 솔직히 못 미덥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독각보다는 영기가 더 애를 잘 돌볼 것 같았다. 저래도 맡은 일은 충실히 하는 게 영기였다. 오히려 과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독각, 영기. 너희가 잠시 얘 좀 맡고 있어라. 애 우는 소리 나기만 해봐, 혼날 줄 알아. 영기는 독각이 먼저 들어왔다며 선배 소리 운운해도 무시해라. 그리고 비형은 나 따라와. 얘기 좀 하자."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회사인데...!"

"우리 회사 규정에는 애를 데리고 오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 꼬우면 너도 승진하던가. 나도 비형도 너보다는 직급이 더 높아. 그리고 일 시키면 항상 투덜거리던 게 누군데 회사 타령은 무슨,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다."


투덜거리던 독각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독각이 입을 다물다니, 꽤 잘 된일이군. 바울은 독각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고 비유의 앞에 멈춰섰다.


"비유야, 네 아빠 혼내는 거 아냐. 그냥 조금 잔소리 하는 거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바아아... 바아앗!"


비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울은 비유에게 웃어주었다.



달칵.


탕비실의 문이 경첩 소리를 내며 열렸다. 탕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속 걷던 바울은 탕비실의 중간 지점 부근에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 사정이 뭔지 좀 말해보지 그래?"


한숨을 내쉰 비형이 입을 열었다.



-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서 데리고 왔다고?"

"그래. 다른 데 맡길 만한 데가 없었어. 솔직히 말해서 우린 가족 같은 것도 없잖아."


도깨비들은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문을 닫으면 다른 맡길 만한 데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도깨비들이 가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게 이유였다. 가정을 이루는 도깨비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도깨비들이 볼 수 있던 가정의 모습은 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도시에서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가족들 중에는 도깨비가 하나도 없었다.


비형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꼬마 도깨비의 가족이 되어 주고 싶었다고 했었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깨비가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비형은 다른 도깨비들보다도 더 외로움을 느꼈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알일 때부터 보아왔고 부화할 때도 곁에 있어서 겹쳐 보았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형이 한동안 휴가를 냈던 것도, 요근래 더욱 열심히 일을 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더 잘해주고 싶어서, 단 한번도 도깨비들은 아니었던 다른 가족에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해주고 싶어서.


"어린이집은 몇일이 지나면 다시 문을 열지?"

"적어도 3일은 더 지나야 해."

"그러면 그동안은 회사에 데리고 다니던가."


바울은 비형을 바라보았다. 비형은 당황스럽다는 듯이 바울을 보고 있었다.


"아까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회사 규정에는 애를 데리고 오면 안된다는 규정이 없어."


그 규정은 도깨비들은 가족이 없기에 없는 규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회사가 개방적인 분위기의 회사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규정이 없다는 것은 꽤 잘된 일이었다. 괜히 트집 잡는 게 아니라면 딱히 혼날 일도 없었다.


"대신 다른 사원들한테 피해가 가는 일만 없게 해. 애가 다른 부서로 가는 일이 없게 네가 잘 관리하고."


바울은 탕비실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뒤쪽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고맙다."

"...별 말씀을."


바울은 뒤돌아 비형을 바라보았다.


"어서 밖으로 나오지 그래? 애는 아빠를 보고 싶어할텐데, 아냐?"

"...네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애 때문에 봐주는 줄 알아. 다른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어."


바울은 투덜거리며 비유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영기가 열심히 놀아주고 있었고, 독각은 입을 부루퉁 하게 내밀면서도 놀아주고 있었다. 비형이 가까이 다가가자 아빠를 발견한 비유가 작은 발로 달려가 안겼다.

세 어른 사이에서 비유는 웃고 있었다.


바울은 넷을 바라보았다. 딱히 나쁘지는 않은 장면이었다.


"비유는 앞으로 3일 동안 이 회사에 나올 예정이다. 늘 말하지만 불만 있으면 승진하면 되고."

"예."


이제는 일이나 해야겠지.

바울은 익숙하게 서류를 들어올렸다. 다행히 오늘은 많지 않았다.


툭. 툭.


앉은 의자가 작게 흔들렸다. 바울은 아래 쪽을 내려다 보았다.


"바아앗!"


비유가 아까전에 주었던 사탕 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아직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별 말씀을."



+스타스트림 고등학교랑 동일한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