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올해는 유독 재밌는 일이 없는 느낌이다.

한수영이 차기작에 집중한답시고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바람에 밖에 나가서 데이트를 많이 못 해서 그런가.




"야한수영."



"내가 띄어서 말하라고 그랬다."



소파에 누운 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자마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간 나는 그녀에게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흐읏?"



"바빠? 하나뿐인 남자친구도 못 봐줄 만큼?"



"아니...... 거의 다 하긴 했어. 근데 오늘은 좀 피곤한데......"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어가는 온기를 느꼈는지 그녀가 내 얼굴을 떼어냈다.

그러면서도 양팔로 내 뒤통수를 감아 내가 뒤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게 된 나는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엽다...'


귀여웠다.

아름다웠고,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해서 서있자니 서서히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도 나의 불편함을 눈치챘는지, 손을 떼고는 다시 누웠다.

약간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래서...... 왜 부른 건데?"


묘한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나를 바라보는 나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는 지금 그녀를 만족시킬만한 무언가를 준비해둔 참이었다.



"아니 요즘 너 너무 무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 그녀가 쓴 신작이 초반 회차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그녀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몇 번째 연참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작품이 잘 되는 건 독자로써는 좋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남자친구로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너 마감도 거의 다했겠다, 온천이나 가면 어떨까 싶어서."



"온천?"



"얼마 전에 형님들이 온천을 하나 개장했다는데 나보고 꼭 놀러 오라면서 무료 쿠폰을 엄청 주더라고. 우리 밖에 나가서 데이트 한지도 꽤 된 거 같은데, 어때?"



"좋아! 당장 가자!"





그렇게 나와 그녀는 오랜만의 힐링을 위해 온천으로 출발했다.












"으... 독자야 나 어지러워......"




온천은 생각보다도 더 산골에 있었다.

덕분에 고속도로가 아닌,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은 구불구불한 길을 몇 번이나 거쳐야 했고, 도착할 때쯤 우리 둘은 멀미와 울렁거림으로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어쨌든 도착했네... 내리자."


차에서 내려 들어오기 전 보았던 입구로 가보니,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바로 옆에 숙소까지 갖춰져 있는 걸 확인한 그녀는 내 팔을 붙잡고 물었다.


"야...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하루 자고 갈래?"


"어? 그러지 뭐."


체크인을 마치고 나갈 준비를 끝내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야,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뭘?"



"여기 실내 온천은 남탕 여탕 따로 있잖아... 아까 확인해 보니까 남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건 야외에 있는 거 밖엔 없다던데."




둘 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와서 머리를 찬바람에 내놓고 있자니 그것도 좀 그렇네......



왠지 온천을 이렇게 설계한 형님들이 조금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건 어때? 일단 너 실내 온천에 있으면서 피로 좀 풀다가 저녁 먹고 나서 야외로 가자. 여기 밤경치도 나쁘지 않다던데."


"그래? 그럼 그럴까?"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은 우리는 웃으며 숙소를 나왔다.



"이따가 저녁 먹을 때쯤 연락해~!"


"알았어~"












"으으......"


발만 담갔을 뿐인데도 벌써 온몸이 물에 담겼을 때에 느껴질 따가움이 절로 상상되었다.

그렇게 애꿎은 발만 계속해서 뜨거움을 느끼게 하며 걸터앉아 있을 때,


"으아악!"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확 밀었다.



"으앗! 뜨거!"



맨살을 찔러오는 듯한 따가움이 전신에 느껴졌다.

재빨리 물에서 뛰쳐나온 후 손길이 느껴졌던 곳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가장 오래된 해방자], 제천대성 형이 와있었다.


"형님?"


"뭐 하냐, 다시 들어가지 않고."


그 말과 함께, 나는 다시 한번 뜨거운 물이 내 몸을  괴롭히는 것을 느껴야 했다.


"으윽..."


그래도 아까전에 한번 들어가서인지, 전보다는 괴롭지 않았다.

서서히 온도에 적응하며 자리를 잡은 내 옆에, 형님이 다가와 앉았다.



"그래, 요즘 별일 없고?"


"저야 뭐, 별일 없죠. 형님이야말로 요즘 안 바쁘세요? 이만한 규모의 온천을 관리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렇긴 하다만야 뭐... 분신술 몇 번 쓰면 되는 일이지."



어쩐지 온천 곳곳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은 털들이 꽤나 많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분신술 쓸 때마다 저렇게 털을 뽑아대면...... 필두 씨는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형님한테 남아 있을 때 관리를 잘해두라는 당부를 해 둬야 할 것 같다.



"흐아아..."


그새 내 피로가 풀린 건지 이제는 하품이 나오고 있었다.

졸린 건 아니었지만, 따뜻한 물속에서 나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수영이는 지금쯤 잘 쉬고 있으려나.



- 뭐 하고 있어?



- 잘 쉬고 있어. 오랜만에 쉬니까 확실히 좋긴 하네.



오늘만큼은 그녀가 마감에서 벗어나 푹 쉬었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따스한 물에 몸을 맡긴 채 뒤로 기댄 후 고개를 젖혔다.

고개를 돌려 형님을 보니 형님은 물속에다 공 같은 것들을 굴리고 있었다.


"형님, 그건 뭡니까?"


잘못을 저지르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뻘쭘한 웃음을 짓던 형님은 그것들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하하... 하나 먹어볼래?"


그가 내민 것을 받아보니 약간은 주황빛이 돌고 딱딱한 것이...... 달걀이었다.

껍질을 까 한입 베어 물어보니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노른자의 비릿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온천에서 맛보니 또 특별한 이 맛을 되새기고 있을 때

달걀을 네 개째 까먹으며 껍질을 몰래 하수구에 쑤셔 넣고 있는 형님을 볼 수 있었다.


"형님, 근데 우리 여기서 이렇게 달걀 삶아먹고 껍질을 막 버려도 되는 겁니까?"


본인이 운영하는 온천이라면 왠지 깔끔하게 관리하고 싶을 것 같은데......


"원래는 안되지만...... 내가 관리하는 곳인데 뭐 어떠냐."


역시 털들이 흩날릴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아닌가 보다. 


나도 형님을 따라 은근슬쩍 껍질을 밑으로 버렸다.

형님은 이미 완전히 휴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놀고 있으면 다른 형님들이 뭐라고 안 그러려나? 



"그나저나 다른 형님들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이렇게 왔으면 한 번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음... 그게 말이지, 다들 워낙 바빠서 내가 대표로 왔어."


역시...... 다들 바쁘신 거였나.


"다른 형들이 형님한테 양보한 겁니까?"


"아니? 당연히 내가 첫째니까 대표로 온 거지. 다른 애들이 나한테 뭐라 할 수 있겠니?"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아마 분명히 각자 서로가 가겠다고 치고받고 싸웠을 게 눈에 훤하다.

아무튼 날 만나러 오기 위해 고생하셨는데, 이것저것  못다 한 얘기나 많이 해드려야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태양이 붉게 물든 하늘 사이로 가라앉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나는 슬슬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슬슬 수영이 데리고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가라. 다음에 또 오고."


"물론이죠. 아, 그리고 수영이랑 밖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괜찮은데 한 군데만 추천해 주실 수 있겠죠?"


"......"


왠지 나와 수영이 둘이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걸 묘하게 질투하는 것 같은 건 아마도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형님이 추천해 준 식당에서 수영이와 저녁을 먹고 오니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야야... 저기 봐봐."


그녀의 손끝을 쫓은 내 눈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불빛들이 담겼다.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지 반딧불이도 있고 진짜 좋다......"


"그러네, 빨리 들어가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을 먹으러 갔기에, 우리는 단둘이서 한 스파를 차지할 수 있었다.


풀숲을 맴돌며 빛을 내는 반딧불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게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밤에도 여전히 따뜻한 이 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좋았다.

반딧불이도 좋았지만, 그런 불빛을 바라보는 네가 있고, 이렇게 또 우리 둘만의 추억이 생겨간다는 게 기뻤다. 


구름이 끼지 않은 하늘에는 이미 많은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별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내 품에 안긴 그녀는 그동안 할 말이 많았는지 쉴 새 없이 얘깃거리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이 별들을 찾아보고 있다.


"저게 네 별이려나?"


그녀가 가리킨 별은 주위의 다른 별들보다도 훨씬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에이 설마. 그렇다기에는 너무 밝잖아."


"왜? 김독자 네 별도 충분히 저만큼 빛날만 한데."


지금도 별자리의 맥락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별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찾아보고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한수영이 가리킨 저 별은 아닐 것 같고.

내 것이라기에는 너무 밝았다.


잠깐만...... 내가 지금은 이 세계선에서 [가장 오래된 꿈]이니까 저게 내 별이 맞는 건가?

그 별 주변에 흑염처럼 빛나는 별이 붙어있는 걸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저 옆에 저 별은 수영이 별 인가?"


"오... 그런가 봐. 우리처럼 되게 잘 어울린다, 그렇지 않냐?"


"그러네."



그러나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나의 시선은 하늘이 아닌 그녀에게 있었다.



"야 나 말고 저 위에 좀만 더 보라니까!"



내 시선을 이제야 의식했는지 그녀가 내 가슴팍을 살짝 두드리며 가벼운 짜증을 냈다.

그런 모습마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에, 나는 더욱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왜 계속 쳐다봐...... 내가 그렇게 좋아?"


"응, 그리고 별 보다 예쁜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는데 굳이 별을 볼 필요가 있을까?" 


물은 따뜻했지만 날씨는 겨울이었기에 머리만 내놓은 우리의 얼굴은 굉장히 차가워야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은 물속에 한번 들어갔던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이씨......"


자신이 듣기에는 나름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할말을 찾지 못한 채 한참 동안이나 입을 열지 못했다.



"야."


"어?"


침묵은 길지 않았다.


"나 할 말 있어."


"뭔데?"


혹시나 진지한 일일까 싶어 들어보니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그냥... 오늘 고마웠다고. 이런데 데려와준 것도 고맙고, 쉬게 해준 것도 고맙고, 말 이쁘게 해준 것도 고맙고, 그냥 전부 다 고마워."


평소와 달리 장난기라고는 사라진 그녀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리고...... ㅅ..사 사...ㄹ"


"뭐라고? 잘 안들려."


뒤에 들려올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지만 끝까지 듣고 싶어 짐짓 모르는 척해보았다.


"사랑... 한다고"


짜증을 내며 소리칠 줄 알았는데 끝까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약간은 낯설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아직은 한수영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가 보다.


뭐 어때.


앞으로 너와 내가 함께할 시간은 이렇게도 많이 남았는데.

그리고 서로를 더 알아갈 시간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짧은 시선의 교환만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췄고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주위에는 우리가 만드는 소리만이 퍼져나갔다.


"여기서... 할 거야?"


"그럴까?"


어차피 사람들도 없는 시간인데,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내 몸을 두르고 있던 가운을 풀어헤쳤다.


그녀를 껴안은 채 그녀의 옷까지 벗겨내려 하던 그때,



"이제 영업 종료할 시간입니다."



화려한 손전등이 우리를 비췄다.

눈을 뜨고 바라보자 섬광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막내야?"



아무래도 우리 둘의 시간은 여기까지인듯하다.









일상물은 처음이라 어렵네

이렇게 쓰는거 맞음?

잘봤다면 개추랑 댓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