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야기의 지평선 그 너머,

도깨비 왕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쓰여지는

단 하나의 작가와, 단 하나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



타닥타닥


일정한 규칙음과 함께 1863 한수영의 손끝에서 검은 활자들이 피어올랐다.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한 그것들은, 정처없이 한수영의 주위를 부유했다.


바닥으로 옅은 물결과 하늘로 구름 낀 파랑이 일렁이는 곳.


막을 내린 무대 속 등장인물처럼, tls123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끝마친 그녀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한수영은 피로에 찌든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타자를 계속했다.


비록 자신이 소멸하고 난 그 다음 이야기를 본 적은 없지만, <스타스트림>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자신이 살았던 1863회차의 삶, 그리고 자신을 바쳐 써낸 '멸살법'의 이야기가 그것의 방증이었다.



김독자를 살리기 위해, '멸살법' 집필에 한 목숨을 다한 것에 후회는 없다.


병약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김독자의 모습을 보노라면,

꼭 한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으니까.


만약 그가 정말 내 이야기로 지독한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면

그것이 수천 개의 비극일지라도, 나는 그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 속에 답답하고도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이상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너희들의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돼요?"


마치 한수영의 내면을 꿰뚫는 듯, 허공의 문장들을 읽던 한 소년이 그녀에게 물었다.


한수영은 타자를 이어가며 대답했다.



"모르지."


 "자신이 쓴 이야기면서 그것도 몰라요?"


타닥타닥


한수영은 이따금씩 백스페이스를 눌러 활자를 지우고, 다시 타자를 이어가기도 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이야기는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야."


탁!


그녀가 강하게 엔터키를 누르자, 제멋대로 허공을 부유하던 활자들이 일정한 배열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단어로, 문장으로, 문단으로, 글로.


순식간에 활자들이 정렬되면서 곧 시스템 알림창과 비슷한 것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업로드 완료!]

['552화. 남이 만든 만두'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그래도 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돼."


한수영은 크게 기지개를 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진짜로 그거면 돼요?"


"그래. 독자를 떠나지 않는 이야기는 계속되기 마련이니까."



소년은 한수영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알림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뭐에요? 552화?"


한수영은 나른한 햇빛 아래, 눈을 감고 있었다.


"이야기를 떠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한 선물."



소년은 한수영의 말에 호응하며 천천히 그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여태껏 읽었던 이야기에 비하면 정말 짧은 글이었다.


이야기의 중요한 큰 부분도 아닌, 쓰여지지 않았어도 지장이 없었을 사소하고 간편한 이야기.


그럼에도 그 이야기는 소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꿈꾸게 했다.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시나리오를.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구름도 흐르고 물결도 흘렀다.


어느새 '설화'가 되어버린 여럿 이야기들도 하늘 아래로 천천히 흘렀다.



그리고 소년이 글 하나를 모두 읽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한수영이 곡소리를 내며 옅은 낮잠에서 몸을 일으켰다.



"재밌냐?"


한수영의 기척을 알아채지도 못 할 정도로 소년은 글읽기에 몰입해 있었다.


소년은 반짝이는 눈으로 한수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아니 것보다, 글 잘 쓰네요?"


"그래 새꺄. 내가 누군데."



피식 웃는 한수영에, 소녀도 피식 웃음지었다.



"이제 뭐하실거에요?"


"작가가 뭐해. 글 써야지."


"또?"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쓸거야."



한수영은 다시 화면을 키고 빈 파일을 열었다.


아직 텅 빈 이야기를, 한수영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쓸 거는 뭐에요?"


그녀의 고민에 호응하듯, 소년이 물었다.



"그러게... 저번에 쓴 게 시커먼 놈이랑 그 스승 이야기였으니까. 이번에는 군바리 이야기 좀 써볼까?"





언제 1000명 넘었냐.



소년은 전대 가오꿈이고,


대충 1863 한수영 소멸 / 전대 가오꿈 지하철 역에 갇히기 전

그 어느 사이의 시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