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이 청첩장을 보냈다. 이설화는 청첩장을 쥐었다. 그녀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싱숭 생숭 하다던가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애인이 되어본 기억이 없으므로 당연했다. 그가 그녀의 애인이 된 기억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전생에 연인이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또한 그것이 설득력을 가질 때가 있었는가. 그녀는 둘 모두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두 명의 증인이 이를 교차로 확언한다. 그녀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전생, 혹은 이전 회차 라고 불리는 시간대에서 그녀는 유중혁의 연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닮은 아이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이다. 멸망한 세상, 언제 죽을 지도 모를 곳에서 그들은 사랑을 했다고 한다. 스물이 될 때까지 첫사랑도 겪어보지 못한 그녀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대학생 때의 이설화는 그녀가 평생 연애를 하지 못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중얼거렸던 적이 있었다. 유중혁이 기억하는 그녀도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그 말을 다시 떠올려 봤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그의 동료였을 것이다. 이번 회차와 마찬가지로. 그가 기억하는 회차에서의 그녀가 독희가 아니었던 몇 안되는 회차 였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를 알지 못할 때,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마땅했다. 그것은 연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며, 헤어졌다 보다는 잃어 버렸다가 옳았다. 지금의 그녀는 연인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으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깊은 관계까지 나아갔을 것은 짧은 잡담 같은 생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멸망 이래로 세상이 동료도 쉽게 믿지 못할 곳으로 변하고 변했고 변할 것을 모를 리는 없으니 당연하다. 멸망은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고  빼앗긴 것에는 신뢰와 사랑 등이 있었다. 사랑과 우정은 대체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니 신뢰가 빼앗기면 그것들이 세워지지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연애를 했고, 사랑을 했다. 더 나아가서 결혼까지 갔다고.

 그들은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더라도 아니면 보통 생각하는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더라도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몇 안되는 하객만이 있었더라도 그들은 웃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축하를 받았든 받지 못했든 불안을 감추고 웃었을 것이다. 그의 웃음은 보기 힘들지만 그것은 그 이전에 웃음을 주고 받을 사이가 되지 못한 것이 그 이유를 차지한다. 유상아는 그의 웃음을 자주 보았다. 그것은 이번 회차에서의 이야기다. 2000쪽에 가까운 일대기의 1864 회차와 1865 회차라는 마지막 두 장에는 그것이 적혀있다.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문장이 어째서 떠올 랐는 지 알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의학 서적들만 뽑아 읽다가 우연히 손에 걸린 책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대학생 때의 이설화가 그 문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그들은 아마도 그 문장을 닮은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고, 그녀는 그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 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설화는 당사자 본인이 아니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사자들 밖에 없다. 그러나 기억은 완벽하지 않고, 그것은 타인에게 전할 때 일말의 정확성 조차 잃게 된다. 어떠한 이야기가 입으로 화자 될 때, 그 이야기는 변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가장 왜곡이 적은 것은 당사자가 기억하는 기억이고, 두번째로는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며, 왜곡 없이 확실한 것은 유중혁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았다. 물론 그녀에게까지도. 그녀는 단지 궁금해 할 뿐이므로 진정 알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요컨대 농담처럼 말해보자면 미적분을 처음 들어봤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울 때 고등학교에는 왜 왔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이설화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져야 할 기억이 아니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시간대를 현재로 끌고 올 필요는 없었다. 과거는 과거였고, 현재는 현재였다. 그들을 분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현재는 과거가 될 수 없고,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없다. 닮아질 수는 있더라도, 그것에서 멈춘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매초, 매순간 같은 때는 없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예상만을 한다. 알아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해 당연한 행동이란 예상을 하고 그것에서 멈추는 것이므로. 이설화는 예상했다. 그녀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비단 그들의 과거 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것들을.


 처음의 시작은 간단하다. 그들은 어떻게 사귀게 되었을까. 이 또한 답을 모르는 질문이다. 그녀는 연애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모두의 추측과는 달리, 어쩌면 유중혁 보다도. 거듭 말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평생 모솔로 남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대학생 때의 그녀로 유중혁이 아는 모든 그녀의 공통점이었다. 분기점은 그 이후이므로.


 평범한 연애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을 지도 모른다. 멸망한 세상에서도 어떤 이들은 사랑을 했다. 몇 자 되지 않는 문장은 생각보다 쉽게 실현 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이가 안 좋지 않았을까. 가장 반목하던 두 사람이 결국은 사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못 죽여서 안달까지는 아니어도 시시각각 충돌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반목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설화와 유중혁이 사귄 것은 초반 회차라고 한다. 3회차의 그가 알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는 그 전에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조금의 꺼리낌이 남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녀는 의사의 직업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그때는 싸우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예상은 제외하고, 딱히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을 것으로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특별한 계기가 있었지는 않았을까. 그런 예상이 뒤따라 왔다. 둘이 있을 때 목숨을 걸어야 했던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시나리오였을까, 재앙 시나리오였을 확률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는 독희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공격은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외했다.

 심하게 다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해줬을까. 때때로 환자와 의사가 커플이 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었다. 정신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에서는 커플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동료들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때로는 이유 없이 사귀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때는 이 생각이 든 시점에서 죄다 멈춰야 하지는 않을까. 이건 잠시 멈추자.


 이 추측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모든 게 예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녀와 그녀가 겪은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라 할지라도 그녀를 알 수는 없었다.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면,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없다. 매 회차의 그가 달랐던 것처럼, 그녀도 회차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 멸망한 세상에서 사귀고, 죽음을 봤던 연인을 다시 본다면 반응은 어떨 것인가. 그녀는 닮은 사람을 본다 해도 넋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그런 적이 있었다. 김독자가 없었을 때, 그녀는 그와 닮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멈칫했던 적이 많았다.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해도 혹시나 하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그를 만나기 이전의 그녀를 다시 봤다면, 그때는. 그때 든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인 것을 안다 해도 그랬을까. 혹은 일정한 부분 까지는 같다고 생각했을 까. 그녀도 그가 아는 그녀도 이설화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멸망 이전에는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후에는 다르다는 것 까지도.

 그녀가 그의 상황에 처했다면 멍청하게도 달려가 안았을 것 같았다. 지나간 시간과 그 이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머리로만 알면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녀는 의학 지식 외에는 박식하지 못하므로 그렇게 행동한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던 시선이 다시 한 번 떠올랐고, 그녀는 잠시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설화는 상념들을 날려 보냈다. 그녀가 가질만한 고민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이전 회차와 현재의 사람은 다르다. 그녀도, 그도 달랐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도 그녀도 연애를 하고 있었다. 과거의 시간대와는 다른 사람과. 그는 유상아와 사귀고 있었다. 이설화가 들고 있는 것은 유중혁과 유상아의 청첩장이다.

 그들은 행복해 하고 있었다. 이전의 이설화와 유중혁과는 다르게 유상아와 유중혁은 해피 엔딩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했고, 이설화는 그것을 바랐다.

 전 남편이니 뭐니 하면서 유중혁을 칭해 봤지만, 간단한 농담 따먹기일 뿐이다. 그녀는 그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유중혁도 그러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만 했다. 과거는 과거였고, 현재는 현재였으며 지금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전에는 넷이서 더블 데이트를 해 본 적도 있다. 그때의 이설화와 유중혁의 관계는 전 연인관계가 아니라 동료였다. 동시에 동료의 연인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설화씨, 오늘은 공원으로 산책 갈래요?"


 가을날, 유중혁과 유상아의 결혼식까지는 일주일이 남았을 때. 축하를 해줘야 할 날이 곧 다가올 때. 동시에, 연인과 함께 하고 있을 때.


"좋아요. 그리고 독자씨는 옷 좀 여러 개 입어요. 그러다 가을 감기 걸리지 말고요."


 그녀의 연인은 김독자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였다. 지금, 현재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 그녀의 연인. 이설화는 청첩장을 책상에 내려놓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의 방은 2층 창가에 있어서 바람이 자주 불었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이설화는 계단을 밟았다.

 2층 창가의 방에서 또다시 바람이 불었고, 창으로 들어온 낙엽이 액자의 앞에 떨어졌다.

이설화는 계단을 밟다가 발을 잘못 딛었다.

 이설화와 김독자의 결혼식장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김독자가 넘어지던 이설화를 안았다.

 액자가 있는 방의 아래, 1층에서는 단풍 든 나뭇잎처럼 두 명의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