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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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신의 결말을 부정하니,


그는 결국 시작을 파괴하기에 이르렸다.


시작이 없자 그 미래또한 사라졌으니,


무한한 굴레는 끊겼고 살육이 사라졌다.


그 끝에는 평화로운 공허만이 자리잡았으니,


이는 신이 자신의 창조의 과정을 없애버린 탓이다.


그렇게 꿈은 포기했다.


그는 영원한 잠에 빠져 배회하리라.


그는 우리 곁에 있지만 없으며,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니.


이윽고 다시 시작되니라. 세상은 다시 창조되리라.


..이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굴러가지 못하는 잔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기록자, '하나를 보는 하나', 최초의 희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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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구하기 위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시작께서는 멸망을 불려왔습니다. 멸망이라는 개연성을 신을 보존하는데 사용했죠. 그마저도 부족해 무수한 세계선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도깨비 왕과 주인공이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서. 신을 살릴 이야기를 적어내리며 신의 시선을 지불해나갔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의 종속을 이어갔습니다."


도깨비왕은 측은한 듯 말했다.


"신에게 닿으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그 놈이 희생하는 건 한시적이여도 되는거 아니야?"

"우리의 신은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새상에 반항할 수는 있어도, 감정이 있는 분입니다. 신을 살리기 위해 거대한 시간선을 바탕으로 꼬아버렸죠?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이야기. 그 이야기로 신은 살았고 이 세상에 시선을 줄 수 있을 만큼 막강하나,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신도 그 시작을 부수기는 버겨울 겁니다."


순간 한수영은 그 무수한 세계선에 질렸다.


"이 흐름을 없애려면, 이 흐름을 만든 원인인 신을 스스로 죽여야 겠지요. 열차의 무수한 시간을 그리 살며 잊혀지고 시선과 무의식이 되는 것으로 값을 치룰 수 있었지만, 이 세계선의 독자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저 시선을 주는 대신, 자기를 고통받게 둘 겁니다."


-헤어지기 하루 전. 창조주와 관리자가 나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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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니가 갑자기 사라졌잖아. 수소문해서 왔지."


츌판사 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죄하려는 모양새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근데, 넌 왜 시스템을 가지고 뭐하냐?"

"..."

"시나리오 발생 안 시키고 왜 이러고 있어?"


출판사 직원은 손을 들었다.


멸망 시기의 도깨비들이 하던 짓이다. 시나리오를 발생시킬 때 하는 특유의 손짓.


약간이지만 한수영은 흠칫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에 말을 잃었다.


[모든 시나리오가 정지된 상태입니다.]


순간 멍해진 한수영에게 또다른 창들이 띄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길 소망합니다.]


[거부합니다. 승인시킬 최종 관리자가 배회 중 입니다.]


"보셨죠? 못합니다."

"에?"

"그럴 시간선은 이미 넘어갔습니다. 오지도 않을 거고요."

"뭔 개소리야, 넌 왕이고 시스템 소유자잖아."

"신이 그 가능성을 스스로 막았습니다. 굴레가 끊겨진 지금, 사나라오를 작동할 수 없습니다."


한수영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앞의 존재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건 뭔데?"

"..시작이여, 그만하소서."

"야, 다시 시작해야지. 시나리오 안 열거야? 세상의 왕이라는 새끼가 왜 그러는 거야?"

"..이건 신이 버리신 걸 제가 맡고있을 뿐입니다. 신께서 원하니 않으면 이것들은 허상일 뿐이고요."

"야. 니가 왜 왕인데? 무수한 설화를 쌓아서잖아. 유중혁보다 대단한 놈이야. 1863회차를 굴려다닌 놈과 달리 한 세계선에서 달성했고 다른 너도 모든 세계선에선 그정도지. 1863명의 네가 모이면 유중혁도 힘들걸? 그리고 세계선의 모든 너는 성격도 다를 정도로 전능함을 가진 위치에 서있잖아."


말이 없다.


이렇게까지 띄어줘도 못 알아쳐먹다니.


어 잠만.


어 시발.


한수영은 바로 알아챘다. 동시에 걷어찼다.


"악!"


몸이 너무 약해서 그런가. 성인 남자도 간신히 쓰려트린다. 넘어진 것에 위안을 가지기로 하며 한수영이 다가섰다.


"억!"


방금 자기 심장이 있던 곳에 발이 찍힌 걸 보고 출판사 직원은 심장을 벌렁였다. 물론 빠르게 뒤로 물려나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한수영은 찍힌 발을 그대로 더 파고들게 하고는, 굽힌 무릎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입에 담배 하나를 태우고 볼바람 한 번 불며 말했다.


"너 미쳤냐? 독자를 냅두라고?"

"..시작이여, 돌아가주심을-"

"지랄마라. 돌아가?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지, 지금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창조주의 살의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처럼, 새빨간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나 출판사 직원은 그녀를 이해한다.


찢어지고 비통하며 눈 앞의 시체를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녀에게 애절함 만을 보여줄 뿐이다.


"신이여, 보소서. 제 말을 보소서."


"우리의 첫번째 시나리오가 무엇인지를 잊으셨습니까?"


"지구로 비유하면 곤충을 죽이든 동물을 죽일 수 있습니다. 허나 많은 이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시간과 장소의 희박함? 그것이 아닌, 앞에 답이 있으니까. 그것을 쫒는 것 뿐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사람이 벌레의 목숨과 값어치가 있다는 겁니다."


"신께서는 그들이 질 죄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시작께서 아시는 세상은 어떻게 보였습니까."


"이 세상이야 말로, 신께서 보고싶어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이 없는 인물이 출몰한 이유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신은 모두를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불행할 겁니다."


"그러나 그 불행의 원인을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을 모를 것입니다. 그저 그런대로 살 겁니다. 그로인해 살아남을 겁니다."


"그것이 신이 바라는 마지막 구원입니다."


한수영은 어느새 다 태운 담배를 그대로 뱉어내며 말했다.


"닥쳐"


"세상 모든 건 다 쓸모없어. 죽음? 야, 내가 그 새끼를 위해 이 모든 세상이 불타는 걸 감수했어. 내 친구와 동료가 될 놈들이 손이 피를 묻이게 하는 이유도, 모든 살아있는 놈들이 살인마가 되어도, 성좌라는 가장 씹새끼들을 굳이 출현시킨 것도!"


"..내가 아스카 렌처럼 욕을 쳐 먹을 수 있어도 그렇게 한거라고."


그 무엇보다 아스카 렌을 증오하고 멸살법과 그 작가를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그 이해할 수 없는 배역을 맡게 되었다.


"..모두 독자를 위해 만든 거야. 한 사람을 위해, 죽지 못하도록 막고 싶어서. 근데 넌 뭐야? 안나 그 시발년처럼 행동하겠다는 거냐? 모두를 위한 소수의 죽음을 재현하겠다고!!"


출판사 직원은 고개를 돌렸다.


"신이 거부하십니다. 시나리오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그 잔혹한 이야기의 구성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작께서 꿈을 사랑하는 만큼, 꿈도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는 자신이 희생하면 모든 것이 될 거라 믿으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의 무의식이 이 세상에 활기를 줄 겁니다."


"그 분은 아무 생각없이 이 재미없는 세상을 보시기로 한 겁니다. 자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여러분들을 위한 세상을 보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굳이 시나리오를 일으켜 모두가 상처를 얻는 결말대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싶은 겁니다. 그게 더 싸게 먹히니까. 그리고 그게 더 나으니까."


"이걸 알았기에 전 신을 가두는 것을 보증했습니다. 신은 이제 저 벽 너머에 갇혀있습니다."


"시작이시여, 더 나아가셔야 겠습니까?"


한수영의 표정은 이상했다. 광인처럼 낄낄 웃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진지한 분위기를 예상하던 출판사 직원에겐 괴아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한수영은 다른 담배를 꺼내는 대신 출판사 직원을 매섭게 바라봤다.


"도깨비 왕, 내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그놈이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출판사 직원은 모욕을 느끼는 둣이 반응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하긴, 앞에서 신도 못 알아보는 놈이 뭘 알겠냐."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작가인 것을 잊어 스스로를 욕하던 사람이 뭔 말을 하는 거냐는 시선을 보내지만, 한수영은 무시했다.


"유중혁 새끼도 그래서 근처에 있던 거고.. 대충 짐작가네. 됐어. 난 구할거야."


그렇게 시작은 결계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물론 출판사 직원이 조용히 막아섰다. 자기 앞에 선 그 놈을 밀치고 싶지만 힘이 없었기에 한수영은 비아냥댔다.


"이딴 일 해봤자 누가 알아줘?"

"그분 스스로가 아십니다."


한수영은 크게 비웃고 말했다.


"걔는 자기도 참여치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자신 덕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끼십니다. 그래서, 놓지 못하는 것이죠."


드디어 출판사 직원이 원하던 표정이 나온다. 진지함. 출판사 직원은 그 표정이 계속 되길 바라며 말했다.


"그분께 죄를 짓게 만드시는 겁니까. 끝과 마지막 시나리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 세상에서는요. 지평선은 넘을 수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벽도 넘을 수 없는 겁니다."

"뭐래. 난 가 닿을건데?"

"그런 의지는 소설로 표현해주십시오."

"멸살법 말이지? 말 잘했다, 이게 소설 조회수가 0이 됐어. 계속. 그리고 갑자기 삭제됐어. 검색기록도 없고, 내 저장본도 다 날라갔어. 그리고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됐어. 내 소설을 읽었던 놈들? 몰라. 다 몰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건 SSSSS급 무한 희귀자밖에 없지."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난 사라진 게 좆같다는 거야. 모든 흔적이 사라졌으니. 내 존재의미를 부정당하니 기분 좋겠냐고."


출판사 직원은 불쾌하기만 한 추측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서, 입니까.?"

"뭔 개소리야."

"당신이 겪은 무수한 일이, 그저 소설로만 남아서 그런 겁니까?"

"닥쳐."

"시작의 일이, 고작 그런 것으로 퉁쳐진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십니까?"


한수영은 말없이 있다, 출판사 직원의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얼얼한 손을 조심히 감싸쥐는 출판사 직원이지만 시선은 한수영을 놓치지 않는다. 한수영은 다시 분노를 끓어내는 눈을 치켜들고 말했다.


"벽이 있어. 시발 존나게 거대해서 넘어가지 못하는 그런 벽."


"크기가 크기인지라 두께도 어마무시하지."


"독자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야해. 연인이 되기도, 팬이 되기도, 우상이든 후원자든. 조언자나 전우라던가 하여튼 그래야 돼."


"그 놈은 소통하는 법을 몰라. 벽을 넘어도, 그 놈은 도망칠거야. 겁먹어서, 혹은 이 속에서 자신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렇게는 못해. 그 놈은 자기가 어떤 새끼인지 알아야 돼.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의 평가를 받아야 돼. 그리고 그 평가를 수용할 줄 알아야해. 누군가에게 그 놈이 살아있는 게 더 도움되는 것이라는 걸 알려줘야해. 스스로 희생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친구들로 부터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도록."


"벽을 넘어서도 그런다면. 그건 그놈이 문제인 거야. 그렇다해도 그 사실또한 누군가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세상이 멸망하는 그 시대에서도 옆에 있어줄 놈이 필요하지, 평화롭지만 옆에 병신이 있는 건 사절이거든."


"그래서이다. 그 뿐이야."


한수영은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중지대신 엄지를 치켜들고 뒤로 넘겼다.


"알아들었으면 꺼져. 난 들어가야 겠어."


그러나 출판사 직원은 계속 가만히 있었고, 한수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될 지 고민하는데, 출판사 직원이 움직였다.


그 놈은 결계를 통과하는 건물의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결계막이 없었다.


한수영은 놀랬다. 다른 의미로.


"안 막아?"

"해보십시오."


거부됐다는 걸 무시하고 있다. 아니, 탓할 수 없다. 저놈이야 말로 김독자의 영원한 신도였으니.


"가장 오래된 꿈이라, 알 바냐."


다시 들어가려 할 때, 도깨비왕이 노래하듯 말했다.


"신은 자비로우시다. 바라는 건 우리의 자유의지. 성좌들처럼 잔혹하지 않으며 평가하지 않으신다. 바라보며 생명을 주시니.."


"신은 우리를 살리려고 하시는 것이니라.."


"이 세상은 잔혹하기에 그런 것이다. 인간밖에 없는 세상에서. 성좌도, 이계의 존재도 없이 인간만 번성하는 곳. 선악도, 고통도, 희열과 이야기. 그 무엇도,어떤 개념도 인간에게서 탄생했으니, 그들 스스로 만든 벽은 넘을 수 없느니라."


한수영은 말했다.


"아니. 그딴 것보다 독자가 더 중요해. 세상 사람 다 뒤져도 돼. 사람 목숨이 문화예산 보다 가치있는 것처럼. 나는 현재를 살아."


"대화도 없다. 뭐냐고 이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해."


"그리고 우리도 그가 필요하다. 장단점이 있는 거지."


"우리 다 뒤져도 그놈만 있으면 행복하니까.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멋대로 살았으면 멋대로 끌어오개 할 권리가 내게 있어. 그놈이 신이라고? 그럼 난 그놈의 구원자다."


"내게 먼저 경배해라."


출판사 직원이 씁쓸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올렸을 때, 닫힌 문을 보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 두 사람 사이의 벽은 무너질 일이 요원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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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나도 밝았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차량 소리와 무언가들이 굴려가는 소리..


모두가 생생했다. 모든 감각이 증폭된 것뿐만 아니라 느끼고 있다.


너무 생생하다는 것이 괴리감이 아닌, 이것이 삶이라는 것이라 느낄 정도로 생기가 충만했다.


그리고 그것이 있었다.


"병신.. 벽에서 나오고도 그 모양이냐? 그게 니 결말이야?"


사람 사이로 지나다니는, 사람보다 많이 더 큰 어두운 형상.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림자에 피부와 장기를 걸어둔 것 같았다.


그런 것이 사람 사이를 위화감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지나친다.


그 장면이 한수영을 걸음으로 이끌었다.


한수영이 그 앞에 서자, 그것이 멈춰섰다.


반응이 없다. 얼굴 같은 부분을 올려보며 한수영이 말했다.


"시발아, 나 왔어"


그 공허한 것은 가만히 있었다. 몸으로 보이는 여기저기가 액체마냥 울렁인다.


한수영은 찢어질 것 같은 감정 속에서 입을 열었다.


"힘들면 말을 해."


대답이 없다. 그러기에 한수영은 공백을 채웠다.


"나 혼자만 믿고 사는 것? 그럴 수 없어. 그렇게 나아가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거야. 다른 이의 도움이 있어야 그나마 손해없이 가는 거지."


"내가 할 말은 아니네.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널 만든게 결국 내가 되었다는 거야. 넌 니 혼자 그 희생을 하는 거 같냐? 아니야. 나도 포기한 거야."


"결국 네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야. 네 의미를 잊고 다른 이에게 이름만 지어주면 끝이야? 그럼 누가 네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리고 그 놈들은 지들 애새끼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주는데?"


사람들이 지나친다.


그것들은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있었고, 아름답지 않지만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나친다.


이 어두운 형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없다. 모두 자기들의 삶에 빠져있다.


이렇게 생기있는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는 한수영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존재할 수 있냐는 것 같았고.


무수한 사랑이 모든 이에게 있기에 모든 이에게 무정한 것과도 같았다.


그것이 다가왔고,


그건 한수영을 다른 사람 대하듯 대했다.


결국 지나친다.


그러자 모든 배경이 변했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해골로 말려들어가며 그대로 가루가 되어 땅으로 사그라들었다.


나무는 말라붙으며 금새 쭈글어 들었다.


건물은 어디선가 생겨난 균혈이 점점 거대해졌고, 그것은 결국 건물을 잡아먹었다. 기울어진 건물은 그대로 쓰려졌다.


한수영도 자신이 죽어가는 걸 느꼈다.


시선에서 벗어나 말라붙는 것을 온 몸에서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그가 지나치는 모든 것이 가루가 되어 주저앉는다. 뒤돌아보지 않는 한 복구되지 않을 잔혹한 파괴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곳이 구원이겠지.


그 증거대로 그가 보는 시선에는 항상 생기있는 장면만이 보였다.


높은 건물. 생기있는 나무. 길걷는 행인과 자동차..


문득 떠오른다. 그는 왜 우리를 보고있는 걸까.


왜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걸까.


생명을 뿜어내는 시선을 가진 존재의 육체가 저렇게 초라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어두운 형상을 뒤에서 붙잡았다.


그순간 무언가 샜다.


살짝 눌렸는데도 엄청난 양의 물을 머금은 스펀지마냥 무언가 질질샌다.


얼굴과 몸을 덮을 정도로. 누르면 물을 내뱉는 해삼같았다.


그 속에서 한수영을 질식이란 것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진한 액체는 쉴새없이 빠져나왔다.


그때 알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고통스러운 지 모르는 거다.


이걸 행복이라 인식했기에, 고통을 참는 거다. 고통에서 피어난 행복이란 꽃 때문에 그는 세상에 계속 수혈하는 것이다.


그 뿐이다.


그 뿐인 행동이, 단 하나가 위대한 희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굳이 그것 때문에 삶을 버린 존재.


새어나는 그 설화들이 절망처럼 철철 흐른다.


절망 속에서 한수영은 그 형상의 시점을 이해했다.


문제 안다. 그는 이 현실을 보고있다.


그는 꿈이아닌 꿈을 꾼다.


현실을 보며. 스스로의 꿈을 그림다.


자신이 없는 세상을 그린다.


한수영도 고통스러웠다. 그 약체는 단순한 육채의 고통이 아닌 정신적 파멸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이 슬픔을 더 짜내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로하고 싶었다.


말없이. 멸망이 전부인 소설을 쓰는대신.


안아주었다.


꼭 안아줬다.


꽉 붙잡고 품에 얼굴을 박는다


순간,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막대한 공포들이 그녀를 갈아먹는다.


세상의 몇몇 시선들이 그녀를 향한다.


피부가 익어버리고 있다.


점점 그 수가 많아진다. 구워지기보탄 불타고 새까매질 것 같았다.


시선들은 더욱더 모아진다.


어떤 존재가 자신들을 건드렸는지. 시선은 묻는다.


누구인가.


그대는 누구인가?


시선이 모일수록 그것이 돌아본다.


그 시선의 총합은 결국 그것이다.


그리고 시선이 뒤를 보았을 때,


그녀가 있었다.


고통 속에 울고있는 그녀가 있었다.


그것을 보며 존재는 놀랬다.


이 아리따운 세상에서 그녀는 너무 추악하고 역겨운 여자였다.


한 존재를 위해 멸망을 불려와 세상을 가라앉히게 한 존재임을 꿰뚫어봤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 생기있는 시선은 그녀의 설화에 개연성을 실어주었다.


[그대만을 위한 세상을 창조한 존재]


존재는 그 문장을 멍청하게 보았다.


문장은 무구한 시선 속에서 살이 입혀지고 부풀었다.


그렇게 자신을 더욱 이야기를 해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형상과 시선은 그에 맞춰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늘려붙었다.


땅바닥에는 사람이, 살가죽이 낭자한다. 저녁으로 저문 곳에 까마귀가 돌아다니며 무너진 건물을 순찰한다.


시선과 형상이 충격을 먹은 듯 굳어버렸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온다.


한 존재가 달리고 있다. 그것은 계속해서 장애물을 넘고 또 넘고 있었다. 엉성했던 자세는 곧 광증이고 집착적인 완벽한 자세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완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장 자살했다. 그러면 그건 처음 지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상처는 그대로인채. 피를 철철흘리며 나아가는 시체는 가히 기괴했다.


한 존재 돌아다니고 있다. 언듯 평온한 모양새의 여성은 곧 미친듯이 웃어대기 바빴다. 그녀는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무구한 행성을 돌아다녔고, 그만큼 짧은 인연으로 자신을 키워나갔다.


한 존재는 계속 죽고 태어났다. 죽는 방식은 매번 다르고 다시 태어날 때 모습은 매번 다르나 점차 커지고는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조그만했던 비명은 더욱 뚜렷해지며 듣는 이조차 공포를 느낄 소리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세 존재.


그것들이 주인공인 소설의 이름은 바로.


[멸망에서 살아남는 세가지 방법]


충격을 먹은 듯, 형상은 그것을 보며 뒷걸음질했다.


형상은 거듭 이 세상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나,


시선은 그를 향해 물었다.


잊었는가.


정말로 모르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그녀가 넘어졌다.


헐떡이며 서서히 말라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멸망에서 겨우 살아남은 시한부 인생의 생존자 같았다.


그녀는 시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멸망에서 살았던 그녀의 기억이, 그때의 감촉이.


김독자를 만났던 1863회차의 그때가 사라진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잊어버린다.


잊어지는게 죽는 거라면, 그녀는 죽어간다.


그래도 의식을 놓지 않는다. 그래야 한다.


그 기억만이 남아. 무수한 공포를 이겨낸다.


어지러움 속에 의문이 생긴다.


근원적으로 스스로를 묻는다.


이후 근처에 대해 물었고,


그리고 자신을 일으키는 다른 존재에 대해 묻는다.


'이 아저씨는 뭐야?'


놀란 한수영은 그 손을 뿌리치 했다.


실패했다. 손은 스스로 묶여있다.


그녀는 왜 이 손을 놓는 게 위험하다고 외치는 본능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때 압박감이 느껴진다.


독자가 안았다.


차가웠다. 그러다 따스해진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에 땀이날 것 같지만 좋았다. 당황스럽지만 그저 좋았고 행복했다.


그런다 울음이 나온다. 무구한 행복 때문에, 미치도록 답답했던 마음에, 눈물의 둑이 터지며 그녀는 흐느끼기만 했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녀는 모른다.


우리는 안다.


손톱이 손바닥을 피고들 정도로 피어지지 않은 손아귀. 그것만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말한다


"늦었잖아.."


알 수 없는 존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무언가를 계속 사과했다.


계속 미안해했다.


무구한 슬픔 속에서. 그렇게 다독이는 서로의 품속에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인식했지만, 지나쳤다.


그들에게는 두 사람에게 다가갈 힘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만남을 끊어낼 힘이 없었다


대신 시선을 주었다.


부끄럽지만 생명을 주는 그 시선들 속에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두 사람은 울었다.


그리고 어색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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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벽을 달려서]


유중혁은 방황하고 있었다.


잠시 착란에 걸린 것 같았다. 그 스스로도 지금을 괴이하게 여겼다.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내가 있는 것인가?


끝없는 질문에는 딥이 없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큼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유중혁은 그림자를 보았다.


땅에 박힌 채 성좌마냥 고고히 서있는 건물과 나무들. 지상을 덮은 인간 시대의 무구한 발명품.


하늘의 별빛은 모두 떨어져 가로등과 건물 속에 박혔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살아있다.


맑은 하늘. 구름. 햇살..


멸망에는 없던 것들이 버젓히 존재한다.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런데도 허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고있는 노을은 말없이 배경을 붉게 만들기만 한다.


이젠 주황색으로 드리워진 하늘을 보며, 유중혁은 무언가를 부르고 싶었다.


년도로는 셀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찾고 싶어 했던 무언가를,


자신을 그토록 부르고 그리워하며 다가서려던 누군가를.


마주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있었다.


멸망. 살육. 희귀.


그 대신 한 사람이 있었다.


"..."


바닥에 누워있는 한 청년, 죽어버린 듯한 존재.


시체처럼 미동없는 그 사람을 향하여.


유중혁은 안도감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본능이 거부하는 듯 했다.


시체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 불쾌해졌고, 없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구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자살하는 사람이 누군가 다치는 걸 꺼리는 듯이, 자기만 죽으면 된다는 것처럼.


그건 다칠 그대를 위해 물려가라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절망에 유중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려 했다.


허나.


유중혁의 의지는 예상 외로 굳건했다.


희귀로 인해 무너지지 않은 0회차의 정신.


두려움을 알고 용기를 아는. 그리고 평범할뿐인 의지가 말했다.


나는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평생을,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만 그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숨 한 번 들이쉬고. 심장을 진정시키며.


유중혁은 김독자를 안아들었다.


품 속에서 얇은 숨소리를 들으며, 그는 현재를 향해 뛰었다.


기나긴 길 위를 달리며, 어느새 나타난 공원의 입구에서 다달랐다. 유중혁은 소리를 지르려다 그냥 숨을 먼저 고르며 품 속의 사람 상태를 체크했다.


이상하게도 방금보다 악화된 몰골.


피부색이 점점 탁해지는 걸 바라보며.


-자신이 이곳까지 달려온 기억이 없다.


유중혁은 넘어질뻔 했다.


불안이 탄생한 건 당연하다. 삽시간에 유중혁은 과거이자 미래에 있었다.


미래는 분명 더욱 끔직하리라는 희귀 우울증이 꿈틀거린다.


모든 것은 낯선 동시에 처음보는 광경으로 변했다.


(..여긴 어디지?)


(왜 이렇게 멀쩡하지? 꿈 속인가. 아니, 현실이 맞는 건가?)


부서진 기억을 찾으려는 듯 바닥을 마구 훑어 보았다.


그러나 기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침착하자. 먼저 정신부터 차려. 근데..)


(품 속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구야?)


그건 너의 마왕이다.


무구한 어둠이 그의 손을 적셨으며, 공허한 영혼을 더럽혔다.


희귀를 부여해 항상 미래를 끔찍한 죽음 속에 놓이게 했다.


_돌아오라!!

_신이 없는 세상의 신이 되어라,

_넌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하늘은 진동하며 비명을 내질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에 떨었다.


나무들이 뒤집히고 건물들이 무너지진다. 진동에 유중혁이 넘어진 가운데.


촉수들이 하늘을 헤집어 공간을 열어내었다.


그 속에 웅장한 악기들이 서로를 비벼대며 황홀감을 피어낸다. 비명과 죽음과 절망은 그들의 원동력이고 화음이다. 이 무대에서 이야기는 희생으로 이뤄내는 것이다.


그 하늘 바로 아래. 유중혁이 있다.


초월적인 광경을 바라보던 유중혁은 엉거주춤 일어서 달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변하는 걸 느꼈다.


한 걸음마다 세상이 변화한다. 지하철이었고 무림계였으며 지구였다가 마왕성에 방주가 현현되고 이계의 끝자락과 무너진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달릴 때마다 몇 백번의 죽음이 있었고 다시 살아났다.


횟수가 1000회차를 넘으며 유중혁은 자신이 낯설게 느꼈다. 안나 크로포트조차 미래를 포기한 곳에 자기만이 아는 미래가 있었다.


그 모든 흔적은 어두운 두건이 되어 점차 유중혁의 몸을 덮었고,


결국에 스스로 위대한 모략이 되어 물었다.


-달린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포기한다면. 끝을 본다면. 어떻게든 결말을 본다고 쳐도..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가?


그렇게 자살하면.. 신이 행하려던 방법을 따라한다면-


[시간은 죽었고 공간은 창조되지 않은 벌판 위에 시체뿐인 이야기들이 떠다닌다. 신은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황홀감은 있다. 우리들끼리 만드는 그 힘으로 신을 놀라게 하며 시선을 돌리라. 이곳으로!]


[그 잔혹함이 우리의 무기가 되리라, 원동력이 되리라. 무구한 시간을 버티는 법은 죽음이라는 자해뿐이라..!]


유중혁은 품 속에 죽은 신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들린다. 하늘에 열린 그레이트 홀이 공기를 삼켜대는 동시에 비명같이 음악을 긁어낸다.


-보인다. 칠흑같은 어둠이.


영원같은 찰나. 찰나같은 영원.


하늘을 끼적거리는 촉수 덩이가 유중혁의 배후를 지킨다.


그리고 전한다. 유중혁을 향해 미친듯이 울려댔다.


-넌 할 수 있다.

-저 위에 떠오른 것을 죽일 수 있단 말이다!!

-그 신을 죽여! 지금 당장!!!


하늘에 떠오르는 도깨비 형상이 촉수 더미에 힘없이 박살난다. 그 촉수들은 급히 하늘의 구름과 어둠을 잡아당긴다.


세상이 찢어지는 진동이 수없이 울렸고. 벌려진 사이로 유중혁은 세계선을 지나치는 거대한 열차를 보았다.


우주를 세차게 달려가는 그건 외로워 보였다. 그 근처에는 별도, 행성도 없었다.


홀로 모든 것을 지나치고 있을 뿐. 열차와 관계맺는 세계선은 없었다.


그 속에는 죽은 시선을 보내는 신이 있었다.


-저건가? 저기인가!!

-도래할 것이고 나아가리라! 죽은 시선을 이야기로 만들어!!


촉수들이 분노로 울어댄다. 자기들을 버린 신에 향한 분노는 살의가 되었다. 그것들은 살해로 이 세상을 보존시키길 원했다.


그러나 저건 허상이다. 진짜 신은 가까이 있다. 신은 항상 우리 곁에 나약한 채 존재한다.


품속에 있는 인간처럼.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건 쉽게 죽일 수 있다.


그것이 날 몇 백번이고 죽여 살려냈으니.


살의가 피어오른다. 지금이라도 그 결정을 후회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0회차의 나로써는 분노란 낯선 것이다.]


동공을 크게 뜬 채. 은밀한 모략은 분노를 거부했다.


촉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감정과 이야기를 요구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는 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신처럼 .


그는 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거부했다.


나약한 형상은 자신의 신을 향해 빌었다.


-말한다. 제발.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줄 사람이 다가왔으면-











'..중혁씨?'


유중혁은 질끈 감았던 눈을 열었다.


놀란 유미아와 이설화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유중혁은 온 몸을 긴장기킨 채로 서서히 감정을 잠재웠다.


줄어드는 숨소리를 들으며, 떨리던 눈이 평온을 되찾는다. 아직까지 말이 없자 설화가 재촉한다.


"중혁씨..? 중혁씨 괜찮아요?"


대답없었다. 그저 하늘을 다시 올려다본다.


하늘은 평화로웠다. 참새가 나무 위를 가로지르며..


촉수도, 이야기도 아닌 나뭇가지란 현실에 조용히 자리잡았다.


그것들이 모인 이곳은 공원이었고. 그뿐인 개연성 없는 공간이다.


멍하니 있던 유중혁은 문득 품을 살폈다.


그것은 사라졌다.


비명도. 황홀감도 없는. 그저 평범한 현실.


품 속에는 공허함. 그러나 앞에 있는 의미를 가진 두 존재가 그를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자기 혼자가 아닌 다른 이가 살아있는 세상.


그런 현실에 서서 유중혁은 멍하니 있었다.


"..오빠?"


현실이구나. 이곳이 현실이구나.


나도 살아있구나.


되내기기만 하던 유중혁은 밝게 웃었다.


"..전 괜찮습니다."


"오빠, 안 어울려."


"그런가?"


안도한다. 이제는 얽메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변해버렸지만.


그 소설의 작가는 나 스스로가 아닌가.


-..실로 그러하다.

-실로 그러하니..


그렇게 유중혁은 다시 웃었다.


두 사람의 황당하다는 시선이 강해질수록.


되살아나려던 꿈의 시선은 사그라들었다..




----------------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정답이 있었어요. 열심히 하면 모든 게 되었어요. 근데 이젠 그러지 못해요. 제 앞에는 결혼이 있고 재산이 있어요. 전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에요. 근데 내게 남은 게 없어요. 이건 무엇인가요?"


바 책상에 엎드린 채 꺼이꺼이 우는 유상아를 이현성이 톡톡 두드려줬다. 그리고 정희원에게 빠른 눈빛을 보냈다. 정희원은 제조하던 칵테일을 그녀 앞에 내려놨고, 유상아는 그걸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리고 다시 울었다.


어느새 잠들었다. 죽은가 싶어 두들겨본 그녀에게서 얇은 숨소리가 났다.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게요."


그녀는 훌륭한 선동가였다. 취한 상태에서 두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그 기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진심으로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약점을 극복하고, 자기만의 설화를 휘갈기며 끊임없이 나아갔고, 일탈조차 다른 이를 위해 벌인 선의에 불과했다.


그런 행동조차,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었다.


-난 가고싶어!

-해낼 거라고! 이겨낼 거야!

-난 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살건데..


그녀는 꺾였다. 추락했다. 잔상에 불과한 하늘은 필멸자의 승천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는 그녀를 쥐고 자기들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했다. 자기들 딴에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지만, 그녀를 도와주는 대신 상황을 이용하는 것을 사람 취급해준다고 보기 어렵다. 도구로 대한다고 하나? 그리 선인은 아니다.


그렇게 마음꺽인 여성의 결말은 일탈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버린 일탈.


소소한, 그러나 미래를 받아들이려는, 그리고 시선이 죽어버린 결말.


시스템은 패배자에게 냉정한 기계이기에. 그녀는 결과에 승복하고 생각하길 그만뒀다.


그녀는 이제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 꺽인 자에게 도전은 잔혹한 시련에 불과하다.


무너지고. 무너질 뿐이기에.


..그런 그녀에게, 기이한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다.


"에? 뉘세여?"


두 사람은 전화벨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전화받은 유상아를 괴물보듯 보았다. 유상아는 취했다는 핑계로 시선을 마주보지 않은 채 허공을 보았다.


"맞는데요. 술 좀 마셨어요. 왜요?"


처음 보다는 걸걸해진 말투다. 유상아는 응응 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요?"


그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약간 활기차게,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유상아는 중얼이듯 말했다.


"알았어요. 무르기 없기에요. 알겠죠?"


그리고 반대편이 말하는 중인데도 그냥 통화를 종료했다.


유상아는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두 사람은 이 침묵이 폭풍 전 고요같은 게 아닌 지 걱정했다.


맞았다. 그녀는 폭풍처럼 소리쳤다.


"아싸 나 파혼했다!!"


그녀를 토닥이려던 이현성은 의자를 넘어트렸고, 정희원은 술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러나 유상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는 그녀를 막을 수 없다.


나아가리라.


그 무엇이든, 하늘이든 위대한 것이든 날 막을 수 없어!!


"술잔 들어!!"


그녀는 다 마신 술잔을 들며 외쳤다.


얼떨떨에 정희원은 떨어트릴 뻔한 술잔을 들었고, 이현성은 빈 손을 가져다대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엉뚱한 모습에서 유상아는 진심으로 웃어댔다.


꺽인 날개를 피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 기백을 떨치며.


그녀는 칼처럼 술잔을 허공에 치켜새웠다.


"부딪혀!!"


부딪혔다. 빈 술잔과 술이 든 잔, 주먹이 부딪힌 소리는 청량하다기 보단 아팠다. 두 여성이 손을 부르르 떨자 이현성이 머쓱했지만. 유상아는 괴이치 않았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난 살고있어!!"


격이 펼쳐진다. 허공이 이그려지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외쳤다.


"난 살고있어!!"


박살난 시스템이 더욱 깨진다. 지직거리는 시스템을 짓밟으며 이번엔 전율에 가득차 외쳤다.


"모두를 위하여!"


두 사람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현실에 개이치 않는 그녀의 기상은 가히 대장군에 비견되리라.


"난 살고있어!"


아까도 그랬지만, 그녀는 취했다.


이그러진 세상 속에서 천장에 구름 잔뜩 끼였다.


구름사이 빛을 가르며 나타난 것은 잔상이었다.


죽은 세상의 것들. 서로 킬킬 웃으며 이 세상을 장난감으로 대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취한 진심을 내질렸다.


"난 살고 있어!!"


칼을 들고. 빛을 내리는 하늘에게 기상을 내보이는 용사.


잔상들이 당황하는 모습에 꺼이꺼이 웃으며 유상아는 무기를 꼬나쥐고 나아가려 했다.


책상 위에서 달려가려는 그녀를 이현성이 겨우 붙잡았다. 정희원도 유상아의 잔을 빼앗고는 한참 동안의 사투 이후 겨우나 재웠다.


고롱고롱 자는 유상아는 재밌는 꿈을 꾸고있다. 그러나 그녀는 꿈에서 깰 것이다.


그리고 현실을 살 것이다. 그곳을 누비는 눈빛이 다시 살아나는 걸 보며 이렇게 평할 수 있다.


죽은 시스템이 전류를 치직거리는 가운데.


조연을 버린 그녀는 진실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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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조언과 따스한 손길.]




벽에 기대있던 방철수는 고통 속에서 실눈을 떴다.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엎어지거나 쓰려져있다. 그리 널부러진 모습은 길거리 쓰레기같았다.


몇몇이 짜증섞인 아우성을 지르긴 하지만 일어나질 못한다. 쓰레기여서가 아닌. 곳곳에 피가 내뱉는 자상 때문이다.


그 어이없는 광경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마찬가지로 신음뿐이다.


"..씨발."


그때, 빈박스에 앉아있던 초록색과 눈이 맞춰졌다.


방철수가 놀랜 두려움과는 반대로 초록색의 눈에 섞인 광기는 침착했다.


그건 지긋이 방철수를 보다 일어섰다.


그러고 다가온다. 욕하는 것들, 반항하는 것들, 신음내는 놈을 한 번씩 발로 걷어찬다. 기력은 없지만 힘을 더하여 퍄배자를 더욱 처절하게 만드는 모습은 사납다기 보단 공포스러웠다.


방철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러는 새, 김남운은 방철수 바로 앞에 섰다.


그림자를 얼굴에 잔뜩 덮어내고선.


-쾅!!


그리고 방철수 얼굴 옆에 발을 찍었다.


약간의 모래알이 방철수 얼굴을 스친다. 방철수는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한다.


핏멍이 가득한 얼굴을 닦아내며, 김남운이 투덜였다.


"진짜.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건데."


방철수는 자신의 숨을 고르며 말했다.


"죽일거냐..?"


"왜? 무서워?"


당연한 거 아닌가. 방철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곧 얘들이 더 올거다. 그러면-"


"알아."


"..안다고?"


"그런 협박을 너만 한 줄 알아?"


방철수는 핏 웃어버렸다. 분명 저놈들은 방철수 자기가 오면 네놈따윈 끝날거라 말했겠지. 지금 자기는 그런 놈들이 오면 상황이 종료될거라 협박하고.


괴이한 끈끈함이다. 이 역겨움에 방철수는 계속 웃으려다, 내려다보는 살기담긴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김남운은 그 시선을 유지하다 말했다.


"괜찮아. 안 죽여."


"그러면?"


"그러면이라니, 뭘 바라는 거야?"


"죽일듯이 패고, 그리고 돈 벌으려는 거 아니야?"


"에?"


"기다란 창 같은 걸로 내 팔을 후벼파고. 내가 괴롭힌 놈들처럼 만들려는 거 아니냐? 그럴 것 같았는데."


이번엔 김남운이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들어 그림자도 치워냈다.


..내가 그렇게 할 놈처럼 보이나.


네놈들에게 당한 피해자같은 것도 모르는데.


물론 자기가 요즘 이상적인 사이코처럼 사람 죽이는 데 별 감흥이 없다는 걸 자각했다.


왠지 단검 휘두르는 솜씨도 고만고만해지고.


그렇게.


시발 좆같아졌다. 발작적으로 그놈 다리에 칼을 꼿았다.


"아아ㅏㅏ악!!!"


방철수가 고개를 바깍 뒤로 당긴다. 부들부들 떨며 이빨을 마구 딱딱댄다.


시끄러워서 얼굴을 한 번 주먹으로 쳤다. 빡! 방철수는 고개를 조금 갸웃이다 피섞인 침을 흘렸다.


김남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즘 좆같은 꿈을 꾼단 말이야."


"뭐..?"


"뒤져. 계속 뒤져. 근데 할머니가 있단 말이야."


뭐 어쩌라는 건가라는 표정에 한 대 더 때렸다. 소리만 큰 폭행이지만, 그로기 상태라 그런가 바로 쓰려진다. 멱살잡고 억지로 일으키며 김남운은 다리를 쪼그렸다.


그리고 방철수와 눈높이를 맞췄다.


"여긴 뭐 하는 세상인지 모르겠어. 있던 건 있는데, 없던 게 생겼어. 사람들은 몰라. 이 세상은 뭐야?"


"나, 날 따라온 이유가, 퉷. 그거야? 고작 꿈?"


"..꿈이다. 그래, 꿈이야. 그리고 현실이었어. 난.. 난 정신 차리니 여기였단 말이야."


허허 웃다 화냐려던 방철수는 욕 한 번 하려다 그만뒀다.


무언가 기억났다.


..1863번이 잊힌 자신을? 고개를 숙이며 김남운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후 지옥에서 난 프라모델을 만든다? 존내 재밌거든. 영혼으로 이루어진 멍청이들의 사체로 작품을 만드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 그런 귀중한 일만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데."


고개 숙인채 낄낄대던 김남운이 한순간에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


방철수는 김남운의 그림자가 소리지르는 걸 보았다.


가장 깊은 어둠이었다. 저 하늘에나 있을 우주적 어둠이 그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세상의 벽을 뚫어내고 세계선을 기어다니는 이계의 왕이 한순간에 있었다 사라진다.


그림자는 서서히 김남운을 잡아먹는다. 물들이고 어지럽힌다. 사람 하나를 움켜쥐려는 듯 김남운의 피부를 기어다니는 어둠은 역겨웠다.


"그럼 되는 거 아닌가. 죽으면 다 되는 거 아니야? 대장만 찾으면 이젠 난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울림은 점차 우주를 담아낸다. 그 무엇보더 깊은 어둠이 진언으로 담겨 모든 것을 가르는 칼날마냥 나타나고 있다.


그 포요는 정신적으로 방철수를 죽이고 있다. 마침내 칼에 어둠을 담아낸 김남운은 눈동자만 덜렸다.


빙글.


방철수의 심장을 향한다.


이 세상에서 불사는 없다.


죽일 것이다. 안 죽는 건 계속 죽이고 죽일 것이다.


따라가고 집착하며 살해하는 목표를 세웠으니.


그 시작을 노래해보자꾸나.


나아가라.

-나아가라.

[난 나아가!!!]


-펑!!


그림자는 한순간에 침몰되었다. 김남운에게 벗겨진 그림자는 서둘려 바닥에 웅덩이졌고 김남운은 그 위에 쓰려졌다.


다른 쓰레기들처럼 신음을 내뱉던 김남운 심장에 발이 내리찍혔다.


"-악!!"

"뭔가 날아다닌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러면서 이지혜는 방철수에게 눈짓했다. 뭘 보았냐고.


방철수야말로 말하고 싶었다.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네가 한 짓이냐고.


어쨌든 서로 눈으로 이야기했고, 서로 잘못 보거나 들은 걸로 결론내렸다. 쨌건 이 세상에는 텔레파시나 한낮의 밀회같은 아이템은 없으니까.


김남운은 인상을 확 찡그리며 말했다.


"너 뭐야?"


"니 인생 고치려 와주신 분이다."


김남운은 거칠게 이지혜 발을 후려쳤다. 이지혜는 휘청거렸고, 그 틈에 벽에 달라붙었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피를 흘리며 벽에 붙어있었다. 이지혜는 시간이 돌아간듯한 데쟈뷰를 느꼈다.


아닌가. 미래였던가?


"바깥에 사람들 몰려와있더만. 뭔 일이야?"

"..시발 뭔데 내 일 방해하고 지랄이야!!]


어둠의 그림자는 휘청이면서도 다시 일어섰다. 어두워진 김남운에게 보이는 건 덜 어두운 몸의 윤곽과 붉은 눈빛뿐이다. 그건 잊혀진 신격을 담아 소리질렸다.


[그냥 좀 하겠다잖아, 좀 죽여보자는 거잖아! 왜 이 세상은 날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난 거야! 그럼 그 꿈을 보여주지 말던가, 현실에 따라와서 지랄하고 막 이러는 건 뭐야!]


[시발! 하나만 하라고 햇갈리게 하지 말고!!]


방철수는 보았다. 저 하늘이 베어지는 참상을.


모든 행성이 뭉텅이로 자라진 배경 아래 안대를 쓴 미치광이 학살자가 있었다.


".."


그럼에도 이계의 왕이였던 존재는 고요하다. 파도없는 바다의 모습처럼.


그러나 곧 다가올 불길한 징조처럼. 지금의 평화를 무너트릴 것 같은 어조로 그녀가 입을 뗐다.


"야. 조언해줄게."

"꿈은 꿈이야. 그 뿐이야."


"그걸 누가 몰라-"


"꿈일 뿐이야. 그저 그 뿐이야."


"..."


"그 세상엔 그게 있어. 여긴 없어. 그래도 우린 살 수 있어."


김남운은 충혈된 동공을 흔들었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이 본 것은? 내가 느낀 것은?


고작 환상으로 치부하고 나아가란 말인가?


내 손에. 그림자가 이렇게 외쳐대는데.


그 세상이 올 거라는데.


..너는 어떻게 그리 멀쩡한 건데?


그래서.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우린 우리 세상을 봐야 하거든."


그리고 한수영은 김남운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귀찮아서 하고 싶진 않지만 해준다는 듯 고개를 뒤로 꺽은 채 한 숨을 크게 쉬다 말한다.


"잘 들어. 니가 봤던 그 세상에서는 사람 막 죽여도 되는 모양인데, 여기서는 널 말려줄 사람 없어. 넌 더 자유로워, 그래서 대가도 너의 것이야. 브레이크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시동 걸지마. 그럼 넌 누군갈 죽일 수는 있어도. 예전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다곤 해도 넌 반드시 죽게 될꺼야."


김남운은 가만히 떨었다.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이지혜는 흘껴봤다.


"넌 죽고싶어?"


"아니."


"그럼 손에 든 거 두고 따라와."


"..뭐 해줄건데?"


"도와줄 수 있지."


혼란해하는 김남운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방철수에게 목검을 두들겼다.


"어어??"


"일어났네. 그보다 아저씨요."


"왜?"


"어른이라도 바뀔 수 있는 거 아시죠?"


할 말만 하고 이지혜는 뒤돌았다.


이유는 몰라도,


방철수는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장르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방철수는 마지막을 담아두려는 듯 시선을 향하게 두었다.


두 그림자가 골목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김남운은 건물을 지나치며 꿈틀대는 듯한 그림자를 힐끔거렸다.


"지혜야!"


달려든 누군가 지혜를 껴안는 대신 멋대로 손을 움켜쥐었다.


"진짜로.. 깨끗하게 끝났네? 너 짱이다!"


"짱? 촌스럽게 무슨."


"짱!짱! 우리 이지혜 짱!"


에이 씨 하며 투덜이는 지혜는 그냥 두 사람을 두고 먼저 갔다. 정확히는 김남운이 멈춰 세웠다.


"야, 야!"


"왜?"


"나 안 도와줘?"


"그림자나 봐 병신아."


그림자? 김남운은 뒤를 보고 소름돋았다.


그곳에는 자신을 본뜬 그림자가 누워있었다.


"그림자? 평범한데.."


보리는 웅얼이며 김남운을 보았다. 굳어있는 사람. 전부다.


지혜는 이미 떠났고..


음. 재미없는데.


"야."


감남운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보리는 재밌다는 듯 키득대며 김남운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김남운은 다가오는 보리를 처음 보는 생물을 대하는 것처럼 당황해했다.


"왜!?"


"..알려줄까?"


"뭐, 뭘!"


"알잖아~ 저 친구 어디가는지."


키득거리는 보리는 지혜에게 생긴 새로운 친구에 대해 기뻐했다.


김남운은 이를 갈며. 친절을 안배한 여학생에게 붉혀지는 얼굴을 돌렸다.


가상과 현실은 이 정도로 타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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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이해하는 행위]


"여기 참 높다. 그치?"


이길영은 말하지 않았다. 3시간동안 산을 올라 지쳐버린 아이가 보일 적절한 태도였다.


그러나 신유승은 침묵을 긍정으로 이해했고, 기분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헤헤 웃는 신유숭에게 뭐라하기 그랬기에 이길영은 그녀가 돗자리 피는 걸 도왔다.


조금 뒤. 두 꼬마는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있었다.


그저 어두운 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자리가 있었다.


그 사실에 미묘함을 느꼈기에 이길영은 신유승의 말을 늦게 알아챘다.


"근데 넌 왜 나온 거야?"


이번에도 직설적이었다. 좀 고민하다 이길영도 직설적인 답변을 했다.


"나 내일이면 나가야해."

"어디로?"


선듯 답변하지 못했다. 너무 빠르게 대답했나 생각하다 이길영은 말했다.


"..멀리 갈거야."


이모와 함께 손잡고 가야할 곳은 열차를 타야한다.


너머라, 열차 너머 지평선이라..


그 너머는 아직 어린이들에겐 상상키 힘든 미지의 공간일 것이다.


"그러니까. 만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이모란 사람은 집나간 꼬마를 찾을 위인은 아니다.


걱정은 하겠지. 객사해서 뉴스같은 데에 자기가 곤란하니까.


그래서. 오늘만 이러고 그곳에 얌전히 갈거다.


그게 모두에게 나을 거니까.


확실히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 말고 다른 얘랑 놀아-"


이길영은 신유승 뺨에 고여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말을 멈췄다.


신유승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그러며 말했다.


"가지마."


신유승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길영은 자신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에 놀랬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데 신유승이 먼저 다가왔다.


때렸다. 가슴을.


"가지마!"


이길영은 영문도 모르고 맞게 되었다. 어어?하는 순간 이길영은 쇄도하는 주먹을 보았다.


피할 수 있는 속도지만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길영은 여러 부분에 고통을 느꼈다.


"가지마..! 가지마!"

"나 잠시만-"

"가지마!"


신유승은 울며불며 말했다. 난처해하던 이길영은 그 손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가지마.."


고통은 점차 사그라들고, 이길영 품속에 어느샌가 그녀가 있었다.


조그만하다. 그러나 자신에게 크다.


벌레에겐 세상만큼 큰 것이 없다.


잠시 이길영의 품속에서 신유승은 이길영의 세상이 되었다.


물론 이길영은 이 답답한 기분이 마음애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인내했다.


어린 아이또한 이 밤이 지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원할 수 없을까. 아니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른다. 모른다.


이길영은 울고싶었다. 목놓아 울고싶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이길영은 울지 않았다.


지금 울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이 흐르게만 두었다.


그렇게 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어졌다.


이해했다.


어떠한 인연은 이어지는 게 아닌, 끊어짐으로 이해되는 게 있다.


상처는 두 사람을 공감케하는 충분한 고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어린 아이처럼 있었다. 도와주는 이는 아직 없다.


별들은 그저 저 위에서 반짝이기만 할 뿐이고, 두 사람을 더욱 비참히 만들 배경에 불과하니까.


..몇 시간뒤, 음흉하게 지켜보는 존재에 의해 황당한 구원을 맞게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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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직시하는 눈]


"..어떻게 됐나?"


"바로 끊던데요."


"하하. 강단있는 여자군.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한명오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공필두는 그 행동을 고요히 보다 말했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텐데."


"별 건 아니잖아요."


"..다른 이와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한 거야."


공필두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걸 두 번씩이나 한 자네는 가히 영웅이나 다름없지."


"정말요?"


"아니. 과장이 있던 것 같네. 분위기에 취했군."


"하하. 농담도."


공필두는 그렇지? 라고 말하려다 위화감을 느꼈다. 한명오는 생각의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남녀 아이 한 쌍. 두 아이는 얼굴은 다르지만 쌍둥이처럼 당혹감을 동시에 드려내고 있었다.


한명오도 아이들과 같은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공필두는 한 숨을 쉬며 대신 말했다.


"얘, 걱정마라. 산 속에서 이야기 듣고있던 음융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너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이모는요?"


알아서 살겠지. 라고 공필두가 말하려던 순간. 한명오가 나섰다.


"..그냥 갔단다."


"그리고요?"


"..알고 있었니?"


"네."


여자는 아이의 손아귀대신 돈봉투를 쥐고 자기 길을 갔다. 비정하지만, 탓할 수도 없다.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는 거지같이 행동하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그 거지같은 세상에서, 아이의 손을 누가 잡아준단 말인가.


한명오는 답답한 마음 속에서 이길영의 손을 보았다.


"손 잡아드리면 될까요?"


그리고. 아이또한 자신을 보고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응?"


어벙벙한 어른을 아이가 낚아챘다. 한명오는 급히 허리를 숙여 이길영이 잡기 쉽도록 허리를 숙이다 못해 그냥 주저 앉았다.


"아하하! 얘가 먼저 하는구만!"


공필두에게 으르렁대려다 한명오는 휘청였다.


그대로 앞으로 걷는 이길영.


솔직히 짜증났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한명오는 자신이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손을 잡은 건.


"이제 어디가요?"


당당하게 밀하며 떨리는 손을 내민 한 아이였다.


"글쎄.."


그 아이는 조금 생각하다 말했다.


"가요."


"어, 어딜?"


"집이요."


"집?"


"나도 가족 아니에요?"


그 당당한 어조에 한명오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맞지."


그리 말하며. 한명오는 길영이와 같이 온 여자 아이를 봤다.


과거이자 미래에 있었던 여자 아이는 사라졌다.


자신이 낳은 딸의 흔적을 지켜보던 악마 공작도 잊혀졌다.


아이 하나와 어른 하나.


사라졌던 구원의 마왕이 설화를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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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맞이하는 방법]


사악하진 않고 정신머리도 제대로이며 책도 읽어 교양있는 편이다. 허나 여기서는 그런 것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범죄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들어와 죄책감을 느끼면 착한 사람이 아닐까, 없는 일을 소설처럼 창작하여 수기를 낸 사람은 충분히 교양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감방 내 리더가 되었다. 사회적 측면으로는 교도소의 유명 인사중 하나인 것도 있다. 죄수 시점으로는 그나마 자신들 중 나은 사람이고, 교도관 시점으로도 통제가 가능한 사람이다. 그리 큰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맡은 일을 잘 처리하기에 그럭저럭 잘 대해주는 것이다.


추앙받는 이유는 이런 소소한 것에 있다. 사실 리더는 시민들의 노예나 다름 없으므로.


그래서 고귀한 노예는 근처 간식 하나 오물거리며 방에 도착했다.


"- 91번, 면회다."

"에?"

"..면회다. 빨리 나와."


이게 뭔 소린가하며 바지를 대충 치켜들었다. 그때까진 한수영이라는 그 아이인줄 알았기에 오히려 호기심이 찼다.


울 자식 찾았나? 그런 생각으로 복도를 걷던 그녀다. 그래서 면회온 남자를 향해 기묘한 감정을 들었다.


김독자였다.


"..어쩐 일이냐?"


하고픈 말은 많지만. 그녀는 일단 그리 물었다.


계속 말이 없었고, 먼저 궁금한 걸 물어볼까 하는데 독자가 입을 열었다.


"알아버려서요."


이수경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책을 보다 깨달은 거? 방랑하다 깨달은 삶의 지혜?


아니. 이수경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조금만 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 감옥에 갇힌 사람의 버릇이다.


..아니면 지금 자기를 만나려오는 것이 덧없다는 걸 알아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다. 자식이 깨달은 것이 뭘까?


"뭘?"

"제가 잘못한 거요."


이건 이상한 소리다. 아니, 자기가 면회라는 멍청한 짓을 계속 한 게 잘못이라는 건가.


"갑자기 뭔 소리냐?"'

"아빠 제가 죽인 거잖아요."


이수경이 가정한 개연성이 깨지고 있었다.


유리가 마구 부셔지고 손바닥으로 뭉치는 듯 가루 비비는 소리가 난다.


이수경은 눈을 부릎뜬 채 굳었다. 부들부들 떨며 근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숨을 너무 조용히 쉬느라 목이 졸린 것 같았다.


그 다음 말은 이수경을 거의 질식시킬뻔 했다.


"미안해요. 정말로.."


독자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수경은 무수히 피어오르는 궁금증.


어디 힘든 것이 있냐고 다독이고 싶었다.


이제 와서 그러는 건 둘 다 안좋을 거라는 냉정함도 있었다.


감동과 비극에 섞인 슬픔을 흘려내리고 싶었다.


우리 세상에서는. 그저그런 이야기밖에는 집필되지 않으니까


눈물이 흘려나오는 걸 참으며. 독자는 겨우 말했다.


"미안해요."


그 말에서. 이수경은 모든 것을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래."


약간의 미련이 마음 바닥을 기었기에 다시 말했다.


"그래."


책상만 보던 이수경은 그대로 일어서 나갔다.


교도관이 황당해하며 문에 따라가 통로에서 이수경을 잡았다.


무너졌다.


흑흑거리며 우는 그녀는 어머니였다.


좌를 끌어온 범죄자.


범죄자인 개연성을 충실히 쌓은 악인.


악인이란 헌신의 결과를 인정받은 그녀.


[그리고 그 개연성을 지적한 독자에게 작가는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란 이름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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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다 파고 비석에 기댄 한수영은 멍하니 하늘을 보고있다. 땀을 훑으며. 그녀는 멍하니 중얼였다.


"..알아서 다 잘 쳐 죽이는데?"


그녀는 신기롭다는 표정을 짓다가 낄낄 웃었다.


"하긴.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무려 예전 신도 두려워하던 세상이라고. 그리 중얼이며 한수영은 다 빨아먹은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제 4의 벽이 지랄하기 전에 발바닥으로 비볐다.


제 4의 벽은 무덤에 담배를 던진 주인에게 어이를 잃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 아래를 흘껴봤다.


그 자리에는 재도, 비빈 흔적도 없었다.


[...]


"이런 결말도 괜찮지?"


[거 짓 종막 의 연출가 가제 4의 벽 에게 묻습니다.]


"장난치지 말고."


[고유 특성 '제 4의 벽"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됐다."


그리고 기지개를 쭉 핀다. 한수영은 잠시 늘어난 기분이 묘한 감정을 느꼈다.


뭐. 신이 된 내가 알 바 아니지.


일이나 하자.


[..거짓 종막의 연출가가 해당 소설의 결말을 비춰냅니다.]


검지를 들어 허공을 향해 돌렸다. 귀찮은 티가 많이 나지만, 창조에는 충분했다.


가벼운 손 동작에서 문장들이 얽힌다. 솜사탕처럼 얇으면서도 형체를 갖추게된 것을 한수영은 튕겨냈다.


그건 허공에 걸렸다.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그건 계속 날아가며 자신의 문장을 펼쳐내었다.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설화. 무기력했던 신이 살아다니는 세상.]


[해당설화에 걸맞는 결말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두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HAPPY END]









[너 무  대충 만 들었다. 성의 없   다.]

"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