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내가 새벽에 꾼 꿈과, 같은 꿈이었다. 아니, 조금 더 길게 이어졌고, 더 구체적이었으며, 더욱 더 처절했다.
이것이 꿈이라고 자각하는 순간,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청각부터 시각, 촉각이 순서대로 돌아오며 갑작스레 추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함박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으며, 하늘에서는 연이어 색색의 불꽃이 터졌다.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유상아가 황급히 물어보았다.
"독자씨! 괜찮아요? 갑자기 왜 쓰러진거에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길영이 데리고 오느라 오랜만에 힘을 너무 썼나보네요. 괜찮으니까 하시던 거 계속 하세요."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옛날에도 픽픽 쓰러지면 갑자기 죽고 사라지고 그랬잖아요."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요. 이래봬도 여기서 제가 제일 세요. 걱정하지 마요."
정희원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자신의 차원 이동이 많이 격렬했느냐고 묻습니다.]
"야 조용히 해! 빨리 변신 안 풀어? 사람들 놀라잖아!"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사람들이 아이돌인 자신을 봐서 놀란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아, 그래. 언제 한 번 콘서트도 보러가야되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현상금 시나리오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설화, '????'을 획득했습니다.]
[해당 설화는 등급 표기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새로 받은 설화가 매우 궁금했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었다.
[꿈 장악력과 정신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설화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꿈 장악력은 회복되지 않는데? 그럼 이거 영영 못 보게 되는거 아니야? 나는 [제멋대로 곡해자]를 비롯한 특수 설화들로 이야기를 들어보려 애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아일렌에게 감정을 의뢰했으나 자신의 격을 한참 뛰어넘었다면서 결국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중에 해결할 방법이 있겠지.
그 후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순조로웠다. 우리는 새해를 맞았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나는 기절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로 혼자 있을 때 그랬다. 기절해있는 동안 똑같은 꿈은 반복해서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하지만 누워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는 못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증상을 말해야하나 고민했지만 결론은 '아니오'였다.
하지만 사건은, 내 생일 며칠 전에 일어났다.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핑-하는 어지러움과 함께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 날의 꿈은 조금 더 잔인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설화와 한수영이 나를 흔들고 있을 때였다.
"야 너 또 쓰러졌어? 어디 아파?"
"음... 어라.... 아니야, 잠깐 잠들었었나봐."
"세상에 어느 멍청이가 밥 먹다가 잠에 들어! 너 얼굴 창백해져서 식은땀 흘리고 있었어! 이설화, 얘 상태 좀 체크해 봐 빨리!"
"아니, 괜찮다니까. 설화 씨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 주사 내려놔요."
이설화는 한수영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리코더만한 주사를 내 팔에 꽂으려고 했다.
"중혁 씨가 독자 씨 쓰러지면 바로바로 체크하라 그랬어요. 또 갑자기 사라지면 일행들이 많이 슬퍼한다고."
"....정말 유중혁이 그랬다고요?"
"네. 그러니까 빨리 팔 내놔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순순히 채혈 당하고 2시간 동안이나 설화 상태 체크를 받은 후 나온 진단은 '이상 없음'이었다. 한수영은 이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놀랬잖아!"
"니가 왜 놀래? 당사자가 제일 놀라야지."
"나는 뭐 동료 걱정도 안 하냐?"
"ㅇㅇ"
"빡치게 라파엘 말투 쓸래? 너 몸 관리 잘해야 돼. 알지?"
"야, 내가 한 번 쓰러진거 가지고 한수영한테 걱정도 받고. 나쁘지 않는데?"
"아 김독자 진짜!"
한수영은 화를 내며 나를 넘어뜨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무래도 한수영의 성격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역시 김독자는 고자가 맞다고 중얼거립니다.]
"우리엘, 보고 있었어요?"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밥 먹는 것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지금 가고 있으니 가만히 앉아있으라 명령합니다!]
메세지를 다 읽기도 전에 눈 앞에 날아들어온 우리엘은 내 볼을 감싸안으며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독자야!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너 밥은 잘 먹고 있나 보다가 쓰러진거 보고 바로 달려왔어!"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근데 오늘 대천사 회의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 그딴거 알게 뭐야! 독자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내가 [에덴] 특효약 가져왔으니까 천천히 먹어."
그녀가 꺼내든 것은 [에덴 산양유]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최고급 회복 용품을...
"이따 먹을테니까 얼른 돌아가세요."
"꼭 먹어야 돼? 계속 너 보고 있을거니까 거짓말 하지 말고!!"
겨우 우리엘을 돌려보냈는데 이번에는 위층에서 황급히 사람들이 내려왔다. 한수영이 내가 쓰러진 것부터 그대로 떠벌렸나보다. 집요한 일행들의 질문과 의심 공세에서 빠져나오느라 2시간이 더 걸렸다. 이제는 쓰러질 때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겠다. 하지만 어떻게? 기절하는 현상은 일정한 규칙 없이 일어났고, 증상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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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나의 생일이다. 내가 태어난 날과 같이 음력 설날 당일이었다. 나는 그냥 조촐하게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말했고, 모두들 찬성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듯이 사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하는 시점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행복한 얼굴로 돌아보는 그들에게,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김독자 소멸까지 남은 시간
252일 10시간 29초]
5화가 너무 늦었네요. 추석 기간 안에는 올려야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올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연휴 기간 동안 하나 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