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앞이 보이지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어제까지 보이던 제 눈은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금이 몇시인지, 해가 떨어졌는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일어났을 때에 몇시였을지는 모르지만 매일 아침 8시에 10분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진 줄 알았지만 폰을 찾으러 서랍 위를 더듬다가 무언가를 떨군 것 같았는데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양쪽 귀에 번갈아 박수를 치기 전까지 저는 제 청력을 잃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저는 너무나도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잃은 이런 감각들은 시력, 청각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제 몸을 만지거나 제가 무언가를 만질 때에는 그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접촉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바람도 햇빛도 그 어떤 냄새도 맛을 제외해서 거의 대부분의 감각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주방으로 찾아갔을 때에도 냉장고 안의 냉기는 물을 찾으러 이곳 저곳을 더듬기전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는 냉장고의 전원이 나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죠. 제가 짚은 물병은 차가웠습니다.
이 모든 좆같은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미각을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크바스를 맛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거지같은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쪽지를 현관에 붙여두겠습니다.
이 쪽지를 읽을 사람이라면 아우에조프 관계자거나 배달원정도일꺼라 생각됩니다.

아니더라도 이 쪽지를 다 읽었다면 사정을 이해했으리라 믿으며 부디 안으로 들어와서 저를 찾았다면 제 팔을 붙잡아주세요.

저는 소리도 무엇도 보지도 못합니다.
제 팔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적고 저를 병원으로 인도해주세요.

쪽지가 날아가거나 하는 대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제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이 쪽지를 확인할 테지만 혹시나 이 쪽지를 읽으시면
" 13, Улица Эрсталь, альфа-блок "
으로 오시면 저를 찾을 수 있으실 겁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