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라는 게 뭘까.



나무위키를 열심히 읽은 챈럼들이라면 알다시피, 원래 좀비라는 게 아이티랑 미국 뉴올리언스 같은 곳의 부두교에 존재하던 개념이었어 


그런데 부두교에서 좀비는 사실 미지의 힘으로 발생해서 서로 뇌를 파먹고 여기저기 전염되는 게 아니라, 부두교 사제가 직접 만드는 거였지.


그렇다면 좀비를 왜 만드느냐?


바로 일종의 형벌에 가까웠음. 부두교를 믿는 아이티 사회공동체에도 나름의 사회적인 관습, 도덕률 같은 게 있고 그걸 어긴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 예컨대 살인이나 강간 같은 극악무도한 짓을 했거나 주변 인물들을 이간질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등 공동체를 망가뜨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사회의 룰을 어겼고, 사람들의 원한을 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자기가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 그래서 언제나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함. 이게 일종의 자기 암시처럼 작용해서 실제로 사제들이 좀비로 만들 때 효과가 크다고 해.


참고로 부두교에선 사제가 세 종류가 있음

호웅간(houngan), 맘보(mambo), 보코르(bokor) 이렇게 세 가지


(호웅간)


호웅간은 다른 종교의 전통적인 사제와 비슷하게 종교의식을 집행하고, 사람들의 심리 케어를 해주고, 복을 빌어주는 등 역할을 함. 맘보는 여성 사제인데 그다지 위상이 높지는 않다는 거 같다., 얘네는 좀비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음


(보코르)


좀비를 만드는 건 바로 보코르로, 이 사람들은 일종의 어두운 측면을 담당하는 사제라고 보면 될거 같아. 호웅간은 빛의 사제, 보코르는 어둠의 사제 대충 이렇게 구분 가능함. 근데 사실 부두교는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가르는 종교는 아니라서, 저걸 그대로 선 성향, 악 성향으로 보면 또 안 돼.


보코로는 매우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서 좀비를 만드는 데, 이때 꼭 필요한 기술이 저주걸기와 좀비약 만들기 두 가지 였음


저주는 현실적으로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줄 순 없겠지만, 나름의 공포심 유발효과가 있었겠지


이미 죄를 지어서 두려움, 초조함 이런 걸 느끼는 사람 입장에선 사회에서 존경받는 보코로 사제가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청나게 위축이 되고, 자기 암시효과도 꽤 컸을 거 같음



그리고 중요한 건 가루약 만들기인데, 여러가지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지만 가장 중요한 게 밑에 세 가지였어


1. 크라포 드 메르crapaud de mer의 독



크라포 드 메르는 프랑스어를 직역하면 '바다의 두꺼비'라는 뜻인데 검색하면 대충 저렇게 생긴 놈이 나온다. '녹점술아귀'라고 아귀의 일종인데 얘네는 복어랑 거의 비슷하게 테트로도톡신을 갖고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생선임


이 녀석의 독이 주입되면 살갗 아래로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네. 또 소화불량에 저체온, 체중감소, 고혈압 등을 겪으면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는다가 마비증세를 보인다고 함


물론 테트로도톡신을 직접 먹으면 먹은 사람은 그대로 골로 갈거야. 

그래서 보코르들은 독약의 독성과 정확한 투여량, 투여 방법에 대해 잘 알아야하고, 저걸 희생자가 먹을 음식에 직접 먹으면 안 된다고 하네. 대신 저주를 외우며 상대의 피부나 상처부위에 극소량을 문지르는 방식으로 활용한다고해


또 재밌게도 테트로도톡신 중독 증세 중에 '자기임사체험'이 있을 수 있다고 함. 희생자들은 자신이 무덤 위에 붕 떠 있고 벌어지는 일들을 인지한다고 느낀다네.


2. 부포 마리누스Bufo Marunus의 독 



부포 마리누스는 맹독성이 있는 파나마왕두꺼비인데, 대충 아이티 등등이 있는 중앙아메리카 곳곳에서 살아간다고 함. 이 녀석들의 독이 아주 맹독은 아닌지, 거기 원주민들이 여러 용도로 쓰기도 함. 두꺼비의 고기 자체는 식용으로도 쓰이고 현지 원주민들은 이 놈들 독을 채취해서 환각용 마약 같은걸로 피우기도 함


영화 아포칼립토에 나왔던 화살촉개구리로 독화살 만드는 거랑 비슷한 용도로도 쓰이지 않았을까 싶어


이 두꺼비는 여러가지 독을 내뿜는데, 특히 '부포테닌bufotehnin'이라는 화학물질이 좀비약 재료로 쓰임. 사람한테 부포테닌을 투여하면 통증과 구토, 호흡곤란을 느끼다가 환각과 망각 증세 등등을 보인다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마약ㅇㅇ


그리고 환각 상태로 일시적으로 체력도 세지고 호전적으로 변해서 미쳐날 뛰게 된다고 함. 그래서 이 약을 써서 좀비를 만들 땐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 필요하고 좀비가 된 직후 여럿이서 두들겨 팬다음 묶어놔서 순종적인 상태로 만들어야해.


3. 다투라 스트라모니움Datura stramonium 



흰독말풀, 

아이티인들은 콩콩브르 좀비conconbre zombi, 즉 좀비의 오이라고 부르는 풀.

원래 북중미 지역에 사는 인디언 부족은 이 풀의 잎을 으깨서 연고를 제조해왔고, 그걸 몸에 발라서 일종의 마약에 취한 희열을 느꼈다고 함


원래 원주민들 문화는 아니고, 중세 유럽의 음지에서 전해지던 문화였는데 대충 스페인 침략자들을 통해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 것을 강제로 먹으면 어느 정도 독약의 중화제로 작용하게 됨. 또 다투라 풀은 많이 먹으면 섬망 상태에 빠졌다가 기억상실을 일으키기도함


실질적으로 좀비 상태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식물이기도 하다네. 테트로도톡신, 부포테닌으로 가사상태가 되어 묻힌 희생자가 깨어나면, 보코르가 좀비가 된 희생자한테 다투라로 만든 약을 먹여서 최종적으로 좀비 상태가 되게 만든다고. 


이외에도 사람의 뼈조각, 뇌석, 자극적이고 가렵게 만드는 식물들 등등을 때려넣어서 좀비약을 만듬. 대충 중세 마녀들이 커다란 가마솥에 온갖 괴상한 재료들을 다 때려넣고 마법약 만드는 거랑 꽤 비슷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카포 드 메르의 독(테트로도톡신)으로 희생자를 가사상태로 만들고, 희생자가 죽었다고 판단한 주변인들이 무덤을 만들어 매장하게 함


2. 희생자를 끄집어 낸 후 부포 마리누스의 독(부포테닌)으로 기운이 나게 만들되 몽롱한 상태로 육체적 힘만 일어나게 만듬 -> 두들겨 패서 복종하게 만듬


3. 다투라 풀을 먹여서 다른 독의 효과를 중화시키지만, 정신에 혼란이 오고, 기억상실이 와서 완전히 자의식을 잃고 노예가 됨.


이렇게 써놓으면, 그냥 재료만 구할 수 있으면 누구나 좀비를 만들 수 있을거 처럼 굉장히 쉽게 느껴지지만, 저거도 나름대로 전문적인 작업이고 재료의 분량이나 상태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잇는 사람들만 만드는 거겠지. 조금만 어긋나도 희생자가 그대로 골로 가버리니까.



또 들어가는 재료의 상당수가 마약이니까, 우리가 마약중독자 하면 생각나는 그 흐리멍덩한 눈빛에 흐느적거리는 모습이랑 좀비의 이미지가 비슷해 보이는 것도 당연함... 저기에 좀비는 무덤에 들어갔다 나와서 너저분하기도 하고


그리고 사람이 저 지경이 되면 당연히 트라우마+여러가지 약물에 중독 효과의 콜라보니까 해독제 같은거도 의미가 없고, 그냥 그대로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라고 봐야겠지. 약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자아를 잃고, 자신을 좀비로 만든 이의 노예가 되어 지배당하게 되는... 

그래서 아이티인들에겐 좀비가 된다는 게 굉장히 공포스러운 거였다네.


이 내용의 출처는 <<The Serpent And The Rainbow>>라고, 웨이드 데이비스라는 민속학자가 쓴 르포 작품임.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있을텐데, 직접 찾아서 읽어봐도 흥미로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