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봐! 대피 끝났어! 어서 이거 날리고 튀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폰, 미사일 준비됐니?”

“되긴 됐는데, 정말 괜찮겠어? 파편 잘못 날리면 둘 다 큰일 나는데?”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냥 쏴! 야, 꼬맹이! 넌 고개 숙이고 있어!”

 

옆에서 온몸을 꿈틀거리며 노발대발하는 벌레가 하라는 대로 고개를 숙이자, 벌레가 내 품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으으으...기분 이상해.”

“...나라고 남정네 품속에 안기고 싶겠어? 그래도 일단 살고 봐야지. 좋아! 준비 끝! 발파해!”

“아 몰라! 난 경고했다? 다치면 내 책임 아닌 줄 알아!”

 

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폭발한 돌무더기의 조각들 몇 개가 날아들었지만, 다행히 고개를 숙여둔 덕에 큰 부상은 없었다.

 

“어우, 흙먼지 봐. 인간! 괜찮아? 최대한 약한 거로 쏘기는 하기는 했는데.”

“네...조금 눈이 따갑긴 한데, 상처는 없어요.”

“예스! 자유다! 여기서 며칠 더 있었다가는 폐소공포증에 걸렸겠네.”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앞을 보자, 두 명의 소녀와 개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인간님. 전 콘스탄챠 S2라고 해요. 이 아이는 P/A-00 그리폰이라고 합니다. 혹시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그러니까, 내 이름? 어...”

 

머리가 뿌옇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흠. 아무래도 일시적인 기억상실이 일어난 모양이네요. 안전한 곳에서 간단한 검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전한 곳이 어디 있냐는 건 둘째 치고, 그럴 인원이 있어? 닥터도 없고, 다프네도 없고. 그나마 리리스 경호대장이 구급상자를 들고 다니기는 하는데 지금은 흩어졌잖아?”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안전한 곳은 아직 남아있잖아? 그나저나, 다른 인간님 한 분은 어디 계신 거지? 뇌파는 분명 둘 있었는데?"

 

콘스탄챠씨의 말에 품 안에 있던 벌레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후우, 언제 부르나 했네. 반가워, 둘 다. 내 이름은 그냥 그레고-으아아악!”

“움직이지 마! 인간님! 그거에서 손 떼세요! 당장!”

“쳇, 이럴 줄 알았으면 단검이라도 챙길걸! 인간, 죽기 싫으면 그거 던져!”

 

품 안의 벌레를 보고는 무기를 겨누는 콘스탄챠씨와 근처에 있던 철근을 뽑아들고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그리폰씨, 그리고 옆에서 이를 드러내며 그르릉거리는 개까지, 한순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 미, 미안. 지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 분을 뭐라고요?”

“그냥 던지라고! 지금 품 안에 있는 그게 ‘분’을 붙일 게 아니야!”

“인간님? 지금 품 안에 이는 그건 철충이라는 생물의 유충이에요. 이 지구에 있던 수십억 분의 인간님을 죽인 종족이죠. 지금 당장 그걸 던져버리세요.”

“아니아니, 나도 할 말 있어! 난 억울하다고!”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보나 마나 우리를 유인해서 한꺼번에 처리할 작정이었겠지!”

 

정말 나를 죽일 목적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나를 깨울 때 은근히 아팠던 것 같다.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세게 때린 거였나?

 

“야, 야, 야! 넌 왜 또 그런 표정인 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내가 널 죽이려 했으면 애초에 널 깨웠겠냐?”

“인간을 살린다는 빌미로 탈출구를 만들려고 할 걸 수도 있지!”

“내 몸뚱이가 이런데 그냥 틈새를 찾아서 거기로 빠져나갔겠지! 아니면 지금 우리한테 몰려오는 저 철충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던가!”

“...지금 철충이 온다고? 콘스탄챠!”

“그리폰, 미사일 준비해! 인간님, 지금 상황이 아주 혼란스럽긴 하겠지만, 제 말에 따라주세요! 우선 그 철충 유충부터 품에서 놓으시고, 제 뒤를 따라오세요!”

 

콘스탄챠씨의 말대로 벌레를 땅에 내려놓고 뒤를 따라갔다. 등 뒤에서 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벌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르르르...”

“어허, 앉아! 앉아! 침 흘리지 말고! 떽!”

“저 둘, 괜찮을까요?”

“보리는 괜찮을 거예요. 철충 쪽은...괜찮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호기롭게 시작하기는 했는데, 늘 그랬듯 처음 구상했을 때만큼 아이디어가 안나온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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