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팍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Ryan 글자 덕에 4주차 캐릭터 중에서 가장 쉽게 들통난 캐릭터다.


메지로 맥퀸에 이어 두번째로 등장한 메지로 일족. 일러스트도 맥퀸과 똑같이 irua가 그렸다.

기본적인 컬러링은 맥퀸과 같지만 메지로 상사 명의라 소매가 청록 단색이었던 맥퀸과는 달리 라이언은 메지로 목장 명의라 세로줄무늬.

바싹 깎아 '라이언 컷'이라 불렸던 짧은 갈기는 숏커트로 반영했다. 

네 발이 모두 흰색인건 부츠와 장갑의 색깔로.


샘플보이스의 체중계와 근육량 네타는 커리어 내내 500~520kg대를 왔다갔다하던 큰 몸에 목과 다리가 굵직굵직했던 체형에서 온듯.

실제로도 파워가 필요한 불량 주로에서 강했던 말이기도 하고.

우마무스메의 신(神樣)이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래의 아리마 기념 파트에서.


1967년에 개업해 2011년에 폐업하기까지 일반/장애물 통합 30개가 넘는 GI 타이틀을 차지하며 명문으로 이름났던 메지로 목장. 

그 명가에서도 1987년은 특별한 해였다. 훗날 GI을 우승하는 말이 한꺼번에 셋이나 탄생했던 것. 


GI 4승, GII 5승에 일본 사상 처음으로 상금 10억엔을 돌파했던 메지로 맥퀸, 

92년 춘추 그랑프리를 석권한 메지로 파머, 

91년 다카라즈카 기념을 제패한 메지로 라이언. 

셋다 이름을 인명에서 따왔는데, 맥퀸은 스티브 맥퀸, 파머는 아놀드 파머, 라이언은 놀런 라이언에서 따 온 이름. 

데뷔 전의 평판으로는 맥퀸과 라이언, 그 중에서도 라이언이 좀더 평판이 좋았다. 

'경마의 신'으로 불리던 평론가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아버지 앰버 샤다이와 닮았으면서 좀더 완성된 체형이라 평가했고,

라이언의 커리어 내내 매 경주마다 주목할 경주마로 라이언을 꼽는걸 빼먹지 않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89년 7월 하코다테에서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3세(현 기준 2세) 시즌을 시작했지만 

어린 티를 벗지 못해 똑바로 달리는것조차 힘들어 4전째에 겨우 첫 승을 거두고, 6전째에 두번째 승리를 차지.

그 와중에 가려움증 덕에 목을 긁다가 갈기가 와장창 빠져 궁여지책으로 갈기를 바싹 깎았는데,

그 때 이후로 특유의 '라이언 컷'은 은퇴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6전째의 승리를 기점으로 자질이 드러나 3연승.

그 중에서도 사츠키상 트라이얼인 90년 3월의 야요이상(GII, 2000m)에선 불량 상태의 마장에도 아랑곳않고


마군의 한가운데에서 불쑥 뛰쳐나와 완승. 사츠키상을 포함한 클래식 최유력 주자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라이언의 안장 위에 있던 건 4년차의 젊은 기수 요코야마 노리히로. 조교사 오쿠다이라의 조카이기도 했던 그는

이때 자신만만하게 "골인하는 순간 앞일이 다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사츠키도, 더비도"라고 코멘트했다.



...누가 봐도 확실한 플래그. 거기다 요코야마는 '노리가 큰소리치면 진다'는 경마계의 징크스로 유명한 기수인데,

이 징크스의 시작은 하필 이 라이언에서부터였다. 2번 인기로 출전한 사츠키상에선


직선 코스에 들어섰을때 마군의 중단에서 앞 진로가 막히며 추진 타이밍이 늦어졌고,

하쿠 타이세이가 아이네스 후우진과 문전에서 경합하며 승리하는 사이 두 마리에 미쳐 닿지 못하고 3착.


한달 후의 더비는 메지로 목장과 기수 모두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츠키는 전개의 실패, 실력은 확실하다는 평가였고, 오구리 캡 열풍으로 폭증한 경마 붐 덕에

더비 당일에 몰려든 관중은 무려 20만명에 육박했고, 라이언은 당당히 단승 인기 1위에 올랐지만,


전방에서 하이페이스로 도주하던 아이네스 후우진을 1마신차로 따라잡지 못해 더비의 꿈은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하필 이 경주 직후 일본 경마 사상 처음으로 관중들이 기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나카노 콜'이 터지며

경마가 도박이 아닌 스포츠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점으로 두고두고 기억되는 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것.

목장 비원의 더비를 놓치고, 명장면의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전락하자

패기가 넘쳐 오만하기까지 했던 요코야마도 면목이 없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아직 클래식 중 가을의 킷카상(GI, 3000m)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봄 클래식의 주인공이었던 하쿠 타이세이와 아이네스 후우진은 부상으로 이탈,

가을 복귀전인 교토 신문배에서 쉽게 승리한 메지로 라이언은 다시한번 킷카에서도 단승 인기 1위로 꼽혔지만..


우승한 말은 메지로였는데 라이언이 아닌 맥퀸이었다.

늦게, 그러나 확실하게 거물로 성장해 온 목장 동기가 눈앞에서 승리를 채간 것. 라이언은 3착.


로테이션상 남은 기회는 연말의 아리마 기념(GI, 2500m). 라이언을 유독 아꼈던 메지로의 수장 키타노 미야 여사는

라이언에게도 GI을 이기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맥퀸을 아리마 기념에서 빼버리면서 판을 깔아줬다.

당일 단승 인기 1위는 화이트 스톤, 2위가 목장 1년 선배 메지로 아르단, 그리고 3위가 라이언이었다.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우승 유력 후보로 라이언을 꼽았지만...


결과는 한물 갔다고 생각되던 오구리 캡의 거짓말같은 은퇴전 우승이었다.

나카야마 경마장에 운집한 17만 관중이 미쳐 날뛰며 '오구리 콜'을 하고(경주마 이름을 연호한 건 이때가 사상 처음)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등 모두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사이

메지로 라이언은 이번에도 2착.

90년 더비와 아리마 기념. 일본 경마사에 큰 터닝포인트가 되는 두 경주에서 모두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어버렸다.


실황에서 아나운서가 오구리 캡에 집중하며 중계하는 사이사이에 "라이언! 라이언!"을 외치는 게 들리는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해설석에 앉아 있었던 오오카와 케이지로의 것.

보기 드물게 실황에 해설의 목소리가 끼어든 탓에

당시에도 화제가 되어 '저 영감이 라이언 마권을 들고 있었나?' 등의 억측이 오가기도 했다.

본인의 해명은 아나운서가 오구리만 외치고 있어 2착으로 육박하는 말도 얘기해야 하지 않나..하는 거였다는데, 진실은 본인만 알 일.


해가 바뀌어 91년. 특기인 중거리의 나카야마 기념(GII, 1800m)에서 복귀하지만 유키노 선라이즈를 잡지 못하고 2착.

이어진 천황상·春(GI, 3200m)에서도 다시한번 메지로 맥퀸이 우승하는 사이 볼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4착으로 전락한다.

이쯤 되고 보니 자질이 있으나 GI을 이기질 못하는 라이언에게 동정이, 그리고 기수인 요코야마에게 비난이 쏠리면서

기수 교체론까지 나왔으나, 요코야마 본인의 간청과 키타노 여사의 신임에 힘입어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설욕의 기회를 노리며 이를 갈고 있던 요코야마와 라이언에게 찾아온 다음 찬스는 상반기 그랑프리인 다카라즈카 기념(GI, 2200m).

중거리에서도 맥퀸에 이기지 못한다면 평생 맥퀸보다 아래로 평가받을 거라는 조바심.

자신보다 1년 늦게 데뷔했지만 이미 슈퍼스타가 되어 있던 맥퀸의 기수 타케 유타카에 대한 미묘한 경쟁의식.

이 모든게 합쳐져 '이번만은 질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경주를 준비했고, 



3코너에서 먼저 선두로 나오는 승부수를 걸더니, 맥퀸의 직선 맹추격을 뿌리치고 승리했다.

3번만에 거둔 對맥퀸 승리, 그리고 6번의 도전 끝에 거둔 비원의 GI 승리였다.

항상 '라이언이 가장 강하다'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던 요코야마.

이기게 하지 못한 빚을 그제서야 갚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랬던가, 여름 휴양중 굴건염이 발병해 장기 휴양후 91년 아리마 기념에 복귀했으나

다이유우사쿠가 맥퀸을 제치는 대이변을 일으키는 와중에 12착으로 대패,

AJCC에서 6착 후 닛케이상에서 승리하며 재기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굴건염이 재발,

그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다. 


동기 중에선 가장 GI 승수가 적고 가장 빨리 은퇴했으나, 은퇴후의 씨수말 성적으로는 그중 단연 최고였다.

샤다이에서 들여오는 토니 빈, 선데이 사일런스 등의 외국산 씨수말에 내국산 씨수말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는 와중에

첫해 자식부터 GI 5승 암말 메지로 도베르, 98년 천황상·春 우승의 메지로 브라이트라는 두 거물을 배출하는등 대활약.

2007년까지 씨수말 생활을 계속했다. 수정 확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씨수말을 은퇴한 후에는 공로마로 여생을 보내며

해마다 근처인 하코다테 경마장에서 현역때의 콤비였던 요코야마와 함께 일반 팬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코다테에서 현역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경쾌하게 달린 두 콤비.


2011년 메지로 목장 폐업 후에는 레이크 빌라 팜으로 이동,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아들인 메지로 브라이트, 동기인 파머와 맥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와중에도 건강하게 장수하다

29세의 나이로 2016년 3월 17일에 사망했다.


'자신에게 경마의 어려움을 가르쳐 준 말' '자신을 기수로서 성장시킨 말'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던 요코야마는 라이언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직접 사비를 들여 라이언의 납골함과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자질이 뛰어나 항상 우승 유력 후보로 꼽히면서도 지기를 거듭했지만

지면 질수록 묘하게 인기가 늘어나 맥퀸보다도 훨씬 팬들의 인기를 끌었던 말이었다.

실력과는 달리 실전에선 항상 고전하며 아깝게 지는 모습에 동정을 샀던 것인지.

출중하게 강했던 맥퀸이 의외로 인기가 높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

화려한 시대의 명조연으로 활약했으며, 팬들의 축복 속에 기어코 GI 타이틀을 따냈고, 씨수말로도 성공한 좋은 마생이었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33 - 메지로 라이언(メジロライアン)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