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 서폿카드의 명실상부 1티어 슈퍼마망)


힌트가 유망한 연하의 트레이너를 한사람 몫으로 키우는게 취미라는 

오네쇼타물에 나오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체형의 우마무스메.

트레이너 네타가 대개 실제 기수와의 에피소드로 통하는걸 생각하면

여기 나올 말들 중에 그럴 말은 단 하나다. 천재를 천재로 만든 말. 슈퍼 크릭.


오른어깨에서 비껴 걸친 파란색 백의 끈, 흰색인 왼발이 식별 포인트.

얼굴이 크기로 유명한 말이지만 모에화에 얼굴을 키우긴 뭐했는지 대신 흉부지방이 대폭 커졌다.


이렇게 보면 얼굴 큰지 잘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면 티가 심하게 난다. 특히 볼이 아주 빵빵...




타케 유타카(武豊)란 기수가 있다.


기수/조교사인 타케 쿠니히코의 3남으로 태어나 87년 3월 1일에 데뷔, 31년째 기수 생활을 하며

17년 5월 1일 현재 JRA 3890승, 지방 해외 통합 4060승. 국내외 GI 112승, 연간 최다승 18회,

일본 중앙 기수 중 최다 기승, 최다 승리, 최다 중상 승리, 최다 GI 승리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48세인 지금도 현역을 지속하며 위의 기록들을 계속 경신중인 역대 No.1 기수다.

일반인들의 인지도도 단연 최고라, TV에서도 이쪽 관련 프로나 와이드쇼, 토크쇼의 단골 손님.


30년 넘게 최정상 레벨에서 군림하며 수없는 명마들과 짝을 이뤄 왔기 때문에

우마무스메 판에서도 전에 잘린 넷을 빼고서도 지금껏 등장한 35마리중

한번이라도 타 본 말이 18마리, 주전이라고 할 수 있었던 말이 12마리.

그런 명기수답게 겨우 데뷔 2년차, 19세의 나이로 첫 GI을 따냈는데, 그 파트너가 바로 슈퍼 크릭이다.


슈퍼 크릭은 막판까지 주인이 정해지지 않아 생산자의 속을 태우던 녀석이었다.

왼쪽 앞다리가 밖으로 휘어있다는 결점도 결점이지만,

아버지 노 어텐션, 어머니 나이스 데이, 외조부 인터메조라는

스피드 따위는 전혀 고려 없이 스테이어(장거리 경주마)로 배합된 혈통.

일본 기준으로도 이미 한두물 간 배합이라 인기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을 꽤 괜찮게 본 이토 슈우지 조교사가 수소문한 끝에서야 겨우 810만엔에 팔렸다.


이름은 지금은 작은 개울(creek)이지만 나중엔 큰 강이 되라는 의미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주가 골프치다가 개울에 공을 쳐박아서 되는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라는 비공식적인 썰도 있다.

싼 구입가에 걸맞게 기대도 별로 높았던 것 같지 않고, 실제로도 3세(현 2세) 여름에 데뷔시키려다

심한 설사로 드러눕는바람에 12월에나 겨우 늦깎이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관서 최고 기수였던 타바라 세이키가 고삐를 잡고 2전째에 첫 승리. 소질을 드러냈다.

이때 2착을 하던 말에 타고 있던 타케 유타카도 슈퍼 크릭에 감탄하며 눈여겨 보았고,

5전째인 스미레상 때 안장이 비면서 드디어 타케 유타카가 기승하게 됐다.

기대하던대로 낙승하면서 클래식 무대의 유력 주자로 부상,

유타카도 '이 말로 첫 클래식 무대!' 라며 내심 기뻐했지만 아오바상을 앞두고 골절, 사츠키도 더비도 포기해야 했다.


골절치고는 경미한 부상이라 킷카상(GI, 3000m)을 목표로 9월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장기 결장으로 상금이 모자라 킷카상 출전이 빠듯하다는 것이었다.

복귀전인 고베 신문배(GII, 2000m)에서는 3착,

다음 경주인 교토 신문배(GII, 2200m)에선 5착 이내에만 들면 우선 출주권을 딸 수 있었지만

다른 기수의 채찍이 슈퍼 크릭의 안면을 강타하는 뜻밖의 사고에 휘말려 6착에 그쳤다.

그 결과 우선 출주권 획득 실패, 킷카상 엔트리중 상금순위 공동 19번째로 자력 출주 불가능.

앞의 18마리중 최소 한마리는 출주를 포기해야 1/2 확률 추첨으로라도 길이 열리는 상황.


타케 유타카는 이미 출전 가능한 3마리에서 기승 의뢰가 와 크릭이 아니더라도 킷카상에 나갈수 있었지만,

"크릭이 안되면 킷카상에 나가지 못해도 어쩔수 없지요"

라는 말로 본인의 의지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나갈수만 있다면 이 말로 이긴다는 절대적 신뢰.


이때 나타난 구원자가 오카다 시게유키. 마이네르 군단으로 유명한 클럽 법인 러피앙의 총수.

말을 보는 감식안이 뛰어나고 슈퍼 크릭의 혈통 배합에도 직접 관여했던 그가

이미 출전이 가능했던 마이네르 프리셰를 클럽 회원들을 설득해가면서까지 출전을 취소시킨것.

'프리셰는 가능성이 낮지만, 크릭이라면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조교사와 싸우면서 밀어붙였고,

마이네르 프리셰의 결장과 또 한마리의 추가 결장으로 추첨 없이 킷카상에 참전하는데 성공했다.


최외곽에 가까운 17번 게이트에서의 출발이었지만

타케 유타카와 슈퍼 크릭에게 그정도 핸디캡은 문제도 아니었다.

마군 안에서 달리고 있다 3코너를 돌며 인코스에 바짝 붙여 돌았는데,

이것은 선두로 달리던 카츠 토쿠신을 이전에 타서 습성을 파악한 타케 유타카의 전략이었다.

'저 말은 직선에만 들어서면 밖으로 기댄다. 분명 인코스가 빈다!'

그의 예상대로 4코너를 돌자마자 눈앞이 열렸고,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더비마 야에노 무테키가 밖으로 나가려다 탄력을 잃고 헤매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코스로 거칠것 없이 뻗어나온 슈퍼 크릭은 무려 5마신차의 완승.

유타카, 이토와 오카다의 안목과 고집이 인정받는 승리였다. 타케 유타카는 데뷔 2년차에 GI 승리.


이 승리의 결과로 타케 유타카는 일약 전국구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때는 88년, 지방에서 이적해온 오구리 캡의 연승 행진으로 경마계 밖에서까지 큰 붐이 일어나고 있었고

취재거리를 찾아 헤매던 언론들에게 19세의 나이로 GI을 우승한 기수,

기수치고는 큰 170cm의 키에 깔끔한 외모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젊은 천재로 내세우기 좋았던 것.

이 해부터 시작된 전국 레벨의 경마 붐은 말 쪽에서는 오구리 캡이, 기수 쪽에서는 타케 유타카가 쌍끌이를 했다.


88년을 결산하는 아리마 기념, 오구리 캡과 타마모 크로스의 회색말 정상결전 3차전.

결과는 이전에 이야기했던대로 2전 3기 끝에 오구리 캡의 복수전 성공.

그들 바로 뒤에 3착으로 들어왔던 것이 슈퍼 크릭이었으나

아직 젊은 탓인지 러프한 플레이로 메지로 듀렌의 진로를 막으면서 실격.

오구리 캡의 언더독 스토리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무대의 뒤안길에서 

타케 유타카는 쓴 입맛을 다시며 내년을 기약했다.



그리고 헤이세이 연호의 시작과 함께 헤이세이 3강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89년의 목표는 스테이어 혈통답게 장거리 경주의 최고봉인 천황상·春(GI, 3200m).

그러나 준비 도중 근육통으로 천황상을 회피하고 상반기를 통째로 쉬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재대결을 고대하던 오구리 캡도 부상으로 상반기 결장.

조강지처를 잃은 타케 유타카가 이 상반기에 타게 된 파트너는 바로

또다른 지방 이적생, 헤이세이 3강의 마지막 한 조각인 이나리 원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환경 부적응에 까탈스러운 성격이 더해 범주를 거듭하던 이나리 원은

타케 유타카가 타자마자 일변, 천황상·春과 다카라즈카 기념을 연파, 

언제 고전했냐는듯 삽시간에 GI 2승마가 되었다. 


...그리고 슈퍼 크릭이 복귀하자마자 타케 유타카는 이나리 원을 버리고 슈퍼 크릭으로 돌아갔다.

GI 2승의 실적도 전혀 고민의 여지가 되지 않는 조강지처의 힘.


신체적으로 완벽하게 충실해져 돌아온 슈퍼 크릭은 복귀전부터 힘을 화려하게 과시했다.

교토 대상전(GII, 2400m)에서 상대의 페이스에 맞춰주기만 하다 레코드를 갈아치우며 완승.

다음 경주는 드디어 작년 연말 이후 처음 오구리 캡과 마주치는 천황상·秋(GI, 2000m).

마이니치 왕관에서 이나리 원과 코 차이의 명승부를 벌이며 승리한 오구리 캡.

작년 타마모 크로스에 이은 2착이라는 실적도 있고, 거리상의 적성으로도 슈퍼 크릭 쪽이 미묘하다는 평.


타케 유타카는 아이돌처럼 모든 인기를 빨아모으며 다른 말들을 악역취급받게 하는 오구리가 탐탁치 않았다.

탐탁치 않은 것과는 별개로 그의 무시무시한 힘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고심끝에 선행 포지션을 잡았다.

초반부터 3번째 위치에 붙어 페이스를 느릿하게 유도하고 직선에서 남겨둔 힘을 폭발시키는 방법.


예상처럼 오구리 캡이 비호처럼 날아들며 뒤통수까지 쫓겼지만 골 앞을 먼저 지나간 건 슈퍼 크릭이었다.

오구리 걸즈의 한탄과 유타카 걸즈의 환호가 교차했다. 슈퍼 크릭의 GI 2승째.

그것도 혈통상으로는 어려울 거라던 중거리에서 얻은 귀중한 승리였다.


이어진 한달 후의 GI은 2400m의 재팬 컵. 천황상보다 400m 길어졌으니 크릭에게 더 유리할 거라는 전망.

거기다 오구리 캡은 연초에 탈세 문제로 마주가 바뀌고 새 마주가 인수 자금을 벌충하기 위해

가혹한 로테이션을 짜고 있었다. 89년에 오구리 캡이 9월부터 12월까지 치른 경주는 무려 6경주.

심지어 이번 재팬 컵은 바로 지난주 마일 챔피언십(GI, 1600m)을 치르고 단 1주만에 참가하는 경주였다.

그 마일 챔피언십에서 뱀부 메모리에 타고 오구리 캡에게 코차로 역전당한 타케 유타카는

그 정도의 격전을 치르고 1주만에 피로가 회복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븐 베이가 주도한 초 하이페이스 도주에 휩쓸려 모두가 나가떨어져버린 가운데

2분 22초 2라는 2400m 세계 레코드를 갱신하는 홀릭스를 마지막까지 시간차 없이 따라잡은 말은

슈퍼 크릭이 아닌 너덜너덜해진 오구리 캡. 장거리 혈통의 스피드 부족이 하이페이스에서 발목을 잡았다.

오구리 캡은 가혹한 로테이션에 대한 동정까지 업고 '지고도 이긴 말'이라며 찬사를 받고,

4착에 그친 슈퍼 크릭은 역시 스피드 부족을 지적받아야 했다.


명예 회복의 기회는 연말의 아리마 기념에서 다시 찾아왔다.

젊은 혈기 때문인지, 토크쇼에서 '오구리 캡은 싫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모르겠고'라는 발언을 하여

안티 팬의 항의편지를 한다발 받을 정도로 오구리 캡에 대한 승부욕에 불타던 타케 유타카는

다시한번 철저하게 오구리 캡만을 타겟으로 잡고 때려 부수러 갔다.


선입이나 추입을 택하던 오구리 캡이 웬일로 흥분했는지 선행에 나서고, 

슈퍼 크릭은 철저하게 그 뒤에서 마크하는 형태로 진행된 경주.

직선에 들어서자 드디어 격주의 영향이 왔는지 뒷심이 떨어지기 시작한 오구리 캡을 제치고

슈퍼 크릭이 세번째 GI을 가져가는가 하는 순간 타케 유타카의 뒷목이 서늘해졌다.


천황상 6착, 재팬 컵 11착으로 잊혀져가던 이나리 원이 코차이로 슈퍼 크릭을 제치고 우승.

조강지처가 그렇게 좋냐고 외치는 듯한 강습이었다. 

타케 유타카는 경주 후 인터뷰에서 "쫓아온다고 하면 오구리쪽이라고 생각했다"며 예상밖의 패배에 낙담.

목전까지 왔던 GI 3승과 연도대표마의 영광도 코차이로 모두 이나리 원에게 갔다.


90년. 6세(현 5세)가 된 슈퍼 크릭이 매조지해야 할 상대는 이제 이나리 원 뿐이었다.

무대는 작년에 가지 못했던 천황상·春. 최대의 적은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이나리 원.

슈퍼 크릭은 오사카배를, 이나리 원은 한신 대상전을 거쳐 천황상의 임전 태세를 가다듬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슈퍼 크릭은 중단, 이나리 원은 후방에서의 진행.

4코너에 접어들자 슈퍼 크릭이 먼저, 그리고 이나리 원이 뒤따라 스퍼트를 걸었고,


1/2마신차로 슈퍼 크릭이 이나리 원을 따돌리며 리벤지 성공, 염원하던 장거리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타케 유타카도 자신의 천황상 3연패보다 크릭에게 스테이어의 훈장을 달아준 걸 기뻐했다고.


이렇게 절정기를 달리고 있던 슈퍼 크릭의 커리어는 갑작스럽게 끝난다.

하반기 복귀전인 교토 대상전을 가볍게 승리했으나 그 직후 계인대염이 발병, 그대로 은퇴해야 했던 것.

그리고 이 해 90년에 타케 유타카가 가장 많은 GI 승수를 올렸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슈퍼 크릭과 유타카 최대의 숙적이었던 오구리 캡이었다.

상반기 마일 챔피언전인 야스다 기념, 그리고 연말 그랑프리인 아리마 기념에 두번 핀치 히터로 기승해 둘다 우승.

특히 이미 천황상과 재팬 컵에서의 고전으로 한물 갔다고 여겨지던 시점, 은퇴전이었던 아리마 기념은

그야말로 17만 관중의 대환호가 함께 한 감동의 도가니였고, 

서로 물고 뜯던 오구리 걸즈와 유타카 걸즈의 대화합의 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경주 전에 이나리 원의 은퇴식도 열린 터라, 헤이세이 3강 시대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91년 1월에 은퇴식을 가진 슈퍼 크릭은 오구리 캡, 이나리 원과 동시에 씨수말 생활에 들어섰으나

자식들 중 두드러지는 성적을 내는 말은 없었다. 3강 중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

토니 빈, 브라이언즈 타임, 선데이 사일런스 등 외국산 씨수말의 물결에 밀려나가며 교배 횟수가 줄다

2003년 이후로는 사실상 교배를 중단하고 여생을 보냈다.


2008년경의 슈퍼 크릭. 현역때랑 똑같이 얼굴, 특히 볼이 빵빵하다.


2010년, 오구리 캡이 세상을 떠난 7월경에 상태가 악화되더니 8월 29일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25세.




여담 - 2016년 타케 유타카가 통산 4000승을 달성하자, 스포츠 잡지에서 낸 화보가 있다.


89년 천황상을 우승한 후 슈퍼 크릭의 승부복을 입고 표지 사진을 찍었던 20세의 유타카.

그리고 거울같은 포즈로 4000승 기념 사진을 찍은 47세의 유타카.


슈퍼 크릭이 있었기에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기수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40 - 슈퍼 크릭(スーパークリーク)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