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구슬, 마네키네코, 부적, 에마, 염주, 팔괘진, 클로버...

거기에 힌트와 보이스마저도 점과 징크스 타령.

이 캐릭터의 특성은 다름아닌 이름에서 왔다.


마치카네의 관명을 쓰는 마주 호소카와 마스오는 말 이름을 특이하게 짓기로 유명했는데

96년에는 데뷔시키는 두 마리의 말에게 笑う門には福来たる(웃는 집에 복이온다)라는 속담을 둘로 쪼개서

한 마리에겐 마치카네 와라우카도, 또 다른 한 마리에겐 마치카네 후쿠키타루라는 이름을 붙인것.

덕분에 영문 표기는 띄어쓰기 포함 18자 이내로 한다는 규정에 걸려

Machikane를 Matikane로 고치고 띄어쓰기 없이 붙여쓰는 삽질을 하며 Matikanefukukitaru로 간신히 맞췄다.

이렇게 촌티나는 이름을 붙이고 과연 이름대로 복이 왔을까..? 왔다.


96년 11월에 데뷔, 2전을 치르지만 승리 없이 97년의 클래식을 맞이했다.

3월부터 3전을 치러 2승 및 2착 1번. 

더비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더비 트라이얼인 프린시펄 스테이크스에 출전하는데,

여기서 마찬가지로 더비를 노리고 참전한 사일런스 스즈카와 처음 맞닥뜨렸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2번째 위치, 마치카네 후쿠키타루는 4~5번째 위치에서 레이스를 전개했고


직선에서 맹렬한 추격을 펼쳤지만 목 차이로 사일런스 스즈카를 따라잡지 못하고 2착.

다만 목표였던 더비 우선 출주권은 따내는데 성공했다.


일본 더비에서는 선행 포지션을 취했지만

도주마 서니 브라이언이 2관을 달성하는 와중에 직선에서 가라앉으며 7착으로 패배.

그러나 이 말의 진면목은 이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7월의 900만 이하 경주에서 승리하더니,

두달후인 9월 고베 신문배(GII, 2000m). 여기서 다시한번 프린시펄 때 격전을 치른 사일런스 스즈카와 재회한다.

더비 때 도주를 포기하고 선행을 모색하다 말의 기분을 거슬러 대박 망했던 스즈카 진영은 반성 끝에 

다시 말의 장기인 마이페이스 도주로 전략을 바꿨고, 성공적으로 레이스를 리드해 나갔다.

반면 직전 경주부터 후미에서의 추입으로 각질을 바꾼 마치카네 후쿠키타루는

4코너를 돌아나와 직선에 들어설때까지만 해도 11마리중 맨 뒤에 위치해 있었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기수 우에무라가 승리를 확신하고 골 앞에서 고삐를 늦추는 사이

외부에서 덮치듯이 달려든 마치카네 후쿠키타루가 승리를 앗아갔다.

선두의 방심이라는 운에 개화하기 시작한 실력이 합쳐진 짜릿한 역전승.

여담이지만 이때의 방심패를 이유로 우에무라는 사일런스 스즈카의 안장에서 쫓겨났다.


이어진 킷카상 트라이얼인 교토 신문배(GII, 2200m)에서도 1번 인기에 부응하며 승리,

클래식 최종전인 킷카상(GI, 3000m)로 향했다.

봄의 2관마 서니 브라이언이 부상으로 은퇴하고 절대 강자가 없는 와중에

단승 인기 1위는 교토 대상전을 이기고 온 실크 저스티스, 

2위는 침체기의 메지로 목장에서 간만에 나타난 에이스 메지로 브라이트.

지난 2전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치카네 후쿠키타루는 단승 인기 3위였다.

혈통 특성상 3000m는 너무 길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

실제로도 레이스에서 4~5번째 위치에서 달리다가 3-4코너에서 후방으로 일순 처지는 모습을 보여 역시 거리가 긴가? 할 무렵,


직선에서 재차 가속, 마군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오며 골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라스트 3F(600m) 기록은 33.9초. 출전마중 유일하게 33초대를 찍은 말이었다.

간사이 TV의 명대사 제조기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는 이 순간에

"고베, 교토에 이어 킷카의 무대에서도 복이 왔다!"고 외쳤다.http://embed.nicovideo.jp/watch/sm7361823

마주와 목장 양쪽 모두에게 첫 GI 타이틀을 안겨준 말 그대로의 복덩이가 된 순간.


그러나 이후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실력을 내지 못했다.

98년엔 5월 30일의 킨코상(GII)에서야 느지막하게 복귀했지만

하필 그 경주에서 괴물로 각성해버린 사일런스 스즈카와 다시 만났고,



역대급 차이로 도주한 사일런스 스즈카의 승리를 뒤에서 보며 6착 대패.

그 후로도 2000년까지 10번을 더 달리지만 한번도 승리하지 못한채 은퇴하게 된다.

99년의 교토 기념과 오사카배 2착이 그나마 괜찮았던 성적.

은퇴 후 씨수말로 전업했지만 교배수도 적고 두드러진 자식도 없어 2010년부터 교배를 중단하고

야마나시현 코스다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2016년에 찍힌 모습. 많이 늙었다.


여담이지만 이름의 나머지 반을 나눠 가졌던 마치카네 와라우카도는 더트 노선으로 밟아, 이쪽도 중상 3승의 건투를 했다.

킷카상을 차지한 후쿠키타루에 부응하듯 토우카이킷카상(GII)을 차지해 양쪽 다 국화(킷카, 菊花)와 연이 닿았던 것도 이야깃거리.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34 - 마치카네 후쿠키타루(マチカネフクキタル)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