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갈색의 머리, 보라/연보라 배색.

머리에 걸친 여우가면과 목의 부적은 이름의 모티브가 된 이나리 신사에서 착안한 물건이다.


88년에 지방에서 이적해 온 오구리 캡이 중앙의 강호들을 연달아 물리치고, 

타마모 크로스와 세 번의 정상결전을 치르면서 언더독 성공신화를 완성한 덕에

일본 경마는 사회 현상 수준의 붐이 일어났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연호가 바뀐 89년,

타마모 크로스가 떠난 경쟁자의 자리를 다른 두 강자가 채우며 '헤이세이 3강'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그 3강중 가장 마지막으로 무대에 등장한 게 늦깎이 지방 이적생 이나리 원이다.


전설적인 명마 밀 리프Mill Reef의 자식 밀 조지Mill Geroge는 4전만에 부상으로 은퇴했지만

일본으로 수입된 후 씨수말로 성공을 거뒀다. 자식들의 특징은 무거운 마장에 걸맞는 파워와 스태미너,

그리고 아버지를 빼닮은 거친 성격과 투쟁심. 터프와 더트 양쪽 주로에서 모두 활약하는 자식들을 낳았는데

이나리 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경주마였다.


84년 5월 7일, 슈퍼 크릭과 오구리 캡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이나리 원은

미나미칸토(南關東) 지방 경마의 조교사인 후쿠나가 후미오의 눈에 띄었다.

작지만 날쌔고 균형 있는 몸에 땅을 박차는 힘이 발군.

훗날 증언으로는 3주는 쓸 편자를 2주만에 닳아빠지게 할 정도의 힘이었다.

후쿠나가가 데려온 마주 호테하마 타다히로도 보자마자 홀딱 반해 흥정도 하지 않고 사들였다.

호테하마는 지방에서 데뷔시키는 말의 관명으로 오오이 경마장 근처의 아나모리 이나리 신사에서 따온

'이나리'를 관명으로 썼는데, 이나리 원Inari One이란 풀네임을 봤을때, 기대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아나모리 이나리 신사 - 이나리 신에 감초처럼 따라오는 여우상


86년 12월 오오이에서 데뷔, 오오이 시절을 쭉 같이 하게 될 미야우라 마사유키를 등에 태우고 4마신차 승리,

87년 정월에 2차전을 치렀지만 밀 조지에게서 이어받은 격한 성정이 화근이 되어

출발 대기중에 게이트에 머리를 강타해 직전에 출발 취소 처분을 당했다.

덕분에 미나미칸토 삼관 경주인 하네다 상과 도쿄 더비를 거를 수 밖에 없었지만

5월에 복귀한 이후로는 연승을 거듭, 미나미칸토 삼관 경주 최종전인 도쿄 왕관상과 후나바시의 도쿄 만 컵까지 승리,

출전취소된 한 경주를 제외하면 데뷔 후 8전 전승의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88년에는 슬럼프라도 맞았는지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후반기로 가면서 힘을 회복하더니

연말 최종전인 도쿄 대상전(당시 3000m)에서 승리하며 미나미칸토 탑 클래스임을 인증하고 

'터프 주로가 더 맞을 것'이라는 마주의 의향으로 중앙 경마로 이적했다.


오오이 시절의 모습을 한 이나리 원. 사진은 2007년 기념 행사때 찍힌 것



미호의 스즈키 키요시 마방으로 들어온 이나리 원.

그러나 초반은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는 모습이었다.

오오이에서 미호로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몸은 가늘어지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걷어차는 버릇이 심해져 부상을 염려해 마방 벽에 다다미를 잔뜩 붙여야 했을 정도.

경주도 그 영향으로 중앙 이적후 두 경주에서 4착과 5착에 그쳤다.


3전째가 천황상·春(GI, 3200m). 기수가 타케 유타카로 바뀌었다.

조강지처 슈퍼 크릭이 부상 결장해 손이 비어있던 찰나에 의뢰가 들어간 것.

이후 30년 가까이 뛰면서 수많은 거친 말들을 능숙하게 다뤘던 유타카도

이나리 원의 사나움은 대단히 인상깊었는지 훗날에도 사나운 말 중 첫손으로 그를 꼽았다.

처음 조교를 위해 탔을때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는데도

그걸 개무시하고 전력으로 두바퀴를 돌아서 공포에 떨었다던가.

하지만 동시에 '가장 파워가 있던 말'로도 꼽았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어

가능성을 직감, 흥분해서 폭주하지 않도록 공을 들이며 조교했다.


슈퍼 크릭이 빠졌어도 이나리 원이 주목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지방 출신에 이적후 승리 없음, 터프 적응에 의문점. 저평가될 요소가 충만했으나

그나마 스타인 타케 유타카빨로 단승 인기 4위에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보니 결과는 예상 밖.

타케 유타카가 살살 달래며 후방에 대기하다 3코너에서 진출을 시작,

4코너에서 선두 셋 뒤에 달라붙은 이나리 원은 직선으로 들어서자마자 엔진 전력 전개,

5마신차의 압승을 거두며 중앙 진출 3전만에 GI 타이틀을 따낸다. 레코드 경신은 덤.

이 깜짝 승리에 놀랐던 팬과 관계자들은 뽀록이라던가, 기수빨 운운했고

그 결과 천황상을 이기고 왔음에도 다카라즈카 기념(GI, 2200m)에서도 인기가 밀려

88년 더비마 야에노 무테키에 이어 단승 인기 2위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선행권에서 승부, 쟁쟁한 경쟁자들을 스태미너 승부로 내던져 버리고 

프레쉬 보이스의 맹추격을 목차로 버텨내며 승리, GI 2연승을 거두며 호사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슈퍼 크릭이 복귀하는 하반기가 되자마자 타케 유타카는 주저없이 이나리 원을 버리고 돌아갔다.

얌전하고 침착한 슈퍼 크릭과는 정반대인 성격에 학을 뗀 걸까. 

하지만 의도한 대로 기어가 걸렸을때의 폭발력도 잘 아는 터라 일말의 불안감은 안고 있었다고.


이나리 원이 택한 하반기 복귀전은 마이니치 왕관(GII, 1800m). 오구리 캡과의 첫 조우전이었다.

이나리 원 위에는 베테랑 시바타 마사토. 오구리 캡 위에는 작년까지 타마모 크로스를 탔던 미나이 카츠미.

세평은 아직도 이나리 원을 슈퍼 크릭과 오구리 캡이 없는 사이 빈집털이했다는 식의 평이 주였고,

시바타는 말의 명예를 걸고 오구리 캡을 격파하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경주가 시작되자 양쪽 다 최후방 3번째와 2번째에서 대기, 

직선에서의 순발력 승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외곽에서 나란히 뻗어나온 두 마리가 불꽃을 튀기며 나란히 골인. 

사진 판정 끝에 코차로 오구리 캡의 승리였다. 

지기는 했지만 이나리 원도 빈집털이나 운이 아니라는걸 증명한 경주.

89년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매치 레이스였다.


하지만 무겁기 그지없는 마장에서 전력 승부를 벌인 여파는 양쪽 모두에게 찾아왔다.

이어진 천황상·秋에서 오구리 캡은 슈퍼 크릭을 따라잡지 못하고 2착,

신경질을 내며 입까지 짧아져 있던 이나리 원은 컨디션을 채 회복하지 못하고 6착.


이어진 재팬 컵에서는 오구리 캡은 혹사 로테이션 속에서도 홀릭스와 격투를 벌이며 2착을 거두지만

이나리 원은 초 하이페이스를 견뎌내지 못하고 중앙 이적후 최악인 11착의 완패.

어느새 언론들은 헤이세이 3강에서 이나리 원을 빼고 아리마 기념은 2강 대결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나리 원은 시바타와 맞지 않는게 아닌가'하는 억측도 분분했지만

진영은 마이니치 왕관의 여파로 무너진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조교사도 기수도 흔들림 없이 아리마 기념에 초점을 맞추고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다.

인기도 4번 인기로 사쿠라 호쿠토 오에게까지 밀렸지만 승부는 인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초반부터 선행하던 오구리 캡이 혹사의 여파로 드디어 지쳤는지 먼저 쳐지고

슈퍼 크릭이 다시한번 승리를 거두는가 하는 순간 바로 뒤에서 비수처럼 이나리 원이 날아들었다.

완전히 오구리 캡만을 의식하고 있었던 슈퍼 크릭과 타케 유타카에겐 예상 밖의 패배.

덤으로 천황상에 이어 코스 레코드 갱신.


이나리 원은 이것으로 89년에 GI 3승 및 그랑프리 춘추 제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헤이세이 3강이 모두 출전한 경주에서 처음으로 승리했다. 89년 JRA 연도대표마는 자연스럽게 그의 차지.


90년에도 현역을 속행했지만 이미 7세(현 6세), 피크를 지난 것인지

천황상·春에서 슈퍼 크릭에게 2착 패배, 다카라즈카 기념에서는 오구리 캡과 재회했지만

오사이치 조지가 우승하는 사이 4착을 기록하며 패배했다(오구리 캡 2착).

가을에 재기를 노렸지만 다리의 불안이 회복되지 않아 그대로 은퇴하게 되었고,

오구리 캡이 기적의 라스트 런을 장식하는 아리마 기념 당일에 은퇴식을 치렀다.

(우연이지만 89년 이나리 원이 천황상-재팬 컵-아리마 기념에서 기록한 

6착-11착-우승의 패턴은 90년 오구리 캡이 똑같이 반복한다)


은퇴 후엔 다른 3강과 마찬가지로 씨수말 생활을 시작했고

3강 중에서는 그나마 더트 쪽에서 중상을 우승하는 말을 여럿 냈지만

선데이 사일런스 혈통의 폭풍 속에서 그다지 의미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2004년을 끝으로 씨수말에서 은퇴, 공로마로 지내다가

2016년 2월 7일 무려 32세까지 장수를 누리고 사망, 헤이세이 3강 중 가장 늦게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삶 자체는 현실적으로 돈만 드는(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기는 낮은) 공로마라 그런지

마주가 여러번 바뀌며 각지를 전전, 한때 소식도 끊겼다가 

다시 발견되는 등 아름답기만 한 여생은 아니었던 모양.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41 - 이나리 원(イナリワン)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