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그루브로 익숙한 청색-황색의 배색에

얼굴에서 바로 견적 나오는 더러운 성격.

트레이닝 담당을 제비뽑기로 골라 떠맡겼다는 흉흉한 힌트까지.

서부 힙합의 전설 투팍 아마루 샤커에서 이름을 따온 에어 샤커Air Shakur다.

2000년 클래식 2관, 7cm 차로 더비를 놓쳐 삼관 달성에 실패, 준삼관마로 불렸지만..

현재는 역대 최약의 2관마로 그 평판이 바닥을 치고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양반한테서 따온 이름. 추가로 에어 일족 중엔 에어 에미넴과 에어 셰이디도 있다...


1997년생으로 아버지는 선데이 사일런스, 어머니는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샤커 이전에 낳은 딸 에어 데자뷰가 98년 암말 3관 경주에서 모두 3착 안에 들며 주목을 받던 암말이었다.

생산자인 샤다이 팜이 애초에 선데이 사일런스를 상대할 번식암말로 눈여겨보고 데려왔고

그렇게 시도한 첫 배합에서 탄생한게 에어 샤커. 

데뷔를 준비하기 위해 과거 시킹 더 펄을 맡았던 모리 히데유키 조교사의 마방으로 들어갔고

기대대로 출중한 능력치를 보였지만 선데이계 경주마들 특징중 가장 골치 아픈 거친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툭하면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날뛰는 난폭함 덕에 조교 조수들의 하루 일과가

'오늘의 샤커 담당'을 놓고 제비를 뽑으며 시작됐을 정도.

난폭함에 더해 똑바로 달리지 않고 오른쪽으로 기대는 버릇 때문에 기수가 몰기에도 어려웠다.

클래식 시즌에 주전 기수였던 타케 유타카는 원래 성격이 나쁘거나 버릇이 있는 말 다루는데 정평이 났지만

그런 그조차도 골치가 아팠던지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고까지 했을 정도.


2세(舊 3세) 시즌인 99년에 4전을 치러 2승. 연말인 호프풀 스테이크스에서 승리하며 클래식 유력 후보로 입지를 굳혔고,

3세 시즌 첫 경주를 사츠키상 트라이얼인 야요이상(GII, 2000m)로 택했다.

여기서 후사이치 제논에게 1마신차로 승리를 내주며 2착에 들어 왔다. 3착은 러거 레굴루스.


그리고 한달 뒤의 사츠키상(GI, 2000m)은 여러가지로 뒤숭숭한 무대가 된다.

우선 경주를 앞두고 최고 유력마였던 후사이치 제논이 

컨디션 여부를 놓고 조교사와 마주가 대립하며 싸우다 결장, 클래식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때의 조교사는 과거 93년 아리마에서 토우카이 테이오를 기적처럼 부활시킨 기수 타바라 세이키.

이때의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제 사건으로 경마계에서 제명된다)


그리고 사츠키상 경주 본편에선 스타트 순간에 인기 3위였던 러거 레굴루스가 기립,

기수를 낙마시키고 스스로는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오질 못하는 사건이 터졌다.

50억엔이 넘는 마권이 시작과 동시에 휴짓조각이 되어 관중석이 동요하는 가운데

인기 1위인 다이타쿠 리바는 3~4번째쯤의 선행권, 인기 2위였던 에어 샤커는 뒤에서 3번째에서 레이스를 전개.

4코너에서 아웃코스로 길게 돌아나온 에어 샤커에게 타케 유타카는

오른쪽에서만 채찍을 넣으며 최대한 오른쪽으로 기대지 않게 전력을 다했다.

그러고도 골 직전엔 완전히 인코스로 붙어 들어왔지만 기수의 노력 덕에 진로방해를 면하고

골 직전에서 다이타쿠 리바를 목 차이로 제치며 승리했다.


한달 후의 일본 더비에서도 또다시 유력마 둘이 빠졌다.

후사이치 제논은 위에 언급한 사건의 여파로 사츠키상에 이어 더비까지 결장했고,

러거 레굴루스는 게이트 재심사에서 개념없는 관중의 야유에 영향을 받아 심사를 통과 못해 참전 불가.

그러다 보니 에어 샤커가 인기 1위가 되고 2위가 다이타쿠 리바, 

3위가 교토 신문배를 제패하며 뒤늦게 클래식에 뛰어든 아그네스 플라이트였다.



아그네스 플라이트의 기수는 카와치 히로시. 타케 유타카의 13년 선배로

같은 마방에서 데뷔한 사형-사제 관계. 74년 데뷔 이후 수많은 승리를 따냈지만 

26년간 더비 우승만은 없었다. 27년차인 2000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더비 도전.


반면 타케 유타카는 87년 데뷔 이후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최연소 기록들을 쌓아오고 있었다. 다만 더비 우승이 실력에 비해 지독히도 없었지만

그마저도 98년 스페셜 위크로 첫 더비 우승을 하자 막힌 게 뚫린듯이 99년 어드마이어 베가로 더비 2연패,

그리고 2000년 지금 에어 샤커를 내세워 사상 초유의 더비 3연패에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양쪽 다 장기인 순발력 승부를 위해 후미에서 대기하다 3코너에 들어서자마자 승부를 걸었고,


"카와치의 꿈이냐, 유타카의 의지냐, 어느 쪽이냐!"하는 명실황과 함께 단 7cm 차이로 결착이 난다.

더비 역사에 꼽히는 명승부의 결과는 카와치 비원의 더비 제패.

직선에서 좌우로 뒤뚱대는 에어 샤커를 똑바로 가게 하려고 애쓰던 타케 유타카는

선배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패배의 쓴맛을 삼켜야 했다.


2관 달성에 아깝게 실패했지만 모리 조교사는 더비 전부터 준비하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평소 해외 레이스 도전에 적극적으로 과거 후지야마 켄잔, 시킹 더 펄 등으로 재미를 봤던 모리는

이번에는 3세 세대 정점 레벨인 에어 샤커를 과감하게 영국 최고 대회인

킹 조지 6세&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에 도전시킨 것. 그러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전년도에 엘 콘도르 파사를 개선문상에서 꺾었던 세계 최강마 몬쥬가 건재함을 과시하며 우승.

3세마인 에어 샤커에게 장거리 원정과 애스콧 경마장은 무리였는지 5착에 그쳤다.


복귀전은 9월 말의 고베 신문배(GII, 2400m). 여름을 푹 쉰 아그네스 플라이트와 재대결했지만

역시 하드 로테이션의 여파인지 후사이치 소닉, 아그네스 플라이트에 이어 3착. 

역시 3세마에게는 해외 원정이 지나친 짐이 아니었나 하는 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22일의 클래식 최종전인 킷카상(GI, 3000m)에서는

더비의 잔향이 강하게 남았는지 단승 배당이 아그네스 플라이트 1.9배, 에어 샤커 2.8배로

3위 이하와 압도적인 차이를 내며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승부는 기수의 선택에서 났다.

외곽으로 돌며 조금 빨리 승부를 건 아그네스 플라이트,

오른쪽으로 기대는 버릇의 해결책으로 이왕 우회전 코스니까 최대한 인에 바짝 붙어서 간 에어 샤커.

울타리 덕에 오른쪽으로 더 갈래야 갈수 없게 되자 힘의 낭비 없이 직선에서도 똑바로 최단거리를 달렸고,

그 선택의 차이 덕에 에어 샤커는 우승, 아그네스 플라이트는 5착의 큰 차이가 났다.

클래식 2관, 더비의 아쉬움을 따지면 '준'3관마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평가가 올랐어야 하는데...


하필 한달 후, 재팬 컵(GI,2400m)의 결과가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말았다.

때는 2000년. 세기말 패왕 TM 오페라 오가 지배하고 메이쇼 도토우가 도전하던 구도의 고마 전선.

그들이 다시 격돌하는 재팬 컵에 출사표를 낸 3세마는 네 마리였다.


클래식 2관의 에어 샤커,

더비 우승마 아그네스 플라이트.

NHK 마일 컵 우승의 외국산마 이글 카페.

오크스 우승마 실크 프리마 돈나.


그리고 그들이 재팬 컵에서 받아든 성적은 총 16마리중

아그네스 플라이트 13착.

에어 샤커 14착.

이글 카페 15착.

실크 프리마 돈나 16착.

꼴찌에서부터 네번째까지를 독점하는 참혹한 패배.

한두마리의 부진은 흔한 일이지만 3세 세대의 대표들이 모조리 바닥을 깔아주는 모습에

'이 세대가 특출나게 약한게 아닐까?'하는 관점이 잡혀 버리고 말았다. 단 한번의 경주로.

그리고 그걸 편견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저 넷중 이글 카페를 제외한 셋은 이후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2001년 시즌에 참패를 거듭하며 초라하게 몰락한 아그네스 플라이트에 비하면

그래도 에어 샤커는 나은 편이었다.

타케 유타카가 미국 진출을 하며 주전 기수가 바뀌는 와중에도

꾸준하게 입상권에 들어 줬지만 정작 승리는 없고,

큰 대회인 천황상·春에서 하필 8착으로 고꾸라지는 덕에 역시 약하다는 평이 정착.

오사카배에선 TM 오페라 오를 제치는 선전을 하기도 했지만 정작 우승은 아니었기에 인상이 약했다. 

2002년에도 기수를 여러차례 바꿔 가며 GI 타이틀 탈환에 노력했지만 별반 인상은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다.


세대의 인상이 나빴지만 어쨌든 클래식 2관마. 은퇴 후 씨수말로 전업했지만 하렘 생활을 누리기도 전에

은퇴 3개월만인 2003년 3월 13일, 방목 중 원인 불명의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안락사되었다.


딱 교배 시즌이 시작되던 시점이라 그가 남긴 후손은 단 4마리. 



...아무리 봐도 역시 이름을 잘못 지은것 같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38 - 에어 샤커(エアシャカール)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