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작업을 하던 도중이었다.

 

오구리가 테이블에 당근 상자를 올리고 내 옆으로 왔다. 


당근을 기다리는 회색 뭉치가 내 다리 위에 앉았다.

 

"이러면 내가 일을 못하는데"

 

"늘 그랬던 것처럼, 식사 시간이니까 밥을 먹여줬으면 한다."

 

"오구리의 위장, 대단하네"

 

"배가 고프다, 트레이너가 먹여줘야 한다."

 

눈앞에 있는 당근 더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오구리였다.

 

"그건 상관없지만"

 

찰싹- 소리를 내며 회색 꼬리가 내게 뺨을 때렸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살랑이는 꼬리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게 채찍과 당근인가?

 

"감기는 다 나았잖아?"

 

꼬리가 채찍 모양으로 만들어지길래 다급히 말을 이어 나갔다.

 

"먹여주는 건 그때까지만이라고 했잖아. 너 시중드느라 경기 통계도 못 냈어."

 

"그리고 먹여주는 것도 옆에 앉아서 했었는데 오늘은 뭔가 달라진 걸 보니 이 자세가 더 좋은 거야?"

 

늘 오구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나도 이런 자세 좋아해, 부드러운 감촉을 즐길 수 있으니"

 

하지만 꼬리 채찍은 말릴 수 없었다.

 

찰싹

 

찰싹찰싹

 

'더 맞으면 광대뼈 함몰이다.'

 

"그러니까! 이것만 입력하고 먹여줄 테니까 비켜줘"

 

내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슬쩍 옆쪽으로 움직이는 몸뚱이가 보였다.

 

휙-하고 돌더니 나와 마주 보는 상태가 됐다. 이내 나의 품으로 쏙 들어왔다.

 

노트북의 키보드에 손을 떼고 오구리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몸살감기가 아직도..."

 

그렇다. 몸살감기, 인간은 보통 아파서 누워있지만 우마무스메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트레이닝을 이어서 하고 싶다며 잔디, 더트 상관하지 않고 계속 달리다가

 

온몸은 쑤시고 체온은 정상이 아니었으며 머리는 계속 어지러워했었다.

 

죽을 몇 냄비나 만들었지만 정작 몇 숟갈 뜨고는

 

"트레이너.. 입맛이 없고 졸리다..." 라며 픽 쓰러져 잤었다.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그다음 부터는 직접 죽그릇을 들고 일일이 먹여줬다.

 

"후, 후-"

 

갓 만들어진 뜨끈한 죽을 식히고

 

내게 축 늘어진 몸을 기댄 오구리에게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우웅.."

 

오구리가 고갯짓만으로 숟가락에 입을 가져다 대고 우물거린다.

 

타이밍 좋게 숟가락을 빼내고 다시 죽을 떠서 식힌다.

 

최선을 다 해 먹는 모습이 보기 안쓰럽다. 그래서 한쪽 팔로 머리를 받쳐줬다.

 

"꿀꺽, 하아, 하아..."

 

평소였다면 내 사무실에 있는 간식도 뺏어 먹었을 터였다.

 

너무나도 기운 빠진 모습과 대비돼서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윽"

 

"미안, 너무 속상해서"

 

"미안한 건 오히려 나다..."

 

그릇을 착실하게 비우다가 꾸벅꾸벅 졸길래 소파에 눕혀줬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지금...

 

어느새 내 손에 당근이 올려져 있다. 오구리는 내 다리 위에 마주 앉아 있고 날 쳐다본다.

 

그 시선에 의문을 표하며 당근을 쳐다봤다. 선명한 주황빛에 표면이 매끈하다. 감촉으로 보건대 강도가 단단하고 올곧기도 하다.

 

심봉사가 봐도 좋은 당근이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우리 아이 영양 간식으로 주기 전에 내가 한입 먹어봤다.

 

아삭-! 하는 소리가 뇌를 울린다. 당근 덩어리가 입 안을 뒹군다.

 

'이딴 게... 당근?'

 

팔자 눈썹이 저절로 나왔다.

 

오구리가 '네가 처먹어놓고 표정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괘씸한데?

 

너나 맛있게 먹으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왼손으로 턱을 잡아준다.

 

동그랗게 뜬 눈이 날 바라본다.

 

나는 오구리에게 주의사항 한 가지를 당부했다.

 

"멋대로 치아를 사용하지 말 것"

 

"알았으면 입 벌려"

 

"아?"

 

내가 한 입 먹은 당근을 오구리의 입가에 비빈다.

 

머지않아 입술을 비롯한 입가가 침 범벅이 됐다.

 

난 오구리의 침을 윤활제 삼아 당근을 더욱 비벼댔다.

 

'준비운동은 끝났고'

 

입 한가운데에 당근을 쑤셔서 넣고 오구리의 치아를 유린하기 시작한다.

 

우마무스메의 치아라면 세게 닿지 않아도 당근은 알아서 깎여나갈 것이다.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건지'

 

혀가 자기 치아에 의해 깎인 당근 파편을 마구 음미하고 있다.

 

'꿀꺽..'

 

당근의 단맛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하아아..'

 

씹어먹고싶다. 아삭한 당근을 마음껏 씹고 또 씹고 맛보고 싶다.

 

트레이너가 치아를 쓰지 말라 그랬는데 견딜 수가 없다.

 

레몬을 먹은 개처럼 침이 줄줄 흐른다. 입술을 지나 턱에 도달하고 목까지 오더니 가슴에 도달한다.

 

곧이어 도착한 침이 한 방울, 두 방울 모여 더욱더 속도를 박차며 내려간다.

 

트레이너가 당근을 먹여준다면서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다. 

 

오구리는 옷이 적셔지는 것도 모른 채 턱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에 질세라 턱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줘본다.

 

"내가 먹여준다고 했잖아?"

 

귀가 파닥거린다. 이대로 두면 날아가겠는데.

 

오구리의 입에서 당근을 빼내 내가 한입 물었다. 침 범벅의 뜨거운 당근을 씹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내게도 생각이 있단 뜻으로 윙크하고 저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우물우물

 

우물우물우물

 

식도로 넘기기 좋은 상태가 된 당근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오구리의 입에다 전달해준다. 상대방의 혀가 미친 듯이 움직인다.

 

꿀꺽, 꿀꺽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내 어금니에 붙어 있는 당근마저 떼간다.

 

"<영양보급>은 착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이제 막 몸이 좋아진 거 잖아?"

 

오구리가 내 말을 듣자마자 날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게 맞다, 잘 먹겠다, 트레이너"

 

"어?"

 

그녀의 <먹보>기질이 내 몸을 감싸며 <승리의 고동>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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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처음 쓸 땐 이런 전개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