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4편


 

“미안해. 그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아니야, 내가 만드는 길을 따라올 우마무스메들을 위해 그대와 내가 선택한 길이다. 마음이 아플 뿐이지만…. 괜찮아.”

 

트레센 학원을 나와서 교외 지역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루나가 타고 있었다.

 

루나는 조용히 자신의 무릎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대화가 없었다.

 

하기사…. 내가 뭘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앞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담당을 늘렸다.

황제로서 그녀를 보좌하겠다는 목적으로 했었다.

물론 그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게 그녀가 추구하고자 하는 황제의 길에 바람직한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황제로서의 심볼리 루돌프만 생각하는 바람에

여자로서의 루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챙겨줬어야 했다.

엘리랑 무디를 봐주면서 그녀 역시 자주 봐줬어야 했다.

 

셋 정도 골고루 봐주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한 시간 정도 운전하고 나서 교외 지역에 겨우 도착했다.

며칠 전에 사진이 취미인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풍경은 끝내주는데 인적 거의 없는 명당’이었다.

 

“잠시 내려서 바람 좀 쐴까?”

“응….”

 

루나가 차에서 내리고, 나도 차 시동을 끄고 내렸다.

 

절벽에서 바라본 바다의 석양은 최고였다.

바닷바람이 산들산들하게 불어오는 것도 최고였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쓸어넘기고 있었다.

 

“저기. 루나.”

“응….”

 

“내가 처음 스카우트했을 때 기억나?”

“잊을 리가 없지, 지금도 명약관화하게 기억이 나는걸, 다른 트레이너들은 오직 나를 어떻게 1착 시킬지, 어떻게 해야 왕관 하나를 더 늘려줄지에 대해 계획을 할 때, 그대는 어떻게 해야 나랑 같이 내가 걸어가고자 할 길을 걸어갈지를 고민했었어.”

루나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 明若觀火(명약관화) : 불을 보듯이 환함

 

“그때 그대가 찍어준 사진, 아직도 가지고 있어.”

나도 그 사진은 아직 가지고 있다. 휴대폰에도 저장되어있고

그녀의 트레이너로서 힘들 때 그 사진이 많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

 

“야요이랑 사츠키상 우승했을 때 기억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루나가 G1 첫승이자 황제의 길을 시작하게 된 경기들이었다.

사츠키상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야요이, 그리고 사츠키

예상대로 레이스가 진행됐고 루나가 이겼다.

 

“일본 더비 때는.. 좀 위험했어”

“그대의 작전이 꿰뚫려서 누란지세였지, 어쩔 수 없이 이기기 위해서 그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지만, 결과는 잘됐지, 그때가 생생히 기억나, 경기 끝나고 대기실에서 그대가 싹싹 빌던 모습이. 후훗.”

※累卵之勢(누란지세) : 몹시 위태로운 형세

 

“싹싹 빌지는 않았거든?”

일본 더비 당시 작전 중 스퍼트 타이밍을 잘못했다. 그때 스퍼트했으면 질 경기였으나

루나는 일부러 스퍼트를 안 걸고 4코너 때 바깥쪽으로 선회한 다음 마지막 직선 스퍼트로 더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당연히 작전 지시 잘못한 나는 대기실에서 루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었고

루나는 태연하게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줬었다. 

 

싹싹 빌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래도 국화상때가 제일 기억에 남았지.”

루나가 먼저 3관의 세 번째, 국화상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지막 코너 이후 추월할 때 많은 생각이 났었지, 그때까지 그대랑 매일 트레이닝 했을때가 생각나더군. 그리고 그대가 낭중지추였음을, 그리고 내가 그대를 선택했다는 게 틀리지 않아서 기뻤다.”

 

그렇게 루나랑 나는 서로 그동안 레이스를 되짚어보면서 추억을 나누었다.

 

마지막 레이스까지 되짚었을 때 나는 몸을 돌려 루나를 향해 섰다.

 

“아무리 여러모로 생각해봤는데. 나는….”

추억에 미소짓던 루나의 표정에 긴장이 드러났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상자를 꺼내서 등 뒤에 쥐고 무릎을 꿇었다.

“너랑 그동안 많은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같이 걸어가야 할 것 같아.”

 

루나는 뭔가 눈치챘고 감정이 격양되었는지 입을 양손으로 감쌌다.

“여자의 마음도 제대로 몰라준 못난 남자지만, 계속 옆에서 같이 걸어가 줄게. 앞으로도 쭉….”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때는 트레이너였지만, 지금은 한 명의 남자로서 나랑 함께해줄래?”

 

상자 속에 들어있던 건 반지였다.

백금을 베이스로 하고 작은 에메랄드 7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며칠간 바빴던 건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이쪽 분야에 인맥이 넓은 골드 시티가 있어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꺼내서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아래 눈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반지를 다 끼운 후 그녀는 나를 잡아 일으켜 세운 후 전심전력으로 껴안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품 안에서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귀는 매우 기쁜 듯이 양옆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꼬리 역시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그녀의 꼬리가 진정될 때까지 그리고 그녀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태양이 수평선 밑으로 넘어간 뒤 밤이 어두워지고 난 뒤 슬슬 트레센 학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차에 타려고 하는데

 

“루나 그럼 돌아가.. 읍!!”

 

루나가 나에게 기습 키스를 하고 그녀의 혀를 내 입안에 넣어 사정없이 휘저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맞춰주기로 하고 그녀의 춤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키스하는 중에 그녀의 손이 내 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았을 때, 이미 이성을 반쯤은 던져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고백까지 한 마당에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걸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장소가 아니다.. 여긴 밖이다.

 

나는 양팔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세게 흔들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와 내가 백년가약의 사랑을 나눌 때이지 않을까?”

루나는 혀를 살짝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매혹스럽게 핥으면서

나를 애욕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기로 한 이상

그녀와 내가 하나가 되는 거는 당연하지만,

 

장소가 아니다.

 

나는 외투를 잽싸기 벗어 그녀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모든 것은 등고자비가 있잖아. 나도 너를 간절히 원하지만, 잠깐만 그걸로 참아.”

※登高自卑(등고자비) :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음

 

내가 뭘 말하는지를 알았는지 그녀는 “훗 그렇군.”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조수석에 탑승했고

나도 바로 운전석에 탑승한 후에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해서 가까운 무인텔로 가는 내내 그녀는 내 외투에 얼굴을 파묻고 내 체취를 심호흡을 하면서까지 맡으면서 나와 ‘우마뾰이’ 하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나처럼 말하는거보니 벌써부터 그대와 내가 ‘하나’의 마음이 되는 것 같은데 육체적으로도 ‘하나’가 되야하지 않을까?”

 

그녀가 후배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시작했으나 이미 가까운 나에게는 안하게된 말장난까지 나온거 보면 정말 그녀가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고 있는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참기 힘든 상황이지만, 적어도 누군가 볼 경우는 없어야 한다.

 

“조금만 참아줘, 최대한 빨리 갈게.”

 

나는 엑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