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심볼리.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



지금 당장 학생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심볼리 루돌프만 보더라도 그 이름이 얼마나 주목 받는 이름인지 잘 알 수 있다.



거기에 떠오르는 신성이라고 기대 받고 있는 심볼리 크리스 에스.



그리고 한때는 기대주라고 평가 받았으나 이제는 아니라는 평이 자자한 또 다른 심볼리.



"꺄아아아-! 시리우스 님!!!"


"으아악! 너무 고귀해요!"



그녀가 터프에서 몸을 풀 때마다 이상한 것들을 손에 집은 우마무스메들이 벌때처럼 모여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트레이너는 저 광경을 처음에는 신기하게 봤다가 이제는 제발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가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리우스 씨. 오늘은 여기까지..."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우마무스메들의 환호성이 먼저 터져 나왔다.



터프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숨을 고르고 있는 시리우스를 향해 우마무스메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그녀를 애워쌌다.



하나같이 정신이 팔린 듯한 얼굴에 질질 흘리고 있는 침.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이제 연습 좀."


"시리우스 님! 다음 행선지는 어디신가요?!"


"시리X루도 백합 동인지 제작해도 되나요?!"


"오늘 팬티 뭐 입으셨어요?!!"


"오!"

"팬!!"

"무!!!"


"검정색이라고 몇 번을 말해!"


결국 그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내려 놓았던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시리우스 씨의 연습에 방해가 되오니 이만 해산해 주세요.]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있게 꺼낸 말이었지만, 우마무스메들은 그의 말 따위는 듣지 않았다.



결국 이 사태를 보다 못한 시리우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시리우스의 극성팬들은 겨우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포상'을 운운하면서 그녀와 트레이너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덤이었다.



"좋으시겠어요. 시리우스 씨."


"뭐가?"


"팬들이 저렇게 많은데 당연히 좋은 거 아니겠어요?"


"... 오늘 농담은 1점 줄게."


"몇 점 만점인가요?"


"100점."


"그것 참 안타깝네요."



그는 땀을 꽤 많이 흘린 시리우스에 물을 건네주면서 자신이 기록한 종이를 시리우스에게 보여줬다.



"이래저래 방해하시는 분들은 많지만, 준비 자체는 원할하게 되고 있네요. 미승리전에 출전하기 전까지는 지금 페이스를 유지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음... 그렇군."



입 안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물이 시리우스의 턱을 타고 흘러 내려가 그녀의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수건을 건네주었다.



"너무 급하게 드십니다. 목에 안 좋아요."


"어쩔 수 없잖아. 땀을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그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쓸데없는 고통은 피할 줄 알아야죠."


"쳇, 잔소리하긴..."



시리우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의 충고를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출주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한 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트레이너와 시리우스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출주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시이리우으스으으으!!"


"아, 젠장. 나 없다고 해줘."


"이미 보고 왔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합니까. 적당히 받아주다가 넘겨버리시죠."


"끄응..."



갈색 머리카락과 하얀 유성을 흩날리면서 화려하게 달려오는 한 우마무스메.



"시리우스! 나랑 병주하자! 오늘도 안 하고 도망가면 내가 이긴 걸로 칠 거야!"


"어, 그냥 네가 이긴 걸로 해라. 난 오늘 피곤-"


"그게 뭐야!! 이 테이오 님이 직접 왔는데 못 하겠다는 거야? 그냥 한 번만 하자니까?"



그녀의 이름은 '토카이 테이오.' 최근 트레센 학원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신성 중에 한 명이다.



시리우스에게 달라붙어서 친한 척을 마구 해오는 테이오였으나 이제 막 연습을 끝낸 시리우스는 그런 테이오가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물론 부담스러운 것은 우마무스메 시리우스 뿐만이 아니었다.



트레이너인 시리우스 또한 자칫 잘못했다가 오버 트레이닝으로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테이오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테이오 씨. 시리우스 씨는 이제 막 연습을 끝낸 터라 그 이상으로 하는 건..."


"싫어! 가면 아저씨는 맨날 그 소리만 하고, 시리우스랑 나의 승부를 방해하기만 하잖아!"


"그 '승부'라는 것이 사전에 합의 따위는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와서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드는 행위라면 저는 그걸 제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라고 뽑힌 사람이기도 하고요."


"우으으..."



자신의 억지가 먹히지 않자 테이오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의 가면을 노려보았다.



항상 시리우스와의 승부를 방해하는 짜증나는 가면, 테이오는 그 가면이 굉장히 싫었다.



"그러니까. 승부를 하고 싶으시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시고, 시리우스씨와 합의하신 다음에 저한테 통보를..."


"베타주제에."


"... 예?"


"뭐?"



테이오의 말에 시리우스와 트레이너는 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저씨, 베타였잖아. 회장도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


"야."



굳어버린 트레이너를 향해 무어라 말하려던 테이오는 시리우스의 한 마디에 그대로 제지되었다.



그녀가 본 시리우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가 난 얼굴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에? 그, 그러니까... 베타..."


"넌 사람을 두 갈래로 나눠서 갈라치기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냐?"


"그, 그건..."



비록 버릇없는 데다가 너무 귀하게 자라서 사람을 자기보다 아랫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진 테이오라도 생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가지는 본능만큼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본능은 '지금 나대면 피살당한다.'라고 아주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의 버릇없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순한 양처럼 얌전히 있는 것이 현명했다.



"말해."


"... 미, 미안해."


"나 말고 트레이너한테 해야지."



시리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오는 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 그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


"변명하지 마시죠. 그런 생각을 했던 안 했던, 그런 말이 나오면 그런 사람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



물론 가면을 쓴 그도 이 상황이 다소 불편했기에 이런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었다.



"테이오 씨. 오늘 하셨던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새떼'를 부르겠어요."


"에엑?! 그, 그건 싫어...!"


"그렇다면 입 조심 하셔야겠죠?"



테이오는 대답 대신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시리우스 또한 테이오의 모습을 보곤 '피식'하고 웃었다.



"오늘 일은 아예 없었던 걸로 하죠. 괜히 공론화하기는 싫네요."


"으, 응! 알았어!"



트레이너와 합의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테이오를 향해 시리우스가 천천히 걸어 왔다.



그녀가 성큼 성큼 걸어올 때마다 테이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지만, 테이오가 상상하던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시리우스는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있던 사탕을 테이오에게 쥐어주고는 그녀에게 도발하는 듯한 얼굴로 눈을 맞췄다.



"좋아. 나한테 박살나고 울고 있을 네가 안쓰러워서 받아주지 않았는데, 그렇게 원한다면야 들어줄 수 밖에 없지."


"아, 안 때려...?"


"내가 널 왜 때려? 난 아무도 안 때려."


"정말?"


"그럼 내가 거짓말 한다는 거야?"


"아니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천연적스럽게 태세전환을 한 테이오에게 시리우스는 어깨를 두드린 뒤, 트레이너 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라. 그때는 준비 만전인 상태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목 씻고 오라고."



시리우스의 말에 테이오는 일순간 화색이 되어서 그녀를 졸졸 쫓아가기 시작했다.



트레이너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시리우스에게 문자로 '잠깐만 트레이너 실에서 기다려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낸 뒤,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도착한 곳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그와 시리우스가 처음으로 만난 그곳.



아무도 없는 벤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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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답답하기 그지 없는 물건인지라 보는 눈이 없는 경우 그도 맨날 착용하는 가면을 벗어두곤 한다.



딱딱한 하얀색 플라스틱 없이 마주하는 봄바람은 술에 취한 것 같이 기분 좋은 것이었다.



다만, 이 기분은 그리 멀리가지 못했다.



지나다니는 것이라고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밖에 없는 이곳에 먼저 온 손님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냐오옹..."


"머리 위의 고양이는 어째 더 커진 것 같네요."


"동의! 매일 매일 어제보다 더 커진다네!"



어째서인지 그날은 벤치에 햇볕이 들고 있었고, 이사장 또한 그 햇볕을 쬐려고 벤치에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던 맨 얼굴을 이사장에게는 스스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흠, 자네 흉터가 많이 상했군. 더 깊어진 것 같은데."


"이건 이제 못 고쳐요. 너무 깊게 난 상처라서 의사양반도 포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겠지... 그 일은 유감일세."


"됐어요.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피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과 총명함을 잃은 회색 눈.



그리고 얼굴에 깊게 남은 흉터.



그는 그런 자신의 얼굴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제는 그 일이 일어난 지 10년도 지났는데,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냥 피해자인데.



그런데도, 그 흉터만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잠도 자지 못한 채 몸부림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맞다. 자네, 그러고 보니 미쳐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네."


"뭡니까?"


"자네의 '누나'가 곧 출소한다고 하던데."


"..."



이사장의 말에 그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입은 멈췄지만,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 걱정하지 말게나. 그대의 신원은 전부 비공개로 처리해두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가면을 쓰고 다닐 수 있게 조치해두었으니 자네를 알아보지는 못할 걸세."


"... 확실합니까?"


"물론! 그리고 정 위험하다 싶으면 '새떼'를 부르게나. 그러라고 준 호루라기 아닌가."


"그건 맞긴 한데... '떼까치.' 랑 '올빼미'는 딱히 부르고 싶지 않아서요."


"방심! 배부른 소리 하지 말게나. 일이 벌어지고 난 후는 이미 늦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남아있던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쉬는 시간은 거의 다 끝났다. 내리쬐던 햇살도 얼마 안 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그에게 핸드폰 벨이 울리더니 스피커 너머로 시리우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언제 돌아오는 거야?! 나 혼자 얘 돌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아, 그렇군요. 지금 바로 가죠."



통화가 끊기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면을 다시 썼다.



"저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죠."



이사장은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긴 채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는 그걸 잠깐 쳐다봤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트레이너 실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 돌아온 트레이너 실에는 녹초가 된 시리우스가 잠에 빠진 테이오가 있었다.



"왔냐...?"


"제가 좀 늦었군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었어."


"죄송합니다. 잠깐 쉬고 계세요."


"안 그래도 그럴 거야."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노을을 보며 그와 시리우스의 하루가 오늘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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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봤는데 이거 테이오 음해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