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시 채널

레이시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욱씬거리게 하던 고통은 더이상 없다. 이명과 함께 항상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던 아픔이, 기술부의 도움으로 많이 나아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마음의 평정은 모두의 도움 덕분이었다. 자신을 언니로써, 자매기로써 따라주는 많은 실험체 동생들... 티아멧, 네오딤 등등... 


일상생활을 고통과 함께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감각이다. 매 순간순간이 어질어질한 구역질 속에서 버텨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타인에게 이를 일일히 설명하는 것 또한 곤욕스러운 일이다. 외상처럼 밖으로 드러나보이는 상처의 종류가 없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르카 바이오로이드들의 인심이 좋아서 그렇지, 합류 전에 만났던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눈초리 시린 질타를 받고는 했다.


그런 생활도 이제 끝이다.


모두 기술부 동생들이 노력해준 덕분이다. 사령관의 명령에 밤낮가릴 것 없이 연구하고 매진하던 닥터와 그 외 기술부 바이오로이드들... 그녀들은 레이시가 상상으로만 꿈꾸었던 고통 없는 일상을 가져다주었다. 기적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일이다.


폭신한 베게의 감촉도, 보드라운 실크 이불의 질감도 이전에는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못하던 종류의 것. 그녀는 고통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다른 무언가를 눈에 들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얻었다. 레이시는 침대에서 천장에 달려있는 실링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의 고통이 사라지기 전에는 저 실링팬에서 나는 소음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방증일까, 그녀는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쉽게도 머리에 난 흉즉한 제어장치는 제거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생명적인 측면과 깊숙히 연결되는 것이 이유인걸까, 닥터가 레이시에게 전달한 파동이라든가, 적절한 압력을 찾아 제어하는 이론  따위들은 그녀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제어장치의 제거 없이도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는 것이며, 그 혜택을 그녀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시는 그 뿔 같은 제어장치를 매만졌다.


'건드리지...마!'


갑자기 떠올랐다. 그녀가 취했던 매몰찬 행동, 마치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친 목소리가 나와 놀랐지만, 더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였다. 오르카 호에 혼자밖에 없는 사령관. 그는 레이시가 쳐낸 손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잦은 실험때문에 아프다고 들었어. 나도 생각이 짧은 행동을 했던 것 같으니 사과할께.'


사령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거두었다. 레이시는 그 때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괜시리 아파왔다. 결코 그를 멀리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칙칙하게 닫혀있었고, 나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 심리상태였다. 레이시는 그랬던 과거의 자신을, 고통을 덜어낸 지금에서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 사과해야해.'


이후에 레이시는 사령관에게 말해주었다. 다음에... 자신의 몸이 멀쩡해졌을 때에 다시 찾아달라고. 고통으로 인해 추해지는 자신의 표정을 사령관에게 보이기 싫었기도 했고, 더 이상의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내면의 아픔은 줄어들었다. 철면피 같기는 해도... 이제 그를 찾아 갈 수 있을 상황이 되었다. 레이시는 그렇게 믿었다.


잠시 멍을 때리던 그녀는 방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어장치를 떼어나지 못한 탓에 아직 과거의 망령이 완전히 떨어져나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초췌한 표정의 그것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파편이다, 저것은. 물론 가장 힘든 시간에 의존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벗어나야할, 그것이 방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레이시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전 남편의 환영이 서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 남편' 이고 뭐고 아니다. 애당초 그녀의 머리속에 박힌 기억이 가짜라는 것은, 그 연구소를 탈출했을 때 부터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레이시가 이후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기억속에 남아있던 과거의 '가짜'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애당초 그 기억을 지우기도 어려웠다. 그 기억이야말로 연구소에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고통받으며 괴로워해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장소' 라며 되뇌이며 마음을 이어나가게 해주었던 원동력. 연구소 탈출 이전까지는 자신의 인생의 이유였다. 자신이 이 실험 이후에 돌아가야 할 '가족' 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실하며 늘 웃음이 좋고 키가 큰 금발 남편에 철부지 아들과 귀염상인 딸, 이러한 가족이 자신이 삶이라는 끈을 버리지 않고 버텨온 이유였다.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왔다.'


하지만 철충 습격 이후 연구소가 파괴되면서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삶의 가치관이 한순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삶이라는 끈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던 건지... 더이상 신경 쓸 수도 없어졌다. 뭐... 어쨌든 다 거짓말이니까.


아무렴 좋다. 지금 레이시에게 문제 인 것은 그 기억이 아직도 그녀에게 '환영'처럼 들러붙어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 환영이 고통의 원인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전남편의 모습을 한 그것에게 눈을 부라렸다.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야, 전남편도 더더욱 아니고... 애당초 아무것도 아니지. 그저 고통속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라고 착각하게 만든 무언가... 오히려 내가 정상적인 삶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든 환상이었어... 이제 더이상 필요 없으니 나타나지마...'


레이시의 생각이 환상에게 전달될리는 없다. 그런것이 가능했다면 알아서 사라져 주었겠지만. 전남편의 환영은 슬픈 눈을 한 채로 레이시를 바라보았다. 레이시는 그 눈빛을 마주보며 반응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둘 중 하나가 '졸업'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일이다.


'뭐, 좋아. 지금부터 나는 인류 마지막 남성을 만나러 갈테니까. 네 마음이 버틸 수 있다면 좋을대로 하라고.'


레이시가 전남편의 환영에게 마지막으로 통고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방안의 베게 하나를 집어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인실을 나섰다. 환영 또한 레이시를 따라 나서는 듯 했지만 그녀는 상관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섰다. 더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사령관의 함장실에 도착해서 그녀는 일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용기를 내 방문을 두드렸다. 사령관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어두운 방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완료 됬다고 들었어. 잘됬네. 레이시."


"다른 분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같이 감사드리러 가주시겠어요? .... 저기... 조금 있다가요."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령관의 가슴팍을 밀며 같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우선, 사령관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으니까요."


레이시는 사령관의 방안에 들어 가서 처음으로, 소문으로만 듣던 분홍빛 침대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어두운 방 안에 분위기 있게 켜져있는 촛불과 뭐때문인지 탁자 위에 엎어져 있는 사진들, 어질러져 있는 옷자락... 아마 사령관은 이 곳에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과 관게를 맺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바이오로이드 들에 나의 위치는 없었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당초 자신이 거부해온 자리니까. 당연한다. 만약 자신이 여기에 추가되더라도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그저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령관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들 중에 하나가 되더라도, 그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 과거의 거짓된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끊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레이시는 어느샌가 침대에 걸터앉은 사령관에게 자신이 들고왔던 베개를 내밀었다. 


"베개에 써있는 걸 읽어봐 줄래요?"


"Y-E-S"


"...그래요. Yes에요. 마음의 준비는 되었어요. 오히려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뒷면은 뭐라 써있어? 야스?"


"--!! 베ㄱ- 베개는 뒷면도 똑같아요! 네, 뒷면도 yes라고요..."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막으며 레이시는 베개를 들어 확인시켜주었다.


"그렇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잖아? 애당초 하고 싶어서 온거잖아?"


"......"


오늘의 사령관은 왠지 모르게 짖궃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레이시는 이 묘한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벌이게 될 일이 무슨 행위인지 알지만, '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행위는 기억으로도 없다. 가짜 기억으로도 없는 거다. 연구소에서 그녀에게 가짜 기억을 주입시킬 때 이런 종류의 기억은 없이 두루뭉실한 느낌으로 넣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레이시는 전남편과 그 행위를 한 기억도 없고, 실제로 한 적도 없으며 애당초 해본 기억도, 가짜 기억도, 실제 경험도 없기 때문이기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벽한 [처녀]였다.


그러한 점을 자각하자 레이시는 왠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기억상으로는  전남편도 존재하고, 두 아이도 존재하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행위에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가슴이 콩닥거리고 말았다. 전남편과 어떠한 애뜻한 행위도 해본적이 없고, 야한짓조차 해본적이 없다. 전남편의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전부 가짜 기억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진짜다.


사령관이 레이시의 베개를 치워내고는 그녀를 침대에 바로 눕혔다. 그러고는 그 위에 사령관이 올라타는 느낌으로 레이시 위에서 상체를 위치시키고는 베개를 레이시 머리 뒤에 가져다 대 주었다. 사령관과 레이시의 얼굴 사이의 거리는 숨결이 공유될 정도로 가까웠다.


지금이다, 지금이라면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사령관에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상처를 치유해주고, 사랑해준 당신께... 제 전부를 바칠게요"


레이시는 소리 죽여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쭉 해오고 싶었던 말이지만, 기회가 없었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을 누구보다 신경써주었고, 실제로 낫기 위해 노력해준 인류 최후의 사령관에게. 이것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내뱉기로 했다. 그동안 사령관을 멀리하면서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지만 소리쳐 말하고 싶었던 애틋한 감정을. 목소리 하나 하나에 담아서 들려주고 싶었다.


"저 그래서--"


"알았어. 티아멧."






"....?"


레이시는 그 한 마디에, 하려던 말이 쑥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버버 하면서 더이상 새어나오지 않았다. 


뭐지? 그 이름은? 갑자기? 왜?


사령관 등 뒤에서 무언가가 일렁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전남편의 환영이 비웃는 표정으로 레이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수하던 그의 얼굴이 기묘하지만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억지로 막으려는 안면 근육으로 그녀를 눈동자 안에 담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 너는 수 많은 바이오로이드 들 중 하나일 뿐이야.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여자 중 하나니까 어울려주는 것 뿐이야. 기어오르지 마 애송이. 자신을 잘 따르던 실험체 자매기와 이름을 헷갈려 불릴 만큼 존재감도 없는 여자 주제에 나를 부정하며 으쓱거리지 말라구...'


레이시는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감정이 자신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전남편의 환영이 외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가짜 기억이 만들어낸 자의식일 뿐 어디까지나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습으로 내세우는 것 뿐임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레이시는 사령관의 얼굴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애타게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이름을?



"... 미안. 그녀의 이름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지."


사령관은 마치 가벼운 실수를 한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얼굴을 레이시 가까이 가져다대고는 말했다.


"우리는 불륜 중이니까, 실제 부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신경 끄는거야."


"....?"


사령관이 끈적한 목소리로 한 말을 레이시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장면을 뒤에서 바라보는 전남편의 환영의 모습도 그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레이시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어두웠기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안에 어질러진 의복은 티아멧의 전투복이었으며 방 안에 있는 생활감있는 장신구 중에는 사령관이 티아멧에게 선물해주기 위해서 준비하는 알록달록한 사탕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탁자 위에 덮여있는 저 사진의 정체는...


방 안은 마치 티아멧과 사령관이 '부부관계' 인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러한 준비를 사령관이 했을 이유에 생각이 닿자, 레이시는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예전의 부부관계에 죄책감 가질 필요 없는 순간이야. 전부다 신경 끄도록해. 지금 여기는 오직 너와 나만이 바라보기 위해서 준비해놓은 공간이야. 티아멧도 모르게 말이지. 그니까..."


사령관은 그윽한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티아멧의 의복에 손을 대더니, 한번도 쓰지 않은 콘돔을 전투복 안쪽에서 꺼냈다.


"너도 이전의 남편과 가족따위,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거야."







불륜 관계라는 컨셉을 이용해 레이시가  첫행위에서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를 줄인다, 가 사령관의 생각이었다.


그녀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통을 줄이게 되면 아마 첫 관계를 맺으러 자신의 방으로 찾아 오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시에게 전남편과 가족이 있다는 굴레가 존재하는 한, 섹스를 하더라도 일말의 죄책감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사령관은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섹스가 아니라 불륜 섹스라면 배덕감이 넘쳐나서, 나름대로 중화가 될것이다.'


'흠, 그런가? 좋은 조언 고마워, 아스널. 고민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긴것 같아. 뭘로 보답을 해야 할까?'


'아니, 별거 아니네. 필요한 건 지금 바로 받아가면 되니 말이니.'


다만, 사령관은 아스널의 아이디어가, 불륜의 행위자가 오로지 '레이시'에게만 치중되었다는 점에 부담감을 느꼈고, 자신 또한 해당 행위를 저지르는 쪽에 동참하기로 생각했다. 이에 선정된 바이오로이드가 티아멧이었으며, 그녀에게는 상세한 내막은 알리지 않은채 의복과 기타 필요 물품들을 빌려왔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았다.


"....역시 사령관님은 뭔가 센스가 좀 특이하시네요..."


사령관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레이시는 없던 두통이 생긴마냥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스널과의 동침이 잦다보니 그쪽에 물들게 된것인지 분간할 수는 없다만... 


"겉으로는 매우 사이 좋은 부부이지만 실제로는 성관계가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티아멧. 그녀가 늘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숨겨놓은 콘돔은 정작 불륜 상대인 레이시와의 섹스에 사용되고 만다...라는 비하인드도 있는데 어때?"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부녀라는 가짜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로맨틱한 첫경험을 하게 될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어디부터 잘못된건지... 티아멧은 아마 좋은 관계인 자매기이기 때문에 선정된 것일까? 가까이 있는 사이임에도 이런 불륜을 저지르면 배덕감이 배가될 것이란 생각에? 레이시는 그런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음... 그러면 오히려 네 감정을 상하게 했나보네.. 미안해 레이시..."


사령관은 덩달아 풀이죽었다. 축처진 그의 어깨 뒤로 무언가가 레이시의 눈동자에 비쳐보였다. 전남편의 환영이 그 곳에 있었다. 아까 그녀를 비웃던 표정과는 달랐다.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색과 경악에 가득찬 표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목격한 자의 모습이었다.


"...그런가요."


레이시는 깨달았다. 이 방 자체는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서 꾸며진 공간. 그 어느 바이오로이드들도 사령관과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사령관이 전남편으로부터 여자를 빼앗아오는 NTR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레이시, 그녀 하나 뿐이다.


다른 바이오로이드 들이 갖지 않는 그녀만의 매력, '전남편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라는 특이성, 그것이 사령관이 애를 쓰며 그녀를 위해서 방을 꾸민 이유가 되었다. 이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이오로이드 중 하나가 아니라 레이시 그녀 자체가 인정받을 수 있는 무언가로 비춰졌다.


"사령관님 당신은..."


이제 그녀의 마인드는 180도 달라졌다. 사령관이 자신 하나만을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해주었다는 것도 흥분되었고, 티아멧 자매기의 의복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촌극에 쓰이고 만다는 것도 배덕감이 강해 흥분되었다. 게다가 자신을 향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남편의 환영. 자신과 한번도 잠자리를 해본 적도 없는 무언가가 자신의 '불륜 플레이'에 저렇게나 절망스러워 한다는 것은 훌륭한 자극 포인트가 되었다.


"...정말로 천재에요."


레이시는 자연스럽게 사령관의 등 뒤로 손을 뻗어 그를 안았다. 한 번도 안아본적 없는 남자의 등은 따뜻했다. 한 번도 전남편의 그것이 닿아본 적이 없는 곳에 사령관의 물건이 닿으며 엄청난 쾌감을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전남편의 환영은 사령관 등 뒤에서 절규하며, 분노하고, 울부짖다가 결국 불륜 현장을 딸감 삼아 용두질했다. 그러한 모습에 레이시의 기억에서 전남편의 존재가 옅어져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불륜이네요... 좋아요 좋아..."


렌즈 너머에서 해당 장면을 보며 자위하던 탈론 페더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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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그려오려던건데 요즘 그림에 손도 안가고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소설로 써옴

만화로 그렸다면 전혀 할수 없었을 묘사를 소설로는 할 수 있으니까 대체로 만족스러움

가끔씩 만화로 그리기 어려운건 이렇게 소설로 소재 풀어야겠다



출처

작가: 청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