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시 채널

오르카의 선조들의 노력으로 인류가 재건된지 200년

 

새로운 인류는 선조들의 바람처럼 번성하였으며 점차 예전 인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구인류의 모습으로도 돌아가고 있었다.

 

인간의 피가 섞인 혼혈은 또 다시 바이오로이드를 차별하고, 도구로 취급하기 시작했으며

폭력, 강간, 살해 등 모든 범죄에 노출된 바이오로이드들은 항거를 꾀하였으나 생산부터 부착된 정신모듈은 그 선택권을 자연스럽게 박탈하였다.

 

그리고 지금

모든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동작을 멈추고 화면을 보고있다.

 

“위대한 오르카의 선조들로부터 20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류가 복구 되기까지 바이오로이드들의 희생은 인류 전체가 알고있을 것이며 이런 선언이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고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빌어 선언합니다.

이 시간 이후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며 신인류의 소유물이 아닌 동일한 인간으로 인정됩니다.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투표권, 재산권 등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으며 이에 불복해 차별행위를 하는 경우, 손상을 입히는 경우 인간의 법과 동일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특수목적의 경우에 한해 바이오로이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정부의 감시와 새로 생산될 그녀들 또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우 받을 것입니다.

바이오로이드라는 단어는 이제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구 정부 오르카 제 3대 대통령의 연설.

 

그 내용은 모든 이들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는 말이었으며 누군가는 환희를, 누군가는 분노를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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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뒤. 

흰색 벽으로 둘러쌓인 방에서 한 남성이 입을 열었다.

 

“레이시 M9182번. 당신의 정신모듈은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그간 인류를 위해 희생된 당신 자매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9182번은 평소 본인에게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실험을 하던 연구원의 달라진 태도에 오히려 겁을 먹었다.

 

“연구원님. 이거 진짜인가요…? 이러시다가 다 실험이었다 하면서 다시 독방에 넣으시는건가요?”

 

“진짜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너는 인간으로 인정되었고 이제 너와 나는 동등한 인격체가 되었다. 싫은거냐?”

 

불만스러운 얼굴. 레이시는 연구원의 표정을 읽었으나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이 사람에게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을 테니.

 

“혹시.....제 이름도 바꿀 수 있는건가요?”

 

“생각해둔 이름이 있다면 지금 등록처리가 가능하고 아니라면 무작위로 이름이 지어질거다. K1024번은 김말자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더군.”

 

“말자...뭔가 귀엽네요.”

 

“진심이냐? 하여튼 바이오로이드들의 생각은… 아니 너희 레이시들의 생각은 이해를 할 수가 없겠군. 생각한 이름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말해.”

“그럼...”

 

잠시 후

 

연구소에서 배급받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M9182번이 연구소 정문을 통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인 ‘한수안’이 적힌 명찰을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M9182번이 아닌 수안...나는 앞으로 한수안이야...한.수.안...’

그녀의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부러움이 느껴질만한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첫 날 밤

 

수안은 정부가 마련해준 임시거처에서 기본적인 사회복귀 훈련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바이오로이드 인간화 정책에 따라 연구소 생활로 인해 습득하지 못한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 법률, 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습득하였다.

 

수안에게 있어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했으며 인간 사회는 즐거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수안은 작은 까페의 문 앞에 서있었다.

 

‘이 곳이 내가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일할 장소...’

 

허름했지만 내부는 세련된 느낌을 주는 그곳은 작은 입간판에 쓰여진 ‘트윈스’ 라는 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인간이다...인간이다...나는 잘 할 수 있다......’

 

“뭐해요? 빨리 안들어가고!”

 

한 여인의 활기찬 목소리가 수안의 귀에 들려왔다.

해바라기처럼 밝은 미소로 가게 앞에 서있던 수안을 보던 여인은 점점 그녀에게 다가갔다.

 

“흐음...당신이 한수안씨인가요? 나보다 더 예쁜거같은데...”

 

“네!이번에 트윈스에서 사회적응훈련을 받게 될 바이오로이드 레이시모델 한수안이라고 합니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수안을 보고 여인은 깔깔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렇군요. 저는 이주희라고 해요. 안 잡아먹으니까 너무 긴장하지말고 그리고 수안씨는 이제 인간이니까 바이오로이드라는 소개는 쓰면 안되요! 알겠죠?”

 

“죄송합니다...”

 

“죄송할거까진 없고 얼른 들어가요! 오늘은 가게 문 잠깐 닫고 수안씨랑 얘기를 좀 해야할거같네요! 레이디스 토크타임. 혹시 좋아해요?!”

 

“네? 아...그런걸...해본 적이 없어서...”


“그럼 수안씨의 첫경험. 제가 가져갈까요?! 막이래!”

 

주희의 넘치는 활력에 압도된 수안은 그대로 까페에 빨려들어갔고 밤이 될 때까지 두 여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와 그러면 수안씨는 전기 막 쓸 수 있는거에요?”

 

“쓸 수는 있는데...제대로 제어가 안되서 위험해요. 공터 같은 곳이 아니면 함부로 썼다가는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고요.”

 

“아 아깝다. 제 핸드폰 충전해달라고 할려했는데.”

 

“남을 콘센트 취급하지 마세요!”

 

처음 만났을 때 보다 한결 긴장이 풀린 수안은 주희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곰곰히 생각했다.

 

‘대화라는게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던가? 내가 알던 대화는 명령, 복종, 욕설, 사죄...뿐이었는데...’

 

말 못할 기쁨을 느끼던 수안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주희를 바라보았다.

 

“고맙워요 주희씨. 당신 덕분에 인간이 뭔지 조금은 느끼게 된거같아요.”

 

“수안씨는 인간이에요. 법이 그러잖아요? 그리고 법 아니었어도 저는 바이오로이드 분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왔어요. 저도 바이오로이드의 피가 섞인 오르카의 후예인걸요.”

 

주희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수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트윈스에 오신걸 환영해요. 제가 비록 급여는 왁왁 챙겨주진 못해도 수안씨가 저랑 같이 있는 동안에는 우리 자매처럼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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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에서 마주한 인간들의 모습은 수안에게 매우 신기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자신을 차별없이 대해주는 손님, 그렇지 않은 손님, 몇 번이고 자신에게 구애를 하던 손님, 모욕을 주던 손님 등 언제나 자신에게 사무적으로 엄격하게 대하던 연구원과는 다른 각양각색의 인간들.

 

그 사이에서 주희와 함께 지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생활은 점차 수안의 마음을 인간으로 만들어갔고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큰 지지대인 주희로 인해 급격한 내면 성장을 이루어갔다.

 

“언니. 언니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루의 장사를 마감하고 까페를 정리하던 수안은 주희에게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글쎄...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먹는거?”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이런 무거운 질문을 너무 가볍게 던지는 니가 너무한거 아니야? 이런건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전문가들은 3박 4일동안 이야기 할 수도 있을걸?”

 

“어차피 언니에게 그런 수준의 답변을 기대한게 아니니까 그냥 가볍게 말해봐요 가볍게!”

 

“그냥 우리 자신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네?”

 

생각도 못한 주희의 대답에 수안은 벙찐 표정으로 주희를 바라보았다.

 

“내가 예전에 본 글인데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따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구. 그렇다면 인간 그 자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너무 깊게 생각하면 머리아프긴 한데 그냥 내 생각은 그래. 우리는 신의 모습을 한 피조물이기에.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라는거지.”

 

“뭔가 말이 안되는거 같은데 말이 되는거 같기도 하고…..”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만들었다.

수안에게 있어 왠지 모를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모습을 본 따 만든 바이오로이드는...인간의 피조물인 우리는...그들을 신으로 섬겨야하는 건가?’

 

그리고 그 말은 수안에게 궁금증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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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뒤

 

트윈스로 출근하던 수안은 가게 앞에 있는 한 남성과 주희를 보게된다.

남성은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연거푸 주희에게 말하고 있어고 주희 또한 만만찮게 대꾸하는 광경이었다.

 

거친 욕설, 고함,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인간 사회의 모습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하며 가게 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걸었다.

 

“피조물이 어떻게 신과 같은 자격을 가질 수 있는가! 이는 불경함 그 자체이며 바이오로이드는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다!”

 

“아저씨.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시티가드 부릅니다? 그리고! 아저씨도 반은 오르카 선조들의 피가 섞인 신인류잖아요!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시는거에요!”

 

“다 듣고 왔다. 니년의 가게에 불경한 바이오로이드가 일하고 있다지? 니년은 인간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어찌 신이 피조물과 같아지려고 오히려 애를 쓰냔 말이다!”

 

“우리 가게에 바이오로이드는 없어요. 저랑 제 동생.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인간 여성 두 명이서 단촐하게 운영하는 가게라고요. 그리고 한번만 더 바이오로이드라는 단어 제 앞에서 함부로 쓰시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겁니다. 이건 경고에요.”

 

인간 사회로 나오고 나서 처음 마주한 인간의 어두운 모습.

그 모습은 평소 자신이 트윈스에서 마주하던 손님들의 모습이 아닌, 과거 자신이 있던 연구소의 연구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언니 괜찮아요?”

 

“수안아. 넌 들어가있어. 내가 오늘 인간같지도 않은 거 오늘 한번 송장 치뤄야겠다.”

 

“오호라. 이년이 바로 그 바이오로이드구만. 니년이 어떻게 감히 신과 맞먹으려 드는 것이냐! 부끄러운줄 알고 니 년이 있던 곳으로 꺼져버려라!”

 

쫙!

 

경쾌하고도 호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식간에 뺨을 맞은 남성은 상황파악이 안된채로 자신의 뺨을 부여잡고 있었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주희는 차갑고도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까 말했죠. 내 앞에서 단어 선택 잘 하시라고요. 한대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아저씨나 원래 있던 집구석으로 썩 꺼지세요. 아! 여자한테 맞은 게 분하신가? 꼬우면 시티가드 부르시던지. 내가 이기나 댁이 이기나 한번 다이다이 까볼까요?”

 

“이...더러운 창년같으니...같은 인간이라 말이 통할 줄 알고 대한 내가 병신이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 아저씨랑 나는 같은 인간이 아닌데.”

 

“뭐?”

 

“내가 인.간 이고 아저씨는 쓰.레.기 에요. 어디 쓰레기가 인간이랑 맞먹으려고 드나. 세상 말세야 말세~”

 

더 놔두면 진짜 큰 일이 될 거 같다란 생각을 한 수안은 날쎄게 의기양양한 주희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언니 우리 이제 가게 열어야죠! 얼른 들어가요!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희가 가게 때문에 준비를 해야해서...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서로 분에 못이겨 삿대질을 하는 두 인간을 겨우 떼어내고 수안은 주희를 가게 안으로 억지로 밀어넣었다. 

그 후 남자는 가게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으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이내 사라졌고 씩씩거리던 주희 역시 마음을 진정하고 가게 일을 보기 시작했다.

 

“언니는 왜 그렇게 무모해요… 그러다가 진짜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난 그딴 새끼들 보면 진짜 같잖아서 이게 주체가 안돼. 아까 내가 말했지? 우린 모두 오르카의 선조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야. 그 말인 즉슨 적건 많건 우리에겐 바이오로이드의 피가 섞여있다는 건데 서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대체 왜 편 가르기를 하고 싸우라고 부추기는거 아냐.”

 

“그렇긴 한데…그래도 폭력은…”

 

“내가 폭력 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저런 사람들이랑 이야기 해보면 차라리 패는게 낫겠다 싶을 때가 있더라고. 어쩌다보니 오늘 그걸 실천한 셈이 되버렸네.”

 

주희의 말에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안은 오히려 그녀가 걱정되었다.

만에 하나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기고 누군가가 주희를 해꼬지한다면? 

같잖은 바이오로이드가 인간놀이 한다고 시비를 걸면? 

 

“저 때문에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냥 언니랑 같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그 자체가 제가 바라던 인간의 삶 그 자체에요. 그러니까 제발. 위험한 짓은 더 하지 말아줘요.”

 

“알겠어...미안해... 앞으로는 성질 좀 죽여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대신 수안이 너도 화 낼낼 때 꼭 화를 내야해. 넌 인간이니까.”

 

“그러면 전에 콘센트 취급한 거에 대한 벌로 전기 찌릿찌릿 해봐도 되는거죠?”

 

“아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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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청할 시간에 평소라면 울리지않던 그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고 전화를 받은 수안은 순식간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환자가 큰 부상을 입고 길에 쓰러져있던걸 누군가 발견해 지금 입원중입니다. 환자가 가족이 없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직장동료인 수안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혹시 지금 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저기 잘 이해가 안되는데...그러니까 언니가...지금 병원이라는 거에요? 다쳤다고요?”

 

“충격이 크신 건 알겠는데 지금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자의 부상 정도가 심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장담드리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야”

 

“네?”

 

“거기 어디야! 거기 어디냐고!!!”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수안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내 행복을 앚아가지 말아주세요.

나는 앞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자유를 포기하고 인간이 아닌 바이오로이드로 명령대로 살아도 좋아요. 제발 언니만큼은 제발...

 

달리는 수안의 머릿속에는 온통 주희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녀가 죽는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아니 그 전에 누가 주희를 그렇게 만든 것 인가. 대체 왜.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여러가지 의문과 걱정, 분노를 가지고 병원에 도착한 수안은 안내받은 병실에서 주희를 만날 수 있었다.

 

“언니...저 왔어요...”

수안의 눈 앞에는 호흡기의 힘을 빌어 가뿐 숨을 쉬는 주희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복부의 출혈로 인한 흥건한 핏자국, 그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방어흔, 그리고 무엇보다 오른쪽 눈에서 왼쪽 뺨까지 대각선으로 길게 그어진 칼자국.

 

수안은 그런 끔찍한 몰골의 주희를 바라보고 조용히 손을 붙잡으며 울 수밖에 없었다.

 

“제발...필요한 건 다 드릴께요. 혈액, 피부, 장기, 뭐든 상관없어요... 제발 언니만 살려주세요...”

 

“다행히 고비는 넘겨서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굴의 자상은…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흉터가 남을 것 같습니다”

 

“시티가드는 대체 뭘 한거죠! 언니가 저렇게 상처입고 다칠동안 그들은 대체 뭘 한거에요!”

 

“그건 이제부터 말씀을 나눠보셔야 할거같은데요?”

 

수안에게 대답한 건 언제 병실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켈베로스 모델이었다.

켈베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희를 바라보았다.

 

“으 상처...되게 아팠겠다...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루안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레이시 모델. 한수안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요? 언니가 왜. 뭐 때문에 이렇게 다친거죠?! 그리고 당신들은 대체 뭘한거에요!”

 

“일단 진정하시고.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원한에 의한 폭행 같은데요, 맨 정신인 사람이 이렇게까지 난도질을 할리가 없거든요? 혹시 짐작가는거 있으세요?”

“원한...아뇨! 언니는 성격이 불 같기는 했지만 아무한테나 화를 내고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그리고 그만큼 활력넘치던 사람이라 손님들도, 저도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기운을 얻으면 얻었지...원한이라뇨...”

 

“하…그러면 좀 난처하네요. 사실 현장에 가보니 그 근처에 제대로 된 CCTV가 없더라구요. 있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화질이 안좋아서 저희들도 우선 증거수집에 집중하고 있는데…짐작가는게 없으시면 아예 0부터 시작해야할거같아요...히잉...”

 

“만약...이렇게 만든 사람이 잡히면 어떤 처벌을 받게되나요”

 

“아마 특수폭행 및 상해 등으로 합의가 없다면 징역은 100프로 확실할거고...심문을 해봐야겠지만 무사히 빠져나가진 못할거 같아요! 못해도 3년은 꼼짝없이 갇혀 살아야겠죠?!”

 

최소 3년...

그녀가 법률을 공부했을 당시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판례들을 보았고 그 판례들 사이에는 억울하게 피해자가 구제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가 여유롭게 법의 테두리를 빠져나가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그녀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 이럴 수 있다 생각했지만 무심코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다가오게 될까 문득 겁이났다.

 

“너무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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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선 수안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가게를 중심으로 골목골목을 멈추지 않고 뛰어다니며 봤던 곳을 보고, 또 보고, 또 다시 보고.

자신이 찾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뛰어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원하던 것을 찾았다.

 

“당신이 그런거죠?”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한 것은 지난 번 난동의 주인공인 남성이었다.

그는 수안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러운 바이오로이드가 나와 말을 섞으려고? 그리고 내가 뭘 했다는거지?”

 

“시치미 떼지마! 니가 언니를 그렇게 만든거지! 왜! 대체 왜!”

 

“이 미친 바이오로이드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갑자기 나타나서 지랄이냐고”

 

“왜 그랬어...왜... 왜 그랬냐고...내가 죄송하다고 사과했잖아요...근데 왜 그랬어요......차라리 나한테 그러지 왜 언니한테 그랬냐고...”

 

수안은 울먹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남자에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걸음씩 다가갔다.

 

“미친...원래라면 상종도 못할게 이제는 자기가 진짜 인간인줄 알고 덤비는게 역겹군 역겨워. 정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

 

한걸음

 

“그래. 내가 니 주인을 그렇게 만들었다. 됐나? 그년은 인간이 아니야. 너랑 같은 바이오로이드겠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거지? 오히려 내 편을 들어야하는게 정상 아닌가?!”

 

한걸음

 

“너희 역겨운 바이오로이드가 그깟 법으로 인간의 자격을 얻었다 해서 진짜 인간인줄 알아? 너흰 그냥 도구야! 어딜 감히 피조물주제에 창조주와 맞먹으려고 덤비느냔 말이다!”

 

한걸음. 그리고 아주 작은 치직 소리.

 

“너흰 절대 인간이 되지 못해. 너흰 그저 가축이고 도구일 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단순한 피조물주에에 어딜 감히!”

 

칙…치직….칫…..

 

수안의 몸에 조금씩 푸른색 스파크가 튀며 일렁거리고 있었다.

금발이던 그녀의 머리를 점점 푸른색 후광이 감싸며 이윽고 온 몸을 뒤덮었다.

 

난 바이오로이드야

난 인간이야

난 바이오로이드야

난 인간이야

대체 나는 뭐지? 나는 도구야? 나는 가축이고 피조물일 뿐이야?

나는 왜 태어난거지?

 

중얼중얼 거리며 다시 한걸음.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는 눈물과 분노가 가득차있었다.

 

“난 인간이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졌다 어두워졌고, 수안의 앞에 있던 남성은 푹 고꾸라져서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난 인간이야! 인간! 인간이라고! 나도 너희와 같은 인간이야!”

 

쾅, 쾅, 쾅

섬찟할 정도로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는 집요할 정도로 쓰러진 남성에게 직격으로 맞아떨어졌고 그럴 때 마다 남성은 반작용으로 꿈틀거릴 뿐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죽어! 죽어버려! 넌 인간따위가 아니야! 아아아악!!!!"

 

이윽고 체력이 다한 수안은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 앞에는 까맣게 타버린 숯검댕이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녀는 조용히 인간이었던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나지막히 말했다

 

 

 

 

 

 

 

결국... 인간이 됐어...진짜...인간.....



작가: 고추빻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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