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우면서도 낯선 온기가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머리를 땋을 때마다 살짝살짝 닿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은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것이었다. 

“처음 머리 땋아줬을 때 기억하니?”

물론이다.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다. 

“내가 손재주가 없어서 엉엉 울 줄 알았는데. 너는 마냥 좋다고 웃고 있던 것도?”

머리 모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땋으며 느껴지는 그 손길이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난 네가 억지로 웃는 줄 알고 그 뒤에 열심히 연습했잖니. 자. 다 됐다.”

어머니가 건낸 거울 속에는 아름답게 땋은 머리를 한 소녀는 없었다. 머리에 흉측한 금속 구조물이 박혀 있는 실험용 바이오로이드만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딸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당연히 당신이지.”

아아. 모든 게 기억 그대로다. 
저 웃음. 이 손길. 이 온기. 
구속복에 묶인 채 눕혀져 천장을 볼 때마다 생각한 가족에 대한 기억 그대로다. 
……실험을 위해 주입된 가짜 기억 그대로. 

정말 악취미다. 가짜인 걸 깨달은 기억을 가지고 또 한 번 나를 속이려 하다니. 
그래도.....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만약에 기적이 일어나서 만나게 된다면 꼭 하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응?”
“…….사랑해요. 그리고 정말로 고마워요.”

그 품은 가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실험실의 레이시가 바랐던 온기는 분명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실험실의 레이시가 바랐던.....
 



 


“…….이시....”

"레이.....시...."

"레이시!"
“네?!”

몇번의 부름에야 레이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멍하니 있어서 놀랐어.”
“죄송해요.”

그녀는 이상한 목소리로 대답한 게 부끄러웠는지 귀를 벌겋게 물들였다. 보기 드문 레이시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자. 다 됐어.”

거울을 받아 든 레이시는 말없이 거울을 쳐다봤다.

“하하…처음 해봐서…이상하지?”

서툴고 엉성하게 땋은 머리는 빈말이라도 좋은 평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녀라면 힘겹게 웃으며 칭찬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는…..잠깐 낙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 중이었어요.”


낙원이라. 레이시가 마키나의 낙원에서 본 것은 쉽게 짐작 가능했다. 가족에 관한 기억이 가짜 기억이었다고 해도 실험실에서 그녀가 느낀 감정들은 진짜다. 그것들을 부정하고 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레이시는 낙원이 그리워?”
“……실험실의 레이시는 분명 그곳에 남고 싶었을 거예요.”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가슴 한구석이 너무 아팠다. 나는 이 상처입은 유령 소녀를 치유할 수 없는 걸까.


“……그렇구나.”
“하지만 오르카호의 레이시는 아니에요.”

내 손을 살포시 잡은 그 손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오르카호의 레이시…..아니, 사령관님의 레이시가 원하는 건 바로 이 온기에요.”

나를 향하며 웃는 그 미소에는 어떠한 거짓도, 그림자도 없었다. 

“서툴고 엉성해도 괜찮아요. 점점 좋아질 거에요. 사령관님도. 저도.”

레이시는 온기에 이끌리듯 내 입술로 가까워졌다. 서로의 온기를 확인한 다음 숨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녀가 물었다.

“저, 저기....처음 해 봐서.....이상하지 않았나요?”

얼굴을 붉게 물든 채 수줍게 물어보는 그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 레이시도. 나도.”

우리는 다시 서로의 온기를 탐했다.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더 사랑하는 모습으로. 
 
 



-끝-


출처

작가: 아무것도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