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단어: 사이클로펜타실록세인, 상온핵융합, 아나필락시스, 팔만대장경,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네크로필리아, 드락사르의 황혼검, 브뢴스테드-로리 염기, 보스와나헤르체고피나,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작성자의 코멘트(?): 한지 사문 고른놈한테 이런 거 왜 던져주세요 


한 재소자가 목을 매어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망자는 29살 박세빈.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이냐."

"그러게."

오늘은 사건 없이 좀 평온하게 지나가나 했더니 아니었다. 하긴 사건 없기를 기대하는 건 경찰로서 약간 직무유기지.

신고가 들어온 OO교도소에 수사를 위해 들어갔다.

"경찰입니다. 재소자 자살사건 때문에 수사하러 왔습니다. 신고하신 분 맞습니까?"

"네, 교도관 장덕철입니다."

"알았습니다."

"피해자가 혹시 이상한 징후를 보인 적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 재소자가 사체오욕죄로 들어와서 처음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집중관리했지만 가면 갈 수록 적응을 잘 해서 집중관리대상에서 최근 제외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사건 현장을 수사한 결과 자살할 때 쓴 것으로 보이는 수건과 공책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체 부검 결과 확실히 목을 매어 자살한 게 분명했다. 관건은 이제 공책이었다. 펼쳐보니 그의 자서전 같은 게 쓰여 있었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 내용을 읽어보았고, 그 결과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나와 있었다. 아래는 그 원문이다.

"과연, 이번에는 상온핵융합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석민이 말했다.

"성공까진 아니더라도 1억도 유지 시간이 좀 늘었으면 좋겠다." 

여기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화재가 구석구석 숨어 있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시이다.

경주에는 알다시피 월성원전이 있다. 이 월성원전에서 핵융합 연구가 실행되고 있고, 나는 이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몇 초 동안 버틸까?"

"9초 버텼어! 저번보다 1초 늘어났어!"

석민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8초 동안 버틴 게 세계 최장 기록 경신이었는데, 또 경신이었다.

"오늘 기념으로 술이나 한 잔 할래?"

"됐어. 내일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해."

"나쁜새끼. 지만 커플이라 이거지?"

"꼬우면 너도 여친 만들던가."

"내일 나혼자 드락사르의 황혼검 쓰고 놀라 이거냐."

"어."

"넌 데이트가 친구랑 롤 하는 거 보다 더 중요하냐 이새꺄."

"당연한 거 아니냐? ㅋ 나 먼저 퇴근한다."

"그래라 이 나쁜 새꺄..."

퇴근하고 나서 내일 아침 데이트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참, 내일 볼 사이지만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귀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이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내 여자친구, 유빈이다.

"뭐해?"

"나 이제 퇴근해서 씻고 누웠어. 너는?"

"나도.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내일 볼 건데 ㅋㅋ"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나도! 그러니까 내일 버스 안놓치게 일찍 자."

"오늘 회사에서 별일 없었어?"

"신입 교육시키느라 힘들었어 ㅠㅠ"

"왜?"

"신입이 글쎄 사이클로펜타실록세인을 이상한 데다가 둬서 하마터면 새로 나올 제품 망칠 뻔했잖아."

"에휴, 걔는 왜 제자리에 안놔두고 그랬대."

"모르겠어. 다행히 망치지는 않았어! ㅎㅎ"

"다행이다. 이제 나 잘게. 내일 봐."

"알았어! 사랑해♥"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목소리다. 내일 아침 고속버스 안놓치게 일찍 자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테니 불을 얼른 껐다.

여자친구는 일주일 전 남원에 있는 화장품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경주에 있는 나하고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브뢴스테드-로우리 산염기의 짝산과 짝염기 같은 그런 관계인데,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힘들다.

내일 만나면 꼭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야겠다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남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2시였다. 부산에서 한 번 차를 갈아타야 해서 좀 오래 돌아가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

터미널 앞에서 여자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더니 나한테 안겼다.

"세빈아~~~!"

"우리 귀염둥이 잘 지냈어?"

"웅!"

"여기 테마파크 예약해뒀으니까 가자."

"알았어!"

춘향전의 도시 남원답게 연인들을 위한 춘향테마파크가 있다. 분수대에서 사진도 찍고, 대나무 피리도 사고, 팔찌도 사고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어느덧 3시. 지리산 근처 켄싱턴호텔 뷔페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남원으로 이사가고 나서 처음 보는 거니까, 많이 사줬다.

"우와 여기 엄청 맛있어!"

"많이 먹어."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

"살찌든 안찌든 귀여우니까 많이 먹어라."

"알아써 ㅋㅋㅋ"

먹는 모습마저도 귀여운 여자친구. 그런데 팔이 좀 이상했다.

"야 너 팔 왜그래?"

"아, 이거 아나팔락시스 때문에.. 치료받고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걱정된다. 다치지 마."

"괜찮아. 심각한 거 아니래."

"그럼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그 말을 끝으로 점심식사가 끝났고, 저녁에는 죽항동에서 놀다가 부산 가는 막차 버스가 떠날 때가 되었다.

"오늘 좋았어?"

"엉!"

"다음엔 어디 갈래?"

"움... 보스와나헤르체고피나!"

"몰라??"

"지리랑 담 쌓았어.;;"

"그 유럽인가 어디 쪽이더라... 아 모르겠다 쨌든 거기 TV에 나왔는데 정말 풍경 좋더라구!"

"알았어. 어딘지 한 번 알아봐볼게. 다음에 휴가 낼 때 한 번 가보자. "

"알았어. 아, 이제 시간 다 됐네. 조심히 들어가!"

"너도."

둘 다 이과라 지리하고는 너무 담 쌓았던 나머지 서로 몰라서 웃었다.

버스를 타자마자 친구녀석한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녀석이다.

"여보세요."

"야 너 뭐하냐."

"게임 돌리는데 왜."

"야 보스와나헤르체고비나가 어디냐."

"보스와나는 어디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겠지."

"아 쨌든 거기가 어디냐고."

"유럽 쪽 나라야. 왜."

"나 잘 모르는데 코스 좀 짜주면 안되냐."

"또? 저번에 합천 여행코스 짜줬을 때는 팔만대장경 왜 넣었냐고 난리치던 놈이 너에요."

"아 모르겠고, 쨌든 짜줘."

"븅신. 니가 좀 짜라고 이새꺄."

그러고 나서 뚝 전화가 끊겼다. 말은 이렇게 해도 짜줄 아이다.

차는 달리고 달려, 다시 경주에 도착했다. 내일도 행복할 줄만 알았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빈이 어머님이었다. 

"여보세요?"

"해찬아, 우리 유빈이가...유빈이가..."

"유빈이 왜요?"

"어제 니랑 만나고 나서 길 건너서 집들어가다가 음주운전 하던 차에 치였댄다. 아이고 내딸..."

그러면서 펑펑 우셨다.

"지금 어디세요?"

"여그 시방 남원의료원이여."

회사에 묵혀뒀던 휴가를 쓰고 남원에 급히 도착했다.

"그 써그럴 놈이 치고 그냥 가부렀댄다. 이를 우짜쓰까. 내 딸 저렇게 만든 천하의 써그럴놈..."

"경찰에서 수사한다니까 곧 잡힐 거에요.  CCTV도 있을거고."

"꼭 잡혀야 허는디..우리  딸 우짜쓰까잉.. 의사 선상님, 야는 시방 살 수 있는 거에요?"

"노력은 해보겠지만,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워메..워메.. 금쪽같은 우리딸을 우짜면 좋을까..."

"곧 수술 들어갈 테니 잠시 나가주세요."

"알겄어야."

수술은 그렇게 진행되었고 몇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의사가 나왔다.

"유감스럽지만, 따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침울하게 말했다.

"워메 이런 니기럴 경우가 다있능가, 착한것은 죽어블고 남을 쳐븐 못되처먹은 것은 왜이리 잘사는거싱여..."

병원은 그야말로 대성통곡이었다.

"일단 의료원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곧 장례절차 밟으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겄시야."

이틀 뒤 슬픔을 뒤로 하고, 속히 장례 절차를 거행했다.

서로가 너무 바빴고, 그리고 빨리 보내줘야만 슬픔이 덜할 것 같았다.

예빈이는 가족 선산인 정읍 땅에 묻혔다.

"보고 싶다. 예빈아. 네가 내 여자친구라 행복했어. 아, 그리고 어머님, 제가 나머지 다 처리할테니 어머님 그만 광주로 돌아가세요."

"나가 자네한테 미안시러워서 워찌 부탁한당가."

"휴가 내놨고, 가게 일 바쁘시잖아요. 가서 가게 보세요. 제가 나머지 다 처리하고 돌아갈게요."

"자네만 믿을게잉."

장례 후 이런 저런 절차를 진행했다. 장례 자체는 다 끝났지만 예빈이가 너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하면 안될짓을 하게끔 만들었다.

밤이 되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무덤을 파냈다. 한번이라도 얼굴이 더 보고 싶었기에, 그런 안될짓을 해버렸다.

예빈이는 예쁜 얼굴 그대로 있었다.

"한예빈, 왜이렇게 예쁘냐."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그리움을 넘어서 집착으로 갈 것만 같았다. 나는 네크로필리아가 아닌데. 하지만 이미 나는 죽은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정신이 어디로 샜는지도 모를만큼, 격렬하게.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내 뒤통수를 쳤다.

"이런 써그럴 놈."

"누구야?"

"왜 남의 멀쩡한 딸 시신을 그렇게 파내서 난리를 치고 있는겨? 쳐죽일놈."

"아,아니 그게 아니라..."

"됐고, 나가 보고 경찰에 신고했응께 여그 가만히 있으쇼잉."

아아, 나는 단지 그녀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나는 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사체오욕으로 징역 18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사랑이 죄란 말인가?

때문에 나는 죽어서 이게 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걸 다 쓰는 날, 나는 죽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글의 전문이었다.

어쩌다가 그가 이렇게 갑자기 막장으로 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안에 있던 짐승같은 본능이 억눌려져 있다가 그를 집어삼킨 것은 아닐까.

충격을 뒤로 하고 다음 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사망자 박서빈은 자살한 게 맞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