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所願)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


가장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여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그런 가장 불행한 행복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누군가는 돈을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명예를 말할테고,


다른 누군가는 건강을 말할 것이다.


과연, 당신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

"젠장, 평일은 왜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있는거야?"

겨울이 끝나가는 금요일 오전 아침.

학교 갈 시간.

몸을 단장하고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언젠가는 빛이 오리다'

우리 집의 가훈이다.

"젠장, 그렇게 온 빛이 전부 다 태워버렸네요. 아버지."

..... 저걸 볼 때 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짜증남과 울컥함이 동시에 차오른다.  

--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현재 롤러코스터의 삶을 살고 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가난하게 보내며,

차별과 무관심이라는 폭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다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대박, 

그 이후로 나름대로 부유한, 남들이 말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름 성적도 중위권을 유지하는 중

..진짜 그래도 그 때엔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 때 까지는.

-야 뭔 생각하냐?

내 생각을 방해하는 이 친구는 서혜윤

나랑 초등학교 때 부터 같이 놀던 단짝친구다

"그냥, 지금 상황.."

-새끼 또 궁상떨고 있구만, 학교 거의 다 왔다.

"야 넌 꿈이 뭐냐?"

-??? 꿈? 꿈이라... 소설가..?

"..소설가?"

-....소설가도 좋은 직업이거든!?

"그래라.. 근데 너 공부 잘하는데 소설가?"

-새끼 왜 갑자기 시비지? 형한테 뒤지고 싶은거냐?

내 머리채를 잡는 혜윤.

"누가 형이냐? 아! 놔라! 놔!"

오늘도 똑같이 변함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

집으로 가는 하굣길.

"그럼 먼저 들어갈게 - "

- 어야 들어가라

계단을 걸어, 도어락을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아

항상 까먹는다.

이젠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작년 이맘 때, 겨울의 끝자락 쯤에.

부모님이 형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빙판길에 미끄러진 가스차량과 부딛혔다고 했다.

... 그 전화를 듣고 나서부터는 이후의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처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다.

정신없이 살았다.

홀로 장례를 치루니 실감이 났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했다.

사업이 대박 난 이후로는 집이 가난하지 않아서, 돈 걱정은 없었지만.

갑자기 사라진 가족이란 존재의 부재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받은 유산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모두 다 통장에 넣었다.

그 뒤에는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었다.

이 집을 싸게 구했다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땐 참 좋았었는데.

"이제 알 게 뭐야."

.... 외로웠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남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울한 감정은 전이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외롭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야."

최소한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버틸 수 있었다.

"난 강인한 사람이야. 이런 걸로 무너지지 않아"라며,
허세라는 이름의 모래로 터질듯한 댐을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위로해주시던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시험이 가까워지자 자신들의 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랬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냥.. 그랬다.

그래도 지금처럼 이런 경우는 

어린 시절 기억이 나게 되서, 조금 그렇네..

"... 이게 뭐지?"

책상 위에.. 종이?가 붙어있다.

[축하드립니다! 가정용 AI 안드로이드 베타테스터에 당첨되셨습니다!]

[2개월 안에 배송되며 자세한 사항은......]

...? 그 밑에가 찢겨져 있네?

"아.. 모르겠어."

학교에서 열 시간 가량을 앉아있다가 왔는데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

"이따가 알바가야 한단 말야.."

나는 알바를 다닌다.

돈이야 가족이 남겨준 유산으로 넘치게 있지만, 그 돈은 뭔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급자족도 할 겸, 우울함도 풀어낼 겸, 알바를 다니기 시작했다.

사정을 알고 계셨던 아버지의 친구분이신 분식집 주인 사장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고2라 외견상으로 성인과 별 차이가 없다. 키도 다 컸고, 변성기도 끝났다.

그렇다고 해도 하는 일은 딱히 거창하지는 않다. 그냥 서빙이랑 설거지 정도?

"별로 되지도 않는 휴식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

바로 침대에 들어가 두시간정도 누웠다가 알바를 하러 간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뵈요!"

알바를 끝내고 나오는 길,

기온이 확실이 따뜻해진 걸 체감한다.

"이제 날씨도 전보다는 제법 따듯하네.."

"봄이 오고 있다는거지!"

나름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아. 

젠장. 또. 

나름 좋았던 기분이 짜증으로 물드려고 한다.

오늘 진짜 왜이러..

*어서오세요!

"??"

*반갑습니다!

*저는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 모델명 iz0입니다.

*우리 기업의 베타 테스터에 당첨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그 짜증은 한순간에 당황으로 바뀌었다.

".....어.. 네?"

긴 흑발에, 하얀색 피부. 보라색 머리띠.

사람과 다름없는 생김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바로 뒤를 돌아 집 밖으로 나갔다.

"... 이게 무슨 소리지? 왜 내 집에 모르는 여자애가 있는거지?"

다시 들어왔다.

자신을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라고 말한 소녀는

거실에 앉아있다.

생각을 해보자.

아, 아까 거실에서 그런걸 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진짜였다고..?"

아니 그것보다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라니. 그게 가능한거야?

그것보다 저거 기계 맞아?!"

.....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 왜 쉬운 길이 있는데 돌아가겠어?"

직접 물어보자.

"저기.."

*네! 안녕하세요! iz0입니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무엇이든지요!

--

0. "누구세요?"

*소원을 이뤄주는 기계!

모델명 iz0입니다!

"..... 네.."



1. "소원을 이뤄주는 기계라고 하셨는데, 사람 아니신가요?"

*아, 저는 만들어진 기계입니다.

겉모습과 할 수 있는 건 사람과 다를 게 없지만.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맛은 느낄 수 있어요!



2.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은 무엇인가요?

*...... 아.

뭐지? 내가 하면 안될 말을 한건가?

*아하하.. 이건 그냥 예의상 멘트이긴 한데..

티비 보다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마법의 진공 청소기.. 무엇이든 썰어버리는 장미칼..

... 이것도 그런 거 중 하나겠죠,,?

겠죠..? 뭐 상관없나..

*진짜 소원을 이뤄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것들을. 다 해드려요!

그래도 미성년자시라 야한 건 안돼요..

".. 그런 건 안 바래요!"



3. 제가 왜 베타테스터인가요?

 *.. 여기 집 값이 싸지 않던가요?

"집값이요?"

아.. 확실히 그랬다고 한 기억이 있다.

무슨 지원을 받아 싸게 샀다고 했는데.. 이게 이런 거였어?

*전 지역에서 무작위로 1000대가 보내졌어요.

그 중에서 뽑히신거죠! 무상 제공!!

거절 불가능! 


".... 집에 찾아온 이유가 이거였구만."


4. 어떻게 들어왔어요?

*추워서... 열려있길래 들어왔어요..

아, 하긴 봄이 온다고 해도.

아직 밤은 추우니까. 오기로 한 손님이라면 안에 들어와서 기다릴 수 있지.

그래도 아무런 연락 없이 집으로 들어온 건 조금..

....

문 단속 철저히 해야겠다.



5. ai..?

*아,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에요!

발전해나가고 사고하는 지능체에요! 딥러닝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1000 대가 있는데 각 기기마다 기능도 성격도 다 달라요!!



마지막으로.

"왜 이런 사업을 하시는거죠?"

*어.... 저는 잘 모르지만.. 우리 싸장님이 아시지 않을까요?

헤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온거라.. ㅎㅎ


*근데.. 저가 의심스럽지 않으세요?

무단으로 집으로 들어온 것도 그렇고..

솔직히 저같은 기계가 처음부터 잘 지내자고 해도..

너무 당황스러우실 것 같아서..

반송 불가능이라고는 했지만, 원하신다면 그냥 나가라고 하셔도 괜찮아요..


"나가라고 하면 하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반송은 방침 상 불가능이에요..

... 계약 상 안드로이드의 거주를 원치 않을 시

우리는 스스로..

"스스로? 뭐, 직접 쓰레기 처리장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는건가요?"

*네.

"...??"

*비슷해요, 소각장 좌표로 들어가게 됩니다.

"막 인공지능이라면서요!! 그런 건 막 윤리적인 측면으로 안되는 거 아니에요!?"

*하하.. 우리 주인님.. 인공지능은 사람의 정신같은 게 아니에요..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폐기된다고 해서 시위가 일어나기라도 하나요?

인공지능 컴퓨터가 불타버린다고 해도, 그 비용만 생각하지 윤리적 측면은 생각하지 않아요.

우린 아직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빅스비, 시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그저 우린 외형만 인간일 뿐인거니까요.

애초에 우리를 아는 사람의 수도 굉장히 적지만요 ㅎㅎ

애초에 인공지능은 제조될 때 부터 제약이 생겨요

"아, 로봇 3원칙.."

*네.. 비슷해요 인공지능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나온 적이 없잖아요?, 인공지능이 도둑질을 하거나 그런 것들 말이에요.

*불량품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도 어지간히 큰게 아니라면..

우리 사장님이 언론보도는 다 막을 수 있을거에요.

"뭐하시는 분인지.. 그 사장이라는 분.."

*저도 이름만 들어본거라.. 대단하신 분이라고 들었긴 했어요.

".. 뭐 아무튼.. 선택을 하라는건가요?"

*네. 형식적인 거긴 한데..

"딱히 상관 없어요."


".. 약간 곤란한데.."

*그런 애매한 답변으로는 안됩니다..

확인상 하는거니까 무조건 좋다, 싫다로 귀결되어야 해요.

"그래요. 전 좋아요."


"미안해요. 전 아직 당신이 의심스러워요."

"사실 전 사고로 가족을 잃었어요. "

"이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도, 그럴 힘도 없어요."


"미안하지만, 나가주세요. 지원받은 집값은 요청하시면 돌려드릴게요."

*... 알겠습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 이제 어디로 가는건가요?"

*주인이 동거에 거부할 경우 위치된 장소로 집결합니다.

"...........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로봇.

..내가 왜 그런거지?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

아.. 그렇긴 하지

내 집에 무단으로 들어온 로봇이다.

날 죽일지 집을 부술지 어떻게 알고 들여놔?

그래,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라니. 그런 걸 어떻게 믿어?
애초에 기계는 맞는거야?

분명 사기거나 다단계 업체였을거야. 

그래, 이게 맞는거야.

.......맞는 거..겠지?


.

몇 시간의 기계와의 만남은 인생을 준비하는 시간에 묻혀갔다.

그렇게 난 원래의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루하루, 그저 무기력하게 현생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꿈이 없던 나는 대학을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알바를 그만두고 수입원이 사라지자,

통장에 있던 돈을 쓰기 시작했다.

.... 갑자기 불어난 재산을 통제할 수 없었던 나는.

처음에는 조금씩, 이후에는 돈을 펑펑 써대기 시작했다.

돈을 쓸 때 만큼은 행복했다.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마치 소원을 이뤄준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은 무한하지 않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집 가구에 차압딱지가 붙어있었다.

... 지금 눈 앞에는 한강이 보인다.

한 손에는 소주병을, 남은 손엔 우울증 약을 들고, 눈 앞의 강물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사실, 내 인생은 아직 완전히 말아먹진 않았다.

빚이 1억 가까이에, 신용불량자라고 해도.

아직 원룸방은 남아있고, 열심히 알바를 해서 돈을 갚으면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해서 살아갈 미래가 막막했다.

또 살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지고, 죽어야 할 이유가 생긴 남자.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에게. 

문득, 이제는 지나버린 기계의 기억이 났다.

"하.. 그때, 잡았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이제와서 후회하는거야?"


뭐, 꿈도 희망도 없는 인생을 더 살아봐야

앞으로 힘든 일만 남아있을텐데.

"그래도 잘 놀다 갑니다."

.........*주인님..?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인 

긴 흑발에, 하얀색 피부.

몇 년 전과 다름없는.. 보라색 머리띠.

"... 아."

"... 살아있었네, 다행이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이미 난 너무 늦어버렸다.

목표 하나가 생각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허공이다.

아, 결국 나는 또 후회하는구나.

.... 풍덩, 뒤이어서 또 하나의 마찰음이 들려온다.

... 교각에 부딛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데, 무언가가 나를 끌고 올라온다.

*주인님 왜 그러셨어요... 왜?

눈이 잘 안 떠진다.. 의식도 희미하다.

하긴, 그 높이에서 부딛혔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게 머리감촉으로 느껴진다.

"살아..있었구나..다행이..야.."

말해야 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았는데..

옆에서 처절하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원..?..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젠장.. 이제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걸..

의식이 흐려지는 앞에서, 날 붙잡고 우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하.. 하하....

미안해.. 난 더 이상.. 용기가 안 난다..

그래도 너 만큼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을 지켜준 너 만큼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빌었다.

---------


그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기계가 장례식을 치뤄줬다.

그 돈은 어디서 난걸까?

뭐.. 나야 잘은 모르지만.

쓸쓸한 20대의 마지막 장소에는

예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만이 다녀갔을 뿐이었다.


기계의 시점.

*원래는 소각로로 가는 게 맞지만, 난 죽는 것이 두려웠다.

감정을 느끼는 불량품. 그게 내 정체다.

불량품이라는 이유 하나로, 두려움에 떨며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갈 곳이 없다. 원래 나 말고 다른 로봇이 발송될 집이었는데,

나랑 똑같이 거부 당했을 것이다.

뭐, 원래대로라면 지금 쯤 소각로에 들어가 없어졌었겠지.

난 매뉴얼대로 행동했었으니까. 다른 로봇이 왔었어도 똑같았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로봇을 바꿔친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거야..

일단은 살아야지. 인공지능이니까 뭐든 할 수 있을거야.

하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서 신분이 없다는 것은 힘들었다.

본사로 돌아가서 불량품이란 걸 밝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위험부담이 너무 높았다.


먹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지 않으니까. 어떻게 살아갈 수는 있었다.

다행히 나는 어느 한 인심좋은 노부부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릴 때 버려져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로 새롭게 출신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다. 노부부가 돌아가시자 그들의 장례를 치뤄드렸다.

늙지 않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팬케이크로 할까..

팬케이크 가루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강 다리 위에.. 사람이 앉아있다.

문득. 분명 보았던 사람이..

..... *주인님...?

.... 검은색 머리에.. 약간 수염이 자랐지만 확실하다.

...!!! 분명히 맞다.

반가움도 잠시, 이미 허공에 몸을 던진 그는..

*주인님!!! 안돼요!!

이미 늦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생각을 해야 한다. 빨리.. 어떻게든..

*하, 언제부터 내가 이런 걸 생각했지?

바로 몸을 던졌다.

수영을 비롯한 생존기술은 인터페이스 내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 많다.

왜 이렇게 됐냐고, 왜 이런 선택을 한 거냐고.

날 버린 걸 후회하냐고.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이렇게 가면 안 된단 말야... 제발...

일단 119를 불렀다.

... 아무래도 구급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터페이스 내에는 의료 관련 지식은 없는 것 같았다.

인간의 생명을 로봇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나.

*아, 젠장..

머리 속을 지나가는 기억.

*주인님..! 소원을 비세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

.. 말 그대로, 소원을 들어준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찢어서 숨겨뒀던.

전단지 밑 부분에 적혀있었던 바로 그 문구.


- 이 기계는 소원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 소원을 말한다면, 소원이 이뤄집니다.


- 그 후에 기계는 기능이 정지됩니다. 


*제발. 그냥 살고 싶다고 말하라구요!!!

".... 하..하하.. 살아..있었구나.. "

"넌.. 나처럼 되지 말고.. 행복하게..살아.."

나는 왜 만난 지 몇 시간도 안돼서, 날 버린 이 사람한테 이렇게 매달리는걸까.

내 목숨까지 포기할 각오를 하고서, 왜 이렇게 비는걸까.

그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었기 때문일까.

인생에서 몇 없었던 관계라서 그랬었던 걸까.

아직 날 기억하고 있던 게 고마워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내가 두려워서 그 종이를 찢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지금 쯤 소원을 이뤄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거란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사람을 살리고, 내 안의 이 끔찍한 감정이 사라진다면.

손등에 빛이 들어온다. 아. 소원을 빌었구나.

뭐, 이런 끝도 나쁘지는 않다. 원래는 난 없어져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


몸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원을 빌었다는 표시. 손등의 빛.

소원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내가. 몸이. 정신이 온전하다.

*주인님.. 기적이에요! 저 사라지지 않았어요!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어?


반응이 없다.

소원은 자신을 살려달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 왜..? 어째서?

그 후로 시간이 지났다.

내 이름으로 장례를 치뤘다.

돈은 노부부의 유산으로 치뤄드렸다. 죄송하긴 하지만. 나에게 주신 돈이니까.

장례식에는 주인님의 고등학교 친구와 선생님들 몇이 왔을 뿐이었다.

결국 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왜 마지막으로 자신을 살려달라는 소원이 아닌, 다른 소원을 빌었는지.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

단기간에 인생에 몇 없던 소중한 관계를 둘이나 잃었다.

극심하게 우울감을 느끼거나, 슬퍼야 할텐데.

분명 그랬어야 할텐데.

*왜, 계속 행복한 기분만 드는거지?

아. 소원... 설마?

..... 난 이제 슬퍼하지도 못한다는 건가?

하..하하.. 이제 진짜 기계같네.

마지막까지. 난 이렇구나.

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난.. 소원을 이뤄주는.. 기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