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천사가 흙길을 걷고 있을 때 천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요. 이것저것. 그러다가 제 가족에 대해 물었는데. 정말이지 저는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제가 악마라도 된 듯이 가족의 죽음과 나의 죽음, 자살 이 모든 끔찍한 것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무슨 말을 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다는 건 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라니, 자살이라니, 천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미안해요. 꼭 사과하고 싶습니다. 제 잘못이에요. 저는 살면서 말을 한 적이 거의 없기에 가끔 말을 하게 될 때면 정말 미쳐버리는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은 참담하고 끔찍하기 그지없어서 해봤자 이런 얘기가 전부에요. 정말 미안합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날 살려주세요.. 며칠 동안 혼자 말하는 연습을 해보았는데도 전부 실패했습니다. 연습과 실전은 언제나 달라요. 죽음도 그렇습니다. 이제 보니 죽음과 사랑은 비슷한 것 같아요. 언제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또 언제나 실패하니까요. (이것이 천사 앞에서 죽음을 언급한 나의 세 번째 실수.) 이 글을 통해서 사과하겠습니다. 천사여. 천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전 혼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아요. 정신이 나가버린다 이 말입니다. 그대의 아름다움이 저의 정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아요. 천사는 저를 죽여 버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저는 너무나 아름답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대를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너무 많은 실수를 해버렸어요. 정말 미안해요 천사..

 

이번 주는 멍하니 보낸 것 같습니다. 집 밖으론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천사와 밥을 먹은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인데 몇 십 년이 지난 것처럼 느껴져요.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 같단 말입니다. 제가 천사와 밥을 먹긴 한 걸까요? 이젠 그것도 꿈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네요. 아 머릿속이 온통 천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발 나를 살려줘요. 천사에게 제 마음을 말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천사가 제 마음을 거절하면 저는 정말 죽어버릴 게 분명해요.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말해보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말한다면, 그래서 잘된다면 나는 드디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 것이고 잘 되지 않는다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점점 미쳐가다가 죽을 것입니다. 제 마음을 말해서 살 확률은 절반이고 가만히 있어서 죽을 확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제 마음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정말 기뻐요. 드디어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요. 나는 천사의 집 앞에 찾아가 천사를 불렀고 천사는 웃으며 나왔습니다. 천사의 웃는 모습을 본 저는 순간 기절할 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약간 당황해하는 것 같더니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난 알고 있어요. 문장은 때때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천사가 나에게 말한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은 내가 남성으로서 매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나 우리가 흙길을 걸으며 나눈 대화가 끔찍했다는 것을 뜻한다는 걸 저는 알고 있단 말입니다. 두 개 중 어느 이유가 되었든 저는 상관없어요. 결과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아름다운 천사여. 왜 내게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습니까? 왜 나와 이야기하고 나와 밥을 먹은 것입니까? 그저 그림의 대가였나요? 모든 것들이 제 망상이었나요? 아 천사여. 그대를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끝입니다. 나의 천사여. 아름다운 천사여. 이제 정말 끝입니다.. 잘 있어요.

 

오늘은 마을 뒤쪽에 있는 높은 바위산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누구든 한방에 머리통이 부서질 겁니다. 확실해요. 내일 저녁에 이곳에 올라올 생각입니다. 그리곤 모든 것을 끝내겠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그린 모든 그림을 천사의 소유로 돌린다는 유서를 썼습니다. 나는 천사를 미워하지 않아요. 천사는 내게 죽음이라는 큰 축복을 선사한 것입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죽음은 태어나지 않는 것 다음으로 가장 큰 축복이 확실하니까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시는 이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조금 났지만 죽으면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눈이 빠질 때까지 울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요? 나는 왜 남들과 다른 것일까요?

 

밤하늘이 정말 이뻐요. 별빛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천사의 눈동자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천사. 아 그대여. 그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착하며.. 더 이상 글로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밤하늘을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아서 모자가 달린 옷을 입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자를 깊게 쓰면 밤하늘이 안 보이겠죠?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별빛 아래 그대와 걸었던 때가 생각나 죽을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다. 모두들 잘 있어요.

 

5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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