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계단에 앉아있는데 그 아줌마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아줌마는 곧 다른 아줌마들을 보더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라고. 소름끼쳤다. 몸이 떨렸다. 나는 저렇게 웃는 낯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게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니. 그리고는 곧 길에 서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비록 나와 그 아줌마의 사이에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간격의 길이는 한 뼘도 채 안 될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역겨워진 나머지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온 한 마디가 나를 잡아 이끌었다. 그들은 나를 맡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더니, 마치 그 아줌마가 성인(聖人)이라도 되는 듯 떠받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아주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가식의 절정이었다. 당장 뛰쳐나가서 저것의 실체를 말해주고만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았기에 그러지 못했다. 저들이 누구 말을 믿을지는 뻔했다. 설령 믿는다 해도 그 뒤의 일이 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헛주먹질이나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봐야 분은 풀리지 못했지만... 나는 이전부터 그 집에 있기 싫었지만, 그날 이후로 내가 그 집에 오래 있을수록 그 집에는 좋은 일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이틀 뒤 나는 다른 친척집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머무른 또다른 집은 내가 뭘하는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를 없는 놈 취급했다. 밥은 차려줬지만 같은 식탁에 앉을 일은 없었다. 그들은 나를 신경 안 쓰고 자기들끼리만 떠들었다. 나에겐 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혼자가 편했다. 남의 가증스런 얼굴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직접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다.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물론 그 집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가게에서 물건을 꺼내고 진열하는 거였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카운터에서 손님들에게 상투적인 인사를 하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말 없이 일만 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어릴적 계단에서 시간을 보낼 때처럼, 그게 나에게는 조그만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조그만 행복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또다른 집으로 가게 되면서 그 아르바이트는 관둬야 했고 이리저리 전전하다 어느새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 뒤엔 도망치듯 서울로 상경했다. 상경할 때 친척들이 아무 말 없이 돈을 줬지만 나는 그 돈은 선의로 주는 게 아니라, 남들 눈도 있으니까 돈은 주겠지만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말라고 주는, 말하자면 절연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그냥 냅뒀다가 또 자기들 집에 빌붙으러 오는 거 아닌가 걱정되서 그런 거겠지. 속내가 어떻든 그때의 나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 말 없이 받았다. ‘널 생각해서 이런다는 둥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며 주는 것보다야 나았으니까. 그동안 내가 일하면서 모아놓은 돈과 합치고 보니 그럭저럭 되었다. 물론 절연비가 여태껏 내가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곧 결심했다. 네놈들 소원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나는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모은 돈으로 어느 아파트로 이사했다. 나에게는 비바람 안 들어오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어디라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싼 곳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고시원도 옥탑방도 구하기 힘들었다. 내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하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렇게 몇 곳을 돌아다니다 우연찮게 그 아파트를 발견했다. 헐값이었다. 바늘 찾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부동산 업자는 집에 대해 연신 떠들어댔지만 상투적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처박혀있는 위치에 경비실도 없는 낡디 낡은 복도식 아파트긴 하지만, ‘아니 그게 뭐 어때서, 이 가격에 이 정도면 됐지. 그럼 설마 그 따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였다.

 

얼마 안 되는 내 짐을 옮기면서 내가 맨 처음 그 아파트에서 본 것은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와 그 뒤로 펼쳐진 녹색이었다. ‘서울 하늘 아래에 이런데가 있었다니.’ 내가 맨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것은

 

이웃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누가 맨 처음 떠올렸는지 모를 발상이 적힌 포스터가 아파트 한구석에 휘날리는 풍경이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뜯겨나간 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 얼마 안가 떨어져버릴 것 같았다. 저걸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꽤 많겠지. 척 봐도 낡았으니 붙인지 꽤 됐을 거다. 그리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설마 그 사람들이 몽땅 장님이겠어. 그럼 저걸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사람들은 그랬다. 아파트 앞,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갈 길을 가기 바빴고, 어쩌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버튼을 누르고 층수를 세면서 언제 자기가 누른 층에 도착하나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내 갈 길 바삐 가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버튼을 누르고 층수를 세면서 언제 도착하나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상경한 뒤로 나는 매일매일 일을 하고, 비어있는 시간에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놀았다. 그게 내 일상의 전부였다. 이 아파트는 확실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나에게는 편하게 잠잘 공간이 있었다. 낡은 게 대수야. 지금 당장 폭삭 주저앉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방음이 좀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그 친척들의 가증스런 낯짝을 볼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아파트에는 많은 이웃들이 살았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만 잠깐 보았을 뿐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알지 못했다. 그들끼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런데 나라고 뭐 다를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