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3학년이 되었다.

 

더 이상 놀 시간이 없었다. 공부를 해야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1학년 말쯤에, 나는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로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나름 착실히 공부해서, 모의고사에서는 처음에 5~7등급대를 찍었던 성적이 4등급대로 오르기 시작했더니,

3등급, 2등급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그 이후로 약간 자만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덧 수능날이었다.

 

수능 생각에 잠을 자지 못해 일어난 나는 곧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2명의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시죠?"

 

"입시차사 오명록."

 

"성적차사 백분희입니다, 임지훈씨 맞으시죠?"

 

"맞아요."

 

"2000년 5월 15일 출생. 맞으시죠?"

 

"맞는데요."

 

"그럼, 저희랑 함께 가시죠."

 

"갑자기 어디로요? 저는 좀 있다가 수능을 보러 가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수능 말이야. 수능. 우린 당신을 수험장으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왔어.

수능 시스템이 바뀌어서, 교육부에서 파견나온 우리가 당신을 모셔야만 한다고."

 

나는 물어볼 새도 없이 아파트를 나왔다.

 

아파트 밖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모셔 왔습니다. 대장님"

 

"야, 빨리 안 오냐? 지체할 새가 없어. 까딱하다가 늦으면 1년 정도를 낭비하는 거라고."

 

"아직 새벽인데 천천히 가도 되잖아요!"

 

"뭐야, 모르는 거냐? 수능은 앞으로 서울에서만 본다는 거? 아무튼, 지하철역까지 후딱 가자고."

 

"새벽에는 지하철이..."

 

"쉿, 대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화내시면 대장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고."

 

뭐지, 혹시 꿈인가? 이럴 리가 없다. 너무 비효율적인데?

 

"저분은 마킹도령님이세요. 저희 수능 삼차사의 리더죠."

 

마킹도령? 이름 참 이상하지만, 가명이겠지.

 

지하철역에 도착한 나는 들려오는 지하철 소리에 놀랐다. 이 시간까지 지하철이 다니다니...

 

"수능열차에요. 주로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을 위한 열차지요.

조용하고 열차칸 안에 독서실도 있어서 공부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거에요."

 

지하철에 탑승하였던 나는 이미 빼곡하게 들어찬 고등학생들과 다른 차사들의 수에 놀랐다.


앉을 자리는 없었고, 서서 가야만 했다.

 

독서실이나 자판기로 가는 것 역시 힘들었다.

 

그때였다.

 

"이대론.... 수능 안 봐...."

 

한 학생이 열차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잡아올까, 대장?"

 

"아니, 어차피 그놈 인생이야. 꼬라지 보니 보나마나 공부 안 하고 놀고 자빠진 놈인데. 그냥 냅둬."

 

지하철이 계속 이동하며 사람들을 태우는 동안, 나는 그나마 친절해 보이던 분희에게 말을 걸었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앞으로 9일 동안 수능 재판을 볼 거예요."

 

"엥, 재판이요?"

 

"네, 수능 시스템이 그동안 공부한 양에 따라 적절한 등급을 판결해 내는 재판으로 바뀌었어요."

 

참 이상한 나라다.

 

"아, 공부 안 하면 9등급 판결을 내리고 대학에 못 가는 거군요."

 

"왜 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하세요? 공부 안하고 띵가띵가 놀기만 한 건 아니겠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수험장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내리자."

 

수험장에는 여러 고등학생들과 차사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난 먼저 차에 가 있을 테니 니들은 일단 수험표나 등록 절차 끝내고, 바로 차 타러 가."

 

"잠깐, 여기서 수능을 보는 게 아니었어요?"

 

"말했잖아, 재판이라고. 재판장으로 가야지. 여긴 형식상 등록하는 곳이야."

 

등록 절차를 마치고 수험표를 받으며, 차로 들어갔다.

 

차 안에서 이런 비현실적인 곳에 대한 의문점을 계속 질문했다.

 

"그나저나 재판이라면서요. 판사가 있으면 검사나 변호사도 있을 거 아니에요?"

 

"변호는 우리가 한다."

 

"당신들이요?"

 

"그래, 문제 있나?"

 

"그럼 검사는요?"

 

"국가 내에서 고용된 사람들이 너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심사할 거다."

 

"알겠어요. 어디로 가는 거죠?"

 

"제 1관문, 국어지옥이에요. 그 다음에는 제 2관문 수학지옥, 제 3관문 영어지옥..."

 

"그만, 이쯤에서 됐어요. 더 이야기해주시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야기하는 사이에 국어지옥에 도착해서, 마킹도령이 재판장의 문인 초군문에 나의 수험표를 넣자, 문이 열렸다.

 

"여기서부터 너의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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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를 모티브로 써봤는데 너무 억지스럽다...

아무튼 이 괴작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수정) 아무래도 9시간 안에 모든 재판을 다 끝내기는 힘들 듯 해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