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기 전에 거울을 봤습니다. 아 왜 이리 못생겼을까요. 턱이 좀 더 갸름했더라면, 눈이 좀 더 컸더라면, 코가 조금 더 높았다면, 피부가 조금 더 좋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옷은 또 어떻고요. 저는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아서 옷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나름 최고의 옷을 입어보았는데도 거울을 보니 별로인 것 같습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별로라서 그런 것 같네요. 옷걸이가 별로인데 어찌 옷이 빛날 수 있을까요. 옷을 탓하지 말고 내 탓을 해야겠습니다.

 

저와 제 천사의 식사는 저에겐 황홀함의 연속이었겠지만 천사에겐 악몽의 연속이었겠지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정말 후회만 가득한 식사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때의 희미한 기억을 글로 남겨 제 잘못을 뉘우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저녁에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광장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고기를 파는 어부도 있었고 곡물을 파는 농부도 있었지요. 사방팔방에서 장사꾼들과 주민들의 고함소리가 뿜어져 나왔고 나는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천사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높이 솟아오른 시계탑의 분침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정각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제 심장은 빠르게 뛰었습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요. 아 저기 천사가 다가옵니다. 천사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던 내 걱정과는 다르게 천사의 얼굴에선 빛이 나고 있었기에 저는 한 번에 천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환하게 빛을 내다니!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사의 걸음걸이를 보세요. 제 심장을 두 조각 내려는 것 같습니다. 천사가 제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리고 제게 미소를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제 심장은 터질 듯이 흥분하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죽을 것만 같아요. 이렇게 죽고 싶진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죽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천사가 절 알아보곤 제 옆으로 다가왔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도 인사를 건넸지만 잘 들리지 않았는지 제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더군요. 그때 정말로 전 죽을 뻔했습니다. 멀리서 본 것보다 가까이서 보는 것이 더 이뻤으니까요. 정말입니다.

 

우리는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대부분 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이것이 경청하지 못한 나의 첫 번째 실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천사와 걷는 내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손목에 면도날이 들어왔을 때도, 목이 졸려 거의 죽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천사는 정체가 뭐란 말입니까? 정말 사람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천사인 건가요? 이곳은 어딜까요? 현실일까요? 정말 내 꿈인 건가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천사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지만 어느 식당이었는지,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갔는지도 헷갈릴 정도니까요.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 그녀가 제 그림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제 그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사실 천사가 물어봐 주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천사 정말 미안해요. 저는 태생이 찌질이라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험도 없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천사를 만나기 며칠 전부터 정말 많이 연습했는데도 막상 대화를 해보니 제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요. 급기야 저는 혼자 흥분하기 시작했고 저속한 말들을 섞어가면서 다른 화가들을 깎아내렸습니다. (이것이 저속한 말을 쓴 나의 두 번째 실수.) 하지만 천성이 착한 천사는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들어주었습니다. 천사는 정말 착해요. 정말로요. 악마의 왕이라 할지라도 천사의 자비로움과 따뜻함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고민해볼 겁니다.

 

밥을 다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저는 천사와 그 꿈같은 길들을 걸었습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서 하늘엔 별빛이 반짝거렸는데 천사는 별빛이 아름답다고 말했죠. 천사여 그건 거짓말입니다. 천사의 눈동자 더 아름다워요. 저 하늘에 박힌 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천사여 그대가 하늘이고 그대가 땅이며 그대가 생명이고 그대가 공기에요.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우주 그 자체에요.

 

4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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